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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넘봄
  • 함께하면 행복한 ‘의례’가 됩니다
  • 고영직 _문학평론가
  • 2013.12.31

 

 

 

 

 

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선생님을 아주 무서워했고, 아이들도 그 아이를 무서워했다. 아이는 학교에서 아무것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급우들은 아이를 ‘땅꼬마’ ‘바보 멍청이’라고 놀렸다. 아이의 성적은 늘 뒤처지는 꼴찌였고, 그래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아이는 외톨이였고, 철저히 왕따였다. 수업 시간이면 아이는 칠판 대신에 창 밖 풍경을 보곤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아이는 6학년이 되었다.

 

새로운 선생님이 부임했다. 이소베 선생님이었다. 이소베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학교 뒷산에 올라갔다. 땅꼬마의 보이지 않는 재능이 드러난 것은 이때였다. 땅꼬마는 머루는 어디에서 열리고, 돼지감자는 어디에서 자라는지 죄다 알았다. 꽃과 나무 이름도 모르는 것이 없었다. 서툰 솜씨로 그림도 썩 잘 그렸다. 선생님은 땅꼬마의 그림 솜씨를 칭찬했다. 그런 땅꼬마가 6학년 학예회 무대에 깜짝 등장했다.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이 놀랐다. 땅꼬마는 학예회에서 까마귀 울음소리를 흉내내는 공연을 했다. 알에서 갓 깨나온 새끼 까마귀, 엄마 까마귀, 아빠 까마귀, 이른 아침에 우는 까마귀, 행복하고 즐거운 까마귀 울음소리 따위를 흉내냈다. 마지막으로 고목나무에 앉아 우는 까마귀 소리를 목구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아주 별난 소리로 흉내냈다. 아이들은 땅꼬마의 공연을 보며 모두 울었다. 어른들도 “그래, 그래, 참 장한 아이야”라며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땅꼬마는 ‘까마동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고, 소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읍내에 숯을 팔며 제 몫을 하는 아이로 성장했다.

 

위 이야기는 일본 동화작가 야시마 타로가 쓴 동화 『까마귀 소년(烏太郞)』(1955)의 줄거리이다. 지금은 고1이 되었지만, 십수년 전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며 나 또한 퍽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학예회에서 까마귀 울음소리를 공연하는 왕따 아이의 재능을 발견할 줄 아는 선생님의 모습과 함께 학예회에서 아이들이 변모하는 과정이 퍽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야시마 타로는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을 서로 존중할 줄 아는 위대한 평민(平民)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1939년 반(反)군국주의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작가의 이력을 보면 나의 짐작이 과히 틀리지 않으리라. 야시마 타로는 패전 후 일본에서 가장 필요한 교육의 덕목은 저마다 가진 다양한 재능들을 존중하는 민주주의교육이라고 보았던 것이리라. 민주주의교육은 아이들을 병사 만들기로 훈련(training)하는 교육 과정에서 절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한 사람의 위대한 평민으로 양성(formation)하려는 평화교육에서 나온다. 『까마귀 소년』의 깊은 울림은 작가의 그런 마음이 학예회라는 의례 형식으로 표현된 것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의례(ritual)는 힘이 세다. 졸업식과 입학식 그리고 학예회와 축제 같은 의례는 상호존중과 협력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실제 행동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 조선 시대 서당의 스승과 학동들이 『소학』과 『동몽선습』을 배운 뒤에는 반드시 세책(洗冊)이라는 이름의 책걸이를 한 것은 그런 의례도 배움의 한 과정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의례 과정에서 스승과 제자가 서로 교학상장(敎學相長)하는 경험을 공유했다. 그런 아이들은 고향을 생각하고, 사람을 생각하는 배움의 정신을 잃지 않는다. 교육의 목적이 스승의 가르침에 있지 않고, 학생들의 배움에 있다는 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런 교육의 목적을 잘 구현하는 예가 바로 ‘공자학교’이다.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의 자왈(子曰) 앞에는 언제나 항상 제자들의 질문이 숨어 있다. 공자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제자의 배움 상태를 고려하여 일종의 1:1 맞춤형 교육을 했다. 그런 공자의 교육철학과 교육방법론은 나면서부터 아는 지식(生而知之)이 아니었다. 공자는 “다만 옛 사람들의 말을 좋아하여 그 말뜻을 민감하게 앎을 구하려는 사람일 따름이다(好古敏以求之者也)”라고 말한다. 여기서 ‘민감하게 앎을 구하였다(敏以求之)’는 태도야말로 공자학교의 영업비밀이었던 셈이랄까. 공자학교에서 스승의 그런 ‘몸짓’과 ‘호기심’을 익히려는 태도가 특히 중요한 것은 말할 나위 없다. 오늘날 학습이라고 부르는 학이시습(學而時習)의 본래 뜻이 바로 그것이었다. 공자학교에서는 대화적 대화법이 가장 중요한 의례 행위였다.

 

의례는 무엇보다 일종의 사회적 입사(入社)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조셉 M. 마셜의 『그래도 계속 가라』는 그런 입사의식으로서의 의례가 갖는 힘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이다. 그는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나고 자란 민속학자 겸 라코타 인디언의 전통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이다. ‘늙은 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잃은 손주와 나누는 이야기 형식을 취한 이 책은 인생에 관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지혜와 통찰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1890년 운디드니 대학살(genocide)과 함께 미 연방정부가 소위 인디언 전쟁을 종언한다고 발표했을 때, 인디언 인구는 25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이들은 현재 원래의 땅 가운데 2.5퍼센트에 대해서만 명목상의 권리(점유권)를 가질 뿐만 아니라, 연방정부가 정한 혈액량 기준을 충족시켜야만 인디언으로 인정받는다. 그런 일상적 차별과 모욕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자신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지키고자 한다. 성인식을 비롯한 각종의 의례를 중요시하려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한 젊은이가 어느 마을을 찾았다. 젊은이가 가진 곳이라곤 옷과 무기 그리고 말 한 마리였다. 젊은이는 마을 지도자에게 무리에 합류해도 되느냐고 간청했고, 마을 지도자는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을 찾아서 그들에게 당신 말을 주시오”라고 말한다. 그러자 젊은이는 난색을 표하고 길을 떠났다. 젊은이가 떠난 뒤, 마을의 현명한 지도자가 말했다. “그가 자기 자신이 처한 곤경보다 더 큰 것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으면 해서였소.” 이미 마을에는 충분히 많은 말이 있었지만, 지도자가 젊은이에게 그런 요구를 한 것은 이기심(egoism)을 시험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이런 이야기는 너무나 많다. 한증막이라고 부르는 부활 의식을 갖는 행위도 그런 의례의 일종이다. 땀을 흘리는 행위를 통해 몸과 마음의 정결과 정화를 추구하는 식이다. 마을 밖으로 떠나려는 젊은이들이 2km 남짓한 높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행위도 그런 의식의 일종이다. 문제는 그 계단이 위로 향할수록 폭도 좁아지고, 높이도 더 높아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마침내 정상에 오른 젊은이들은 문 위의 아치에 적힌 글귀를 확인하게 된다. ‘강인함은 노력과 고통의 선물이니라.’ 우리는 이러한 의례들에서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어떤 사람의 인생에 대한 최종평가는 ‘어떻게 살았느냐?’를 갖고서 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현대에 와서 의례는 점점 상품화되고, 갈수록 연예 프로그램화되고 있다. 이 점에서 단순히 의례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종의 의례를 스스로 기획하고 연출하며 함께 즐길 줄 아는 능력이다. 의례에 동원되는 객체로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의례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투게더(Together)’ 정신을 체험하는 것이 요구된다. 저 1970~1980년대에 십대 시절과 대학 시절을 보낸 나는 온갖 의례에서 그런 감수성 체험과 자기 기획의 원리를 전혀 배우지 못했다. 졸업식과 입학식 같은 의례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처럼 따분하고 진부함(Cliché) 자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대학 졸업식 때 총장이 축사할 때, 나는 동료들과 함께 야유를 하며 등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웃음을 잃어버린 사회와 학교에 대한 일종의 항의 표시였던 셈이다. 이러한 항의 표시는 지금의 청소년들 또한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 중고생 졸업식 때면 아이들이 교복을 찢고, 밀가루를 뿌리고, 달걀을 투척하는 등의 갖은 해프닝이 벌어지는 현상을 보라. 그런 일탈 행위를 통해 아이들은 ‘청소년의 반대말은 자유’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새로운 의례의 언어가 필요한 것은 말할 나위 없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의 『투게더』를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 책에 대한 리뷰는 『녹색평론』제131호(2013년 7-8월호, www.greenreview.co.kr)를 참조하라.〕


종교, 작업장, 정치, 공동체 생활에서 의례가 풍부한 협력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의례를 위한 ‘리허설’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 이 책에서 퍽 인상적이었다. 리허설에서 “바깥으로 눈을 돌리는, 즉 자아를 깨뜨리는 듣기의 예술을 배워야 한다”고 한 표현이 그러하다. 이 말은 결국 몸이 낮아져야 마음도 낮아진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몸으로 하는 연대가 있어야 마음의 연대 또한 더 강하게 형성되는 법이다. 그런 의례가 진행되는 순간과 그 순간에 함께 있는 사람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기쁨의 선물을 주고받게 된다. 심리학자 어빙 고프만은 그런 순간을 상황의 사회학(sociology of occasion)이라고 풀이한다.

 


 

12월은 한 해를 정리하고, 결산하는 달이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도 한 해의 교육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다양한 의례들이 진행되고 있다. 하나의 의례를 통해 아이들이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와 접점을 형성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때 아이들을 절대 소외시켜서는 안된다.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의 첫 도화선 역할을 한 흑인여성 로자 파크스가 저 위대한 1인 혁명을 할 수 있었던 근본 바탕에는 하이랜더(Highlander)에서 <인종통합 워크숍>에 참여한 교육 경험 때문이었다. 하이랜더는 미국 교육자 마일스 호튼이 1932년에 세운 시민학교였다. 인종통합 워크숍에 참여한 흑백의 남녀가 함께 밥을 먹고 있고,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무엇인가를 쌓았던 경험이야말로 위대한 변화와 자유를 향한 작은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마이클 호튼이 파울로 프레이리와의 대화에서 “저는 민중에 ‘대해’ 실험한 것이 아니라, 민중과 ‘함께’ 실현을 한 것입니다”라고 한 말은 당당한 겸손함의 태도를 드러낸 언명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의례에 관한 한,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다. 20년간 감옥에서 수감 생활을 해야 했던 신영복 선생은 노래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언제나 항상 똑같은 레퍼토리의 동요 <시냇물>을 부르곤 했다고 한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이 동요에서 핵심은 ‘넓은 세상’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마지막 가사이다. 신영복 선생은 이 노래를 부르노라면 실재하는 감옥이든, 저마다의 마음 속 감옥이든 간에, 자신의 에고이즘에 갇힌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했다고 술회한다.

 


 

위의 일화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의례들의 새로운 혁신 측면에서도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각자의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의례의 과정에서 사교성을 넘어 사회성을 배우고 익히는 새로운 의례의 ‘언어화’를 말하는 것이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리처드 세넷은 그런 사회성은 함께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마다 그런 의례 형식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것을 체험하며, ‘넓은 세상’을 향해 모험을 떠나는 의례를 함께 기획하고 연출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된다(We make the Road by Walking)’는 격언은 우리의 자신감을 충전해주는 좋은 나침반이 될 것이다. 벗들이여, 그대들 또한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간에, 그래도 계속 가라!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http://www.gbo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