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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런던 박물관 전시가 담은 “세계의 이야기”프로젝트
  • 고유민 _University of Leicester 박물관학 석사과정
  • 2013.08.24

 

 


 런던 올림픽이 한창이던 작년 여름, 런던이라는 도시의 역사와 이야기를 가장 잘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껏 안고 런던 박물관(Museum of London)을 찾았다. 라는 로마시대의 런던을 다룬 상설전시실로 들어서려는데, 그 입구에 라는 특별전이 한 섹션을 차지하고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가이 포크스(Guy Fawkes)의 가면들이며 다른 전시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때문에 유난히 눈에 띄어 흥미롭게 소개 글을 읽기 시작한 순간, 아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박물관 직원들과 “Junction”이라는 박물관의 청소년 패널 그룹이 함께 이 전시를 기획하고 전 과정을 함께 준비하여 선보였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실무를 담당하는 각 부서의 직원들과 중요 관람층인 청소년층의 조합이라니,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하던 때에 그야말로 상상만 해 볼 수 있었던 전시기획이었으니 말이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이 신선한 콜라보레이션이 한 섹션의 전시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두색 레이블로 표시해 놓은 그들의 작업은 Roman London 전시실의 기존 전시 전반에 곁들여져 새로운 개념의 리노베이션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관람하다 보니, 어느 사이 마지막 연두색 레이블에 이르렀고, 그 옆에 있던 설명글을 통해 이 기획의 시작은 2012년 런던 올림픽과 함께 진행되었던 런던의 문화 올림픽(London 2012 Cultural Olympiad) 프로젝트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전시가 그렇게 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고, 거국적인 프로젝트가 문화 분야의 핵심 가치를 실질적으로 다뤘다는 사실에 감동했으며, 그 기획이 이렇게 이상적으로 실현된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런던의 2012 문화올림픽에 대하여 언급하자면, 런던 올림픽의 개최가 결정되면서, 문화 올림픽 또한 2008년부터 4년 동안 기획되었다. 이 문화올림픽은 올림픽 기간 동안 영국 전역에서 미술·무용·문학·음악·연극·패션 등 수 많은 문화 예술 분야를 망라하는 약 17만 가지의 크고 작은 행사로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이를 통하여 영국 정부가 공약했던 대로 런던 올림픽은 전례 없는 문화 축제였음을 확인시켜주었다. 문화올림픽의 7가지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가 “세계의 이야기(Stories of the World)”이다. “세계의 이야기”는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와 런던 올림픽 조직위원회(LOCOG)의 지원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로, 영국 전역의 61개 박물관·미술관 등의 문화기관을 중심으로 22,000여명의 청소년층이 참여하여 기관의 직원들과 함께 컬렉션 관리부터 전시 기획 및 진행, 큐레이팅 등 실질적인 역할을 했다.

 

 이 프로젝트는 박물관·미술관이 중심이 되어 진행된 프로젝트 중 역사상 가장 많은 청소년들이 참여한 프로젝트로, 130건의 전시와 약 5,000건의 이벤트가 탄생했다. 다인종·다문화 나라로서, 영국의 소장품을 활용하여 현재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권 사람들의 이야기, 영국과 세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였다는 내용면에 있어서도 의의가 있지만, 청소년층이 지역의 문화기관과 협업하여 그들 스스로의 아이디어와 의지로 프로젝트의 주축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의 다양하고 새로운 시각을 기존의 전시에 적용하여 소장품의 재해석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 더욱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그런 면에서 런던 박물관의 프로젝트는 그 의의를 매우 효과적으로 살린 예라고 할 수 있다. 론디니움은 로마시대의 런던지역에 세운 요새의 명칭으로, 런던이라는 명칭의 어원이다. 전시명에서 알 수 있듯 런던을 처음 세웠던 로마인들이 남긴 유산들, 로마시대의 런던과 현재 수도인 런던의 연결 고리들을 선보인 전시이다. 이 프로젝트는 런던 박물관 전 부서의 협조와 관련 기관들의 협력으로 2009년부터 기획되었는데, 150여명의 청소년들이 참여하였고, “Junction” 이라는 16세에서 21세의 런던박물관 청소년 패널이 중심이 되어 다른 청소년들과 함께 세부 프로젝트들을 기획하고 진행하였으며 이들의 손길이 닿은 영상, 디오라마, 원고, 시, 애니메이션 등이 실제 전시가 되었다.

 

 세부 프로젝트들 중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면, “Speak to me”는 시인과 함께 시를 써보는 워크숍을 하여 그 완성작을 전시한 프로젝트이다. 로마시대와 현재 런던의 이미지들을 보며 라틴어가 로마시대의 런던에 어떻게 기여하였고, 현재 언어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런던에 들어온 새로운 문화들이 어떻게 언어를 바꾸어 가고 있는지 등에 대한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더 나아가 Junction 멤버들이 ‘글레디에이터 시 경연대회’를 주최하여 라틴어가 남긴 흔적들을 탐험하고, 다양한 연령대 시인들의 참여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Unearthing London” 프로젝트는 박물관의 고고학부서와 함께 실제 발굴 작업에 참여하여, 발굴 작업과 관련된 모든 과정이 동영상으로 제작된 사례인데 동영상에 애니메이션이 가미되어 더욱 재미있게 완성되었다. “Londinium calling” 프로젝트는 한 친구가 박물관까지 오는 길에 마주하게 되는 21세기 생활의 요소들 중,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게 해 주는 고리들을 담아 영화로 제작한 프로젝트다. 리서치와 스토리라인 구성, 영화 촬영과 편집 과정 등의 전 과정에 Junction 멤버가 참여하였다.

 

 이 외에도 로마시대의 글레디에이터 경기를 현대화한 영상, 로마시대의 주방 모습을 디오라마로 재현하고, 당시의 음식을 지금의 재료로 만들어 보는 동영상과 레시피 책자를 전시한 예, 화장도구 및 머리장식 전시와 함께 당시의 방법으로 화장과 머리장식을 시연하는 동영상, 현재 런던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로마시대의 흔적들을 폴라로이드로 찍어 런던의 지도 위에 붙여 전시한 예 등, 전시실 곳곳에 참신하고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이 가득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박물관 소장품과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이해 및 지식을 확장 할 수 있었으며, 프로젝트 구성 요소를 선택하고 전시 곳곳에 들어갈 원고들을 작성하며 그들의 역량과 창의력을 활발하게 발휘할 수 있었다. 또한 박물관의 역할, 소장품 수집 및 전시와 관련된 윤리에 대한 고민을 해 보고, 박물관의 운영 시스템, 전문적인 영역에서의 업무 스킬 등을 배우며 쉽게 접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직접 참여한 일들이 올림픽 시즌에 맞추어 전시라는 형태의 결과물로 탄생되고,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며 공유한다는 것은 여느 박물관 큐레이터와 에듀케이터들이 느끼는 성취감과 기쁨에 못지않았을 것이다. 

 

 동시에 박물관으로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우선, 상설전시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었고, 기존의 전시 내용과 어울리는 새로운 방식의 리노베이션이라는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박물관 소장품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관람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지역사회 참여 프로젝트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던 큐레이터들이 직접 청소년층과 함께 일하고, 교육담당 직원들은 박물관 소장품에 대한 작업을 하면서 부서간의 장벽을 없애고 공유영역을 넓히는 발전적인 결과도 낳았다.

 

 “세계의 이야기” 프로젝트는 영국 전역의 문화기관과 청소년층의 중요성을 주목하였고, 이들의 참여가 가시적으로 전국의 주요 박물관, 미술관 등의 문화기관에서 세계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로 탄생하도록 이끌었다. 그저 특정 프로젝트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기관에 핵심적인 역할을 부여하였고, 그 기관이 충분한 준비기간을 두고 기획단을 구성하고 다양한 실험과 방법들을 구체화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였으며, 해당 기관의 모든 계급과 부서의 직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권장하였다. 이를 통하여 참여 청소년들의 제안이 바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며, 표면적으로만 진행될 수도 있었던 거국적 프로젝트가 해당 기관으로, 그 기관이 자리하는 지역으로, 그리고 참여하는 청소년층의 역할로 뿌리를 내려 성공적으로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이야기”를 구체화한 런던 박물관의 전시는 박물관의 청소년 패널 그룹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완성도 높은 전시를 선보여 문화도시로서의 면모를 정석으로 보여주었다. 동시에 런던의 2012 문화올림픽을 더욱 풍성하고 깊게 완성시켜주었으며, 문화 선진국의 역량을 폭넓고 깊게 보여주었다. 아쉽게도 아직 우리나라 박물관에서는 어린 학생들, 청년층이 전시 준비의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로 참여하고 그 참여가 실제 전시로 이어져 전시실의 곳곳에 선보여진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세계의 이야기” 와 와 같은 프로젝트의 긍정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면 우리나라 박물관·미술관 등의 문화기관이 지역의 청소년층과 융화되어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문화공유지로 거듭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끝>

 

[참고 사이트]

 

   * 런던 박물관의 “Our Londinium 2012”관련 웹사이트
http://www.museumoflondon.org.uk/london-wall/Whats-on/Exhibitions-Displays/Our-Londinium-2012/
   * 런던 박물관의 “Stories of the World”관련 웹사이트
http://www.museumoflondon.org.uk/Get-involved/Collaborative-projects/Stories-of-the-World/More-about-Stories-of-the-World.htm
   * London 2012 Cultural Olympiad 관련 웹사이트
http://www.artscouncil.org.uk/what-we-do/our-priorities-2011-15/london-2012/
   * London 2012 Cultural Olympiad-Stories of the world 관련 웹사이트
http://www.artscouncil.org.uk/what-we-do2/our-priorities-2011-15/london-2012/stories-world/
   * “Stories of the world” 평가 보고서
http://www.artscouncil.org.uk/media/uploads/pdf/london_2012_academic_report/Appendices_2_6_case_studies.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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