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문화 재단
  •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지난호 보기

이미지입니다.
  • 넘봄
  • 장애인 공연예술 접근성에 대한 공적 지원과 사적 확장
  • 문영민
  • 2018.10.29

25호 넘봄 
장애인 공연예술 접근성에  대한 공적 지원과 사적 확장
문영민

 

 

공연예술은 극장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관객과 예술가가 소통을 하는 예술 장르이다.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버스에서, 거리에서, 일터에서, 비장애인과 같은 ‘공간’을 점유하지 못해오던 장애인이 극장이라는 공간에서도 배제되어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2006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주로 고용영역에서 장애인의 차별을 다루었던 장애인 복지 법제들이 문화와 여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장애인에 대한 배제를 ‘차별’로 촘촘하게 규정하며, 관객으로 장애인이 극장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2000년대 중반 이후 장애문화예술극회 휠, 장애인 극단 애인, 춤추는 허리 등의 장애인 극단이 활동을 시작하며 다양한 몸을 가진 배우들이 무대라는 공간에 주인공으로 설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진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애인은 관객이자 예술가로 극장에 접근하는데 다양한 어려움과 직면한다. 2018년 4월 프로젝트 극단 ‘0set’이 실시한 ‘대학로 공연장 및 거리 접근성 워크숍’ 결과에 의하면 연극의 메카로 불리는 서울 대학로 공연장 120개 중 휠체어 이용자가 관객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공연장은 12곳뿐이었으며, 이 중 장애인이 창작자로 무대에 설 수 있는 극장은 단 3곳에 불과하였다. 또한 배리어프리 ‘영화’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공연예술은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장르로 남아있다.

 이 글에서는 장애인 공연예술 접근성의 확보를 위해서 공적 영역에서의 지원의 확대뿐만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 접근성에 대한 상상력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의 문화예술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연방정부 기관인 연방예술기금(NEA: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의 접근성 지원을 통한 창작기회 확보 사례와, 농인들의 창작 발표 무대인 ASL slam의 창작 사례를 살펴보며, 국내에 적용할 수 있는 함의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의 문화예술 지원 : 공적 지원과 사적 지원 

 

미국의 예술 활동 지원은 공적 지원과 사적 지원이 결합된 형태이다. 공적지원은 연방 정부, 주 정부, 시 정부 차원의 보조금으로 나뉜다. 연방 차원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문화부’는 부재하지만, 연방 차원의 문화 관련 기구인 국립예술위원회(National Council on the Arts)와 연방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s for the Arts)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국립예술위원회는 1965년 연방의회가 설립한 독립적 문화예술 지원기구로서 연방예술기금의 사업 방향에서부터 예산 배정에 이르는 정책 자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중앙 차원의 문화예술 진흥체계는 미국 연방 차원의 문화예술 진흥과 관련된 지원정책을 수립하고 관련 지원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보조금(grant)’은 연방 정부에서 해당 수혜자에게 주는 재정적 기금을 말한다. 이는 공적 활동으로서 문화예술 후원을 장려하고 미국 법에 의거하여 공적 문화예술 활동을 고무시키기 위한 것으로 연방 정부의 재산 또는 서비스의 직접적인 혜택을 획득하기 위하여 사용된다. 보조금의 규모는 미국의 재정규모에 따라 달라지는데, 우선 대통령이 예산을 상정하면 의회가 이를 심의, 통과시켜 재정지원 규모를 결정한다. 이 중 40%는 50개 주 정부 공동 배분과 인구비례에 따라 달라지는 특별 배분을 실시하고, 나머지 60%는 예술단체에 무상 형식으로 주어지는 보조금 등으로 사용된다. 사적 지원으로는 기업, 재단 등으로부터의 지원, 개인들의 기부금, 문화예술 관련 비영리기구들의 적극적인 연구, 보조 활동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ADA를 기준으로 장애인 접근성 지원을 통한 창작 기회의 확보

 

미국의 연방예술기금(NEA;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은 문화예술 지원을 위하여 1965년에 설립된 연방정부 유일의 독립 기관으로, 국고 보조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연방예술기금의 직접 지원금 사업은 크게 아트워크 보조금 프로그램(ART WORKS grant program)과 챌린지 아메리카 보조금 프로그램(Challenge America grant program)으로 나뉜다. 전자는 전국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우수 예술에 대한 대중의 참여와 접근, 전문적 예술 창작, 예술 교육, 지역사회에서의 통합 예술 프로젝트 등 규모의 대소, 기존 혹은 신규 프로그램과 상관없이 미국 주(state)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서 지원되는 프로그램이다(프로젝트당 지원금은 1만달러에서 10만달러). 후자의 경우 장애인뿐만 아니라 지리적, 민족적, 경제적 문제로 예술을 접할 기회가 적은 사람들을 위해 예술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프로젝트를 위해 지원되는 보조금 프로그램으로 지원금의 규모는 아트워크에 비해 작지만(1천달러에서 1만달러),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이 예술 창작, 교육, 워크샵 등 진행을 위하여 챌린지 아메리카 보조금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장애인의 아트워크, 챌린지 아메리카 보조금 프로그램 참여를 증진하기 위해 연방예술기금이 접근성 사무국(accessibility office)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장애인의 예술 접근성 요구를 해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장애인 예술가/참여자가 포함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는 미국 장애인법(ADA)과 연방예술기금의 내부 규제(Endowment's Section 504 Regulation)에 의거하여 해당 프로젝트가 장애인 접근성을 마련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접근성 설문지(Accessibility Questions)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예컨대 연극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하였을 때 휠체어 접근성이 충족되는지를 확인하여야 하고, 각 장애유형별로 서비스에 대한 체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연방예술기금 보조금이 지원되지 않는다. 프로젝트를 신청한 기관 내부적으로 접근성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경우 연방예술기금의 접근성 사무국은 다른 기관과의 ‘자원 연계’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장애인 접근성 확보를 기초로 하여 예술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연방예술기금의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의 경우 장애인 예술가/참여자가 접근성의 이유로 예술 창작과 향유에서 배제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ASL(America Sign Language) 문화 구전의 장소로서의 공연예술 무대 

 

공적 영역에서 장애인의 접근성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규제들이 장애인의 창작 활동을 보조하고 있다면, 사적 영역에서 접근성의 범위를 확장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시도되고 있다. 2016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흑인 휠체어 퍼포먼서 앨리스 셰퍼드(Alice Sheppard)의 무대, 혹은 농인 모델로 미국에서 뮤지컬 <작은 신의 아이들(Children of a Lesser God)>을 기획하고 있는 나일 디마르코(Nyle DiMarco)의 활동 등은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여기에서는 청각장애인 공동체의 공연예술가들이 라이브로 관객 앞에서 작품을 창작, 발표, 발전시킬 수 있는 창작 개방 무대인 ‘ASL slam’을 소개하고자 한다. 

 

농인 ASL 시, 공연예술 창작 개방 무대인 ASL slam의 한 장면

(출처 : https://www.reviewjournal.com/local/henderson/nevadas-first-asl-slam-for-deaf-hard-of-hearing-held-in-henderson/)

 

ASL slam은 수화 쓰기 운동(sign writing movement)을 진행하던 시인이자 창작자인 Bob Arnold가 2005년 3월 창립한 프로젝트로, ① 신진, 기존 예술가들이 안전하고, 지원을 받는 환경에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함으로써 시, 공연, 즉흥, 문학, 시각예술 및 음악에서의 새로운 실험적 작업을 제시하고 장려하는 것, ② ASL 표현 작품을 보존하고, 더 많은 관객에게 예술가를 노출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비디오를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ASL slam은 공개 행사에서 완전한 공연에 이르기까지 월별 행사를 번갈아 가면서 전세계 농인 관객과 공연예술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ASL slam은 오픈 스테이지 방식으로 무대를 구성하는데 참여자들 모두가 무대 위에서 수화만을 사용한다. (비장애인의 참여를 위하여 음성 통역도 함께 제공한다.) 수화를 매개로 이들은 ‘농(deaf)’이라는 정체성으로 스테이지에서 하나가 된다. 행사에는 농인(deaf, 수화를 쓰는 사람)과 난청인(hard of hearing) 뿐만 아니라 농맹인(deaf-blind), 수화를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유형의 장애인, 그리고 대학교에서 수화를 전공하는 청인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을 즉석에서 무대로 초청해 공연(시 낭송, 힙합, 수화 랩) 뿐 아니라 스토리텔링, 즉석 게임 등을 진행한다. 

 

ASL 시 중 하나인 “빛이 있으라(Let There Be Light)”

 

최근 농인 사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ASL slam은 ASL 버전의 ‘구술 역사’와 ‘구술 문학’이 확산되는 공간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도 독특한 점이다. 이 공간을 통해 구전되는 가장 유명한 ASL 시 중 하나인 “빛이 있으라(Let There Be Light)”는 이 안에 ASL 시인들의 기원과 내러티브들이 담겨 있다. 이 시는 ‘한계’를 상징하는 상자로 시작되어, 이 상자가 들기 무겁다는 퍼포먼스를 통해 제약을 표현한다. 참여 예술가는 ‘영화적 문법(cinematic grammar)’을 통해 관객의 시선을 별을 상징하는 공간에 멈추게 하고, 반짝이는 별들이 눈부신 우주 비행사로, 이것이 다시 창조되는 지구로, 진화를 통해 자라나는 식물로, 물과 생명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 시에서 표현된 ‘지질학적 시간’은 ASL 사용자들의 언어가 세대를 통해 전달될 수 있는 전설과 신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시와 신화를 아우르는 혼합 문학 형태의 ASL 신화는 소외된 공동체의 이야기를 공동체적으로 수집하고 기록하는 역할을 한다. 이 이야기는 ASL slam과 같은 ASL 공동체 내에서 농인 문화 소멸에 저항하며 계속해 전달되고, 미래 세대를 위해 활성화된다. 이것이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에 대한 접근성 지원을 토대로 농인 공동체 내에서 자생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의 함의 

 

사회 각 분야에서 장애인의 접근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며, 공연예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장애인 관객을 위해 극장에 경사로를 설치하고, 한시적으로 청각장애인을 위해 수화통역사를 섭외하는 등 기초적인 수준에서 접근성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정 규모 이상의 객석, 공연을 기준으로 하는 등의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규모와 상관없이 장애인의 공연예술 창작을 위한 접근성이 좀 더 섬세하게 지원될 필요가 있다. 이는 비장애 중심적 사회 공간 전반에 대한 재구조화를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현재 여전히 사회 곳곳에 장애인이 점유할 수 있는 ‘공간’과 자원이 부족한 현실을 반영하여, 미국의 연방예술기금의 사례처럼 예술 프로젝트에 대한 접근성 자원을 연계할 수 있는 통로를 둘 수도 있다. 예컨대 경사로, 점자 프린터 등의 물리적 자원 뿐 아니라, 수화통역사, 공연 활동보조인 등을 지원하는 공식적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다양한 몸을 가진 인간들이 모두 “날 수 없다”는 명제로 시작하여 대학로 장애인 극장 접근성을 다룬 프로젝트 극단 0set의 공연 <나는 인간>의 한 장면]

 

이와 함께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고민을 모든 예술가/예술단체가 확장해 이를 공연의 재료로 활용하여 다양한 공연 창작을 시도하고,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이슈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도 필요하다. 예컨대 국내 프로젝트 극단인 ‘0set’은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사회적 고민의 확장”을 모토로 공연을 제작해오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사적 영역에서 더욱 확대될 때 접근성의 문제가 단순히 ‘공적 지원’ 혹은 ‘사회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비장애인 예술가와 관객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문제로 확장될 것이며, 접근성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들을 탐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_본 원고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지원을 받아 2018년 1월부터 5월까지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수행한 <장애예술인 창작활성화 프로그램 개발 연구>의 일부임을 밝힙니다.

 




 

문영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장애인 공연예술, 장애인의 몸과 건강 불평등, 장애정체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장애문화예술극회 휠’,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에서 배우와 작가로 활동하였고, 현재 프로젝트 극단 ‘0set’에 창작자로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