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넘봄
- 행복하고 영원한 반복의 가능성
- 이두호
- 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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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넘봄
행복하고 영원한 반복의 가능성
이두호
변비.
물을 많이 마시고, 과일을 많이 드세요.
화장실에서 오래 앉아있는 시간이 많다.
그러다가 변기를 뒤집어 놓은 것으로 유명한, 뒤샹의 <샘>이라는 작업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왜 변기가 아름답다고 했을까.
여러가지 이야기가 가능하다.
일단, 우리들의 변을 말없이 받아들여 해결해주는 그것은 가장 은혜로운 존재이므로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또 한 가지는 제도권 예술이란 것인데, '단상'(stand)이란 것. '지칭'이란 것의 개념과 그 극단을 극명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충격적이다.
'제도'란 것이 우스운 것인데, 그러니까 같은 물건이라도 예술적 공간과 예술적 시간에, 예술적인 형식으로-'제도'를 따라서- 제시함에 따라, 실제로 그것을 '예술'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 어떤 것이라도 미술관에, 전시장에 가져다가, 단상 위에 올려놓고, 조명을 비춰가며, 작품명을 적어서 붙여가며, ‘이것은 예술이다’라고 지시하는 것으로 예술성을 부여받게 된다. 그 대상이 '변기'라는 점은 이 상황을 상당히 극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그냥 뒤샹의 농담, '진실한 농담'과 같은 것이었다.
문득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예술이나, 어떤 다른 작업이나, 무언가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할 때, 내 작업의 결과물은 자주, 제대로 되지 않거나, 어떠어떠한 컨셉만을 보여줄 뿐 상용 제품이나 상업 갤러리의 작품처럼 완성되지 않는 것을 경험해왔다. 아, 나는 언제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건만, 그것이 왠지 그렇게 되지를 않는다.
항상 사람들-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잘 안 되는 것, '고장난' 작업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며 돌아간다.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기술적인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뭐 나름 재미있어하긴 하지만, '아쉬워' 하면서 돌아간다. 더 잘 만들었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다이애나밴드가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첫 번째 작업이었던 <종이피아노(paper piano)>는 전도성 물질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종이에, 연필이나 물감이 아닌, 전기가 통하는 물질로 피아노의 형태를 그리고, 그 그림을 손으로 만지면서 사람들에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경험을 주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은 당시 같이 작업실을 사용하던 예술 계통 유학생 친구들에게 흥미로운 반향을 일으켰었다. '아, 나 지금 머리가 쌩쌩 돌아간다', '아이디어가 폭발한다'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무언가 이것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그들 나름의 여러 가지 재미있는 가능성과 상상들을 쏟아내는 격앙된 저녁시간이었다. 하지만, 막상 무언가가 만들어지진 않았었다. 당시에 나는 좀 더 그 작업이 사람들과 또 다른 작가들의 작업과 뒤섞이고, 또 내가 그 과정 속에 뒤섞여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이애나밴드로서 이후 작업할 그 무엇들도 그러하길 바랐다. 그것이 다이애나밴드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던 순간의 장면이다.
돌이켜보자면, 내 생애 가장 즐거웠던 예술적 행동은 꼬마 시절에 놀이터에서 벌어졌던 모래성 쌓기이거나 두꺼비집 만들기 같은 것들이었다. 그 중에 가장 훌륭한 것이 아마도 강만들기가 아니었을까. 놀이터에 펼쳐진 광활한 모래의 공간은 어느 순간 강 만들기 놀이를 시작하게 했다.(요즘 놀이터는 우레탄으로 덮여있어 모래가 없는 경우가 많지만, 예전엔 놀이터하면 모래가 가득한 것이 보통이었다.) 놀이터에 '거대한' 강을 만드는 것이다. 놀이터에는 부드러운 모래가 그 끝을 알 수 없도록 쌓여있었다. 주변에 물이 나오는 수도가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는 완벽한 상황이다. 물을 모래에 쏟아 놓기만 하면, 누구라도 저항할 수 없는 강 만들기가 시작된다. 이것은 혼자 해도 재미있고, 둘이 하면 더 재미있었다. 한참을 놀고 있는데, 모르는 동네친구가 나타나면 더욱 재미있다. 어색하지만, 인사도 나누지 않은 상태로 어떤 알 수 없는 설레임 속에서 우리는 놀이터에 강을 만들자는 망상에 사로잡혀 몰두하는 사이에 친구가 되어가곤 했었다.
이 놀이의 장점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강'. 이것의 개념은 종이에 연필로 끄적인 모든 것이 '그림'이라고 불릴 가치가 있는 것과 같이. 모래에 물이 있기만 하면 된다. 그 다음은 다, 말하자면, '예술'의 영역이다. 어떤 강을 만들고 싶은지. 우리는 형태로 말하고, 형태로 대답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너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은 대화이면서 글이고, 과정이면서 결론이었으며, 공동 저작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어떤 것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마찬가지의 경험이 그래도 있었다고 한다면, 네덜란드의 예술 행사 중 하나인 쿤스트플라이(Kunstvlaai)에서 친구 작가들과 함께 발표했던 공동 작업, <버블 이스케입먼트(Bubble Escapement)>가 떠오른다. 이 작업은 기획의 단계에서 부터 심각하게 고장난 어떤 것이었는데, 어린이 한명이 들어갈 수 있을만한, 커다란 비눗방울을 만들어서, 그 작은 사람이 비눗방울 속에서 그네를 타면서 활짝 웃고 있는 것이 작업 제안서의 유일한 스케치였다. 우리 팀에서 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한 기술적 자문 역할이었던 내가, 제안서 작성 당시 동료들에게 했던 말은 오로지 '이것은 실현될 수 없어!'라는 말 뿐이었다.
첫째로 그 어떠한 방법을 동원했든 간에, 잠깐이라도 사람이 비눗방울에 성공적으로 둘러 싸였다고 하자. 바로 다음 순간, 그네가 이동함에 따라, 공중에 떠있는 비눗방울은 바로 그네를 탄 사람의 몸에 부딪혀 터져버릴 수밖에 없다. 둘째는 애초에 그네를 매달고 있는 줄을 어떻게 피해서 비눗방울을 만들어 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구의 형태를 가져야만 표면장력의 균형을 이루어낼 수 있는 비눗방울은 구조적으로 그네를 매단 줄을 피해서 만들어질 수 없으니, 여기에도 심각한 난점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 스케치가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을.
모든 불가능성들을 다 그대로 담은채로 제안서는 제출되었고, 뜻밖에도 이것은 전시 초대를 받게 되었다. 심사위원들은 왜 이 터무니없는 제안을 선택했을까.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나로서는 '아, 이거 큰일이구나' 생각했지만, 이 '낭창한'-여유롭고, 생각없는- 친구들은 합격통보에 마냥 좋아하기만 했다. '어떻게든 될 거야!'
이후, 몇 주간, 우리는 커다란 비눗방울을 부는 데 사용될 '막대기'도 만들고, 세탁용 세제와 글리세린을 대량으로 뒤섞어 거대 비눗방울 전용 용액도 실험했다. 비눗방울이 아닌 거대한 비누'벽면'을 긴 쇠막대로 끌어올려보기도 하고, 선풍기에 센서를 달아서 비눗면을 불어 비눗방울을 만들기도 했다. 닥치는 대로.
즐거운 시간이었긴 했지만, 결과는 예상대로 실패였다. 하하. 나름 이름 있는 예술 이벤트에 이런 고장난 작업을 들고 나가야 하다니. 부끄러움이 절반, ‘그래도, 우린 최선을 다했어. 이젠 끝났다’ 라는 안도가 절반이었다. 관람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작품 곁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작업을 설명하기도 하고 헛헛한 심정으로 관객들과 함께 그네도 타보고, 비눗방울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전시기간이 끝에 가까워지면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놀랍게도 이 작업은 사실 대성공이었다는 점이었다.
일단, 누구도 이것이 약속한 대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째서 그럴 수 있었던 것인지가 의문으로 남아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비눗방울이란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매력-영롱하고 환상적인 색깔이 한 몫 했을 것이다. 사실, 비눗방울을 부는 것은 원래부터 '터진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것은 원래부터 ‘찰나'에 대한 것이지 '완성'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중력에서 자유롭게 이리저리 부유하는 비눗방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동자를 흔들며, ‘한 번 더!' 를 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무엇보다 본 작업을 제작하는 과정 내내 회의주의자였던 내 자신이 개인적으로 이 작업이 대성공이었다라고 재평가하게 된 계기는 이것이 촉발시킨 행복하고 영원한 반복의 가능성에 있었다. 결국, '비눗방울에 둘러싸여 그네를 타는 것' 이라는 이 환상적인 제안은 그 곳에 던져졌을 때 이미 '제안'으로서 완성이었으며, 사람들은 너도 나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머리를 쓰고, 노력을 기울이곤 했다. 거기에는 대화가 있었고, 즉흥적인 시도들이 있었고, 미완성이기 때문에 소매를 걷어붙이는 어떤 폭발하는 에너지가 있었다. 마치 놀이터의 강 만들기 놀이에서와 같이.
뒤샹의 <샘>이 그의 진실한 농담이라고 한 것은 같은 맥락에서 모든 예술이 다 어느 정도 놀이라는 것이다. 놀이를 시작하는 것이다. 뒤샹은 누군가 자신의 놀이의 그 영롱하고 환상적인 재미를 발견해주길 바랬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것이 어째서 예술인지, 어째서 예술이 아닌지. 그것이 왜 아름다운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작 뒤샹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 아니었을까? 행복하고 영원한 반복의 가능성. 그것은 ‘이해해야 할 예술’로서가 아니라, 그냥 놀이로서 먼저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래서, 다 같이 더 재미있는 것을 만들고 시도하고자 하는 것. 이내 사라질 것이 분명한 비눗방울을 계속해서 만드는 어린 사람과 같은 마음으로, 함께, 내 예술 놀이에 찾아와서 같이 놀아줄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것이 내가 작업을 하면서 기대하는, 아마도 유일한 것이다.
미디어 아트 작업은 놀이터의 강 만들기보다는 조금 복잡하기는 하다. 어떤 장치가 있고, 프로그래밍이 필요하고, 상황을 만들어야 하고,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공간을 준비해야 하고, 장면을 만들어야 하고, 때로는 이야기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놀이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것은 만들어진 놀이터가 아니라, 만들어가는 놀이의 과정이어야 한다.
그래서, 비록 언제나 작업량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많고, 언제나 시간이 부족하지만, 능력이 닿는 한, 작업 과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우리가 만든 놀이를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해보거나 이어서 더 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프로그래밍을 한 소프트웨어가 있다면, 소스코드를 인터넷에 공개해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하고, 드로잉, 스케치, 도면, 제작 매뉴얼이나, 부품 구매 리스트, 또는 흥미로운 대화의 기록이라던가 하는 것들도 기회가 닿는 대로 정리해서 어떤 매뉴얼이나 가이드북처럼 만들어 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아직은 만족할 만큼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긴 하다.
놀이에는 ‘현장’이 있다. 놀고 있을 때, 같이 놀아야 하고 그때가 아니면 다시 또 그런 기분을 만나긴 쉽지 않다. 한참 무언가를 만들고 있을 때는 그것이 너무 재미있었지만, 바로 다음 순간에는 내 자신이 바뀌어 있고, 전에 가지고 놀았던 것은 덜 재밌고, 새롭게 시작한 것이 더 재밌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내 자신의 모순이 보인다.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놀러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나는 다음 놀이를 하기 위해 떠나가 버리고 있으니….
맞다, 이건 모순이긴 하다.
나는 놀이터에서도 끝까지 남아있는 아이였다.
하지만, 슬픔이기도 하다. 어둠 속에서 혼자서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는 빛 그림자 속의 친구이다. 아이는 놀이를 계속하면서, 그림자놀이를 밤이 새도록 하고 있다.
어느 날 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그 꿈은 지구가 한 덩어리의 거대한 찹쌀떡이더라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따뜻해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하얀 떡 덩어리 위에 주저앉은 우리들은 즐겁게 웃으면서 두 손으로 땅을 뜯어먹고 있다. 먹을 것은 끝이 없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영원히, 행복한 것들도 영원히, 끝이 없었다. 흰 덩어리위의 검은 하늘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꿈은 끝이 났지만, 나는 그것을 계속해서 다시 떠올린다. 그 ‘찹쌀떡 지구' 위의 친구들은 지금도 잘 지내고 있을까, 하고.
이두호
다이애나밴드에서 예술 활동을 하는 공학자이다. 2년간 네덜란드에서 체류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오픈소스(Open Source) 운동에 관심이 많아, 몇 년 전부터 리눅스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언제 세팅이 끝날지 모른다. 다양한 센서 기술들에 관심이 많고, 경험도 조금 가지고 있다. 자연 발생적인 잔디가 펼쳐진 공원에서 고기 구워먹고 하늘보고 그림 좀 그리는 게 요즘 희망 사항.
행복하고 영원한 반복의 가능성
이두호
변비.
물을 많이 마시고, 과일을 많이 드세요.
화장실에서 오래 앉아있는 시간이 많다.
그러다가 변기를 뒤집어 놓은 것으로 유명한, 뒤샹의 <샘>이라는 작업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왜 변기가 아름답다고 했을까.
여러가지 이야기가 가능하다.
일단, 우리들의 변을 말없이 받아들여 해결해주는 그것은 가장 은혜로운 존재이므로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또 한 가지는 제도권 예술이란 것인데, '단상'(stand)이란 것. '지칭'이란 것의 개념과 그 극단을 극명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충격적이다.
'제도'란 것이 우스운 것인데, 그러니까 같은 물건이라도 예술적 공간과 예술적 시간에, 예술적인 형식으로-'제도'를 따라서- 제시함에 따라, 실제로 그것을 '예술'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 어떤 것이라도 미술관에, 전시장에 가져다가, 단상 위에 올려놓고, 조명을 비춰가며, 작품명을 적어서 붙여가며, ‘이것은 예술이다’라고 지시하는 것으로 예술성을 부여받게 된다. 그 대상이 '변기'라는 점은 이 상황을 상당히 극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그냥 뒤샹의 농담, '진실한 농담'과 같은 것이었다.
문득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예술이나, 어떤 다른 작업이나, 무언가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할 때, 내 작업의 결과물은 자주, 제대로 되지 않거나, 어떠어떠한 컨셉만을 보여줄 뿐 상용 제품이나 상업 갤러리의 작품처럼 완성되지 않는 것을 경험해왔다. 아, 나는 언제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건만, 그것이 왠지 그렇게 되지를 않는다.
항상 사람들-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잘 안 되는 것, '고장난' 작업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며 돌아간다.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기술적인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뭐 나름 재미있어하긴 하지만, '아쉬워' 하면서 돌아간다. 더 잘 만들었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다이애나밴드가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첫 번째 작업이었던 <종이피아노(paper piano)>는 전도성 물질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종이에, 연필이나 물감이 아닌, 전기가 통하는 물질로 피아노의 형태를 그리고, 그 그림을 손으로 만지면서 사람들에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경험을 주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은 당시 같이 작업실을 사용하던 예술 계통 유학생 친구들에게 흥미로운 반향을 일으켰었다. '아, 나 지금 머리가 쌩쌩 돌아간다', '아이디어가 폭발한다'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무언가 이것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그들 나름의 여러 가지 재미있는 가능성과 상상들을 쏟아내는 격앙된 저녁시간이었다. 하지만, 막상 무언가가 만들어지진 않았었다. 당시에 나는 좀 더 그 작업이 사람들과 또 다른 작가들의 작업과 뒤섞이고, 또 내가 그 과정 속에 뒤섞여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이애나밴드로서 이후 작업할 그 무엇들도 그러하길 바랐다. 그것이 다이애나밴드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던 순간의 장면이다.
돌이켜보자면, 내 생애 가장 즐거웠던 예술적 행동은 꼬마 시절에 놀이터에서 벌어졌던 모래성 쌓기이거나 두꺼비집 만들기 같은 것들이었다. 그 중에 가장 훌륭한 것이 아마도 강만들기가 아니었을까. 놀이터에 펼쳐진 광활한 모래의 공간은 어느 순간 강 만들기 놀이를 시작하게 했다.(요즘 놀이터는 우레탄으로 덮여있어 모래가 없는 경우가 많지만, 예전엔 놀이터하면 모래가 가득한 것이 보통이었다.) 놀이터에 '거대한' 강을 만드는 것이다. 놀이터에는 부드러운 모래가 그 끝을 알 수 없도록 쌓여있었다. 주변에 물이 나오는 수도가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는 완벽한 상황이다. 물을 모래에 쏟아 놓기만 하면, 누구라도 저항할 수 없는 강 만들기가 시작된다. 이것은 혼자 해도 재미있고, 둘이 하면 더 재미있었다. 한참을 놀고 있는데, 모르는 동네친구가 나타나면 더욱 재미있다. 어색하지만, 인사도 나누지 않은 상태로 어떤 알 수 없는 설레임 속에서 우리는 놀이터에 강을 만들자는 망상에 사로잡혀 몰두하는 사이에 친구가 되어가곤 했었다.
이 놀이의 장점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강'. 이것의 개념은 종이에 연필로 끄적인 모든 것이 '그림'이라고 불릴 가치가 있는 것과 같이. 모래에 물이 있기만 하면 된다. 그 다음은 다, 말하자면, '예술'의 영역이다. 어떤 강을 만들고 싶은지. 우리는 형태로 말하고, 형태로 대답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너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은 대화이면서 글이고, 과정이면서 결론이었으며, 공동 저작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어떤 것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마찬가지의 경험이 그래도 있었다고 한다면, 네덜란드의 예술 행사 중 하나인 쿤스트플라이(Kunstvlaai)에서 친구 작가들과 함께 발표했던 공동 작업, <버블 이스케입먼트(Bubble Escapement)>가 떠오른다. 이 작업은 기획의 단계에서 부터 심각하게 고장난 어떤 것이었는데, 어린이 한명이 들어갈 수 있을만한, 커다란 비눗방울을 만들어서, 그 작은 사람이 비눗방울 속에서 그네를 타면서 활짝 웃고 있는 것이 작업 제안서의 유일한 스케치였다. 우리 팀에서 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한 기술적 자문 역할이었던 내가, 제안서 작성 당시 동료들에게 했던 말은 오로지 '이것은 실현될 수 없어!'라는 말 뿐이었다.
Bubble Escapement
첫째로 그 어떠한 방법을 동원했든 간에, 잠깐이라도 사람이 비눗방울에 성공적으로 둘러 싸였다고 하자. 바로 다음 순간, 그네가 이동함에 따라, 공중에 떠있는 비눗방울은 바로 그네를 탄 사람의 몸에 부딪혀 터져버릴 수밖에 없다. 둘째는 애초에 그네를 매달고 있는 줄을 어떻게 피해서 비눗방울을 만들어 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구의 형태를 가져야만 표면장력의 균형을 이루어낼 수 있는 비눗방울은 구조적으로 그네를 매단 줄을 피해서 만들어질 수 없으니, 여기에도 심각한 난점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 스케치가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을.
모든 불가능성들을 다 그대로 담은채로 제안서는 제출되었고, 뜻밖에도 이것은 전시 초대를 받게 되었다. 심사위원들은 왜 이 터무니없는 제안을 선택했을까.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나로서는 '아, 이거 큰일이구나' 생각했지만, 이 '낭창한'-여유롭고, 생각없는- 친구들은 합격통보에 마냥 좋아하기만 했다. '어떻게든 될 거야!'
이후, 몇 주간, 우리는 커다란 비눗방울을 부는 데 사용될 '막대기'도 만들고, 세탁용 세제와 글리세린을 대량으로 뒤섞어 거대 비눗방울 전용 용액도 실험했다. 비눗방울이 아닌 거대한 비누'벽면'을 긴 쇠막대로 끌어올려보기도 하고, 선풍기에 센서를 달아서 비눗면을 불어 비눗방울을 만들기도 했다. 닥치는 대로.
즐거운 시간이었긴 했지만, 결과는 예상대로 실패였다. 하하. 나름 이름 있는 예술 이벤트에 이런 고장난 작업을 들고 나가야 하다니. 부끄러움이 절반, ‘그래도, 우린 최선을 다했어. 이젠 끝났다’ 라는 안도가 절반이었다. 관람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작품 곁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작업을 설명하기도 하고 헛헛한 심정으로 관객들과 함께 그네도 타보고, 비눗방울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전시기간이 끝에 가까워지면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놀랍게도 이 작업은 사실 대성공이었다는 점이었다.
일단, 누구도 이것이 약속한 대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째서 그럴 수 있었던 것인지가 의문으로 남아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비눗방울이란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매력-영롱하고 환상적인 색깔이 한 몫 했을 것이다. 사실, 비눗방울을 부는 것은 원래부터 '터진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것은 원래부터 ‘찰나'에 대한 것이지 '완성'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중력에서 자유롭게 이리저리 부유하는 비눗방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동자를 흔들며, ‘한 번 더!' 를 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무엇보다 본 작업을 제작하는 과정 내내 회의주의자였던 내 자신이 개인적으로 이 작업이 대성공이었다라고 재평가하게 된 계기는 이것이 촉발시킨 행복하고 영원한 반복의 가능성에 있었다. 결국, '비눗방울에 둘러싸여 그네를 타는 것' 이라는 이 환상적인 제안은 그 곳에 던져졌을 때 이미 '제안'으로서 완성이었으며, 사람들은 너도 나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머리를 쓰고, 노력을 기울이곤 했다. 거기에는 대화가 있었고, 즉흥적인 시도들이 있었고, 미완성이기 때문에 소매를 걷어붙이는 어떤 폭발하는 에너지가 있었다. 마치 놀이터의 강 만들기 놀이에서와 같이.
뒤샹의 <샘>이 그의 진실한 농담이라고 한 것은 같은 맥락에서 모든 예술이 다 어느 정도 놀이라는 것이다. 놀이를 시작하는 것이다. 뒤샹은 누군가 자신의 놀이의 그 영롱하고 환상적인 재미를 발견해주길 바랬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것이 어째서 예술인지, 어째서 예술이 아닌지. 그것이 왜 아름다운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작 뒤샹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 아니었을까? 행복하고 영원한 반복의 가능성. 그것은 ‘이해해야 할 예술’로서가 아니라, 그냥 놀이로서 먼저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래서, 다 같이 더 재미있는 것을 만들고 시도하고자 하는 것. 이내 사라질 것이 분명한 비눗방울을 계속해서 만드는 어린 사람과 같은 마음으로, 함께, 내 예술 놀이에 찾아와서 같이 놀아줄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것이 내가 작업을 하면서 기대하는, 아마도 유일한 것이다.
미디어 아트 작업은 놀이터의 강 만들기보다는 조금 복잡하기는 하다. 어떤 장치가 있고, 프로그래밍이 필요하고, 상황을 만들어야 하고,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공간을 준비해야 하고, 장면을 만들어야 하고, 때로는 이야기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놀이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것은 만들어진 놀이터가 아니라, 만들어가는 놀이의 과정이어야 한다.
그래서, 비록 언제나 작업량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많고, 언제나 시간이 부족하지만, 능력이 닿는 한, 작업 과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우리가 만든 놀이를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해보거나 이어서 더 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프로그래밍을 한 소프트웨어가 있다면, 소스코드를 인터넷에 공개해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하고, 드로잉, 스케치, 도면, 제작 매뉴얼이나, 부품 구매 리스트, 또는 흥미로운 대화의 기록이라던가 하는 것들도 기회가 닿는 대로 정리해서 어떤 매뉴얼이나 가이드북처럼 만들어 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아직은 만족할 만큼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긴 하다.
놀이에는 ‘현장’이 있다. 놀고 있을 때, 같이 놀아야 하고 그때가 아니면 다시 또 그런 기분을 만나긴 쉽지 않다. 한참 무언가를 만들고 있을 때는 그것이 너무 재미있었지만, 바로 다음 순간에는 내 자신이 바뀌어 있고, 전에 가지고 놀았던 것은 덜 재밌고, 새롭게 시작한 것이 더 재밌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내 자신의 모순이 보인다.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놀러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나는 다음 놀이를 하기 위해 떠나가 버리고 있으니….
맞다, 이건 모순이긴 하다.
나는 놀이터에서도 끝까지 남아있는 아이였다.
그러다가 어두워지고, 친구들은 집에 간다.
친구가 정말 없었던 걸까. 나는.
나는 집에 잘 가지 않고, 계속 놀고 싶다.
아니면? 사실, 친구들도 더 있고 싶어 했다.
엄마한테 혼나.
아쉬움을 남기면서 가는 아이.
엄마가, 들어오라고 했다.
당당하고, 명확하게 선언하고 가버리는 아이.
등이 있다.
나는 어두워진 놀이터에 혼자 남아 아직 못 다한 것들을.
기찻길을 만들던 그 흔적. 그것이 어떤 기차일까.
교회를 만들던 그 흔적.
나는 좀 더 보고 싶었다.
아… 궁금하다.
재밌었다.
아 너는 어디에 살까.
아 우리는 또 만날 수 있을까.
친구가 정말 없었던 걸까. 나는.
나는 집에 잘 가지 않고, 계속 놀고 싶다.
아니면? 사실, 친구들도 더 있고 싶어 했다.
엄마한테 혼나.
아쉬움을 남기면서 가는 아이.
엄마가, 들어오라고 했다.
당당하고, 명확하게 선언하고 가버리는 아이.
등이 있다.
나는 어두워진 놀이터에 혼자 남아 아직 못 다한 것들을.
기찻길을 만들던 그 흔적. 그것이 어떤 기차일까.
교회를 만들던 그 흔적.
나는 좀 더 보고 싶었다.
아… 궁금하다.
재밌었다.
아 너는 어디에 살까.
아 우리는 또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슬픔이기도 하다. 어둠 속에서 혼자서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는 빛 그림자 속의 친구이다. 아이는 놀이를 계속하면서, 그림자놀이를 밤이 새도록 하고 있다.
어느 날 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그 꿈은 지구가 한 덩어리의 거대한 찹쌀떡이더라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따뜻해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하얀 떡 덩어리 위에 주저앉은 우리들은 즐겁게 웃으면서 두 손으로 땅을 뜯어먹고 있다. 먹을 것은 끝이 없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영원히, 행복한 것들도 영원히, 끝이 없었다. 흰 덩어리위의 검은 하늘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꿈은 끝이 났지만, 나는 그것을 계속해서 다시 떠올린다. 그 ‘찹쌀떡 지구' 위의 친구들은 지금도 잘 지내고 있을까, 하고.
찹쌀떡 지구
이두호
다이애나밴드에서 예술 활동을 하는 공학자이다. 2년간 네덜란드에서 체류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오픈소스(Open Source) 운동에 관심이 많아, 몇 년 전부터 리눅스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언제 세팅이 끝날지 모른다. 다양한 센서 기술들에 관심이 많고, 경험도 조금 가지고 있다. 자연 발생적인 잔디가 펼쳐진 공원에서 고기 구워먹고 하늘보고 그림 좀 그리는 게 요즘 희망 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