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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심
  • 2018.10.29

25호 더봄 
현장소개, 무리를 이룬 상상력
유심

 

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8월,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주최한 경기문화예술교육 매개자 역량강화 워크숍 '상상력의 징후 2018'에 참여했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총 3주에 걸쳐 청년 예술가와 예비 문화예술교육자에게 새로운 교육 방법론을 제안 하는 취지로 구성된 본 워크숍은, 올해 2년차에 접어든 교육 프로그램이다. 이 글에서는 본 워크숍의 총괄 기조강연과 두 가지 워크숍이 진행된 1회차에 대한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주말 첫 날 아침, 워크숍 장소인 성수역 인근 '스페이스 오메'를 찾아 한산한 거리를 걸었다. 커피로 몽롱한 몸을 깨우려 인근 카페를 찾아 돌아다녔지만 가게는 대부분 잠잠히 닫혀 있거나 개점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중 오전 통근 시간대의 긴박한 아우성을 잊었는지 거리 의 풍경은 잠에서 덜 깬 듯 느긋했다.

그렇게 찾아간 워크숍 장소는 한산한 거리와 달리 교육을 위해 부지런히 찾아온 참여자들 로 북적였다. '청년 예술가'와 '예비 문화예술교육자'라는 이름으로 한곳에 모인 이들은 '예 술'의 정의가 폭넓은 만큼 실로 다양한 이력과 소속을 지니고 있었다. 문학과 음악, 시각 예술 전공 대학생뿐 아니라 입시 너머 다른 예술적 실천을 모색하는 청소년, 여러 번의 전시를 꾸려온 현장의 작가, 코디네이터, 예술경영 대학 강사가 있었고, 예술가로 살아왔지만 ' 과연 이 길이 맞는지' 되물으며 삶의 기로에 선 이도 있었다. 또 '경기' 문화예술교육 매개 자를 위한 워크숍이지만 멀리 춘천, 안산, 수원에서 온 이들도 있었다. 자기소개를 겸한 아 이스브레이킹 시간을 통해 실로 다양한 이들이 모인 것을 확인하며 본 워크숍이 시작되었다.

 

첫 시간은 ‘문화예술교육에서의 민주주의와 감각’이라는 제목으로 총괄 모더레이터인 '예 술과도시사회 연구소' 안태호 이사의 기조 강연이 이어졌다. 강연은 주로 민주주의, 공동체, 예술이라는 키워드로 강사가 준비해온 PPT 이미지들을 스크린에 띄워 해당 이미지가 무엇 인지 묻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사회 현안에 대한 뉴스, 철학자 혹은 정치경제학자들의  이론, 예술의 현장에서 나온 말 혹은 이미지를 단서로 간단한 문답과 함께 강사의 해석이 이어졌다.

먼저 민주주의와 국가라는 키워드로 화면에 등장한 바위 사진은, 누군가에게는 여느 자연 물과 다름없지만 누군가에게는 국가와 자본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파괴된 공동체를 상기하는 피사체, 제주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였다. 이어서 화면에 등장한 중년 남성의 사진은 ‘위계 에 의한 간음’으로 재판에 부쳐지고 무죄 판결이 나며 젠더 권력에 대한 논란의 불을 지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였다. ‘추방하라’고 적힌 커다란 현수막 옆으로 반인권적 난민법을 개정하라는 팻말을 든 사람들이 서로 얽힌 사진은 제주에 머물게 된 예멘 난민에 대한 처우를 둘러싼 두 진영의 팽팽한 입장 차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모두 국가, 젠더, 내국 인에 의한 이민자 혐오 등으로 사회 구성원에 대한 배제가 이루어지는 풍경을 담고 있었다.

이어서 성미산마을극장의 모습과 함께 도시 안에서도 마을 공동체를 이루며 그곳을 지키 려는 이들이 담긴 이미지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강사는 미술관이 아닌, 마을공동체 내에서 행해지는 공공예술의 사례를 통해 그 귀중함과 함께, 그 뜻과 결과물이 쉽게 훼손될 수 있음을 설명했다. 공공의 공간이 저마다의 이윤을 위한 경쟁 으로 황폐화될 것이라는 ‘공유지의 비극’ 시나리오도 그와 같은 경계심을 잘 표현한다. 그러나 강사는 제주 ‘할망어장’의 존재를 예로 들며, 나이 지긋한 해녀들을 위한 어장과 시장 등 그들의 영역을 마련하고 보존하며 공생할 수 있는 단서가 됨을 알려주었다.

이어지는 강의에서 발도르프 학교의 교육 철학이 담긴 노작의 예, 에너지 재순환의 아이디어가 예술과 만난 ‘나는 난로다’ 프로젝트의 예, 아이들 스스로 위험을 감지하고 조절하도록 기구가 설치된 핀란드 놀이터의 예, 글을 모르고 글쓰기에 단련되지 않았던 이들이 에두름 없이 써내려간 자기소개의 글에서 비로소 ‘자기서사의 편집권’을 발견한 예가 이어졌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해당 분야 전문가의 정교한 예술적 결과물이 아닌 뭇사람의 예술적 실천이 곧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해방과 이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술적 실천,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은 기성 감각에 대한 끊임없는 재고를 필요로 하고, 그러한 재고는 시각 청각 등 여러 자극과 함께 기존의 통념에 대한 지적 각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강사는 그러한 실천의 첫걸음으로 문화예술 관련 뉴스레터들을 꾸준히 챙겨보며 여러 경로로 감각을 트일 준비를 하는 것의 중요성을 함께 전했다. 그렇게 워크숍의 첫 시간인 기조강연에서 총괄 모더레이터는 몫 없는 자들, 대의에 가려져 목소리를 빼앗기고 보이지 않게 된 자들을 인지하며 기존의 감각을 열어젖히는 것이 예술적 실천이자 정치적 실천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듯했다.


점심 후 예술과 기술 ‘보이지는 않으나 연결되어 있는 우리’라는 제목으로 사운드아티스 트 배인숙 작가의 워크숍이 이어졌다. ‘보이지 않으나 연결되어 있는’ 세계란 온라인상의 세 계를 뜻하며, 모더레이터인 작가는 오프라인 세계에서 온라인 세계를 시험해볼 것을 제안하 였다. 이에 앞서 그는 그간의 작업 중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두 가지 소개 영상을 보여주었다.

먼저 본 영상은 ‘원노트 피아노’ 워크숍으로, 이는 한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멜로디가 울리도록 프로그램을 조작해 겉모습만 피아노일 뿐인 전자 악기를 만드는 공동 작업이다. 얼 핏 쉬워 보이지만 아이들은 그러한 연주를 위해 프로그램 일곱 개를 깔아놓아야 한다. “피아노 만들기는 언제 하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작가는 몇 가지 기본 원리만을 알려준 뒤 프로그램을 깔게 하고, 그 작업만 3일을 이어나갔고 한다.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부터 여러 시 행착오까지 생각하면 아이들이 쉽게 이탈할 법도 한데, 결론은 모두가 프로그램을 깔았다고 한다.

두번째 영상은 두 아이씩 짝을 지어 패트병 연주를 기획하고 발표하는 워크숍으로, 아이들에게 빈 페트병만을 쥐여준 뒤 15분이라는 시간을 주어 그들이 타임테이블을 짜고 연주회를 열도록 조건을 만든 작업이다. 두 사람은 책상 모서리에 페트병을 두들기며 서로의 눈 짓만으로 리듬을 맞춘다. 최소한의 도구와 규칙만 주어진 상황에서 거의 즉흥적인 소리가 이어지는데, 그 짧은 시간 안에도 나름의 변형과 변칙이 튀어나온다. 평소 '악기'로 취급되 지 않는 재료만으로 엉뚱하지만 썩 어렵지도 않은 과제를 수행하면서 아이들은 한시적인 소리의 연결들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엄연히 시작과 끝이 있는 연주를 선보인다.

배인숙 작가는 이처럼 익숙한 생활의 재료들로 엉뚱한 조건을 만들어보겠다며 본격적인 워크숍을 시작하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작가가 급조한 웹사이트 안에서 공론장을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아이피 네트워크와 기본적인 게시판으로 구성된 웹사이트에 접속한 순간 우리의 인터넷은 닫히고 한시적인 인트라넷이 열렸다. 핸드폰, 노트북 등 저마다의 기기로 접속한 참여자들은 회원가입 절차를 거쳐 각 게시판이라는 조건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공지사항’ ‘토론제안’ ‘고민상담’ ‘자기소개’ ‘사진첩’ 등의 게시판들
 

오프라인에서 굳이 온라인으로만 소통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어떤 낯선 감각이 따를 까. 오전 기조강연만 함께 들었을 뿐 일면식도 없던 우리는 인트라넷이라는 닫힌 듯 열린 공간에서 핸드폰 화면만 의지해 하나 둘 사이트에 접속했다. 새 글 하나 없이 어색한 공기 만 맴도는 가운데 점차 접속자 늘어 마침내 오프라인상 인원에 버금가게 되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쩐지 다들 말을 아꼈고, 조용한 침묵 가운데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글은 커녕 조그만 소리나 움직임도 주저하는 눈치였지만, 워크숍을 위한 시간이라는 일정한 강제 와, 닫혀버린 인터넷 때문에 특별히 딴짓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맞물려, 사람들은 점차 자신의 경계를 풀며 하나 둘 글을 게시하게 되었다. 여기저기 새 글 알림이 뜨고 조회수가 오르고 댓글이 달리면서 워크숍을 메운 참여자들 사이에서도 소소한 반응이 일었다. 그렇게 한시적 공간에서 온오프라인의 중첩이 일어났다.

약 한 시간 동안 '온라인 모드'에서 의견을 나눈 우리는 약속한 시각이 되자 다시금 '오프 라인 모드'로 돌아와 소감 나누기를 이어나갔다. 사이트가 더 활성화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 했는지 묻는 작가의 말에 참여자들은 '게시판 카테고리 수정과 생성 기능 추가', '온오프라 인상의 공간 디자인 추가' 등 기술적인 의견을 내놓는 한편으로, 서로 너무 엄숙하지는 않았는지, 조금 더 가볍게 접근할 수는 없었는지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또 웹사이트상의 글과 개인정보 등 여러 흔적들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도 하였다. 그러나 작가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잠시나마 글과 이미지로 소통한 이 사이트는 렌선을 뽑는 순간 사라지는 2시간짜리 네트워크였다. 실제로 그가 노트북에서 선 하나를 뽑자 해당 사이트는 눈 깜 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다. 돌아갈 곳은 없었다.

이번 워크숍으로 일상에서 또 손안에서 수시로 중첩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세계가 얼마 나 닮은 듯 다른지 알 수 있었다. 그간 서로 일치하거나 적어도 호응한다고 믿었던 각 세계 의 시그널들이 사실은 서로 다른 질서 위에서 부유할 뿐임을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또 오직 무리를 이룬 우리의 상상력만이 그 사이를 바삐 메우며 세계를 움직이고 뜻하지 않은 만남들을 만들어내는 게 아닐지 느끼게 되었다.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느슨하게 놀이하듯 진행되다가 끝에 가서 번쩍 놀라움을 안겨주는 워크숍이었다.

 
쉬는 시간 후 오늘의 마지막 순서로 ‘나는 걷는다 - 걷는 드로잉’이라는 제목의 공동체 예술 워크숍이 시작되었다. '여러가지연구소' 민경은 대표의 진행으로 이루어진 이번 워크숍에서는 지역 내 문화예술이 이루어지는 현장 소개와 함께 참가자들이 직접 교육장 밖으로 나가 동네에 '테이프 드로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여러가지연구소’라는 이름은, 예술가의 역할이 우리 삶과 내가 사는 삶터를 연구하는 것이며, 예술이 실로 여러가지 삶의 틀을 경유해나간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지역 안에서 문화예술 플랫폼을 만들고 '장소성'을 고민해온 여러가지연구소 작가들은 그간 사라져만 가는 골목들, 공원, 장터 등 지역의 공간에서 장인을 발굴하고, 지역 주민들과 술과 된장을 빚고,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는 작업 등을 통해 전문성에 매몰되지 않고 일상에서 찾아낼 수 있는 문화예술의 사례들을 늘려나가려 노력했다. 삶의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확장하는 것이 예술에 있어 배움의 장이 될 것임은 분명했다.

그간의 작업에 대한 작가와 단체 소개 후 본격적인 워크숍이 시작되었다. 몇 그룹으로 나 뉜 우리는 한 시간 동안 동네 골목 곳곳을 거닐며 그간 스쳐 지나치곤 했던 일상 속 벽과 전봇대, 버려진 물건 등에 색색가지 마스킹테이프를 붙여 꾸미고, 팀에서 한 사람 기록자를 정해 현장을 사진으로 담아오라는 미션을 받았다. 그렇게 어슬렁어슬렁 '걷는 드로잉'이, 예술의 현장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한 시간 남짓 여유로운 시간 동안 참여자들은 삼삼오오 조를 이루어 길을 걸었고 현장들 을 발견하면 멈춰 서서 마스킹테이프로 지난 흔적을 연결했다. 이러한 작업이 겉으로 평화 로워 보일 수 있었으나, 우리는 속으로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골목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적 영역과 그렇지 않은 사적 영역이 혼재했기 때문에, 우리 작업이 동네 주민들에게 는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었다. 테이프 드로잉은 참여자로 하여금 일상 속 대상의 구도 잡기와 결과물 남기기뿐 아니라 주민과의 관계 맺기에도 많은 주의를 요하 는 작업이었다.

'걷는 드로잉' 후 워크숍 교육 장소에 돌아온 우리는 '상상력의 징후'라는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각 팀에서 촬영한 드로잉 인증샷을 공유했다. 또 스크린에 해당 이미지를 출력해 팀별로 돌아가며 왜 그렇게 작업했는지 현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과정 등을 공유했다.
 





 

유심

동두천 여성의 생애사 구술을 돕고, 어린이를 위한 『리바이어던』 해설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