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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29

25호 가봄 
사람과 시간의 곁에서
직조생활


인터뷰 참여자
_ 질문하는 사람 / 최선영
_ 답변하는 사람 / 직조생활(정은실)


 

하고 싶은 것을 단지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일단 하지 않기 위해서도 힘든 결단과 실천이 필요하다. 생활을 안정적으로 이어가면서도 창작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 이런 상황은 더욱 어려운 문제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것은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강사나 기획자로 활동하는 많은 창작자의 공통된 고민이기도 하다. 그들 중 한 명이기도 한, ‘직조생활’의 정은실 작가를 만나, 작업과 교육, 그리고 생활의 균형을 살피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오랜 시간 자신의 관심, 즐거움, 시선을 소외시키지 않으려 노력해오고 있는 그녀에게, 교육활동이 창작자와 참여자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들어보자.
 


 

Q. ‘직조생활’은 어떻게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나요?

직물을 짜야겠다고 생각한 것을 20대 부터입니다. 베틀로 짜여있는 천들을 좋아해서 월급 받으면 재료를 사고 그랬어요. 직접 짜고 싶었거든요. 처음에는 막연히 내 작업과 연결하고 싶었는데 스승을 만나서 수직기(베틀기) 쓰는 법, 패턴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선생님께 배운 후에 독학을 1년 했는데 자료대로 짜고 실패하는 과정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죠. 직조생활이라는 이름으로 공방을 오픈한 건 2015년이고 이제 4년차 정도 됐어요. 망원동에서 4평짜리 스튜디오를 운영했는데 주택가 1층 공간이었고 수강생 1명이 작업이 가능한 사이즈였어요. 그러다 작년 초에 여기 경기상상캠퍼스로 이전했죠.
망원동에서 공방을 할 때는 공정무역 핸드메이드 패브릭제품을 소개, 판매하거나 외부출강 직조워크숍 등을 하면서 공간 운영을 이어갔어요. 그때는 어렵다기 보다는 다 감사했죠. 워크숍을 통해 외부에 홍보가 많이 되었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연결되어 공방에서 또 다른 워크숍 을 하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생각보다 ‘직조생활’이 단기간에 자리를 잡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Q. 이야기를 듣다보니 ‘직조생활’이 단기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정은실 작가님의 오랜 활동이나 관심사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조생활’을 하시기 전에는 어떤 활 동을 하셨나요?
이전에는 여러 가지 만드는 작업을 했었는데 주로 천 작업이었죠. 천에 바느질로 글을 새겨서 간판을 만들거나 무용 공연에 필요한 소품등을 제작하거나 인테리어용으로 가게의 한쪽 벽을 꾸며주는 등의 작업을 했어요. 그렇게 실과 천을 매개로 한 작업이 10여 년이 되었어요. 그 외에 영화미술, 인테리어, 공정무역 매니저, 심지어 요리를 하는 주방장 일도 했었죠.

다양한 분야에 일을 하면서 그래도 집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무언가를 손으로 만들고 꿰매며 일상적인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땐 내가 왜 바늘을 들고 천을 만지고 있는지 모르고 그냥 좋아서 할 때였어요. 예전에 동대문시장에 실을 사러가거나 천을 사러 가면 너무 좋아서 그런지 먼저 몸에서 반응이 왔어요. 평소 안 흘리던 땀이 났는데 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갑자기 손이 축축해질 정도로 땀이 났어요. 너무 좋았나 봐요. 재료를 사러 왔다는 게. 그렇게 흥분해서 몇 시간을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재료를 찾아다니곤 했었죠. 그때 가게 주인들은 저에 홀린 눈빛이 마치 넋이 나가 보였는지 이상한 눈으로 대하곤 했죠. 이 여자가 미친 여자가 아닌가 하는 눈빛이요.(하하) 그렇게 실과 천은 제게는 흥분이 되는 재료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 서른 중반에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뭔지 알게 되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니 좋아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죠. 그전에는 생활비 때문이건 어떤 이유이건 닥치는 대로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좋아하는 일을 마음에 품었으니 끼니 걸러도 괜찮아, 생활비는 최소한으로 쓰며 사는 거야, 안 쓰면 되지. 그냥 하는 거야,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죠.
 

   
 

Q. 스스로 그 작업을 왜 하는지 몰랐음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진 관심과 활동이 현재 ‘직조생활’의 토대가 되는 것 같네요. 그런데 한때는 일상적이었던 작업이 이제는 독립된 ‘직조생활’ 의 운영과도 연결되고 있으니, 현실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네, 그래서 정규클래스나 워크숍 등 교육도 많이 하고 있어요. 정규클래스의 경우, 기초과정은 2개월, 중급반은 2-3개월 총 배우는 과정이 짧게는 3개월에서 6개월이 될 수도 있어요. 수강생이 3개월 이상 배우면 혼자서 많은 것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수강생은 일주일에 한두 번 와서 2-4시간 정도 작업해요. 요즘 하고 있는 정규클래스의 경우, 수강생은 평균 5-7명(1개월 씩)인데, 이 사람들이 다음 달에 또 수강하고 그런 식이에요. 이제까지 총 수강생은 정규클래스만 봤을 때는 70명 정도에요. 그 외에 원데이클래스도 가끔씩 운영하고요.

그런데 이런 교육과정에서 사실 제가 공부를 오히려 많이 하게 됩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교육하기 때문에 제가 사용하지 않는 색감도 알게 되고 수강생들이 실수한 것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제가 많이 공부를 하죠. 이런 교육이 힘들 때도 있지만 나를 믿고 와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다른 내용의 교육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라도 더 배워서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Q. 생계수단의 일부로 교육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얻기도 하네요. 한편으로 교육을 하며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교육보다 개인 작업이 우선이었는데 교육이 저에게 점점 커지고 있어요. 이것은 천천히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생각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받는 에너지가 있는 만큼, 나의 에너지도 써야 해서 수업이 끝나면 진이 빠져요. 근데 이게 습관이 된 것 같아요. 내가 내 에너지를 남겨둔 채로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기 때문에 그걸 다시 채우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이건 결국 수행과정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교육하는 걸 계속 홍보하거나 정들었던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또 내가 미친듯이 공부했던 것을 누군가에게 알려주는 것이 보람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반복적인 교육 일정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해요.
 


 

Q. 그러한 어려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교육활동을 매개로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고 계시네요. 교육은 결국 사람과 사람의 만남인데 직조작업이 그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 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일에 치여 있는 사람,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데 망설이는 사람, 한번 직조를 짜보고 싶은 주부나 학교 선생님, 갈팡질팡하는 청년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직조생활에 옵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자기가 무언가를 몰입하면서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을 원해요. 직조생활에서 진행하는 워크숍과 정규클래스를 저에게 배운 뒤 자신의 일에서 응용을 하거나 또 제가 알려준 워크숍을 그대로 반영하여 수업을 진행하는 대안학교 선생님들도 있어요. 현장에서 응용 가능 한 교육을 진행하는 제 입장에서는 뿌듯하고 보람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직조생활의 주교육인 베틀수업을 이야기 하자면 베틀은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작업이 아닙니다. 시간이 천천히 걸리더라도 과정을 잘 이해하고 숙지하여 터득해야 하죠. 서두르거나 욕심을 내면 직물 안에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다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마음이 급하거나 실수가 잦은 수강자에게는 ‘천천히’ 라는 단어를 베틀기에 붙여서 작업을 하게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내가 정신을 못 차려서 이렇게 망쳤다’, ‘내가 서툴러서 이렇게 실수했다’며 본인에게 실망하고 마음수행이 부족하다며 자신을 자책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분들에게는 이런 조언도 합니다. 직물을 짜면서 너무 본인 마음을 투영해서 작업을 하지 말라고요. 왜냐면 작업은 즐거워야 하니까요. 실수해도 괜찮아요, 실수에서 오는 경험으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베틀기에 실을 걸어 직물을 짜는 행위는 단순히 반복과 규칙 속에서 패턴을 짜며 위빙의 테크닉을 익히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가르치는 저나 배우시는 분이나 서로가 먼저 마음을 나누며 공감하는 시간, 그리고 작업자가 제 교육에 도움을 받아 직물을 짜면서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만 몰입할 수 있는 시간도 포함합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패턴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교육 과정에서 사람들은 그걸 알게 되고, 알게 되는 그 과 정이 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심한 사람에게는 시원시원한 패턴을 추천하기도 하고, 성격이 급한 사람에게는 복잡한 패턴을 권하여 천천히 실수 없이 짜게 합니다.

직조작업은 기술교육보다는 감성교육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한 사람 한 사람을 파 악하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같은 수업을 진행하더라도 개개인에 맞춰 다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 어요. 수강자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느끼게 되어 때론, 제가 그 사람의 마음 안에 들어가 보기도 해요. 어떤 마음일까. 어떤 생각일까 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다 보면 사람들의 마음을 더 헤아릴 수가 있어요.

저는 기술의 습득도 중요하지만 사람 마음을 먼저 헤아릴 줄 아는 교육이 요즘 세상에 더 필요하고 더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Q. 그러한 만남 혹은 교육의 경험들이 작가님께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마음속에 미움을 많이 가졌던 사람이었는데 베틀작업을 하면서 많이 바뀌었어요. 수강생이든 누구든 사람들에게 무조건 고맙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그리고 비관적인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사실 힘든 순간도 많아요. 사람들에게는 처음 듣는 수업들이지만 저에게는 똑같은 수업이라서 지치기도 하죠. 그래서 1년에 한두 달은 쉬기도 하고, 외부에서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들어오면 클래스를 잠시 안 하기도 하고, 그 반대로 해보기도 해요. 이건 이런저런 다양한 일들을 하고, 쉬지 않고 일하면서 터득한 방법이에요. 전체적인 큰 그림을 생각해서 직조작업, 집안일, 교육 등에 힘을 잘 분배해서 해야 하죠. 서울을 떠나 좀 덜 복잡한 경기상상캠퍼스로 옮겨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어요. 어떤 변화 속에 살지 앞으로는 모르지만 제 큰 그림 안에서 생활이 따로 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속 좋은 마음으로 작업하고 싶으니까요.
 


 

Q. 작가님의 오랜 경험들 속에서 스스로 찾은 방법과 태도가 앞으로의 활동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활동하고 작업하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애씀이 많이 생겨요. 애쓰고 있다는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죠. 하지만 애쓰는 마음만으로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계획 중 하나는 직조생활만의 고유성이 담긴 직조 상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상품을 만들고 기획하고 동시에 베틀교육을 하고 또 홍보하는 모든 것에 많이 애쓰며 살 계획입니다. 직물 하나를 만드는 시간이 빠르면 사흘 길면 일주일도 넘게 걸리는 경우가 있어요. 요즘 시대에는 빠른 속도의 대량생산 방식이 주로 이루어지는데 이건 제 작업방식과 많이 다르지요. 그래서 이 작업이 더 메리트가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제 작업과 연결이 되는 다른 작업자와도 콜라보로 함께 작업을 할 수도 있고 그 일들을 하면서 다른 작업방식을 배우고 터득하고 타협하며 계속 즐겁게 작업을 하고 싶어요.

 

“계속 좋은 마음으로 작업하고 싶으니까요.”
그녀가 담담하게 뱉는 말은 참 당연하고도 소중하다. 좋은 마음을 유지하려면 현실적으로 끼니 걱정도 없어야 하고, 여유로운 시간도 있어야 하고, 충분한 작업 공간도 있어야 하고, 함께 영감을 주고받을 사람들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때때로 이런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창작자들의 삶에서 시작되기도 하기에 ‘직조생활’의 시작과 정은실 작가의 고민이 우리의 생활과 더욱 가깝게 연결되어 보인다. 특히 그녀가 “계속 작업을 잘 하고 싶으니까요”라고 말하는 대신 “계속 좋은 마음으로 작업하고 싶으니까요.” 라는 표현을 쓴 것에 다시 귀를 기울여본다. 좋은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고 느린 작업의 힘을 믿으며 여러 일의 균형을 모색하는 태도도 중요하기 때문이 다. 그녀가 어떤 작업을 하고 어떤 생활을 하든 “좋은 마음으로” 지낼 수 있다면 그녀의 곁에서 창작도 교육도 즐겁게 지속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정은실
수직기로 직물을 짜는 핸드위빙 스튜디오 ‘직조생활’의 대표이다.
개인 작품활동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조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또한, 공동체 의식을 담은 지역사회 예술 프로젝트 기획, 직조전시 등 활동영역을 다양하게 확장해 나가며 노동하는 손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직조가 생활 문화가 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과 유대감을 형성하며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선영
예술가이자 창작그룹 ‘비기자’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비기자’는 무한경쟁시대에, 각기 다른 생각들이 꾸준하게 비길 수 있는 현장을 인문학적 문화예술 활동으로 만드는 창작그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