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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29

25호 가봄 
한 사람이 있다
명학마을 작은도서관
_<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참여단체 인터뷰


인터뷰 참여자

_ 질문하는 사람 / 김인경

_ 답변하는 사람 / 명학마을 작은도서관(정석현)


 

한 사람이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한 사람이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면 벌어지는 새로운 일이 있다. 그 일을 통해 우리는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한 사람이 결국 예술, 기획,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바라는 것은 자신이 아닌 다른 한 사람을 제대로 만나는 것에 있지 않을까. 그러한 일을 이루어내기 위해 한 사람은 제도를 현장에 맞게 개선하고, 행정지원을 아끼지 않는 한 사람과의 만남 또한 절실히 바라고 있다.  

 


Q. <명학마을 작은도서관>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저희 도서관은 2013년 11월에 개관을 했습니다. 교회가 만안구로 이사를 오서 지역주민에게 어떻게 장소와 활동으로 기여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NGO단체에서 하는 “작은 도서관”을 세우는 방법에 대한 강의에 참여하게 되면서 도서관을 설립하게 됐습니다. 아이들의 독서지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문학,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은 도서관이지만 NGO단체 등 여러 단체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지역 특성상 외국인들이 많아서 외국학생들이 저희 도서관 어린이에게 영어로 책을 읽어주거나, 중국어를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벽화 프로젝트와 같이 기업과 지역을 연결하는 일, 지역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재생사업 활동들이 있고, 안양시 또는 문화재단 등의 공모사업을 통해서 엄마들과 아이들의 문화활동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Q. <명학마을 작은도서관>에서 기획, 진행하는 <일상에서 예술찾기, 예술에서 일상찾기>프로그램을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원래는 지역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작곡가 교수님과 함께 고민하면서 만들었던 예술프로그램이었습니다. 만안구는 도시재생지역일 뿐만 아니라 동안구에 비해 낙후된 지역이어서 아이들 수는 줄어들고 있고, 인문학적 소양이나 예술적인 경험들이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어떻게 이들에게 예술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함께 아이들이 음악의 과정을 즐기고 성취감 또한 느낄 수 있는 ‘작곡학교’ 를 시작했습니다.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면서 이 지역에 어르신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역 특성에 맞춰 이번 해의 대상을 어르신들로 잡았습니다. 어르신들의 나이는 주로 80대 후반에서 90대입니다. 그 분들을 대상으로 일상의 소리와 악기의 리듬을 익히고,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드는 프로그램을 현재 진행하고 있습니다. 

 

<명학마을 작은도서관>의 "일상에서 예술찾기, 예술에서 일상찾기" 수업일지

-2018년 7월 (24회차 중 8-11차 수업)

-주제 : 리듬, 그리고 스토리 라인
 

지난 6월 한 달 동안이 '작곡'을 하기 위한 워밍업 기간이었다면 이번 7월은 본격적인 '작곡'에 들어가기 시작한 기간이었다. 어찌 보면 더디고 더딘 수업 과정..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어르신들의 연령대가 참으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60대의 젊으신(?) 분부터 최고령 94세 어르신도 계심!) 이 분들을 모두 아우르고 가기 위해서는 충분한 연습기간은 필수적이요, 강사진들도 이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연령이 많으신 어르신들께서 어떻게 작곡이라는 것을 하실 수 있을까? 그래서 고민 끝에 준비한 것이 바로 [낱말카드], [음표카드], [그림카드]등 간단한 '카드'들이다. 먼저 동물그림과 간단한 단어들을 '카드'로 만들어 리듬악기들로 충분히 연주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거북이, 오리, 토끼, 치타 각각의 네 동물들은 길고 짧은 음표들을 대표하여 추상적인 리듬으로 표현해 낼 수 있고, 단어들은 그 음절 그대로 리듬을 연주하면 된다. 이 카드들을 어르신들께 나누어 드리고 자유롭게 이어 붙여 리듬악기로 연주해 보는 활동을 하였다.

그 결과는 아주 흥미로웠다. 어르신들께서 노래의 구성까지 생각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고민하여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충분히 잘 하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다음 주에 음표를 추가해 보았다. 4분 음표, 8분 음표, 16분 음표들을 각각의 말 리듬에 대입해 알려드렸더니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시고 연주하셨다.

본격적인 활동으로 들어가, 모둠을 나누어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카드들을 나누어 드리고, 그것들을 자유롭게 구성한 뒤 음표들로 구성된 카드들을 마음대로 배치해 연주해 보는 활동을 하였다. 

그 결과는, 
 


단어들과 음표로 구성된 것이 마치 가사에 리듬이 붙은 모양새로 나와, 그럴듯한 '리듬작곡'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본격적인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리듬붙이기'다. 그동안 스토리텔링을 통해 어르신들의 이야기들을 포스트잇에 정리해 두었고, 그것들을 스케치북에 하나의 선을 만들어 '스토리라인'으로 구성해 보았다. 그 '스토리라인' 위에 자유롭게 리듬카드를 이용하여 본인의 리듬을 작곡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더니
 


 

나름 그럴듯한 리듬을 작곡 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한발 한발 수업을 진행해 나가다 보니 자발적으로 가사나 노래를 만들어 오는 분도 생기게 되었다! 

여기서 살짝, 한 분이 써온 가사(?)를 공개해본다. (쉿!)
 


즐거운 이야기도 있고, 행복한 이야기도 있지만 힘들고 아픈 이야기를 가진 분들도 많다.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들이 참으로 소중하고 뭉클하고 맘이 아프기도 하고....

같이 무언가를 이루어 나가는 매주 이시간이 참으로 감사하고 보람되고 그렇다.

 

*출처 :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홈페이지 ‘문화예술교육 수업일지’ 게시판 



Q. 지역의 어르신 분들을 만나면서 듣게 이야기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나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듣게 된 이야기들 중에 정말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어떤 할머니 한 분은 제주에서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와 일본으로 가셨는데 당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져서 일본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범선이 아닌 쪽배를 타고 제주도까지 넘어오셨는데 범선을 타고 가셨던 분들은 일본 정부에 잡혀 다 죽었다고 합니다. 최근에 그 내용에 대해서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뉴스를 봤는데 그 얘기가 사실이었습니다! 겨우 쪽배를 타고 난파되듯이 제주도에 돌아오자마자 몇 년 안돼서 제주 4.3 사건이 터졌고, 그 분의 여덟, 아홉 명 되는 오빠들이 다 죽었습니다. 어머니는 다른 집으로 시집을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미움과 증오에도 불구하고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어머니의 수발까지 들어야 했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분은 그러한 시간들을 살아내셨습니다.  

 

 

 Q. 다양한 <명학마을 작은도서관> 활동 속에서 현장에서 겪고 있는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우선 환경적인 부분을 말씀 드리면 저희 도서관은 인문학, 사회, 문화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는데 실제 학부모들의 관심사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자신의 아이가 생각을 많이 하고,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이지만 그들의 선택은 국어, 영어, 수학 학원을 보내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이미 세팅이 되어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이 학원 들렸다가 저 학원 들렸다가 집. 도서관이 그 사이를 인문학적인 교육으로 파고 들어가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지역의 앵겔지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러니까 소위 먹고 사는 것에 바쁜 지역이면 지역일수록 이런 것들에 대한 관심도가 낮습니다. 초등학교에 가서 홍보도 하고 안내를 드리는데 초등학교 선생님들에게는 또 하나의 일이 돼버려서 마음을 더하기가 어려운 듯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프로그램 신청을 받기 시작하면 (만안구에 비해 부유한) 동안구에 있는 엄마들에게서 전화를 많이 받습니다. 그분들은 학원 외에 무료로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굉장한 검색을 하시는 분들이어서 학원은 돈 내고 보내고, 인문학적인 것은 돈을 내지 않고 보낸다 라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꼭 얘기를 드리고 싶은 행정적인 부분인데 사회적으로 기반이 약한 대상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할 때 일반강사가 아닌 전문강사가 필요하며, 한 명 있어야 할 강사가 어떤 때는 두, 세 명 필요할 때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사비가 전체 예산 중에 차지해야 하는 비중이 한정되어 있어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굉장히 힘듭니다. 예를 들어 이번 <일상에서 예술찾기, 예술에서 일상찾기>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할머니들은 열다섯 분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강사 한 명이 할머니 한 분 한 분을 제대로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강사 한 명당 할머니 한 분 또는 두 분을 만나는 것이 필요한데 강사비에 대한 기준이 확고하게 정해져 있어서 어떤 때는 프로그램을 아니한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예산의 기준자체에 있어 강사비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펼쳐내고, 한 사람의 일상이 윤택해지는 것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프로그램들이기 때문에 강사비에 더 많이 투자를 하는 탄력적인 행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들으면서 <명학마을 작은도서관> 작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크고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사회적 환경과 행정적인 제약 속에서도 활동을 지속할 있는 힘은 무엇인가요

제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많지만 다행히 여러 가지 사업들을 하면서 정말 훌륭한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자녀교육에 대해서 학원에 맡기지 않고 두레처럼 자녀들을 공동으로 육아하는 엄마들의 모임이 동안구에 있습니다. 그분들의 장소적인 고민을 저희 도서관에서 해결함으로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 지역 만안구에서 이러한 방식의 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한두 명의 엄마들을 흡수시키려고 합니다. 건강한 공동체 활동을 하는 분들과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공동체가 없어서 실천하지 못하는 이 곳 분들을 만나게 함으로써 활동에 활력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온 프로젝트들을 한 번에 끝낸 적이 없는데, 해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를 알고 특정한 결과를 정하지 않는 것도 나름의 노하우 인 것 같습니다.  

 

 

Q. 프로그램의 강사비 기준에 대한 어려움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경기문화재단>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작은도서관, 문화예술을 하는 분들 모두 동일하게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 곳에서 뭔가를 요청을 할 때는 그만한 이유나 원인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교육사업을 지원하는 <경기문화재단>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공모를 실제로 써보셨던 분들이나, 현장에서 뛰어보신 분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이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위에서 내려온 것들에 대해서만 대변해 줄 것이 아니라, 이 곳에 왜 이런 것들이 필요한지를 이해를 할 수 있는 분들로서 현장을 대변하는 행정을 하시는 분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말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 행정가, 전문가 분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질타, 질문, 제안을 하고 싶고, 받고 싶습니다. 프로그램 중간에 모니터링을 오는데 저희는 모니터링에 대한 아무런 피드백을 그 즉시 받지 못했습니다. 모니터링이라는 이름으로 오신 분들은 현장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것을 보았고, 무엇을 평가하는지에 대한 피드백이 전혀 없었습니다. 1차, 2차에 걸쳐 모니터링을 왔다면 1차에 대한 피드백이 있어야 했습니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서면으로 통보 받거나 한참이 지나고 나서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이미 이야기할 시기를 놓치고 맙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안양시 <명학마을 작은도서관>은 정말 '작은' 도서관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과 이어진 크고, 열린, 살아있는 도서관이었다. 공간의 핵심은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진짜 공간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겉보기에만 크고, 그럴싸해 보이는 사람이 깃들지 않은 죽은 공간들을 더 많이 봐왔던 것 같다.  

한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많을 수 있나 놀랍게 느껴지는 만남이었다. 내가 만난 이 한 사람을 통해 듣고, 이해하게 된 한 사람, 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글을 읽는 당신, 한 사람에게 잘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석현

명학마을 작은도서관은 지역 주민들을 위해 인문 , 문화예술교육을 제공하고 지역사회의 사랑방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의미와 가치를 연결하여 시너지를 내고자 움직이는 연결고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인경 

예술, 기획, 교육 어딘가를 부유하는 한 사람. 

살면서 해보고 싶은 작은 일들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실천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