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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엄치기
  • 김은기
  • 2018.10.29

25호 곁봄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엄치기
김은기


 

‘동물이라면 모두 물에 뜰 수 있는 걸까? 겉보기에는 다른 생명체와 비슷하지만 미세하게 신체 어느 부위가 달라서 혹시라도 물에 뜰 수 없고 헤엄칠 수 없는 몸으로 태어난 동물도 있지 않을까?’

 마포구 일대 몇몇 수영장 초급반을 전전하며 수영 배우기를 시도하고 노력해 보았지만 끝내 포기하고 떠오른 생각이었다. 모든 초급반 수업에서 나는 ‘수영’이라는 기술 또는 스포츠를 배웠다고 말하기 머뭇거려지는 수준에서 그치고 말았다. 그렇다고 출석을 게을리 한 건 절대 아니다. 화려한 기술이나 다이어트를 위해 헤엄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저 뜨고 싶었다. 혹시라도 물에 빠지면 구조 될 때까지 머리라도 내밀고 숨을 쉬어야 하니까!

 

물이 견딜 수 없이 무서웠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짚을 수는 없지만 초등학생이었을 즈음에 참가했던 수련회 물놀이에서 인정사정없이 물속에 처박혔던 사건은 생생하다. 공기 중의 소음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귓등을 후려치는 듯한 청각적 충격, 눈, 코, 입과 귀, 얼굴의 모든 구멍으로 침투해서 폐를 잠식해 버릴 것만 같은 물 입자의 침공. 산소를 찾아 허둥대며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어떤 힘에 의해 머리는 다시 물속으로 처박혀지고 말았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폭력이었다. 하지만 놀이 안에 은근히 자리한 폭력이 그렇듯 나의 괴로움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여겨졌고 나쁜 기억이라 하기에는 모두가 동의했고, 웃었고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즐거운 물놀이를 했다고 믿었다.

 

헤엄치기, 아니 정확히, 물에 뜨는 것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수영장 따위야 살면서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고 혹시라도 물에 들어가게 되면 도너츠, 홍학, 피자 등의 형상을 한 기발하고 발랄하며 성능 좋은 튜브만 있다면 힘들여서 팔다리를 휘젓지 않아도 물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부력보다는 중력과 훨씬 가까운 두 발 달린 인간의 삶에 수영이 과연 필수일까. 게다가 수영 외에도 좋은 유산소 운동은 얼마든지 많다. 조깅, 자전거 타기, 요가 등등.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나는, 정확히 무엇 때문에 물이 두려운 것인지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 겪었던 물놀이에 대한 기억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진짜 헤엄칠 수 없는 신체를 가지고 태어난 생명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갔던 어린시절 이후 내 발로 수영장에 간 건 성인 초급반 수업이 처음이었다. 첫 수업 전날엔 인터넷에서 수영장 에티켓 따위를 검색하며 초조한 마음을 달랬다. 서서히 더워지는 공기를 느끼며 지하에 위치한 수영장 입구에 들어선 순간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강사들의 고함소리에 초조했던 마음은 더욱더 쪼그라들었다. 이내 귀를 찌르는 호각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은 일제히 체조를 시작했다. 어색한 내색을 감추고 힐끔 힐끔 옆 사람을 쳐다보며 준비운동을 마치자 강사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수영장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대강 이야기 하고 이어서 강조한 것은 앞으로 시작과 끝에는 모두 함께 손을 모으고 구호를 외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업은 꽤 계획적으로 분배된 시간에 맞춰 진행되었다. 초급반 수영은 물 속 보다 물 밖 연습 비중이 컸다. 코와 입을 모두 사용해야 하는 음파음파 호흡, 다리 근력을 키우기 위한 앉아서 발차기 연습, 정확한 자세를 위한 팔 돌리기 연습. 강사는 이 모든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며 물 밖에서 정확하게 연습을 해야 수영을 잘 하게 된다고 했다. 첫 초급반의 며칠은 기대와 달리 물에 몇 번 몸을 적셔보고 돌아올 뿐이었다. 그 이후에 등록한 다른 수영장들의 초급반 역시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다. 강사가 제시하는 대로 앉아서 발차기 00번, 음파 호흡 00번, 팔 돌리기 00번을 어느 정도 하고 난 뒤 비로소 물에 완전히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머리를 완전히 물속에 넣는 순간 문제는 그 ‘기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문화예술교육 수업을 기획, 진행하고 또는 관련 행정이나 주변부의 일들을 하면서 느낀 것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모두가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잘 알고 있으며 변화하기 위해 어떤 것을 해결해야 할지 분명하게 알고 있지만 물에 발을 제대로 담그지도 않고 밖에서만 끊임없이 ‘기본’을 외치며 짜여진 순서대로 비판과 성찰을 반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했다. 작가나 강사들은 실무자와 씨름하고 실무자는 기관과 규정과 씨름하고 기관과 규정은 전문가를 고민하고 말하게 하지만 그렇게 쏟아진 발언들은 수면 위에서 크고 작은 물방울만을 만들어 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현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왜’ 중요한지가 아닌 ‘어떤 모습’의 현장이 중요한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았다. 

 

2개월이 조금 넘는 첫 초급반 수업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물에 뜨는 방법이나 물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발차기가 아닌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물 밖의 기본 훈련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강사는 15명 남짓한 사람들을 물속에서 줄 세운 뒤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하며 라인을 돌고 오는 연습을 시켰다. “빨리 출발하세요!” 강사의 재촉과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에 대한 부담감에 머뭇거릴 틈도 없이 물에 몸을 던졌다. 잔뜩 긴장한 어깨는 킥판을 힘주어 눌렀고 점점 가라앉는 다리는 발차기를 하기는커녕 허우적댈 뿐이었다. 배운 대로 호흡을 하려고 머리를 집어넣으면 공기와 함께 들어온 수영장 물로 인해 코는 찡하게 매웠고 입으로 들어온 물을 뱉어내느라 연신 재채기만 반복해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엄치기에 대한 뜻을 접지 않았다. 그럴수록 꼭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문제는 기본자세나 근력이 아닌 내 호흡의 속도와 수중에서의 감각이 주는 공포 극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강사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핑계를 대보기도 했다. 원인을 외부에서 찾아야만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구실이 생기는 것 같았다. 첫 초급반 수업이 끝난 뒤 얼마 후 집 근처의 다른 수영장에 등록했다. 연습은 시키는 대로 여전히 빼먹지 않았지만 빨리 앞으로 헤엄쳐 나가라는 강사의 재촉은 더해졌다. “안 죽어요. 수영장에서 죽은 사람 없어요!”라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은 표백된 물과 함께 코와 입을 매캐하게 틀어막았다. 앞으로 나가려고 힘을 주면 줄수록 더욱 무기력하게 가라앉을 뿐이었다. 

 

2017년도 서울문화재단 교육지원센터의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수업을 진행했던 친구들과 그런 무기력함에 대해 자주 이야기 했다. 심사과정부터 예산 집행에 따른 행정처리와 결과보고까지, 매순간 제자리에서 의미 없는 발차기만 하다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것 같았다. 직접 대면하는 실무자를 원망하다가도 ‘규정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거겠지’라며 받아들여보려 해도 다시 또, ‘어떻게 하면 우리가 마주한 문제가 개선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결국은 ‘그래, 다신 이 사업 안하면 되지’라는 체념을 무수히 뱉어냈다. 우리가 과연 숨 막히는 부조리함과 자조로 뒤범벅된 괴로움을 삼켜내면서까지 애정과 열정으로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이번이 마지막이야, 올해까지만 할 거야. 다신 안 해’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몸을 담았던 사람들 중 이와 비슷한 생각이 잠시라도 스치지 않았던 사람은 아마도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어떤 이는 마음을 다잡고 지난 사업에서 얻은 생존 스킬을 바탕으로 한결 수월하게 헤엄쳐 나갈 것이고 누군가는 발을 딛고 잠시 숨고르기를 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스스로를 문화예술교육의 생태와는 맞지 않는 종이라 여기고 그곳을 떠날 지도 모른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진행하는 동안 내가 체념하며 다짐했던 말은 당연하게 현실이 되어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고군분투하며 앞으로 헤엄쳐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유리벽 너머 각각의 레인에서 끊임없이 호흡하며 수면 위 파동을 그려가고 있는 사람들.

 

최근 나는 4번째 초급반 수영 수업에 등록했다. 자유형 혹은 그보다 화려한 평영, 접영 등의 기술은 꿈도 꾸지 않는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더라도 물에 떠서 헤엄치는 것, 물속에서 겁먹지 않고 숨 쉬는 것을 이루고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헤엄치기로 결정했다. 첫 수업에서 준비운동도 없이 강사는 이름을 물어보고 바로 물에 들어오라고 했다. 그러더니 바로 물속으로 가라앉아 코로 거품을 내며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반복한 뒤에는 스파게티라고 부르는 긴 스티로폼을 배에 대고 물에 뜨는 걸 느껴보라고 했다. 호흡과 발차기 연습이 주가 되는 쉴 틈 없는 수업을 생각했던 나는 조금 의아한 마음으로, ‘이게 수업인가? 뭘 배우긴 한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첫 시간을 마쳤다.

 

다음시간, 그 다음시간에도 준비운동은 없었고 물 밖에서의 호흡 연습도, 앉아서 하는 발차기 연습도 없었다. 이름을 부르고 서로 잘 지냈냐고 물은 뒤 바로 수영장으로 들어가 공기 중과는 다른 수중 감각에 어느 정도 익숙해 진 뒤에야 조금씩 진도를 나간다. 나는 어느 순간 찰랑이는 물결에 팔다리를 흐느적대며 뜰 수 있게 되었고 천둥보다 더 크게 느껴졌던 물 속 소음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다시 수영을 배우기로 결심한 것처럼 가끔, 문화예술교육이라는 판에서 언젠가는 다른 호흡으로 숨 쉴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 본다. 개인의 애정이나 열정으로만 연명해가는 생태가 아닌 따로 또 같이 영향을 주며 존재하는 문화예술교육 유기체. 그 파동에 몸을 맡기며 자연스럽게 숨 쉴 수 있는 날을 상상해본다. 

 

 

 



김은기

주 5일, 유산소 운동을 하는 생활체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