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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세형
  • 2018.10.29

25호 곁봄 
항상 문화기획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문화재단에 감히 물어보지 못한 것
오세형

 

 

문화기획 또는 문화예술 기획이라는 표현만큼 내용물이 모호한데도 만능키처럼 이곳저곳 두루 쓰이는 말이 있을까. 전시기획이나 공연기획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구체적인 문화콘텐츠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데도 도처에서 쓰이고 있다. 누군가 내게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을 때 보통 어디에 근무한다고 하지만 내용적으로 대답해야 할 일이 생기면 ‘문화기획’을 한다고 하고 싶어지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해왔다. 그러나 사실 십년이 넘도록 내가 해온 일은 실제적으로 행정 또는 문화행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정해진 행정적 규정, 기준이나 프로세스에 맞춰 일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일이 내가 몸담아 온 문화기관의 일이었다. 그런데도 스스로는 ‘새롭고 참신한 일’을 찾고 현실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문화기획자’라고 주문을 외듯이 살아왔다. 즉 주관적인 차원에서 나는 ‘창의적인 문화기획’을 하는 사람이지만 객관적으로는 ‘문화와 관련한 행정’을 하는 사람일 뿐인 것이다. 

 

내가 허세 부리듯이 집착하는 문화기획이 도대체 무엇인지 자문해보자. 참신하고 눈에 띄는 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문화기획자라 부른다. 문화기획이 전시나 공연과 같은 전문예술 이벤트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일이 명명하기 힘든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싸잡아 편히 부르기 위한 호칭도 아니라면, 어떤 맥락에서 타당한 정체성을 찾아낼 수 있을까. 경기문화재단만 놓고 봐도 수년 전에 진행되었던 ‘톡톡 커뮤니티아트’나 ‘예술로 가로지르기’ 부터 최근의 ‘경기천년 페스타’와 같은 대규모 이벤트, 경기상상캠퍼스의 크고 작은 프로그램들, 경기북부사무소의 ‘청년문화캠프’나 ‘마을아카이브’와 같은 수많은 기획프로그램들이 있다. 이 모두가 외양은 문화기획 사업이다. 그러나 기획사업이라고 딱지가 붙은 모든 사업이 현장의 수혜자나 동료들에게 유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기획사업이라 하면 타성과 관습적 패턴에서 벗어나 어딘가 창의적이면서 의미가 있는 목적을 지향한다고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목적이고 어떤 의미인가.   

 

먼저 공공기금사업의 문화기획을 하는 데 있어 상수에 가까운 행정이라는 필수조건에 대해 얘기해보자. 우리의 문화예술 사업처럼 공공에 의지하는 비율이 높고 국가나 지자체가 깊은 관여를 하는 곳에서 일을 하려면 행정에 대한 이해가 남달리 높아야 한다. 문화재단의 업무구조는 밖으로는 예산을 지원하는 정부나 지자체에게, 내부적으로는 기관장이나 의사결정 구조에 둘러싸여 있다. 또한 행정에 요구되는 공정성과 공개성이라는 원리는 문화행정을 하는데 있어서 원칙처럼 작용한다. 이러한 기준 하에서 작동되는 예술지원, 문화예술교육지원 등의 사업은 2~3년만 반복되어도 일종의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공개공모를 하고 옴부즈맨을 통해 공정성을 지켜 일하다보면 절차는 안정되지만 지원사업은 어느새 지루한 일이 되어버린다. 해당지역의 예술가가 한정되어 있고 프로그램들도 온통 낯익은 것만 보이면서 ‘창조적 예술활동’을 발견하는 기쁨은 남의 얘기가 되어버린다. 불특정다수를 위한 공모사업이지만 실제 고객이 정해져 있고 시장의 상품도 비슷해지는 것이다. 처음엔 새롭게 보였던 예술프로그램들도 일종의 우위의 나태에 빠져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고 지원신청자의 규모나 신청하는 프로그램의 수준도 변동성이 없어진다. 예를 들어 제5회 정기공연을 지원받은 음악단체가 있는데 예술적인 변별력은 없지만 꾸준한 활동과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이유로 선정되었다고 하자. 이들은 10년 뒤 15회 정기공연을 할 것이고 또 비슷한 이유로 경쟁과정에서 선정될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다수를 차지한다면 도대체 문화재단은 무엇을 위해 행정력을 동원해 매번 공모를 하고 심사를 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 창작진흥이나 예술활성화는 무슨 의미를 표방할 수 있는 것일까. 더군다나 시간이 지나면서 해당지역 예술가들의 권리의식은 높아져 민원은 많아지고, 타 지역의 예술가나 낯선 형식의 예술에 배타적이 되어간다. 변화의 바람은 잠잠해지고 문화재단은 고여 버린 저수지처럼 잔잔해진다. 

 

사업이 이렇게 굳어져 지원받는 단체나 사업유형이 반복되게 되면 예술지원 사업의 새로운 활력과 변화를 위해 탈출구를 모색하게 된다. 청년예술가, 유망예술가, 예술가 생애주기 맞춤형 사업과 같이 대상별로 차별화도 해보고, 대관료지원, 연습실지원, 운영인력 지원과 같이 간접형 지원사업도 고안해 내보지만 현장의 변화는 쉽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전국단위로 사업을 하는 지원기관부터 기초지자체까지 동일하게 반복되는 현상이다. 사업의 관행화와 반복적인 구조가 문화재단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를 하는 면이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반복적 구조는 결국 독이 되어 돌아온다. 문화기관으로서 지향해야 하는 창작 활성화, 지역문화 활성화, 전문인력 양성과 같은 재단의 고유한 목적은 길을 잃게 된다. 이럴 때가 고인 물을 흔들기 위해 돌파를 위해 문화기획 사업이 가장 긴요해지는 순간이다. 나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현장의 변화와 활력을 위해 새로운 문화기획을 도모하려고 시도했었다. 

   

전시나 공연기획과, 문화재단의 기획프로그램의 방향성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작가의 창작품은 통시적인 예술사의 맥락이나 공시적인 동시대예술의 작품이라는 환경을 참조하면서 기획된다. 예술가는 자신만의 예술적 시각과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고유의 예술적인 언어를 갖추면 된다. 반면 문화기관의 기획은 물리적으로 주어진 문화예술의 조건이나 실태라는 제한된 조건하에서 질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돌파구를 찾는 일이다. 그러나 변화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그럼 무엇부터 해야 하는 것일까.  

  

우선 국내외의 문화제도나 정책의 동향과 흐름에 민감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술을 읽어낼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 예술현장의 정책적, 예술적 변화를 읽어내고 해석할 수 있는 리터러시 능력이다. 문화기획은 예술현장의 변화, 예술교육의 질적인 전환을 전제로 추진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 바탕에는 현장에 대한 경험과 비판적 이해, 그리고 변화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역에 맞지도 않은 화제성이 있는 프로그램에 유혹당하거나 각 지역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프로그램을 비판 없이 수용하게 된다. 

 

 이와 함께 더 고도화된 역량이 필요해지는데 정부, 지자체, 소속기관의 의사결정구조에서 능숙한 조정자가 되는 것이다. 다른 섹터의 언어와 관점을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갖추어야 한다. 공무원의 업무방식과 논리구조에 피상적으로 접근해서는 불평불만만 많아지게 된다. 때때로 문화행정을 오래해온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공무원에 대해 몰이해적인 태도를 보이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문화재단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부서가 정부나 지자체와 예산과 인사를 협의하는 경영이나 전략부서가 아닌가. 왜냐하면 가장 까다롭고 복합적인 고도의 업무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술가 출신의 기획자들이 정부와 일을 하다가 갈등하고 서로를 적대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공무원에게 예술은 독단과 비합리적인 이상의 언어로 보이고 예술가에게 행정은 예술에 몰이해적이고 타협만을 요구하는 번거로운 일로 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문화재단에서 지원사업의 담당자로 일할 당시에는 연극, 무용, 음악, 미술 등 장르 중심의 지원체계가 공고해지고 있었다. 현장을 자주 나가 보면서 작품들의 질이 높지 않거나 유사한 프로그램만 반복되는 현실을 마주하고 일하는 것에 흥미를 잃어갔다. 이후에 여러 해외작품을 통해 장르주의가 해체되기 시작하는 동시대예술의 역동적 변화를 접하고 국내에 도입하고 접목시키고 싶었다. 장르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예술의 언어가 혼종화되고 새로운 형식의 공연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공모사업에서 다원예술이라는 ‘장르’를 신설하고 관련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처음에는 용어자체도 생소해서 신청자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당시에 역량이 있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몇몇 예술가들은 중앙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을 공모에 참여시키기 위해 민원이 들어올 것이 뻔한 데도 신청지역 제한을 없애고 다른 지역의 예술가도 지원신청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중앙과의 격차해소를 명분으로 내걸고 수년간 밀어붙였다. 문화기획의 시작단계라고 볼 수 있는, 아직은 정책의 목표와 현실의 간극이 큰 상태였다. 

 

다음해부터 전문가 심포지움과 해외예술가 초청 레지던시 프로그램, 현장전문가 육성을 위한 워크숍, 관련 공연 초청 및 공동제작, 자료집 출간 및 배포 등 수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해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다양한 국내외 전문가들을 만나게 되고 문화기획을 실현시키는 사업형식들을 몸에 익히게 되었다. 필요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찾아내고 개발하면서 기획자에게 필요한 무기고가 갖춰지기 시작했다. 재단에서 풍겨 나오는 새로운 냄새가 낯선 예술가들을 끌어들였고 이러한 일을 도모하는 다른 기획자도 관심을 가지고 찾아왔다. 서서히 현장의 관심과 활력이 생기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고 동기부여가 되는 선순환적인 에너지 흐름이 생겨났다. 

 

이후로 수년간 열정적으로 기획프로그램을 꾸준히 추진했던 것 같다. 물론 내 한 몸을 불사른다고 현장의 전면적인 변화가 희망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 에너지가 어디서 생겨났을까 되짚어보면 결국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던 예술이론과 미학이 바탕이 되었고, 국내외 정책동향과 프로그램을 리서치 했던 것이 거름이 된 것 같다. 리서치를 많이 하면 할수록 현실의 변화와 질적인 전환을 갈망하게 되었고 여기서 얻은 에너지로 장기전에 필요한 추진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후 다른 기관으로 옮겨서 활동무대가 커지고 규모가 큰 기획사업의 매니저나 팀장을 맡게 되었는데 원리는 비슷했지만 방법론이 바뀌게 되었다. 나 혼자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에게 일을 분배해야 하고 조직원을 다루는 노하우를 배우게 되었다. 프로그램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은 더 이상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누비며 메일을 보내고 계약서를 쓰는 코디네이터나 담당자의 역량을 통해 실현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각광받고 빛을 내는 예술가들에 비해 문화기획자는 주목받지 못할 수도 있고 사라지는 매개자에 불과할 수도 있다. 노력에 대한 대가가 쉽게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겉으로 드러난 예술가를 지원하는 기능적인 행정인력으로 치부당하는 경우도 많다. 예상했던 만큼 현장의 변화가 즉각적이지 않고 열정에 대한 대가가 미미하게 돌아올 수도 있다. 문화기획은 꽃을 피우는 일이라기보다 땅을 가꾸고 비료를 주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고, 주인공인 예술가나 작품을 위해 집을 짓고 마을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겸손하게 호흡을 길게 잡아야 하고 기나긴 기다림 끝에 나타날 변화를 기다리는 이 일을 좋아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 수년간 어떤 측면에서 문화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광역이나 기초지자체마다 문화재단이 엄청나게 설립됐다. 중앙기관들도 예산이 확충되고 지역재단과의 업무전달체계도 공고히 확립되었다. 창작지원, 문화예술교육, 문화바우처와 같은 지역형 협력사업을 통해 전국에 프로그램의 공급망이 깔리고 있다. 커뮤니티 프로젝트, 지역활성화 사업, 문화다양성 사업, 전문인력 육성사업, 생활문화지원, 다양한 공간지원사업 등 지역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사업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모든 사업이 지역 특성화를 표면적으로 내걸고 있지만 사업의 관점, 형식, 선호하는 스타일, 소규모의 사업지원, 예산편성지침 등과 같은 규칙이 촘촘하게 규정되어 있어 사실상 지역평준화 사업으로 귀결되기가 쉽고 어느 지역을 가 봐도 대동소이한 내용의 사업설명회, 결과보고회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때야말로 문화적 기획력이 긴요할 때가 아닐까. 교부된 사업을 무사히 수행하는 문화행정가가 아니라 범람하는 평범함 사이에서 변화의 지점을 갈망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끌어내려는 문화기획자의 센 힘을 기대한다.  

 


 

오세형

연극을 하다가 2005년부터 경기문화재단,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예술지원, 문화예술기획을 했고 현재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시아문화, 장애예술, 문화다양성 콘텐츠를 리서치하여 동시대예술의 형식을 통해 발화하는 기획프로그램을 계속해서 도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