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곁봄
-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해보고 있는 것들
- 최선영
- 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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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곁봄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해보고 있는 것들
최선영
“가위바위보에서 졌어요.”
얼마 전 진행한 한 중학교 문화예술교육 첫 시간, 학생들에게 어떻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곳곳에서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자신의 관심사나 참여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위바위보에 져서 이 프로그램에 ‘배정’된 학생들. 언제부턴가 이런 학생들을 다른 수업에서도 종종 만나게 되어 수업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혹시 가위바위보에서 졌나요?”라고 물어보면 학생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순간, 교육 현장을 당장 이끌어가야 하는 사람은 학생들의 개별 의지가 교육 참여로 이루어지지 못하게 된 이유, 그 이유와 연관된 여러 문제들, 그것들 간의 복잡하고도 유기적인 연관성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이 준비해온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애써 힘을 내야 한다.
강사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에 관여하는 실무자, 기획자, 예술가, 자문위원 등 많은 사람들이 현장의 문제를 모르지 않는다. 큰 사업들은 교육 참여자의 욕구나 변화에 상관없이 상위 조직으로부터 기획되어 내려오고 단체나 강사는 개별 고민을 실험할 여유나 여력이 사라지고 교육 참여자는 자발적 관심보다는 다른 이유들로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게 되곤 한다. 지원기관, 단체, 교육 참여자의 입장과 상황은 10년 사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강사비도 제자리걸음이다. 어쩌면 큰 변화를 기대했던 것이 애초에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야기는 지원사업 관련 간담회, 좌담회, 자문회의, 결과워크숍, 인터뷰 등에서 반복적으로 흘러나온다. 어쨌든 이제 무엇이 얼마나 문제인지 말하는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지쳐가고 있다. 그리고 과연 그 내용을 총체적으로 듣고 현장을 위한 개선책을 마련할 누군가가 있는지, 바로 그 부분에서 다시 한 번 무기력해진다. 사업 담당자마저도 다음 해에 그 자리에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사람이 자의든 타의든 자리를 떠나게 되는 복잡하고 현실적인 원인들도 안다. 그렇게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들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안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에 대한 진단이나 비판만큼, 각자의 교육 현장에서 해보고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도 필요해 보인다. 왜냐하면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겠으나) 제도나 시스템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히 만나고 함께 경험을 만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는 그 거시적인 문제의 해결만큼이나, 개별적이고 일상적인 문제에 대한 ‘다른’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다른’ 접근, 혹은 시도는 주로 거시적인 문제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정말 덜 중요할까? 사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이번 [지지봄봄]은 무엇의 중요도를 강조하기보다,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된 각자에게 덜 중요하게 ‘여겨졌던’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우리는 이렇게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무엇을 해보고 있을까. 도저히 무엇도 할 수 없을까. 거시적인 문제가 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 개별적인 접근이나 시도는 큰 의미가 없을까.
다시 가위바위보에 져서 어쩔 수 없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과의 만남으로 돌아가 보자. 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에서 탈락된 아쉬움 혹은 짜증 때문에 몇몇 학생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어서 이 시간이 끝나길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 학생들에게 강사는 며칠 동안 준비해 온 무언가를 어떻게 같이 해보자고 해야 할까. 첫 시간부터 너무 솔직한 학생들 덕분에 담당자 혹은 담임 선생님은 조금 난감하지만 프로그램 별로 정해진 인원은 맞춰야 하고, 이 프로그램도 몇 개월간의 활동을 바탕으로 ‘뭐라도’ 성과를 내야 한다.
그 순간 우린, 교육의 기획과정이 얼마나 섬세하지 못했는지 비판하는 것을 할 수 있으나 그것이 당장의 교육 현장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적당히 각자의 시간을 때우다 헤어지는 것은 최선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때 강사나 기획자, 담당자가 해보게 ‘되는’ 것들이 매번 탁월한 선택이 되지 못하기도 한다. 미봉책과 임기응변이 지속되다가 교육 기간의 절반이 지나가기도 한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는데 역시나 잘 안 되는구나 느끼며 수업이 끝날 때마다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지지봄봄]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성공한 사례들의 소개로 채워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보다 [지지봄봄]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어떤 순간들을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란다. 묘하게도 교육에 참여했거나 관여했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난 후에 오히려 성공적이었던 어떤 선택이나 해법보다 누군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려 했던 의지를 기억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잘 해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던, 그러다 잘 되기도 했지만 참 어설프고도 힘들었던, 그래서 잘 된 결과보다 지난하고 미련했던 과정이 자꾸 생각나는, 바로 그것을 여러 현장에서 듣고 싶다. 이것은 교육 현장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이어질 고민들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한 제도나 시스템이 현장 중심으로 싹 다 개선되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날이 결코 금방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많은 이들이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질문을 좀 달리하여,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각자 해보고 있는 여러 시도들이 힘을 잃지 않고 지속될 수 있다면 어떨까. 그 지속을 위해 역시나 제도나 시스템이 개선될 필요도 있겠지만, 오로지 그것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렇게 많은 문제들이 쉽게 달라지지 않고 있음에도 무언가를 여전히 해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쯤에서, 문화예술교육 강사이기도 하고 교육 관련 기획자이기도 하고 예술가이기도 하고 이따금 자문위원이기도 한 내가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해보고 있는 것들’을 풀어놓고자 한다.
나는 일반적으로 문제라고 상정된 것들을, 내가 이끌어야 하는 상황/만남/교육/활동 안에서 문제가 아니라 상태(condition)로 두려고 노력한다. 가위바위보에 져서 내 수업에 온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예를 들자면 참여 인원수에 비해 넓지 않은 교육 공간, 프로그램에는 관심 없는 담당자나 보조자, 자기표현을 하는 데에 다른 사람들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교육 참여자, 넉넉하지 않은 예산이나 시간 등. 그동안 마주했던 문제, 아니 ‘상태’는 참으로 다양하고도 복합적이었다. 하지만 사실 나도 매번 마음의 평정을 찾고 모든 상황을 ‘상태’로만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불과 두 달 전 자유학년제 수업에서도 단 두 시간 만나는 중학생들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이런 태도를 보이면 수업을 할 수 없다고 혼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나를 화나게 했던 것은 학생이 아니라, 교육 참여자의 관심사와 무관하게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그 안에 학생들을 배정해 넣은 어떤 운영구조 혹은 누군가의 욕심이었다. 사실 학생들의 낮은 참여 의지만을 문제로 두는 것은 나의 가장 편한 논리가 아니었을까. 요즘 학생들은 어떻더라, 그래서 문제더라 하는 일반적인 말들이 더욱 쉽게 내 머릿속을 채워 어떤 ‘상태’를 더 문제로 견고히 만들었을 것이다.
다시 한 달이 지나, 비록 다른 중학생들이었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을 때, 나는 학생들이 얼마나 이 프로그램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힘든 ‘상태’인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였다. 그래서 활동의 내용과 방식을 완전히 바꿔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위바위보에 져서 왔나요?”라고 묻는 여유도 부려보았는데 역시나 그렇다는 답변을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이고, 오늘 또!’이러고 화를 가라앉히느라 애를 먹었을 텐데, 마음을 달리 먹으니 학생들이 딱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래, 그럼 오늘 한 번 너희들의 예상을 뛰어넘게 재미있게 놀아보자’ 다짐하고 이런 저런 재료를 꺼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활동은 이렇게 저렇게 마무리되었고 나는 지난번과는 다른 힘을 얻었다. 프로그램 진행이 잘 되고 안 되고를 떠나, 나의 태도가 교육 현장과 앞으로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함께 그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도 전해질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상태’를 계속 만나게 될 것이다. 어느 순간 또 이건 진짜 문제다! 하며 분노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찌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은 그렇게 쉽게 달라지지 않은 채로 우리에게 계속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지치지 않고 각자의 고민을 지켜내는 힘은 ‘그럼에도 해보고 있는 것들’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이것은, 교육 현장의 어려움을 강사나 기획자, 담당자의 개별적 시도로만 풀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들이 각자의 경험과 태도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기를 응원하고 싶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활동의 의미를 각자가 찾기에 어렵지 않을까. 더불어 교육 현장의 현실적 어려움,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발언해야 하는 것이 사업적, 공식적 역할인 사람들이 보다 좀 더 적극성을 띄기를 기대한다. 변화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오늘도 교육이라는 것을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해야만 하는 여러 사람들의 입장, 그와 관련된 상황들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누군가는 지치지 않고 교육 현장에서 무언가를 해보고 있어야 하고, 누군가는 그러한 시도들이 담아내는 의미와 어려움을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지지봄봄]은 이중 전자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사실은 후자의 누군가가 이러한 내용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기도 한다. 무언가를 해보려는 사람, 그것을 보고 들으려는 사람들의 시도는 당장 어떤 결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것과 연관된 사람들에게 여러 방식으로든 기억될 것이다. 이건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버텨보자는 것과 다르다. 스스로에게도 기억될 만한 시도를 이어가보자는 것이다. 우수하거나 우수하지 않은 시도는 없다.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는 그 가능성을 안고, 각자의 자리에서 가능한 것을 해보자. 날선 눈으로 여기저기의 사례나 사업구조를 평가하고 비판하는 시간만큼.
최선영
예술가이자 창작그룹 ‘비기자’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비기자’는 무한경쟁시대에, 각기 다른 생각들이 꾸준하게 비길 수 있는 현장을 인문학적 문화예술 활동으로 만드는 창작그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