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넘봄
- 예술을 통한 사유하는 문화예술교육
- 최혜자
- 2019.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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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넘봄
예술을 통한 사유하는 문화예술교육
- 다른 나라의 어린이청소년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최혜자
애 쓴다면 조금이라도 되지 않을까?
기억은 언제나 또렷하다. 2007년쯤이었다. 필자가 문체부 문화예술교육정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 때, 가까운 지인이 이야기했다. “선생님, 문화예술교육은 이미 잘못 꿰어져 있어요. 애쓴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요.” 이 비관적인 분은 문화예술교육정책이 학교 중심으로 구성된 점, 문화예술교육 활동이 일자리사업으로 규정된 점을 들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 문제의식에 동의하지만, 다른 한편에 있는 긍정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학교의 변화, 예술가 활동의 활성화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의욕을 잃고 말았다. 사실 필자는 거시적 판단 속에 갈 길을 가고, 접을 길은 접는 사람이 못된다. 불편함을 참고 자리를 지키는 편인 탓에, 이런 저런 컨설팅이나 연구를 통해 문화예술교육 현장 한쪽 구석에서 그저 가능성을 읽는 사람으로 자리하고 있다.
아나띨로아트센터의 어린이 작품
출처 : 아나딸로아트센터 2019년 홍보물
문화예술교육의 가능성은 결국 본질이다
그럼, 필자를 머물게 하는 문화예술교육의 가능성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예술(적 태도)을 통한 변화, 성장,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오로지 ‘사람’에 집중한다. 변화, 성장, 혁신의 문제에 있어 ‘사람’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예술교육은 그야말로 가슴 뛰도록 혁명적이다.
문화예술교육은 행위 과정이나 결과로서의 예술이 아닌, 예술 과정과 결과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다. 이것이 ‘미적 체험’ 혹은 ‘예술의 통한 교육’, ‘경험으로서의 예술’ 등 다양하게 확장되기도 하지만, 예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말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예술교육에서 예술(적 태도)은 매우 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태도를 바탕에 두고 있다.
이러한 점이 문화예술교육의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예술교육의 성과는 사람의 변화, 성장이며, 이를 통한 삶의 혁신이다. 그래서 문화예술교육은 결국 인문적이며, 예술로 하여금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것을 채근하게 되는 것이다.
사유하지 않은 예술, 예술가가 문화예술교육을 할 수 있을까?
문화예술교육이 이러한데, 누가 어떻게 문화예술교육을 실천해야 할까? 사유하지 않은 예술, 인간의 삶을 탐구하지 않는 예술가는 적잖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세상을 탐구하는 자신의 시선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줄 아는 예술 그리고 그러한 예술가가 문화예술교육을 충실하게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외국의 문화예술교육 사례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4년 전, 캐나다에서 대학을 준비하던 필자의 딸아이가 미국의 명문 미술대학에 붙은 ‘불상사’가 일어났다. 북미지역에서는 학교에서 수업한 포토폴리오만 보내서 입학문의를 하는 방식으로 미대 진학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다. 그 즈음 필자는 잠시 캐나다에서 연구를 하였고, 함께 체류한 딸아이는 학교 수업시간에 그림을 곧잘 그렸었다. 필자는 공부에 그다지 취미가 없던 딸에게 미대 입학을 권유했고, 딸아이는 2달 정도 아트엄브렐라라는 과정에서 약간의 지도를 받았다. 그런데 합격을 해버린 것이다. 이것이 ‘불상사’인 이유는 그 대학의 등록 금액을 확인한 후 명확해졌다. 도저히 필자가 보낼 수 있는 수준의 학교가 아니었다. 결국 딸아이는 진학을 하지 않았고, 필자는 다만 말로만 듣던 예술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충격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는 시간보다 이야기 시간이 많은 캐나다 벤쿠버의 아트엄브렐라의 수업광경
출처 : 아트엄브렐라 홈페이지 https://www.artsumbrella.com/programs
현대 예술의 흐름은 전문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아이들에게 예술적 기능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도리어 관찰하고, 생각하고, 표현해보는 사유의 힘, 그러한 아이들의 열정과 끈기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 전문예술가도 그러할진대, 보편 문화예술교육에서는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다른 사례도 그러할까?
다양한 사례에 관심이 있는 필자는 언제나 이러저러한 사례를 관찰하면서 사례연구를 하는데, 외국사례를 볼 때 당혹스러운 점이 한 가지 있었다. 꼭 집어 이야기하자면, 통합, 융복합 콘텐츠를 통해 장르의 한계를 넘어선 사례를 기대하지만, 막상 외국 사례에서는 장르적인 요소가 상당하게 느껴지곤 했다.
원래 각 나라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은 보편적인 내용도 있지만, 정책적인 틀에서는 약간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영국의 프로그램에는 전통적으로 연극이나 합창 활동이 많기는 하지만, 박물관/미술관의 문화유산을 새롭게 해석하는 프로그램이 강한 편이다. 반면, 프랑스의 프로그램은 예술적인 요소들이 강한 반면, 독일의 프로그램은 인권 기반의 프로그램이 강한 편이다. 그런데 막상 프로그램을 샅샅이 보면 의외로 장르적인 흔적 혹은 오브제, 악기 등을 활용한 프로그램이 많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조금 다른 것이 있다. 최근 문화예술교육정책의 지역화 기조 속에 일상의 문화예술교육 공간에 대한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사례가 핀란드 아나딸로(Annantalo)아트센터 사례이다.
아나딸로아트센터의 이미지
출처 : 아나딸로아트센터 2019년 홍보물
아나딸로아트센터는 오래된 초등학교를 1987년부터 어린이, 청소년, 가족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실험적인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를 자랑하고 있다. 헬싱키시에서 운영하는 비영리 공공조직으로 장기, 단기, 하루 코스 예술수업은 물론, 학교 방문수업, 전시회, 각종 공연이 365일 일어나는 곳이다.
아나딸로아트센터의 춤 프로그램/ 공간 인식 프로그램
출처 : 아나딸로아트센터 2019년 홍보물
이곳은 14명의 상근직원과 10명의 프로젝트 직원, 50명의 시간제 전문예술교사가 함께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있는데, 미술, 춤, 음악 등의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마치 장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장르처럼 보이는 행위는 더 큰 가치 속에 경계를 넘어 조합되거나 재배치되어 있다. 이에 대해 아나딸로아트센터장인 카이사 케터넌(Caisa Cattunen)은 명확하게 설명을 하였는데, 바로 예술(art)로부터 문화교육(cultural education)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1)
이를 위해 아나딸로아트센터는 참여자들에게 일정한 원칙을 요구하고 있다.
■ 예술을 즐기자! Enjoy art! |
이러한 참여자들의 활동원칙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아나딸로아트센터 문화예술교육의 원칙이 명확해야 한다. 아래의 원칙을 보면, 최고의 환경 속에서 예술을 즐기고 이를 사회에 확장하고자 하는 관점을 엿볼 수 있다.
■ 소규모 학습 ■ 예술교사의 전문성 ■ 전문적 환경과 도구 ■ 아동중심 교수법 |
급한 마무리
현대 예술의 흐름은 현대 사회의 요구 혹은 시대적 과제와 매우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문화예술교육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문화적 흐름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며, 스스로의 시선으로 자기 삶을 기획하는 역량을 증진하는데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 시스템 속에서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문화예술교육, 예술강사의 일자리로서 만들어지는 문화예술교육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문화예술교육 참여자나 예술강사, 문화예술교육단체 모두를 문화예술교육 현장으로 이끌고 있지만, 정작 문화예술교육의 본질을 대면하기 쉽지 않게 만드는 환경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현장에서 본질에 충실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예술강사나 문화예술교육단체의 활동은 그러한 이유로 더욱 소중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래를 여는 문 혹은 자신을 읽는 눈으로 작동하는 문화예술교육은 인간을 중심에 둘 때 그 가능성이 확장된다. 바로 문화예술교육의 가능성 속에서 미래가치가 구축되는 것이다. 그 가능성에 눈을 한층 크게 떠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고민 지점일 것이다.
1)2019년 5월 23일 울산문화예술교육 국제포럼
최혜자
오랫동안 현장에서 사회활동을 하였으며,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하였다. 군포문화센터 관장, 한국문화정책연구소 기획실장을 역임하고, 예술경영과 비교문화를 연구하였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에서 ‘문화예술교육’과 ‘문화다양성과 다문화기획’을 가르치고 있으며, 연구·교육 및 컨설팅 회사인 문화디자인자리의 대표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