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넘봄
- 모두에게 열린 장소를 만들다
- 바트 반 리샤우트
- 2019.06.27
26호 넘봄
모두에게 열린 장소를 만들다
바트 반 리샤우트 (Bart Van Lieshout)
인터뷰 참여자
_ 질문하는 사람 / 신원정
_ 답변하는 사람 / 바트 반 리샤우트 (Bart Van Lieshout)
미디어 작업을 하는 신원정이 네덜란드 로틀담에서 배우 겸 연출가이자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는 바트 반 리샤우트(Bart Van Lieshout, 이하 바트)를 만났다. 바트는 예술 교육 프로그램 ‘세계정원’과 ‘앤브리스’, 그리고 거리 예술제인 ‘텐타켈 페스티벌’에 대해 설명하며, 그의 예술과 교육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터뷰는 2019년 5월 로틀담 시에 위치한 그의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Q. 예술 교육 프로그램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제가 공터를 처음 얻었을 때, 혼자였어요. 2005년이었죠. 위치는 네덜란드에서 경제적, 사회적으로 어려운 위치의 사람들의 거주지인 로틀담 남쪽 지역이었고, 모로코, 터키, 중국, 수리남 등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는 시간부터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이 공간을 열었죠. 2005년에 시작할 때는 별다른 프로그램 없이, 공간을 아이들에게 개방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 번 봤죠.
Q. 공간에 이름이 있었나요?
A. 우리는 그 곳을 세계정원(Wereld Tuin)이라 불렀어요. 세계정원에는 다양한 종류의 장치, 도구들이 많아 아이들은 쉽게 무언가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는 바퀴로 작업을 많이 했는데, 제가 프레임을 만들면, 아이들이 다음 단계를 주도하여, 수레나 의자 등 쓸모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들을 만들었죠.
과정은 항상 무계획적이었고, 거칠었어요. 그 지역의 아이들처럼 말이죠. 세계정원의 모든 구역은 각각의 성격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어요. 예를 들면, 항상 엄마 같은 사람이 쿠키와 함께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공간인 웰컴하우스란 공간이 있었고요. 어떤 공간은 남자아이들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구역도 있어서, 남자아이들이 출입하려면 노크를 해야 했어요.
바트씨가 보여준 소책자
바트씨가 보여준 세계정원 사진들
Q. 자유시간과 공간이 아이들에게 주어진 거네요?
A. 첫해에는 완전히 그랬어요. 그 이듬해부터 저는 일정, 프로그램, 주제를 짤 수 있었습니다. 여기 팸플릿에서 보이는 것처럼 예를 들면, 월요일에는 워킹 플레이스, 화요일엔 가드닝, 수요일에는 클레이, 목요일에는 연극, 금요일에는 영화, 토요일에는 자유 놀이로 정했어요. 저는 자유놀이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매번 뭔가 배우고, 성장하기만 바라게 되면, 아이들은 많은 법칙과 규칙에 갇히거나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아이들에게도 자기들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래서 매주 주제를 바꾸었고, 그 주의 주제에 따라 요일마다 다양한 형식을 실험했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주제는 새, 당신의 공간, 색 등이 떠오르네요. 세계정원이 만들어지는 초기 과정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아이들의 변화도 경험할 수 있었어요.
Q. 세계정원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A. 제가 저의 예술과 교육활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누군가의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열고 연결시키는 것, 그리고 부모, 가족과 연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이들의 가족을 만나러 가기도 했습니다. 사는 곳을 찾아가서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부모들은 정말 좋아했고, 저도 그들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죠.
하지만 세계정원을 운영하면서 제가 다루기 어려웠던 것이, 아이들의 부모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어요. 물론, 몇몇의 부모들은 세계정원의 일에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조직에 참여했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세계정원은 싸고 쉽게 아이들을 맡기는 곳으로 인식하고, 본인은 텔레비전을 보는 등,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반면, 저는 세계정원에서 제가 끝났다고 생각할 때까지 일했죠. 그곳은 정돈되지 않은 거대한 물질의 숲이었고, 매일 안전문제나 예술가들에 대한 초대 등 설계하고 조직하고 운영해야 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점점 그 공간의 매니저가 되어 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6년이 되던 해에 세계정원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죠.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로틀담 남쪽 지역의 성격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2005년에 세계정원을 시작할 때, 그곳의 개발 계획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굉장히 낙후된 지역이라 설마 하는 마음이었죠. 실제로 지역 자치구는 5~6년 뒤에 정말 지역에 대한 새로운 의제와 계획을 발표했지만, 그들은 개발계획을 개방하고 토론하지 않았어요. 갑작스럽게 찾아온 젠트리피케이션은 그 지역을 변화시켜, 지금 세계정원이 있었던 남쪽 지역은 로틀담에서 비싼 구역이 되었고, 거기 살던 사람들은 모두 시 외곽으로 쫓겨나갔습니다. 그리고 정말 어려운 시기를 겪었어요.
세계정원은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에게 열려있는 공간입니다. 한번은 지역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십대 아이들 무리가 찾아와, 세계정원의 분위기를 다소 험악하게 바꾸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모로코에서 온 가족들의 아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이 세계정원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셀림이라는 협업자를 초대했어요. 셀림은 그 지역의 모로코 가족들과 친분이 있었고, 특히, 아이들과 잘 소통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10번의 저녁 이벤트를 십대 아이들과 같이 만들었습니다. 같이 요리도 하고, 공연도 하는 등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죠. 저는 아이들이 진짜 변하는 걸 봤고 이 행사가 방송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지역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어요. 문제를 일으키는 십대 아이들에게 벌을 주지 않는다는 점, 그런 과정이 오히려 그들을 망치고 있다는 점 등으로 비판을 듣기도 했죠.
바트씨가 보여준 사진. 문제를 일으키는 십대들과 바트
그런 종류의 갈등은 다루기 어려웠어요. 저는 세계정원을 만든 지 6년 째에 운영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고, 그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Q. 세계정원을 그만두고 다음 행보는 무엇이었나요?
A. 저는 사회적 개입으로써의 예술 교육을 실현해보려 했지만 어려웠습니다.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자연과 연극이라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요우커라는 연출가 겸 배우와 함께 만든 앤브리스(N’Bries) 라는 프로젝트가 그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로틀담 서른 여 개의 학교에 다니는 10~11살의 어린이 2,000여 명을 브리네노트라는 작은 섬으로 매년 초대했어요. 아이들은 섬에 도착하여, 1시간 30분 동안 연극을 보고, 이후에 야생의 자연을 만나고 관찰하는 자연―땅 워크숍을 했어요.
아이들이 섬에 도착하면, 스튜어디스 복장을 하고 있는 요우커를 만나게 돼요. 비행기에서 받게 되는 교육이나, 지침을 엉뚱하게 섬에서 전하며, 요우커는 아이들에게 섬을 소개하죠. 그리고 섬에서 기대할 수 없는 일들이 아이들을 기다립니다. 스파게티 폭탄 같은 걸 만나기도 하고, 우유가 솟아오른다는 땅을 소개 받기도 합니다. 거대한 디스코볼이 굴러와 아이들을 놀라게 하고, 디스코볼에서 에일리언이 등장하여, 지구의 자연을 처음 접하는 에일리언을 연기합니다. 제가 에일리언이었죠.
연극 후에는 자연―땅 워크숍이 시작되는데, 세계정원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도구와 장치, 악기를 제공하고, 아이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자연을 관찰하고, 감각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거울을 눈 근처에 대고 일반적이지 않는 시점으로 장소를 감각한다든지, 눈을 감고 줄지어 걷는 등 새로운 방식으로 감각하고, 탐험하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제시합니다.
마음이 먼저 설정되면, 그것이 세계를 인식하는 많은 부분을 지배하게 되기 때문에, 저는 감각 자체로 되돌아가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저 스스로를 코치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아니고요. 아이들과 나의 지위에 차이를 두면, 항상 아이들과 나의 경계가 생기죠. 나도 하나의 개체로, 자연 안에서 하나의 존재로 감각하고 대면하려고 노력합니다.
2011년도 즈음부터 시작하여, 앤브리스는 지금도 계속 운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작년까지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연극 부분을 없애자고 해서, 올해부터는 예술가로 참여하지 않게 되었어요.
앤브리스에서 요우커와 바트가 연극을 보여주는 장면과 참여자들의 워크숍 장면
Q. 다른 시도들도 소개해 주실 것이 있으신가요?
A. 2010년 즈음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 예술제인 데 파라데(de Parade)를 방문했어요. 연극적 요소들이 많고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행사였죠. 전 연령이 함께 즐기는 예술제인데 입장료는 비싸요.
그런데 이런 거리예술제가 왜 로틀담 남쪽 지역에는 이루어지지 않을까 질문해봤어요. 로틀담 남쪽에 사는 사람들은 북쪽으로 건너가지 않아요. 그들은 의기소침해져 있거나 혹은 자전거가 없다든지, 이동할 수 없는 많은 이유가 있었죠. 남쪽에 사는 아이들이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저는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곳 근처 빈 광장을 이용하여, 데 파라데(de Parade) 같은 예술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해보기로 했어요.
2012년에 공연예술과 관련된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크리스틴이라는 친구와 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많은 예술가와 협업하게 되었어요. 지역 예술가들의 공연, 연극, 설치, 워크숍 등을 퉁해 그들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거리예술제를 만들었고, 이름을 텐타켈 페스티벌이라 했어요.
Q. 예술제를 할 장소, 광장 같은 것이 필요했겠네요?
A. 네. 하루동안 벌어지는 거리예술제인 텐타켈 페스티벌을 위해 사용가능한 장소나 광장을 매년 찾아 다녔어요. 놀이터는 보통 담이 있어서 예술제에 용이하지 않았고, 광장과 같이 열려있는 성격의 장소가 적합했습니다. 어떨 때는 풀이 자라 있는 들판을 이용하기도 했죠.
또한, 그 지역에 사는 뮤지션, 예술가, 배우들, 교육자들을 발굴하기 위해, 그들의 집까지 찾아가 대면하고 설득하기도 했어요. 이런 과정은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지역의 이웃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은 가능하고 저곳은 어렵고, 이런 정보들이 좀 쌓이게 되면 다음해는 좀 수월해지더라고요.
독일어 표현 중에 “아인 게잠트쿤스트베아크 ein Gesamtkunstwerk”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독일의 음악, 연극, 시 등을 하나로 한 종합예술 작품을 의미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저도 통합적으로 둥근 하나를 창조하는 예술을 항상 꿈꿔요. 이런 철학으로 세계정원과 텐타켈 페스티벌을 계획했던 거죠. 결과는 완전히 조직화되지 않도록 계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기본적인 것이 잘 설계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작품 운송 및 설치를 해야 하고, 점심을 준비하고, 예술가들에게 연락하고, 예산을 짜는 등의 계획은 필요합니다. 그런 준비 후에 생성되는 분위기, 사건들은 참여자들에 의해 즉흥적으로 발생되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텐타켈 페스티벌은 하루에 3~400명 정도 적은 인원이 참여해요. 이 예술제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서 팔아 이윤을 추구하거나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목적이 아니에요. 우리는 일상의 평범한 광장을 하루 특별한 광장으로, 상상과 꿈을 넣어 탈바꿈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상상과 꿈을 주면, 아이들의 세계가 넓어지니까요.
Q. 텐타켈 페스티벌에서 기억 남는 활동 및 행사 몇 가지를 이야기 해줄 수 있나요?
A. 초대된 예술가가 타임머신을 만들었는데, 타임머신 공간에 들어가면 다른 차원으로 가게 되죠. 한 아이가 들어갔다가 나온 뒤 어떤 경험을 했는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가 ‘나는 기대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고 혼돈스러워 하며 대답했을 때, 인상적이었어요.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이 참여하는 ‘데모 배우기’라는 워크숍도 기억에 남아요. 워크숍 초반에 참여자들은 자신이 데모를 해본 경험이 없고 못한다고, 소극적이었어요. 우리는 뭔가 종이에 적으면, 시작할 수 있다고 제안했죠. 참여자들이 큰 글자를 박스 종이에 쓰기 시작하면서, 온갖 개인적이거나 혹은 사회적인 불평, 의견, 바람 등을 내뱉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20여 명이 피켓을 만들었어요. 피켓을 들고 예술제 주변을 돌면서 행진하고, 소리내기 시작했는데, 구경하던 다른 사람들도 금세 그 행렬에 가담하는 등 많은 인원을 대동하게 되었어요. 재미있는 활동이었습니다.
Q. 텐타켈 페스티벌이 계속 진행되며 커지고 있나요?
A. 그렇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매년 새로운 장소, 광장을 찾아다닙니다. 발굴한 장소에서의 페스티벌은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하는 경우도 있죠. 예를들면, 이웃들이 우호적이지 않거나 장소적 여건이 좋지 않으면, 다음에 그 장소를 채택하지 않습니다. 매번 장소, 광장을 찾으면서 더 많은 지역과 사람들을 알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텐타켈 페스티벌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에 한 장소에 정착하지 않아요.
이번 년도에는 6개의 장소에서 6번의 텐타켈 페스티벌이 기획되어 있고, 예산편성이 끝났습니다.
Q. 세계정원은 특히 아이들을 위한 장소였어요. 텐타켈 페스티벌에서는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참여했고요. 일시적으로 만난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의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 내는지 궁금합니다.
A. 텐타켈 페스티벌은 1시부터 6시까지 5시간 동안 이루어지는데, 보통 25개의 이벤트가 동시에 일어나요. 설치작업이 보통 5점, 연극이 3~4점, 워크숍이 15개 정도 이루어집니다. 프로그램을 계획할 때부터 참여 대상을 정해서 다양하게 배치하는 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죠.
Q. 마지막 질문인데요. 사람과 연결하는 방법으로 연극이라는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A. 좋은 질문입니다. 저도 지금 변화하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고. 메타포를 사용하는 것과 왜 연극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새로운 시도도 해보고 있어요.
정말 좋은 쇼를 봤는데 그건 연극은 아니었어요. 쇼에서 관객들은 종이에 어떤 질문들을 적도록 지시받아요. 모든 질문들을 모으고, 그 질문들을 읽고 공유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반응들을 서로 보게 됩니다. 오랜 시간 수련을 통해 동양의 젠(선) 사상과 명상을 터득한 배우와 음악가가 하나의 질문 문장을 고르고, 5분 동안 즉흥적으로 질문과 관련된 사건을 벌입니다.
그 쇼를 본 후에 연극 안에서 항상 나와 관객, 세계와의 경계를 지우는 것, 내 자신을 숨기지 않는 것을 가능하도록 해야겠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엔터테인먼트를 주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만남이 이루어지고, 마음을 움직이면서, 사람들의 안쪽 공간을 볼 수 있는 방법을 더 개발하고 싶습니다. 내년에는 아마 좀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텐타켈 페스티발에서 ‘데모 배우기’ 워크숍 장면
텐타켈 페스티발에서 설치작품에 참여하는 사람들
텐타켈 페스타발에서 공연 장면
텐타켈 페스티발에서 설치작품에 참여하는 사람들
바트 반 리샤우트 (Bart Van Lieshout)
네덜란드 로틀담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배우 겸 연출가이자 교육자이다. 자신이 거주 하고 있는 로틀담 남쪽 지역의 사람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장소와 방법을 제시하는 예술 문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신원정
서울을 중심으로 사물, 매체, 상황, 그리고 리듬을 만드는 작업자이다. 물질, 비물질, 사물, 그리고 사건 등 다양한 요소들의 황당한 매핑을 통해 공간과 시간을 채우면서 전시와 공연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