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더봄
- 밝은방과 그녀
- 밝은방
- 2019.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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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더봄
밝은방과 그녀
인터뷰 참여자
_ 질문하는 사람 / 김인경
_ 답변하는 사람 / 김효나
나는 야만인이고 어린아이이다. 나는 모든 지식, 모든 교양을 몰아내고 다른 시선을 물려받는 것을 삼간다.
― 롤랑 바르트, 『밝은방』 중에서
사진에 관한 에세이 『밝은방』에서 바르트는 사진이 촉발하는 감정들을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눈다.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 스투디움이 교육받음(지식과 예절)의 고상한 취향을 드러낸다면 푼크툼은 이미지의 부분적 요소로써 보는 이를 찌르고, 틀 밖으로 나가게 하는 요소가 된다. 이미지의 통상적인 테크닉, 현실, 예술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이다. 스위스 로잔의 아르 브뤼 미술관(collection de l’Art Brut)에 방문했을 때 마주하게 된 교육받지 않은 이들의 예술작업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이끌림이 있었다. 존재함과 시간의 집적을 그대로 매개하는 본성의 이미지로써 집요한 시선과 일상의 광기를 드러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업들은 보는 내내 나를 찔렀다.
소설가 김효나가 운영하는 ‘밝은방’이라는 그룹을 소개하고자 한다.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다양한 예술작업을 시도하는 ‘밝은방’의 일과 소설을 쓰는 일은 전혀 다른 두 가지 일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오래 전부터 비영리예술단체 ‘'로사이드'’를 운영하며 정신장애, 발달장애를 가진 창작자들의 작업을 조명해왔다는 사실과 미술대학을 거쳐, 필름 사진과 실험영상 작업을 지나, 현재 소설을 쓰고 있다는 과정을 알게 되면 이 두 가지 일이 그녀의 삶 안에서 본질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Q. 소개를 부탁합니다.
A. 소설을 쓰고, ‘밝은방’을 운영하는 김효나입니다.
Q. '밝은방'은 무엇인가요?
A. 저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교육을 받았습니다. 프랑스에서 작업할 때 사회에서 멀리 떨어진, 교육을 받지 않은 정신질환자나 소수자들의 아르 브뤼Art brut 예술작업을 알게 되었는데 좋은 영감과 동시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이러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 좀 더 깊이 보고 싶었고, 이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비영리예술단체인 '로사이드'를 설립했습니다. 주로 발달장애 또는 정신장애를 가진 창작자들과 함께 작업했는데 그들의 작업이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매 순간이 기쁨과 발견이었습니다.
밝은방 워크숍 (크리킨디센터)
10년 정도 '로사이드'에서 일을 하다가, 단체 운영과 행정보다 창작에 집중하고 싶어서 만든 그룹이 ‘밝은방’입니다. '밝은방'에서는 주로 독자적인 미술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발달장애 창작자 대상의 예술워크숍을 진행하고, 그들의 고유한 이야기와 창작세계를 외부에 소개할 수 있는 전시, 출판물, 홈페이지 기획과 제작을 합니다. '밝은방'은 지원 사업은 가능한 배제하고 '밝은방'만이 전문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정확하고 합리적으로 실행하는 방향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운영자이기 전에 개인 창작자이기에 지원 사업을 할 경우 창작을 위한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갖기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Q. '밝은방'의 예술워크숍은 교육워크숍인가요?
A. 작업실의 성격이 더 크지만 교육의 부분도 있습니다. 개인 창작의 과정 중에 기술적으로 혹은 표현부분에서 가르칠 필요가 생기면 교육에 들어갑니다. 워크숍을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장에 그럴듯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워크숍이 끝난 후에도 혼자 작업을 끌어갈 수 있는 힘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조급하게 생산해내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을 주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끌어가려 합니다. 가능한 느린 속도감 속에서 창작의 기쁨과 괴로움을 발견하고 극복해내며 창작을 이어갈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그러한 태도를 고요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정돈된 말과 행동으로 전달하고, 워크숍 창작자가 현재 어떠한 과정과 흐름 속에 있음을 창작자 부모님들과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주로 질서와 무질서 사이를 왕복하며 워크숍을 이어가는 편입니다. 창작자마다 품고 있는 무질서들이 있는데 그 속에서 최소한의 질서를 찾아내고 너무 질서가 잡혀있는 창작자라면 그것을 파괴해보는 방식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밝은방 워크숍 (크리킨디센터)
예술워크숍에서 진행자인 저와 창작자 사이의 거리감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작업은 혼자인 상태에서 스스로에게 집중할 때 가장 잘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같은 공간에 모여서 작업을 하더라도 심리적 거리감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즉, 같은 공간에 있으되 멀리 있는 것, 그러나 어느 순간 코앞에 밀착한 듯이 가까워져서 필요한 자극을 주고 다시 멀리 떨어지는 것, 창작자가 온전히 혼자일 수 있는 공간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예술워크숍에서 주로 사용하는 특별한 미술재료가 있나요?
A. 일차적으로는 창작자가 평소 사용하는 미술재료나 표현방식을 따라갑니다. 창작자가 일상적으로 쓰는 재료가 이면지, 신문지, 사무용 연필이나 볼펜 같은 거라면 그것도 아주 훌륭한 드로잉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조금씩 도구에 변화를 주는데 마카와 같이 건조하고 딱딱한 도구는 창작자들이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내면에 쌓아뒀던 이미지들을 폭발적으로 풀어내도록 하는 데 유용하고, 오일크레용은 손으로 문질러 혼색하는 힘과 수고로움을 필요로 하고 그 과정이 모두 흔적으로 남는 재료이기 때문에 창작자 자신이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드로잉을 풀어가도록 제안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더 스페셜아트: 블루윙스
안산의 비영리법인단체 ‘더 스페셜아트: 블루윙스’에서 만난 이호석 창작자의 경우 초반에 마카, 색연필, 오일크레용 등 다양한 색채 재료를 사용해보다가 6개월 쯤 지나서 이 친구가 가장 단순한 재료로 가장 복잡한 대상(주로 자연물)을 그릴 때 가장 즐거워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4B연필로 아주 아주 깊은 숲을 그려보자 제안했는데, 예상보다 더 깊은, 깊고 깊은 숲을 종이 위에 펼쳐냈습니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작은 소재들과 비밀들이 여기저기 꼭꼭 숨겨진 깊은 숲. 제 기획과 제안이 창작자에게 너무도 꼭 들어맞아서 저도 놀라고 창작자 본인도 놀랐던 경험이었습니다. 이후로 이호석 창작자는 연필 연작을 이어가며 자신이 상상하는 공간들을 한 장 한 장 풀어가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그 공간들이 또 하나의 흐름이 되어 자연스럽게 다른 색채 재료들이 혼합되어 펼쳐지기도 하고….
안산 ‘더 스페셜아트: 블루윙스’에서 만난 이호석 창작자의 ‘깊고 깊은 숲’
Q. 발달장애를 가진 창작자와의 소통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A. 자폐 성향의 창작자들은 자신의 내부세계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고 저는 그 시선을 최대한 보호하고 싶은 마음과 의도가 있습니다. 그 안으로의 집중이 그들 창작의 원동력이자 내용이자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외부세계에 속하는 ‘저’는 그들 각자를 주의 깊게 살핀 뒤 개개인에 필요한 최소한의 간결한 접근만 시도하려고 합니다. 즉, 창작자들은 그들 내부에 오롯이 집중하고, 저는 외부(창작자들)에 오롯이 집중하고…. 이 집중의 시간은 저에게 자의식이 사라지는 시간인데 창작자들에게는 외부세계에 대한 불편이나 불안감, 두려움이 사라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외부에서 보면 상호교류가 없는 시선의 방향이겠지만 각자가 목적하는 집중이 원활히 이루어졌을 때 놀랍게도 깊은 교감을 나눈 듯한 충만함을 느낍니다. 창작자도 비슷한 감정과 상태라는 것은 표정이나 눈빛, 작업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Q. 부모님과의 소통에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A. 미술 공모전이나 전시회 개최를 목적으로 두는 것이 아닌, 창작자 스스로 작업을 끌어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시간이 워크숍이라는 것을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다. 예전에는 예술작업 전반에 대한 큰 이야기를 했다면 요즘은 창작자가 지금 진행 중인 과정이 어떤 것인지 정확한 언어로 설명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예술작업이라는 것이, 말로 설명해버렸을 때 사라져버리는 뭔가가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언어화하는 일에 조심스러운 편입니다.
Q. '밝은방'에서는 어떤 계기로 작가 홈페이지를 제작하게 되었나요?
A. 아르 브뤼 성격의 창작자들은 자신이 하는 활동이 예술작업인 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작업을 정리하거나 소개하는 일에 완전히 무관심한 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작업은 몇 십 년째 방안에 쌓여있기만 하거나 가족에 의해 통째로 버려지기도 합니다. '로사이드'에서 활동하는 10년 동안 그렇게 먼지 쌓인 작업들을 가져와 정리하고 셀렉션하고 데이터화하는 일을 주로 했고, 이러한 아카이빙 과정에 홈페이지 제작이 추가되어 '밝은방'에서 이어가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방 안에서만 작업하는 창작자들의 암호와도 같은 창작세계가 각 이야기와 스타일에 맞는 배열과 서사로 소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세계에 누구나 쉽게 연결될 수 있고 볼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밝은방 제작 김치형 홈페이지
Q. ‘로사이드’를 시작했던 10년 전과 비교해서 장애―예술 장의 변화를 느끼나요?
A. 장애를 가진 창작자의 부모님이 활발하게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크게 달라진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이 주체가 되어 단체를 만들고, 전시를 기획하고,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이 분야의 생태계 다양성을 위해 좋은 변화이고 당연한 변화라고도 생각합니다. 이런 변화를 통해 예술적으로도 의미 있고 재미있는 작업들을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밝은방'은 현재 공간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실제적인 공간이 필요할까요?
A. '밝은방'이잖아요. 방이 있어야 합니다. 안정적인 창작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만의 방이….
소설가 김효나보다는 '밝은방' 운영자로서 소개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반쯤은 가리워진 대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녀의 친구이자, 동료, 공동작업자로서 그녀를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그녀의 삶과 시선이 전혀 모르는 타인의 것처럼 새롭고 낯설게 다가왔다. 함께 일을 할 때 가끔 멈추고 그녀가 하는 말과 행동,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를 볼 때가 있다. 사진과 촛불, 침묵과 이사, 강아지를 차분하고도 깊게 바라보는 그녀를 바라본다. 어제는 그녀가 대학생 때부터 써왔던 수많은 실패한 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우연하고 계획적으로 '밝은방'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나누었다.
밝은 방
'밝은방'은 미술을 좋아하거나 독자적인 미술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다양한 예술작업을 시도하며 창작과 소통의 방향을 찾는 아티스트 그룹의 이름입니다.
https://brightworkroom.modoo.at
김효나
소설가, '밝은방' 운영자. 병이나 장애의 증상으로 인식되어 버려지고 금지되는 창작물과 그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2008년부터 발달장애를 가진 창작자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일을 하였다. (로사이드 설립과 운영:2008-2017, '밝은방': 2018-현재) 비정기간행물 『날 것』, 경기도미술관 <다른 그리고 특별한>(한국파트) 등 다수의 출판물과 전시를 기획하였고, 개인 작품으로 출간된 책으로는 소설집 『2인용 독백』이 있다.
김인경
예술과 신학을 공부하고 실천하려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