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봄
- 삶을 발효시키는 감각: 되어가기
- 백소민
- 2019.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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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더봄
삶을 발효시키는 감각: 되어가기
백소민
부글부글 끓는다. 코콤한 냄새가 올라온다. 혀끝에서 알싸한 알코올 기운이 올라오고, 그 끝에 깊은 곡물 향이 느껴진다면 술이 잘 익은 것이다. 나는 술을 담근다. 아직 좋은 술이 어떤 술인지 자신 있게 말하진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술맛이 어떤 맛인지,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나에게 적절한 발효 감각을 터득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생활적정랩 빼꼼(Be;come, 이하 빼꼼)은 발효를 매개로 다양한 작업들을 시도하는 공간이다. 나는 이곳에서 임재춘, 박지수 선생님과 함께 일상을 나누며 빼꼼이 위치한 수원시 서둔동의 이웃이 되어가는 중이다.
빼꼼에서 다루는 발효는 기술적이고 전통적인 발효보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효율성이나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잃어버렸던 시간과 노동의 감각을 읽어나가기 위한 행위에 가깝다. 발효 행위가 요구하는 지난함과 살림, 돌봄의 기술들은 우리 사회에서 터부시 되는 한편, 삶을 ‘삶’으로 가능케 만드는 필수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는 빼꼼에서 서로의 삶을 돌보기 위해, 혹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만나기 위해, 때로는 그냥 재밌고 맛있어서! 치즈, 맥주, 빵, 단양주, 식초 등을 만든다. 고될 때는 고되게, 만만할 때는 만만하게 빚고, 먹이고, 나누고 있다. 또 발효과정에서 시간과 환경에 따라 흐물흐물하던 것이 단단하게, 밍밍하던 것이 독한 것으로 변모되듯, 나 또한 빼꼼에서의 경험과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다른 어떤 모습으로 ‘되어 가는 중(becoming)’이다.
빼꼼에서 진행한 만만한 발효학교에서 참여자들과 함께 담근 단양주. 발효 중이다
빼꼼 활동을 하면서 작업자들이 가장 강조했던 부분은 작업과 자기 일상 간의 연결성이었다. 때문에 동네에서 자리를 잡는 과정부터 사람들을 만나고 그때의 감상이나 이야기를 기록하는 모든 작업 과정 속에서, 발효라는 행위가 작업자 개인에게는 어떤 방식의 의미를 구성하며 작업자들 각각이 동네로 가져온 질문들이 궁극적으로 나의 삶과도 맞닿아 있는가를 꾸준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작업에 접근하게 되었고, 나의 첫 작업은 아주 사적이면서도 당시 내가 당면한 우울증과 무기력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를 둘러싼 우울증과 무기력은 사회적인 의미부여 방식에 따르면 ‘청년’ 세대가 흔히 겪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반복되는 좌절감, 자기 확신의 종말 같은 것이었고, 좀 더 구체적이고 사적으로는 사랑하는 친구를 잃고 곁을 상실한 경험의 산물이기도 하였다.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만큼 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나를 보호해주던 곁의 상실로 관계에 대한 확신도 사라지면서 누군가를 돌보고 서로를 살리던, 관계적 자아마저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렇게 축축 힘없이 늘어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살리는 길은 일상성을 회복하는 것에 있었다. 애써 아침밥을 차리고, 재료들을 손의 감각으로 느끼며 천천히 나의 존재감을 확인했다. 그리고 자기혐오로부터 비롯돼 코 삐뚤어질 때까지 마시던 술을 직접 빚어보기 시작했다. 술을 빚어보니 발효가 잘 되기 위한 환경을 고려하고, 아침저녁으로 섞어주는 등의 돌봄과 들여다봄이 일과가 되었다. 이 작은 기대감과 과연 술이 될까 하는 긴가민가함으로 발효시킨 나의 첫술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물, 꿀, 이스트만 넣고 열흘을 발효시킨 벌꿀주였다. 그 간단한 것들이 만들어낸 감격스러움과 달달함을 잊을 수 없다.
벌꿀 주와 딸기청을 담갔다. 남은 딸기는 벌꿀 주에 넣어보았다.
나는 이 벌꿀주를 ‘돌봄주’라고 이름 붙였다. 벌꿀주를 맛보고 난 뒤 그냥 술은 못 먹겠더라! 나를 좀 더 돌보고, 벌꿀주를 맛본 순간 떠오른 여러 얼굴들과의 관계를 돌보기 위해 나는 다시 술을 담갔다. 가끔은 술을 만들면서 예상치 못한 결과물들을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몇 번 절망했지만, 이후에는 궁극적으로 어떠한 것이 무언가로 되어가는 과정과 내가 예상한 무언가가 되지 못한 결과물을 ‘실패’라고 명명해왔던 보편적인 삶의 태도들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식으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라는 이름을 벗기고 예상치 못한 결과 자체를 들여다보며 질문해보았다. 이를테면 식초에 가까워진 나의 술에게 ‘왜 평소보다 술에서 신맛이 강하게 날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균이 좋아하는 환경이 무엇인지, 공기 중의 온도에 따라 언제쯤 걸러주면 어떤 맛이 강해지는지 감이 생긴다. 간혹 입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실패의 상징처럼 느껴졌던 술의 신맛은 이제 나의 입맛을 돋우는 반가운 맛이 되었다.
내가 경험한 빼꼼에서의 작업들은 발효를 위해 환경과 조건을 살피는 돌봄 행위와 새로운 방식의 실험, 결과에 대한 다양한 상상으로 이어졌고, 새로운 되어감의 경험으로 숙성되었다. 발효의 감각은 확실히 삶을 발효시키는 감각과 맞닿아 있었다. 예측하기, 그 예측 빗나가기, 실수하기, 근데 그 실수가 다른 어떤 결과물이 되는 것을 마주하기, 이 알쏭달쏭함을 질문하기, 들여다보기, 감각 기르기, 익숙해지기, 익숙해진 줄 알았던 것들과 또 낯설어지기! 만만한 발효학교의 식초 수업에서도 참여자들 가운데 이러한 애매함, 긴가민가함이 많이 보였다. 그래서 오히려 정확한 비율을 질문하고 확실한 레시피를 질문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발효를 기술적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정량', 전문성은 무지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한편, 옛날 선조들이 지금의 발효기술들을 대부분 생활에서 '우연히' 발견했다는 점에서 우연한 것들이 어떻게 전문적인 영역으로 자리 잡고 ‘정량’을 지켜야 하는 불변의 법칙이 되었을까 궁금하다.
서둔동 상탑로 풍경
한편, 빼꼼이 위치하고 있는 서둔동의 사람들과의 첫 만남을 떠올린다. 그 관계의 불확실성 때문에 지역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내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같은 수원에 살고는 있지만, 여전히 나는 동네의 이방인이었기에 대화를 시도하는 것부터가 어려웠고, 대화를 시작해도 내가 가지고 있는 질문과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마주하곤 했다. 처음에는 이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들을 쉽게 만남의 실패로 귀결시키곤 했다. 하지만 ‘만남’이란 불확실성을 기반으로 내가 예측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통해 나를 충분히 변형할 수 있어야 그때 비로소 듣기가 가능해지고 관계가 시작되었다. 내가 말하는 이의 이야기를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조작, 동원하기 시작하는 순간 관계는 단절되었다. 관계가 단절된다는 것은 질문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었다.
질문이 개입되는 순간 나는 내가 설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불확실한 여러 명을 만났다. 같은 지역에 살아도 지역에 대한 감상이, 지역에서의 삶이, 지역과의 관계 맺음이 천차만별이었다. 또 우리가 리서치하고 있었던 ‘만드는 행위’가 본인 삶에 가지는 의미 또한 아주 달랐다. 건강 등의 이유로 만드는 일이 본인에게 너무나도 중요하신 분이 있는가 하면 아무 이유 없이, 원래 하던 거니까 계속하는 사람도 있었고, 살면서 질리도록 ‘원래’ 해왔던 거라 이젠 더 이상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이 과정들을 통해 나는 내가 가진 이야기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사람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로 나를 변형할 수 있는 사람이 조금은 된 것 같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나와 다른 오래된 이야기와 일상들, 공간들을 마주한다는 것은 내 삶에 아주 많은 변형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나에겐 그 ‘변형’이 곧 엄청 큰 배움을 의미했다.
내게 생활적정랩 빼꼼(Be;come)은 이름의 뜻 그대로, 동네 사람들이 빼꼼 들여다보는 관계의 공간이자 동시에 음식과 삶, 이야기들이 변모해가는 공간이다. 거창하지 않은, 본래 누구나 살며 익혀왔을 일들을 좀 더 친숙한 삶의 언어로서 예술로 대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먹고 입고 놀고 만나는 행위들은 직접 부딪혀야 우리 내면과 좀 더 가까워지게 된다. 음식이 발효되듯 삶도 발효되어가고, 나는 이곳에서 발효와 중첩된 나에게 의미 있는 행위와 시간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다.
백소민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쓰고 그리고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발효왕을 꿈꾸는 작은 문화기획자
생활적정랩 빼꼼(Be;come)
blog.naver.com/becomming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