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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오
  • 2019.06.27

26호 곁봄 

재미있는 것을 즐겁게 만들기 위한 놀이의 노하우

김경오

 

 

“재미있는 것을 즐겁게 한다.” ‘창작그룹 만들이’(이하 ‘만들이’)의 모토다. 교육에서는 “재미있는 것을 즐겁게 만든다.”를 내세운다. 스스로 주제를 찾고 기획해 간단한 기술만으로 제작하는 프로젝트 기반의 창작교육이 만들이의 주된 교육내용이다. 초등학생들과 스스로 놀이터를 디자인해 만들거나, 중학교에선 딱딱한 학교 공간을 유연하고 재미있는 곳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즐겁게 무언가를 한다는 게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다. 놀이가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는 사람에겐 놀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고민이 필요하고, 놀이를 하는 사람에겐 내가 원하는 것을 내 방식대로 즐기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내가 교육에서 주제와 커리큘럼보다 더 신경 쓰는 부분은 바로 놀이가 갖고 있는 특별한 요소들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다. 그런 방식의 만남을 통해 관계 맺고 소통하는 동안 아이들이 어떻게 나름대로 성장하는지, 어떤 작지만 확실한 변화를 만드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즉, 놀이의 기술과 놀이 제공의 기술을 이야기하려 한다. 여기서 아이들이란 아동뿐 아니라 청소년도 포함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문화예술계건 교육계건 '놀이'라는 단어가 요즘 화두다. 몇 년 전부터 놀이의 중요성과 그에 비해 열악한 국내 놀이 환경과 인식에 대한 문제점이 새로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한마디로 미래의 꿈나무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제대로 놀지 못한다는 거다.

 

“주변에 놀 거리가 널렸는데, 제대로 못 논다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요즘엔 유튜브다 뭐다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즐길 미디어 컨텐츠가 널렸을 뿐 아니라 ADHD를 진단받은 아이조차 몇 시간씩 집중할 정도로 재미있는 게임이 수두룩하다. 교육프로그램도 과거와는 다르다. 미술놀이, 과학놀이, 체육놀이, 영어놀이, 창의놀이, 오감놀이…. 놀이와 접목해 재미있게 배우는 교육프로그램이 즐비하다. 어디 그뿐인가, 동네마다, 쇼핑센터마다 키즈카페가 있고, 놀이동산에 버금가는 시설을 갖춘 거대 키즈카페도 많다. 

 

그 어느 때보다 놀이가 풍족한 시대에 우리는 왜 놀이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건 놀이처럼 생긴 것들은 많지만 진짜 놀이가 없기 때문이다. 진짜 놀이가 되기 위한 조건, 나는 이걸 놀이 영양소라고 부른다. 음식에 영양소가 담겨있듯이 놀이에도 영양소가 있다. 정크푸드는 구입하기도 편하고 입에도 착착 감긴다. 그러나 칼로리에 비해 영양소는 부족하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키즈카페나, 놀이교육 프로그램은 놀이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놀이냐 아니냐는 컨텐츠가 아니라 컨텐츠를 운영하는 방식의 문제다. 버거의 재료와 조리 방법에 따라 패스트푸드가 될 수도 있고 슬로우푸드가 될 수도 있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놀이 영양소란 뭘까? 놀이를 통해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을 통해 삶의 기술과 근력을 얻게 하는 긍정적 요소들을 말한다. 이 놀이 영양소는 어른들도 충분히 먹지 못하고 자랐거나 아니면 모두 배설해버려서 몸에 남아있질 않다. 그래서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어려워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기억은 잊은 채 어른이 된 본인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직면하는 문제들을 기준 삼아 아이들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무엇이 놀이인가요?” 

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재미있는 거요.”

많은 사람들이 놀이는 단지 즐거운 활동이라는 오해를 한다. 물론 놀이가 즐거운 활동임은 틀림없지만, 단순히 즐거움만은 아니며, 놀이가 즐거운 이유는 놀이 영양소가 충분히 담긴 결과이다. 

 

놀이의 제1영양소는 ‘쓸 데 없음’이다. 놀이는 도무지 유용하지 못해야 한다. 놀이 그 자체로는 우리 삶에 어떤 직접적인 이득도 주지 않는다. 얼음땡 한다고 재산이 느는 것도 아니고 성적이 오르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일이나 공부와는 달리 놀이 그 자체에 목적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흥미롭다. 그래서 나는 교육에서 유용하고 쓸모 있는 지식을 전달하고 기술을 숙련하는 것에 목표를 두지 않는다. 가르치기보다는 불필요하고 엉뚱하고 무의미해보이더라도 자신만의 활동을 찾아 몰두하도록 한다. 이건 어린이를 만날 때든 청소년을 만날 때든 성인을 만날 때든 마찬가지이다. 한번이라도 목적 없는 순수한 즐거움에 몰두하는 맛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활동은 특히 청소년에게 의미가 있다. 상당한 양과 난이도의 학업에 당황한 그들의 삶에서 놀이는 곧 시간낭비로 죄의식을 갖게 하는 행위기 일쑤다. 이런 두려움과 죄의식만으로 지식을 배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매우 걱정해야 할 일이다. 지금 즐거움을 느끼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아무리 준비된 미래가 펼쳐진다 해도 본인은 즐거울 수 없다. 자신의 상황이 아무리 나아져도 계속된 불안 속에서 성취를 통한 보상만을 찾게 될 것이다.

 

고등학생들과 일 년 동안 목공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서울 휘봉고등학교 <너를 위한 만들기>, 2017) 목재와 철물, 지류 등 여러 가지 공작재료를 잔뜩 준비해 두고 개인 또는 팀별로 만들기를 하는 수업이었다. 일 년 동안 내가 가르친 거라고는 전동드릴과 톱질 사용법 딱 두 개였다. 쉬운 두 가지 기술만으로 아이들은 저마다의 아이디어로 바퀴 달린 카트를 만들어 서로 태워주며 학교를 누비며 놀았다. 좀 더 전문적으로 목공을 가르치고 그에 따라 몇 가지 실용품을 회차 별로 만들어보는 수업을 했다면 분명 더 뚜렷한 결과물이 남았을 것이고 재능 있는 몇 학생들은 상당히 숙련된 기술을 습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식을 경계한 건, 모두가 흥미를 가지고 수업에 들어온 게 아니기 때문이었고 그보다 아이들이 상당한 학업 또는 규율과 통제의 스트레스에 눌려있어 외부적인 관심이 굉장히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식 하나를 더 습득하는 건 큰 의미가 없었다. 구체적이고 의무적인 활동을 지시하지 않고 낙제생이 생기지 않을 열린 주제 안에서 아이들은 부담을 덜고 서서히 자신에 대한 생각을 시작했다. 자신이 즐겨 하는 게임에 나오는 칼이라든가 캐릭터, 바퀴 달린 실내화 등 사소하고도 엉뚱한 물건들을 만들어 냈다. 매우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친구도 있었다. 굳이 톱과 공구를 두고 커터칼로 나무를 깎아 킥보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렇게 하게 두었다. 잘 만들기보다는 재료를 만지고 나름의 생각을 표현하고 나름의 방법으로 시도해보는 즐거운 시간을 지속적으로 갖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수업의 분위기는 2학기가 되면서 상당히 달라졌다. 항상 자신감이 없던 한 아이는 “잘 못해요.”, “안 해요.”를 입버릇처럼 내뱉었다. 언제나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아온 환경이 그런 성격의 아이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랬던 아이가 2학기가 되더니 만들어보고 싶은 게 생겼다며 공구를 들고 매시간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누구보다 산만하고 수업을 피하던 아이는 마지막 시간에 한마디 말로 나를 감동시켰다.

 

“쌤, 내년에도 하면 안돼요?” 

 

이보다 더 큰 성장이 있을까?

이 예는 뒤에 설명할 놀이의 두 번째 영양소와도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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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인 유용함을 주지 않아도 즐거운 경험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서울 휘봉고등학교 2017 공공진로학교 <너를 위한 만들기>)

 

놀이의 두 번째 영양소는 자발성이다. 아무리 좋은 거라도 누가 시키는 건 재미없고, 남들이 다 나쁘다 해도 내가 재미있는 건 재미있게 마련이다. 나는 수업에서 아이들이 자발성을 갖게 하는 데에 꽤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그만큼 어렵지만 대충 넘어갈 수도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들을 만날 때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어린이들은 언제나 놀이가 허용된 환경에 있기 때문에 자발성을 끌어내는데 특별한 경우의 아이를 제외하고는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청소년은 다르다. 많은 청소년들이 이미 상당한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으며 무기력을 유발하는 환경 요인을 스스로 제거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있다. 물론 모든 청소년들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하루 종일 종소리에 맞춰 행동하도록 길들여지며, 모두가 상위권을 차지할 수 없는 경쟁에서 존재가치를 인정받거나 부정당하는 교육의 구조 속에 있다는 두 가지 사실만 봐도 이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병리적이라 하는 게 맞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탐색과 표현의 욕구를 충분히 느끼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은 잘 하고 못하는 게 도저히 구분되지 않는 수업을 기획하는 것이다. 남 눈치 볼 것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구조라면 아이들은 안전함을 느낀다. 나는 수업에서 창의력을 높인다는 핑계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곤 한다. 온 벽에 낙서를 하게 하거나 물감을 뿌리거나, 공간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밖에 나가 분필로 바닥에 그림을 그린다. 그림 울렁증이 있는 아이들은 조금 뜸 들이며 다른 아이들이 제멋대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신감을 얻는다. 교실에서 진행해야 할 경우에는 주제에 따라 그림을 그리는데, 몬스터를 그리게 한다. 못생기면 못생길수록 못 그리면 못 그릴수록 성공하는 주제라면 아이들은 실패나 평가의 부담감을 덜고 저마다의 상상을 시작한다. 그림이 완성되면 다 함께 그림을 보며 우리가 얼마나 다르고 다양한 사람들인지, 다양한 사람들이어도 괜찮은지를 이야기한다. 안전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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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초등학생이 수업에서 만든 몬스터. 생물학적 형태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기도 한다.

(인천 부평 기적의 도서관 <2016 기적의 웹툰창작 아뜰리에>)

 

세 번째 영양소는 주체성이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해 행동하도록 한다. 나는 주로 두 가지를 신경 쓰는데 위험과 외면이다. 먼저 위험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아이들이 위험의 공포를 직면하며 스스로의 신체능력을 가늠해가며 집중해서 몸을 사용하는 기회를 적극 제공한다. 그렇게 하면 혹시 다치더라도 작은 부상에 그치며 작은 부상의 경험을 통해 큰 부상을 예방할 수 있다. 이것은 신체발달이 완전히 일어나지 않은 미취학아동부터 15세까지의 아이들에게는 특히 의미가 있다. 요즘 병원에 턱이 깨져서 오는 어린이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넘어질 때 손을 짚는 등의 반사적인 대처를 하지 않아 턱이 깨진다는 것이다. 리스크가 따르는 행동을 통제받는 만큼 자신의 몸을 다루는 연습이 부족해진 결과다. 

 

내가 제작 수업을 할 때 톱이나 전동드릴, 직쏘와 같은 전동공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얼마 전 초등학교 1, 2학년의 아이들과 함께 6주 동안 자신이 원하는 공간에서 원하는 재료들을 가지고 놀이터를 만드는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군포 책마을 <놀이발굴단>, 2019). 커터칼 한번 써보지 않은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전동드릴과 톱 사용법을 배워 목재를 이용해 자신들의 놀이터와 놀잇감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손가락을 섬세하게 움직여 드릴의 회전 속도를 조절하고 나사못을 비뚤게 대어 위험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집중해서 손과 몸을 사용하도록 했다. 어린 아이들 입장에서 공구 사용은 매력적이지만 한편으론 무섭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위에서 열거한 놀이 영양소인 쓸데없음과 자발성의 즐거움을 살린 수업 분위기 안에서 아이들은 매시간 전동공구를 사용하며 재미있는 놀이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위험을 대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칭찬이나 부추김은 삼가야 한다. 옳지, 잘한다, 얼른 해봐, 등의 부추김은 위험의 공포를 직면하지 못하게 한다. 결국 칭찬을 받기 위한 과잉 행동을 불러 안전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또 예측 불가능하고 회복 불가능한 위험은 어른이 제거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타고 오르려는 기물에 문제가 있거나 바닥에 뾰족한 물체가 있는지 미리 살펴주어야 한다. 이것은 스스로 극복 가능한 리스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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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에 따르는 공포를 마주할 때,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신체를 더욱 신중하고 섬세하게 사용한다.

(수원시평생학습관 <2018 모두의놀이터축제>)

 

적당한 외면도 필요하다. 외면이라고 해서 어른의 역할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사정권에 두고 아이의 행동을 곁눈질로 지켜보는 것이다. 요즘 말로 낄끼빠빠다. 낄 때 끼고 빠질 때는 빠진다.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나름의 방법으로 시도해보거나 갈등을 해결해보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싸움이 났을 때 말수가 적고 사교성이 부족한 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전동공구를 이용해 뭔가 만들어보고 싶은 듯 목재를 들고 있었다. 그러나 공구 수가 부족해 다른 아이들이 작업하는 주변만 서성이고 있었다. 이때 함께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님이 나서려고 했다. 친구와 공구를 같이 쓰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를 말리고 좀 더 지켜보도록 했다. 어른들이 보기에 그 아이는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해 도움이 많이 필요한 아이로 비춰졌다. 그래서 아이가 요청하기도 전에 도움을 주는 일이 자주 있었다. 아이는 다른 아이에게 가서 무엇을 만드는지 잠시 관찰하더니 슬쩍 손을 거들어주기 시작했다. 필요한 목재도 갖다 주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찾은 것이다. 도움을 주면서 공구를 같이 사용하거나 그 친구와 합동작품을 만들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자신 없는 대화를 통해 협상 할 필요 없는 나름대로 괜찮은 방법이었다. 상황이 잘 흘러가는 듯 했지만, 이때 엄마가 끼어들고 말았다. 엄마는 다른 아이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우려했는지 다른 것을 해보라며 아이의 관심을 돌리려고 했다. 아이로서는 자신의 의도와 맞지 않는 권유에 흥미를 잃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엄마의 섣부른 중재로 아이가 찾은 나름의 방법을 실제 세계에 검증할 기회가 사라졌을 뿐 아니라 흥미도 잃게 된 것이다.

 

아이들끼리 싸움이 났을 때도 역시 낄끼빠빠다.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끼리 싸우는 것을 아예 용납하지 않는다. 곧바로 개입해서 재판을 열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려낸 뒤 사과를 시키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 짓는다. (특히 연장자가 동생에게 억지 사과를 하게 된다)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것과 아이가 폭력성을 갖게 될까 걱정하는 어른들의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아이에게 이만큼 안 좋은 게 없다. 바로 누구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공감받지 못하는 것. 고의로 피해를 준 게 아닌데 싸움이 된 억울한 마음, 또는 처음에는 화가 난 것을 참으려 했던 노력들 말이다. 모든 일에 명확한 가해자와 피해자는 없다. 자초지종을 듣고 그 아이가 충분히 화가 났을 만하다는 것을 또는 억울하다는 것을 알아주어야 한다. 순서가 핵심이다. 혼을 내거나 억지 사과를 시키려거든 그 전에 아이의 마음을 먼저 공감해 주어야 한다. 

 

“친구한테 그런 말까지 들었으면 네가 정말 화가 났을 만해, 그렇다고 친구한테 욕을 하면 안되지.” 이런 순서이다. 공감 후 하면 안 되는 행동을 가르친다. 다짜고짜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누가 친구한테 욕하래? 얼른 사과해.” 랑은 기분이 다르다.

 

아이의 마음을 공감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으면 순조롭게 종결되길 기대했던 상황은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다 됐고 니가 잘못했네, 식의 태도는 아이의 반항심을 부르게 마련이다. “내가 뭘요?”, “얘가 먼저 그랬어!” 라며 사과는 않고 반항하는 태도를 보면 어른들의 표정은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예의를 가르친다며 더욱 강한 어조로 아이를 억누른다. “이게 어디서 어른한테 말대답이야?” 부터 “대답 똑바로 안 해?” 등 내가 너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힘의 비대칭을 보여주고 만다. 탈출구 없이 구석에 몰린 아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것. 하나뿐이다. 

 

그래서 싸움이 났을 때는 일단 지켜본다. 다소 언성이 높아지더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과정이다. 이미 화가 많이 난 상태들이라면 자기 얘기만 하느라 대화가 잘 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아도 스스로 하는 게 우선이다. 어른이 끼어드는 건 싸움이 절정이 되기 바로 전이다. 감정 고조가 70%를 넘어서면 정상적인 대화는 어렵다. 뇌의 작동이 달라져 이성판단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어른이 개입해도 된다. 잘잘못부터 가리는 것이 아니라 자초지종을 들어보고 공감의 언어를 사용해 화를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도록 한다. 화가 나 있는 아이에게 상대의 입장을 대변해서 오해를 없애려는 노력은 그다지 소용이 없고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그건 이성이 돌아왔을 때 하면 된다. 집 안에서 형제끼리 싸울 때는 각자 방으로 돌아가서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원하는 것을 하는 방법도 좋다. 

 

놀이가 언제나 재미있고 즐거운 달콤한 것만은 아니다. 건강한 식재료에 단맛만 나는 것이 아니라 씁쓸한 맛, 짭쪼롬한 맛,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오묘하고 풍부한 맛이 나듯이 아이들 스스로 상황을 맞닥뜨리고 헤쳐 나가려는 시도를 하게 하는 것도 놀이가 담고 있는 풍부한 맛이다. 

 

목적 없는 즐거움을 향유하고 배우기 전에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행동할 때 놀이 영양소는 충분히 공급된다. 영양이 풍부한 놀이는 더욱 깊고 건강한 즐거움을 준다. 그런 건강한 즐거움에 이끌려 인간은 조금씩 성장하는 게 아닐까? 

 

 

 

 

김경오

창작그룹 만들이 대표. 팝업놀이터와 창작교육을 통해 건강한 즐거움의 현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주요 활동으로는 ‘창의놀이마을강사 양성과정’, ‘군포철쭉축제 창의만발놀이터’, ‘서울숲 팝업놀이터’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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