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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은정
  • 2019.06.27

26호 곁봄 

파티가 끝난 뒤 

구은정

 

 

그동안 내가 해 온 수업들은 그 목적이나 처한 상황들 또한 가지각색이어서 수업의 구상과 재료의 운용에 대해 다각도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접근하는 태도가 필요했다. 

이 글에서는 특히 내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두 가지 수업들; 첫째는 필자가 2012년부터 참여해 온 서울시립미술관 <찾아가는 미술 감상 교실>, 두 번째는 경기도교육청에서 운영하고 있는 <경기 꿈의 대학>(2017~) 을 중심으로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한다.

 

파티를 열어 음식을 요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업에도 재료의 선택, 손질부터 재료의 조리, 그리고 재료의 처리 세 가지의 단계가 있다. 

 

 

재료의 선택과 손질

 

만약 우리가 파티음식을 준비한다면 몇 명이 올지, 어떤 목적의 파티인지, 어떤 음식을 선호하는지, 잘 소화할 수 있는지, 얼마나 머물다 갈 건지 등 이런 현실적인 조건들이 중요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업을 준비할 때는 학생의 수, 학생의 특징, 주어진 시간이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된다. 수업을 듣는 학생수가 100명이 넘어갈 경우 재료는 필수적으로 단순해야 했다. 재료를 준비하고 배분하는 과정이 단순해질수록 수업의 주제에 더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 수가 많아질수록, 그리고 주어진 수업 시간이 적을수록 수업의 재료는 효율성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서울시립미술관 수업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찾아가는 미술 감상 교실>에서 나는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 수업은 두 시간짜리이며 수업을 듣는 학생 대부분은 각기 다양한 관심을 가진 중학생들이다. 내가 이 수업의 재료에서 고민했던 부분은 ‘재료가 단순할 것’, ‘그림을 못 그려도 즐길 수 있을 것’, ‘시간 내에 소화할 수 있을 것’ 이었다. 실제로 이 수업의 재료는 ‘색도화지’, ‘8절 켄트지’, ‘필기도구와 색칠도구’ 가 전부이다.

 

반면 <경기 꿈의 대학>의 경우 수업의 목적과 운영부분에서 특이성이 있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이 수업은 학생들이 대학 강의처럼 자신의 진로에 맞게 수업을 선택하여 수강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한 학기에 2시간*8회로 구성된 이 수업은 관련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수강하고 수강인원은 최대 20명으로 소수정예로 진행된다. 

이 수업에서 나는 학생들의 자발성에 초점을 맞춰 수업을 계획했다. 내가 진행하는 ‘굿즈의 기획과 제작’이라는 수업은 학생들이 자신만의 굿즈를 만들기 위해 자발적으로 재료를 탐색하고 선택해야 한다. 나는 관련 서식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배포했고 학생들이 칸을 채워서 주면 더 나은 재료가 있는지, 더 필요한 재료는 무엇일지 그것들을 함께 검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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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채워서 준 굿즈 재료 목록표 예시 

 

이 경우, 나는 재료의 선택 부분에서 같이 고민하고 방향을 수정하는 등 최소한의 역할로 개입한다. 이렇게 수업을 구상한 이유는 재료를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책임감이나 구상의 현실화에 대한 고민 등 얻는 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료의 조리 

 

재료를 선택하고 파티의 큰 구상이 정해졌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재료를 조리할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 단계에서 나는 수업의 그림을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지만 세부적인 부분들은 확신할 수가 없다. 수업을 직접 진행하면서 더 수정해야 할 점들을 발견하고는 한다. 

대형 강의인 서울시립미술관 수업의 경우, 제일 큰 문제는 학생들의 집중도였다. 단순하고 흔한 재료이기에 쉽게 흥미를 잃기 쉬웠다. 그래서 충분히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 재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했다. 

예를 들면 재료의 사용에 있어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따라 종이 위에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찢을 수도 있고 구멍을 내고 접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해서 알려준다. 그리고 수업의 결과를 보여주는 방식도 아이들의 사진을 찍거나 짤막한 인터뷰를 하는 등의 방식을 추가적으로 사용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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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포그래피‘ 수업 재료 활용 예시

 

<경기 꿈의 대학> 수업의 경우 학생들이 스스로 재료를 선택했기에 집중도가 높기는 했지만 학생마다 진행하는 속도나 방식이 달라서 학생 개별적으로 나의 접근 방식이 달라야 했다. 어떤 경우는 재료의 사용법을 알려줘야 했고 어떤 경우는 진행하는 굿즈와 같은 재료를 쓴 작업을 찾아서 보여주는 식으로 학생들을 도왔다. 

학생들마다 원하는 꿈이나 진로에 맞춰 자신의 굿즈를 기획했다. 제품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한 학생은 자신이 직접 그린 아이디어 스케치를 바탕으로 꽃과 나비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봄에 어울리는 몽환적인 향수를 제작했다. 여러 가지 향을 직접 시향해 본 다음 원하는 향으로 향수를 만들었고 그것에 어울리는 용기를 디자인하여 제작했다. 

웹툰작가가 꿈인 한 학생은 대머리를 소재로 웹툰을 그리고 있는데 그 내용과 관련하여 머리에서 빛이 나오는 조명디자인을 하고 점토, 아크릴, 나무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조명을 제작했다. 악몽을 자주 꾸는 친구를 위해 꿈 인형을 제작한 학생도 있었고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대변해주는 캐릭터를 피규어로 제작한 친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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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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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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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몽을 대신 꿔주는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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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인형
 

재료의 처리

 

파티를 열고 나서 남은 음식물이 많으면 처리 문제로 심란해지듯이 미술수업도 마찬가지이다. 미술수업을 통해 공감능력이나 새로운 시선, 태도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면 처리 문제에 있어서도 그 방향이 일관되게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특히 대형수업을 하면서 든 생각이다. 두 시간짜리 수업을 끝내고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재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죄책감을 느끼고는 했다. 이런 점에서 비닐이나 플라스틱보다는 종이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며 혹은 완성된 작품이 개인적으로 소중하고 진짜로 사용이 가능하다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기 꿈의 대학의 <굿즈의 기획과 제작>이라는 수업은 그런 이유로 구상한 것이기도 하다. 

 

 

파티가 끝난 뒤

 

파티가 끝난 뒤 학생들이 이 수업들에서 정말 어떤 것들을 얻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과정 속에서 어떤 새로운 가능성들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알아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한 장의 그림 혹은 굿즈를 완성하며 기획력과 실천력, 책임감을 학습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새로운 관점을 경험해보는 것만으로도 이 파티는 즐거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며 이들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고민이 진지하다는 것을 느낀다. 자신의 진로와 꿈을 위해 이미 관련 자격증을 많이 딴 친구도 있었고 앞으로 무엇이 될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한 번도 수업을 빠지지 않고 와서 그림을 그리던 학생도 있었다. 각자 자신만의 방법대로 이 수업을 들었다. 그 모습들을 보며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한 인간으로서 나의 삶을 반추해보기도 했다. 

 

굿즈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은 항상 밤이었다. 

나는 어떤 재료로 어떤 것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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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은정

별의별 재료를 활용해서 설치미술도 하고 퍼포먼스도 한다. 가끔은 뭐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는데 그것 또한 삶이라 생각하며 유연함을 가져보려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