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문화 재단
  •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이미지입니다.
  • 곁봄
  • 나의 그림자는 자주 운다
  • 고윤희
  • 2019.06.27

26호 가봄 

나의 그림자는 자주 운다.

고윤희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 요 며칠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고 괜히 마음이 초조하고 그랬는데 마감날짜가 다가오고 있어서였나보다. 시작도 못했는데 이 글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8년 전 처음 연극교육을 시작한 해, 교육 공간을 꽉 채워 앉아있는 아이들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내가 이 수업을 끝마칠 수 있을까?’ 떨리고 막막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연극 하시니까 사람들 앞에서 잘 안 떠시겠어요.’

‘연극하는 선생님들은 참 활발하고 아이들하고 금방 친해지시더라구요.’

 

저 말대로라면 나는 연극도, 수업도 하면 안 될 것만 같다. 대중들에게 연극이나 연극배우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 뭘까? 사람들 앞에서 떨지도 않고 어딜 가도 목소리 크고 말도 잘하고 시키면 척척 잘해내는? 나는 연극배우이자 연극강사의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도 공연 전에는 파르르 몸이 떨리고 몇 번의 심호흡을 한 후 관객 앞에 선다. 낯선 사람들과 친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연극수업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처음에는 낯설다. 당연하지 않나? 생전 처음 보는 얼굴들인데. 연극을 해서 사람들 앞에서 안 떠는 게 아니라 떨리지만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이고, (이제는 그런 노력이 필요 없다는 걸 깨달았지만) 나의 시간을 아이들에게 맞출 뿐이다. 내향적이고 낯을 가리는 연극선생님은 없었던 걸까.. 적성이나 성격 탓으로 돌려버리기엔 난 지금도 무대에 서고 있고,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나를 꼭 안아주면서 다음 시간에 보자며 인사해준다. 그럴 때면 이런 나라도 계속 이 일을 해도 되지 않을까, 위안한다.

 

2011년도에 문화예술사회적기업에 입사하고 상근을 하며 주로 지역아동센터에서 연극수업을 했다. 수업 이외의 시간에는 지도안을 짜고 일반 회사업무를 봤다. 센터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뻗쳤고, 나는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한쪽에서는 울음소리가 한쪽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여기서 달래고 저기서 어르다 보면 준비한 수업은 하지도 못한 채 초보 연극강사에게 주어진 시간은 끝나 있었다. 말 그대로 기가 쪽쪽 빨리고 영혼이 가출하는 시간들이었다. 늘 피곤했고 습관처럼 한숨을 쉬었다.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에게 ‘연극강사’라는 존재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 정도였던 것 같다. 학교에서는 담임선생님 말 들어야지, 집에서는 부모님 말씀 들어야지, 센터에 오면 센터장님 말 들어야 하지.. 말 들어야 할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은데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연극 선생님 말까지 들어야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피곤한 일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예술이 뭐고 문화가 뭐람. 게다가 아이들에게 연극이라는 건 ‘대사 외워야 하는 거’ ‘남 앞에 서야하는 거’ ‘하기 싫은 발표’ 등 부담스러운 활동 그 자체였고, 나라는 존재는 눈치를 살피고 말도 들어야하는 어른이 한 명 더 늘어난 것뿐이었다.

 

연극은 영어로 play, 놀이야. 연극 시간에는 재밌게 놀면 돼. 우리 놀자.

 

호기롭게 말했지만 스무 명의 아이들과 게다가 초등 ‘전’ 학년이 함께 놀기란 매우 힘들었다. 연극수업을 하러 센터에 가면 담당선생님들은 센터에 다니는 아이들이 ‘다’ 참여하길 원하신다.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문화예술수업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모두 참여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땐 정말 그 말을 믿었다.) 과감하게 얘기해보면, 아이들에게 정말 꼭 듣고 싶은 수업이 있을까. ‘수업’은 많으면 많을수록 피곤하다. 센터의 아이들은 각종 프로그램과 수업에 눌려있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인원이 들어가 복작거리다보면 더 예민해지고 너그러웠던 마음도 닫혀버린다.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초등 5-6학년 아이들은 사춘기를 경험하고 또래끼리만 어울리려는 성향이 무척 강한 시기이다. 1-2학년 동생들은 그들에게 너무 어리고 게다가 같이 놀라고 하니 자존심까지 상해한다. 저학년 아이들은 항상 고학년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고 어려워한다. 한 명 한 명 얘기를 해보면 각자의 목소리가 있고 욕구가 있다. 연극으로 풀고 싶어 하는 게 느껴진다. 전체가 함께 풀어내야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꼭 하고 싶은 나의 이야기가 있다. 저학년/고학년으로라도 수업이 나눠진다면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당시 연극수업의 마무리는 항상 발표회로 끝나야 했다. 결과물 없이는 인정해주지 않았다. 발표회 준비는 서로를 지치게 했고, 짧은 시간 안에 결과물을 만들어 내려니 내가 점점 아이들을 다그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예술수업인가 회의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미안해졌다. 주 강사비도 빠듯한데 보조강사를 쓸 만한 예산은 센터에 없었고 보조강사를 쓰려면 내가 지원사업을 ‘따’ 와야만 했다. 다른 센터에 가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인원수 제한도 해보고 학년 분할도 제안 드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담당 선생님의 대답은,

 

저희는 늘 이렇게 해왔어요.

 

내가 고군분투하는 그 시간이 누군가에겐 꿀 같은 휴식이고, 한 공간에 우르르 집어넣고 방문을 닫아버리면 어떤 세계가 펼쳐지는지 관심까지 닫히는 혼자 감당해야할 시간이었다. 특히 연극은 다다익선 그 자체. 늘 이렇게 해 왔다는 얼굴도 모르는 강사들을 원망할 수도 없고.. 논의 끝에 인원이나 학년 제한을 두고 시작해도, 중간에 결원이 생기면 또 채워 넣고 그러다보면 교육대상은 ‘전체’가 되어 버린다. 하도 목을 써서 늘 목소리는 쉬어 있고 인후염을 달고 지냈다. 관행은 생각보다 완고하고, 나는 자신이 없어졌다. 계속 이럴 거라 생각하니 숨이 턱 막히고 내가 아이들과 연극수업에서 뭘 하고 싶은지 까마득해져갔다. 집에 와서 자주 울었다. 

 

3년 후, 상근직을 그만두었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여러 교육워크샵을 찾아 배우러 다녔다. 교육대상을 어른으로도 바꿔보고, 컨텐츠 개발에도 열을 올렸다. 한 문화재단의 예술가교사가 되어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 창의와 통합에 초점을 둔 예술수업을 만들어 학교로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길게 하진 못했다. 한 반에 25-30명가량 되는 아이들의 모둠별 발표가 채 끝나기도 전에 종이 울리고 부리나케 교실을 떠나야만 했다. 아이들에게도 담임선생님에게도 다음 수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예술활동에 대한 피드백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통합수업지도안은 뭔가 그럴싸해 보였지만,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는 늘 ‘시간’이 아쉬웠고, ‘인원’이라는 벽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현재 나의 유일한 고정적인 수업은 도심형 중등대안학교에서 하고 있는 연극수업이다. 전교생이 스무 명도 되지 않는 작은 학교인데, 12세부터 15세까지 열린학기까지 포함하면 19살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친구들이 있다. 첫 만남은 정부보조금사업이 선정이 되어 매칭이 이루어졌고 지원사업은 1년 만에 끝났지만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강사비를 지급해주셔서 4년째 아이들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보통 지원금사업이 끝나면 수업을 이어 하기 힘든데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개성이 넘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 일반 학교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개성 넘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아이들이 주를 이룬다. 뭐 어느 하나 쉬운 친구들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이 학교에서 연극수업을 하는 게 행복하다. 

 

수업이 끝나면 담당 선생님과 짧게는 1분, 길게는 10분정도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을 나눈다. 담당 선생님은 상주하지 않는 강사들을 배려해 아이들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생활을 귀뜸해주시고, 나는 연극시간에 일어났던 재미난 일이나 아이들의 특징을 전해드린다. 그러다보면 한 명 한 명,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고 수업시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행동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짧은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고 소중한지 모른다. 나는 그것들을 듣고 다음 수업시간에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보통 10명 남짓 되는 아이들이 참여하고 학교 측에서는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언제나 인원을 얘기해주시고, 그 인원이 참여 가능한지 먼저 물어보신다. 학기마다 진행하는 커리큘럼을 고려해 신입생과 재학생들의 비율을 맞춰보고 수업의 규모를 내가 정한다. 연극수업을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고, 아이들은 자기가 한 선택에 최선을 다한다.  

 

가장 기분 좋은 건 역시 아이들의 변화이다. 연극수업이 연속성을 가지니 아이들 스스로에게 ‘함께’ 라는 의식이 생겼다. 각자 속도가 달라도 ‘연극수업’이니까 허용되고 서로 다른 우리를 받아들인다. 이제 커리큘럼도 아이들과 함께 짠다. 서로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축하해주고 양보도 할 줄 안다. 아이들은 창작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고 나 또한 수업 따로 내 창작활동 따로 가 아니라, 평소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제안하고 조율한다. 아이들은 ‘쌤,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이번엔 무리일 것 같고요 다음에 합시다.’ 의견을 말한다. 라디오극, 오브제극, 낭독극, 마임 등 매학기 다른 커리큘럼을 짜는 게 버겁기도 하지만, 이 아이들과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재미있는 걸 하니까 힘들다는 생각이 반으로 준다. 수업 자체를 일로만 바라보지 않고 창작의 일부, 예술 활동의 바탕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 나에게도 큰 변화이다.

 

오랜 시간 함께 시간을 보내니 신뢰가 쌓이고, 신뢰가 바탕이 되니 실험도 가능해졌다. 

 

물론 이 학교를 통해 ‘규모’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만, 소수정예로 구성된 수업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정확한 인원은 모르겠지만 분명 적으면 적을수록 끈끈해질 것 같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1:1 멘티/멘토링 수업도 해보고 싶다. 지금까지의 나의 창작활동을 바탕으로 내밀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며 함께 있고 싶다. 교육이라는 말을 없애고 새로운 정의를 내릴 수 있다면 좋겠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빛을 밝히는 것이 곧 그림자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빛과 그림자가 한 몸처럼 느껴져서 좋아하는 문장이다. 그림자를 ‘만든다.’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나는 빛보다는 그림자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러하나, 빛이 있는 한 그림자를 없앨 순 없고 우리는 각자의 그림자가 있다. 나의 그림자는 물론 자주 울었지만, 모두에게 울고 있는 그림자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나를 닮은 그림자를 발굴하여 같이 놀고 싶다. 같이 놀기, 그게 연극이니까.

 

 


 

고윤희

배우/창작자/연극강사. 수업이 별로 없어 연극강사는 빼버릴까 오래 고민한 쑥스러움많은 내향적 연극인. 최근에는 좋아하는 그림책을 1인극으로 만들어 작은 공간에서 공연하는 게 좋다. 발에 땀나게 많이 다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