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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기
  • 2019.11.26

27호 넘봄 
목소리를 소유하기
김은기


 

"I talked about my secret, but we unplugged the microphone, because I don't want anyone to hear it," ("제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게 싫어서 마이크를 뽑아버렸어요")

-사라 살사비라 Sarah Salsabila, 16세

 

캐나다 동쪽 퀘벡(Québec)주에 위치한 몬트리올은 단 하나의 단어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특징을 가진 도시이다.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역사,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관광객들에게는 북미의 파리로, 캐나다인들에게는 토론토(Toronto) 다음으로 큰 도시로, 길고 지독한 추위, 쉬지 않고 내리는 겨울의 폭설이 유명한 곳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유난히 짧은 여름을 원없이 즐기기 위해 4월에서 8월까지 끊임없이 크고 작은 축제나 문화행사가 열리기 때문에 캐나다 내 문화의 도시를 뽑으라고 하면 항상 우선순위에 드는 곳이기도 하다. 
 

외부인이 아닌 몬트리올 거주자에게 이 도시의 특징을 뽑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민자의 도시라는 수식어를 이야기 할 것이다. 캐나다의 이민자 포용정책은 이민자에게 엄격한 미국과 대비, 다문화주의(Multiculralism)를 내세우며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퀘벡은 상호문화주의(Interculralism)를 바탕으로 한 폭넓은 이민 및 난민 정책으로 대표되는 곳이다. 때문에 거리에서는 프랑스 음식점보다는 아랍, 동양, 아프리카, 남미 음식점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대중교통에서도 불어, 영어, 아랍어, 스페인어, 중국어가 동시에 들릴 때가 많다.

 

비슷하지만 각자 다른 이유로, 이민을 결심하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 정착하여 소수자의 삶을 살아내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직업을 찾고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성인에게도 물론 그렇겠지만 부모의 선택이 최우선 순위가 되어 낯선 곳에서 타 문화의 언어로 새로운 또래집단과 유대관계를 다시 형성해야 하는 청소년의 경우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이민자의 자녀들은 정규교육과정에 편입하기 전 일정기간 웰컴스쿨(Welcome School)을 다녀야 한다. 이곳에서 일반 교육과정, 퀘벡의 역사와 문화, 학교 시스템 그리고 프랑스어를 익힌 뒤 일반 학교에서 공부한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청소년들이 같은 공간에서 정착지의 문화와 언어를 동시에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민 가정의 청소년들이 흔히 얻게 되는 사회적 편견과 이들이 새롭게 형성해나가는 정체성 사이에는 어떤 생각과 고민이 자리하고 있을까. 


몬트리올의 예술가 베로니카 모클레어 Veronica Mockler는 2018년 4월,  에꼴 스공데흐 잔느-망스 École scondaire Jeanne-Mance의 웰컴스쿨 학생 16명과 6주간의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작가의 목표는 이들과 ‘이상한 컨셉의 비디오 아트’ 만들기 였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레 장테흐프레테 « Les Interprètes », 우리말로 하면 통역자들 정도로 이해되는 이 프로그램은 예술가와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일을 주로 하는 비영리 예술교육 단체인 썽트흐 튀흐방 Centre Turbine 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16명의 청소년들에게 작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기’ 라는 주제를 던진다. 참가자들의 목소리는 단순히 ‘대화’의 형식일 수도 있고 ‘인터뷰’일 수도 있으며, ‘선언’이나 ‘증언’ 혹은 ‘추측’이기도 혹은 ‘침묵’의 형식을 띄기도 한다. 작업 진행의 역할을 수행하기 보다는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대로 두었다는 작가는 무엇보다 ‘이주’라는 개인의 이야기가 무의식적으로 활용되고 이로 인해 형성되는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이 굳어지는 것을 경계했다고 밝힌다. 또한 스스로의 이야기를 발화하고 처음으로 그것을 예술의 형식으로 다듬어 보는 참가자들과의 작업에서 예술가로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윤리’적인 태도라고 강조한다.

총 6주간의 기간에서 4주차가 되어서야 비로소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고 작업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프로젝트가 끝나가는 거의 마지막에서야 청소년들은 예술활동이라는 것을 했다고 느꼈다. 이 과정을 작가는 ‘탐사exploratory’라고 이야기하며 ‘표현의 플랫폼’을 형성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밝힌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목표는 아이들이 특정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민자’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순간 상대방은 이민자에 대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섞인 이야기를 듣기를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주 과정의 험난함, 정착의 고됨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타인이 정해 버리는 것을 작가는 바라지 않았고 대부분의 아이들 또한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스스로 탐험하고 창작할 수 있는 자유, 그것이 아이들이 가장 원한 것이었다며 그들은 ‘이민자 청소년(Immigrant teenagers)’이 아닌 ‘청소년 이민자(Teenagers who have immigrated)’, 이민’한’ 청소년이라고 작가는 강조한다. 


사라 살사비라 Sarah Salsabila는 2018년 1월에 가족들과 함께 몬트리올로 이민을 했다. 6주차의 프로젝트 기간 중 ‘소유’를 테마로 자신의 비밀을 카메라에 털어놓는 활동에 대해 사라 Sarah는 이렇게 말했다. 

"제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게 싫어서 마이크를 뽑아버렸어요"

 

너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고, 너의 이야기를 하라고, 소수자는 끊임없이 요구 받는다. 그러나 사회가 부여한 목소리는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 듣겠다는, 매끄럽고 위선적인 얼굴로 소수자를 시스템안에 가둔다. 이런 의미에서 목소리를 소유하는 것은 목소리를 내는 것 너머의 주체적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건 말하지 않건 혹은 마이크를 뽑아서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도록 하건, 참여자들은 각자 고유한 목소리를 소유한 존재라는 것을 프로젝트는 말한다. 6주간의 프로젝트 기간이 끝나고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소규모 상영회와 축제에 참가자들과 함께 소개 되었다. 


대상이 아닌 주체를 위한 윤리적 고민은 자연스럽게 예술적 참여와 사회운동의 경계에 걸쳐있다. 작가는 이것이 사회적 활동과 비슷하지만 결국은 참여자들에게 예술적 반영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소개하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예술활동이라고 제가 아이들과 들뢰즈(Deleuze)를 읽진 않았죠. SNS를 보고 춤을 추거나 다른 별스런 일을 했어요. 그런 것이 허용되는 것이 바로 예술활동 아니겠어요 ? "




 

김은기
몬트리올의 이민자
 

Centre Turbine 홈페이지 : centreturbine.org 

Veronica Mockler 홈페이지 : https://veronicamockl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