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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혜
  • 2019.11.26
27호 곁봄 

공공기관의 기능과 역할

이지혜


#한 사람이 중요하다.

한 번은 모 위탁 기관의 책임자와 이야기를 나눌 자리가 있었다. 공공과 민간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가는 중에 나는 ‘공공이 민간을 자발적으로 찾아서 도와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책임자는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 기관은 공공기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분명 그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공공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공적인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이 상황은 노동환경과 직제, 소속 등의 사실관계로 공적 영역에 속한 노동자가 자기 일의 사회적 역할을 망각한 경우다. 이런 경우를 들어 보편적으로 생각할 수 없지만 공적 영역에서 일하는 실무자들과 이야기할 때 종종 벽을 만난다. 본질에 다가가지 못하고 체제가 사용하는 어휘 자체와 그 정의에 대한 논쟁이 되는 경우나 반대로 말의 중요성을 간과해 사람이 행정에 전복돼 버리는 상황도 많다. 공공적인 것은 쉽지 않다. 어떤 분야에서든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가치와 사람이 산적해 있고, 그에 따른 윤리적인 관점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공공기관의 역할을 다 해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한 사람의 태도와 관점은 중요하다.


#그의 만족

대학로에서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 유독 축제의 분위기와 프로그램을 전유하는 사람이 있어 눈길이 끌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사람은 해당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의 담당자였다. 그는 자신이 담당하는 후원사업 주말 행사에 가족과 함께 참여한 것이다. 누군가는 그의 상황을 업무 외 근무 혹은 주말 근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본 그의 태도는 관계자가 아닌 완전한 향유자였다. 정책이나 제도, 구조나 형태에 귀속되어 문화예술을 향유하던 이들이 행정에서 일을 하게 되면 문화예술은 일의 소재이고 떨어뜨려 놓고 쉬어야 할 피로의 대상이 된다. 처음부터 완벽히 갖추어지는 것은 어렵다. 예술을 잘 모르는 문화예술 분야 행정가, 행정을 잘 못하는 예술가라도 뒤섞여 함께 만들어 가면서 알아 가야 한다. 예술은 만족감으로 시작한다. 그것이 토템일 수도 있고, 철학적 성취일 수도 있고, 시각적 만족일 수 있다. 예술을 지원하는 공적 영역의 구성원들도 이를 즐기고, 나의 삶으로 끌어오는, 다르게 말하면 살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이 일이 내 삶이 되는 순간을 만나야 한다.


#민간의 몫

독일 쾰른시 도심에 위치한 쿤스트하우스 카트18 Kunsthaus Kat18은 발달장애를 지닌 작가를 지원하는 창작스튜디오다. 스튜디오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소규모 도예 워크숍에서 발전되었으며 유한책임회사의 형태를 취한 예술단체가 운영하고 있다. 쾰른시는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발달장애인을 위한 예술 사업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고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한 스튜디오를 위해 지역 부동산투자회사의 후원을 이끌었다. 후원사는 오래된 양조장 건물을 인수하여 용도에 맞게 리모델링을 하였고 운영주체에게 저렴한 비용에 장기임대를 하였다. 민간이 특성화된 사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 스스로 조성하기 어려운 환경을, 시가 나서서 마련한 것이다.

이것을 공공의 분별력과 유연함의 결과로만 보기는 어렵다. 스튜디오는 공공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지역의 요소를 리서치하고 구체적인 대화를 개발해 나갔다. 일례로 스튜디오의 ‘익-수트 X-SÜD’ 프로젝트가 있다. 이는 스튜디오가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문화예술 기능과 역할을 시에 일갈하는 발언 프로젝트다. 예술가들이 모여 개발계획이 있는 구도심 지역을 투어하고 필요한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이를 통해 자발적으로 임시아트센터를 개설하였고 이는 스튜디오가 지역에서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 지 보여주었다. 이 프로젝트의 의미는 참여자들이 가진 삶의 고민을 사업으로 잘 변환해 냈다는 데 있다. 해당 단체만이 할 수 있는 특정한 언어로 삶과 지역공동체 내에서 역할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렇듯 삶의 터전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자발적으로 하고 공공과 ‘지금 반드시 해야 하는 대화’로 이끌어내는 것은 민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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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스트하우스 카트18 에서 작업 중인 작가들 (사진제공 : 이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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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스트하우스 카트18에 있는 니콜 바킨스키의 작품들
 (사진제공 : 이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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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스트하우스 카트18의 수잔 쿰펠과 스텝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
 (사진제공 : 이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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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그룹 라움라보 베를린과 쿤스트하우스 카트18이 함께한 익-수트 프로젝트의 결과물
 (사진제공 : 이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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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수트 프로젝트가 만들어낸 예술센터 모델
 (사진제공 : 이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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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스트하우스 카트18 내에 수잔 쿰펠 개인 작업 공간
 (사진제공 : 이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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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스트하우스 카트18의 수잔 쿰펠과 스텝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
 (사진제공 : 이지혜)




#공공의 역할

이처럼 민간의 자발적 시도가 마구잡이로 늘어날 때 공공은 ‘다양성’을 획득할 수 있다. 민간을 다양화하기 위해 공공이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민간이 가진 확실한 동기부여와 이를 이끌어 갈 의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민간이 독립성을 추구하지 않고 자본에 의지한 대안을 쉽게 취하려고 할 때 문화는 무너진다. 다양성을 갖추지 못한 환경에서 공공은 소시민적 태도를 벗어날 수 없다. 민간의 역할을 대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민간화된 공공은 민간을 위한 포용력을 지닐 수 없다.

공공은 민간의 몫을 대신하는 데에서 벗어나 환경을 조성하고 유지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같은 목적이나 영역에 있는 민간에게 연대를 일으키고 동료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필드를 마련해야 한다. ‘새로 유입되는’ 혹은 ‘정보가 부족한’ 이들이 특정 영역에서 시도하거나 기여하는 것들이 소멸되지 않도록 하고, 언제나 환대할 수 있는 문을 마련해야 한다. 편의를 추구하지 말자. 민간은 언제든 해체될 수 있고 소멸할 수 있다. 중요한 이슈를 가진 민간이 쉽게 해체되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는 것을 수도 없이 지켜봤다.


#환경을 만드는 공공

공공은 각개의 민간을 돕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과 본질적 가치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지원을 명목으로 하여 규제가 강해지면 부정과 헛수고가 난립하게 된다. 떨어져서 간섭도 하지 말고 지원만 하라는 게 아니다. 구별 없이 모든 자발적 시도들을 지원하라는 말도 아니다. 판단력과 분별력을 가진 공공은 상당히 중요하다. 민간에게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시적인 토대 만들기, 거점의 조직 운영하기, 잘못된 것 바로잡기, 점진적으로 논의하기, 정기적인 계획의 수정, 누구나 가능하게 하는 것 등. 민간의 자발적 시도를 이끌어 내고 안정된 사회 정서를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공공으로 나아가야 한다. 각자의 질문을 만들자. 공공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민간이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인가? 민간의 비전은 무엇인가? 공공이 해야 하는가? 민간이 해야 하는가? 어떤 민간을 지원해야 하는가? 공공이 판단력과 분별력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실천이 중요한가?




이지혜
예술이라는 하천의 조약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