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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재원
  • 2019.11.26

27호 곁봄 
내가 만약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한다면
곽재원

 

위의 질문으로 연락이 왔다. 전화를 하면서 정말 사람을 잘못 골랐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고 통화를 이어갔다. 사실 바로 거절할 수 있었다. 만약이라도 내가 문화예술교육 기획 같은 것을 할 일은 없을 것이며, 한다면 거짓일 것이 뻔하니까.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유는 아래와 같다.


난 누군가 내게 요청을 할 때에는 기본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누군가가 필요로 내게 연락을 했다면 그럴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굉장히 단순한 생각에서다. 그리고 거절하면 그 사람은 다시는 이런 부탁을 안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두 번째는 거절할 수 있어도 처음은 웬만하면 수락을 하는 편이다. 나이가 들어 연락을 하지 않게 된 사람들이 많아져서인 것 같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한번에 몰려서 뒤죽박죽 되어버려 일을 망칠 정도만 아니면 아마도 이런 기조는 유지할 거 같다. 하지만 전자의 수락은 120프로 실수였다. 물론 나를 아는 사람들은 다들 이해를 하겠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이런 이유까지도 나열해야 이해가 쉬울 거 같다.


난 40년 가까이 살면서 교육이라는 걸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학교를 안 다녔다는 말은 아니지만 사실상 안 다닌 것처럼 다녔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그랬다. 고등학교 3년 전교에서 가장 많은 꼴등을 한 주인공이었고 모든 친구들은 나를 보며 위로를 하였던 대상이었다.


시험이 끝나면 모두 내게 모여서 나의 시험지를 체크해줬다. 자기보다 낮은 상대를 보며 느끼는 우월감을 내가 줄 수 있으니 그때는 난 학교의 광대로 인기가 많았다. 물론 그때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대학은 들어갔다. 예술대학이라 실기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대학을 졸업 하진 않았고 이력서에는 고졸로 기재되어 있다.


참고로 직원이 50명 안팎인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내가 유일하게 고졸 출신이다.


근데 이런 내가 예술교육을 말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며칠 간 내게 하며, 한 달 간 글을 쓰는 걸 미뤘던 거 같다.


예술교육? 예술? 기획? 내가 그런 걸 받아서, 그런 교육을 받아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까부터 하는 질문부터 일단 해봤다. 전혀 아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예술대학에도 내게 교육다운 교육을 하지는 않았다. 학생회장을 하며 ‘예술은 없다’의 시위만 했던 기억이 있다.


교육다운 교육이라는 게 웃긴 이야기 같지만 교육을 받아서 좋은 예술을 하는 건지…. 아니면 좋은 예술이란 어떤 포맷이 정해진 방법론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스스로 걸어왔던 길에 대한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을지….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길의 방향성이었고 나의 방법이었으니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가소롭게 읽고 넘기길 간곡히 바란다.


난 분노가 많은 아이였다. 분노가 이유 없는 분노라기보다는 지금 나의 상황들과 현재 왜 이런 걸 강요받고 약자의 모습으로 익숙해져야만 하는 것일까에 대하게 어릴 때부터 곱씹으며 살아왔다.


소위 왕따 및 괴롭힘의 대상이었고, 경제적으로 친구들에 비해 가난하여 상대적 박탈감을 가지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마음들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왜 저 여자아이는 날 안 좋아할까? 내가 공부를 못해서? 아님 부모님이 쌀집을 해서? 어떻게 하면 날 좋아하고 부모님은 남들과 같은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로 발전하는 생각이 어릴 적의 나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럴 때 나는 그런 나의 내적변화에 대한 약을 처방하여만 했다. 그런 약들을 단어로 치면 기획이라는 단어로 달리 말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기획은 어떤 걸 세련되거나 유행의 흐름에 맞는 커머셜 한 행위를 구성하는 도구가 아니다.


전적으로 사회가 내게 주는 폭력에 대한 치료의 수단이다. 그런 치료를 하기 위해선 나는 공부가 필요했고 찾아야만 했고 보고 만나야만 했다. 사람들은 내게 기획자로 무엇을 해야 하나를 묻지만 사실 할 말은 없다. 사람마다 처방전이 다른 것처럼 내가 느끼는 불안과 해결은 나에 국한된 것이니 말이다.


이런 나의 치유법의 결과에 다른 분들이 공감을 한다면, 나의 치유에 조금 도움이 될 뿐이었다.


예술은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슬로건을 중학교 때 보고 이 문장을 어렴풋이 마음속에 가지고 예술 한답시고 활동을 할 때에도 언제나 입 밖으로 내뱉거나 하며 스스로를 소위 예술가의 프로파간다처럼 보이게 하려고 하였다. 


그런 부분들이 어릴 적 엄마가 날 세뇌시키던 몇 개의 문장과 같아서 언제나 나의 기준은 나의 세상이나 주변의 세상을 변화(거창한 건 아님) 하는 데 있다.


그래서 기획자로서의 첫 번째 기준은 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나와의 관계를 찾고 둘의 대립을 중재하는 것이었다.


난 축제 관련된 기획을 하고 있다. 축제를 예를 들어 이야기를 하자면 다들 느끼시겠지만 모든 축제들이 형태는 존재하고 있지만 축제의 원형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고 형태만 존재하는 것들이 일 년에도 몇 만 개이다. 무슨 말이냐면 축제의 본질과 역사로 모든 축제의 시작과 근원은 현재에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현재에 일어나는 일을 반영한 것이 축제다. 예를 들어 제사나 축하할 일들이 축제의 원형이며, 사람들은 항상 함께 축제라는 걸 만들어 왔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축제들은 무엇인가? 그런 근본들이 축제이며 본질일 것인데 그런 것들을 고민하며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축제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행사라고 명칭을 바꾸는 쪽이 좋을 것이다.


내가 위에 말한 것들이 예술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형태들이 난무한다. 예쁜 것도 난무한다. 모두가 하고 있다. 모두가 비슷하다.


우리는 지금 필요한 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현재의 고민이다. 이런 부분이 교육이 되어질 수 있을 것인가?


사회가 어떻게 나를 조정하는지, 나를 익숙하게 길들여 왔는지, 거기에 내가 어떤 위치인지를 인지하는 과정을 찾아 나서길 바란다. 모든 건 내적인 앎(inward knowing) 거기서 출발한다. 길들여져 있는 모습에서 예술을 하고 기획을 한다? 그건 사회의 아바타일 뿐이다.


만약 교육이라는 것에 대해 말해야 한다면, 나의 교육은 여기서 출발한다고 하겠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헤르만 헤세-


 

01

 

<서울인기>

2016년에 시작한 서울인기는 2019년으로 4회째를 맞이하였다.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서울인기는 이름과 같이 인기(인간의 기운)에만 중점을 맞추는 축제이며 어떤 자본의 도움도 받지 않는 자생적 축제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매년 독립적인 색깔을 가지며 유지를 하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서 매년이 소중하다. 올해 함께 참여한 작가 및 아티스트 그리고 동네의 친구들 사진이다 (사진제공 : 곽재원)
 

 

02  03

<트래쉬버스터즈>

매년 한국에서는 3만여 개의 다양한 축제가 벌어진다. 그런 축제에서 나오는 일회용품의 개수는 수백억 개다. 축제기획자로서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다들 어쩔 수 없으니까, 라는 식의 생각을 나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내가 만드는 축제에서만큼은 일회용품, 더 나아가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탄생한 게 <트래쉬버스터즈>였다. 서울인기에서 처음 선을 보였고, 작년 대비 축제에서 사용된 일회용품의 개수가 90% 이상 줄어들었다. 2018년에는 100리터 쓰레기 봉투 163개를 채울 정도의 쓰레기가 발생했었고, 거의 대부분이 일회용품이었다. 2019년에는 100리터 쓰레기 봉투가 12개가 나왔고 대부분이 참여한 셀러들의 쓰레기였다. 올해의 가장 만족한 기획이자 액션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진제공 : 곽재원) 



 

 

곽재원

연극영화를 전공하고 다양한 매체의 작업들을 하다 현재는 기획자로 전향하여 문화관련 기획을 하고 있다. 서울시 남산골 한옥마을 축제기획팀장으로 3년간 일을 하다 최근에 트래쉬버스터즈라는 축제장 일회용품 대체 솔루션 회사를 창립하여 일을 하고 있다. 민간 자생적 축제 서울인기페스티벌 총괄기획자이기도 하다. 10년 안에 300명의 메이커들과 함께 사는 마을만들기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