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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예술교육을 둘러싼 기준들
  • 최선영
  • 2019.11.26

27호 곁봄 
문화예술교육을 둘러싼 기준들
최선영


 

문화예술교육을 하나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지만 우리는 ‘어떤 기준에는 부합하지 않는’, 혹은 ‘이것은 아닌’ 것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의 상을 가지고 있다. 교육서비스는 아닌, 체험프로그램은 아닌, 대중문화는 아닌, 사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등등. 이것은 문화예술교육을 정확히 개념화하지 않더라도 다수의 동의를 얻어낼 법한 어떤 기준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기준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촘촘한 근거나 경험은 무엇일까. 문화예술교육 사업 내에서 기획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문화예술교육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때, 사실 교육서비스 같기도 하고 체험프로그램 같기도 한 문화예술교육이라 불리는 현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반대로, 사람과 삶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질문을 품고 있는 사교육 현장이나 대중문화 사례, 혹은 일상 속 창작활동에 대해서는 그 형식만을 근거로 참조의 가능성을 배제할 것인가. 


이번 호에는 ‘일반적인 문화예술교육으로 불리지 않는 현장을 이끌고 있거나 관찰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아래 그림에서의 )를 통해 과연 우리가 갖고 있는 기준들이 다양한 관점을 함의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어쩌면 ‘문화예술교육은 적어도 이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모호한 기대나 일반화된 전제가 교육의 다양한 가능성을 차단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질문이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교육으로 불리지 않는 현장이, 문화예술교육을 둘러싼 기준들(아래 그림에서의 ) 어디쯤에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01
 

 

는 어떤 기준의 밖에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기준의 안에 있기도 하다. 기존의 문화예술교육 상(想)에 약간 겹쳐지는 자리에 있기도 하고 저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의 거리는 멀기도 하고 매우 가깝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불규칙하고 불명확한 을 바라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지 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이 위치한 곳의 의미와 가능성을 상상함으로써 아래 그림과 같이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확장된 시선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02


 

그 과정에는 문화가 무엇인지, 예술이 무엇인지, 교육이 무엇인지 질긴 논의가 존재한다. 혹은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개념이나 형식이 현재 인간에게 왜 필요한지에 대한 물음도 등장한다. 그래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확장된 상상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끄는 질문의 방향성(아래 그림에서의 )이다. 어떤 방향성을 고려하는가, 그리고 그 방향성은 고민의 의지를 얼마나 발생시킬 수 있을 것인가.


 

03
 

 

사회나 문화가 변해가면 고민의 방향성과 더불어 문화예술교육의 위치도 변해갈 것이다. 그렇기에 변화는 매 순간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그 변화의 가능성이나 의미를 얼마나 바라보려고 하는지에 따라 오늘의 질문을 미래의 질문으로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생기거나 사라진다. 답보다 질문의 다양성을 모색해야 각자의 문화예술교육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것에 그야말로 재미도 생길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인 동력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지지봄봄] 27호는 질문하기의 재미를 발동시키는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이것은 논리적인 질문을 위한 목적 및 전략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문화예술교육의 정책을 설계하고 사업을 기획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이 놓치고 있는 현장에 대한 개별적 관심과 재미를 스스로 찾아나가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문화예술교육은 공공기관의 지원사업 틀로 인식되기 쉽고 비록 우리가 주로 그 안에서 현장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정책으로 호명된 개념이 아니라 바로 나의 해석과 재미다. 그것은 우리에게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순간을 지속시키지는 못해도, 지난한 고민의 끄트머리에 불쑥 찾아오는 탄성 혹은 탄식 같은 순간으로 감지되기도 한다. 그건 얼마나 비효율적이면서도 감사한 순간인가. 


그 순간들은 우리의 활동을 지속시키는데 가장 불규칙하고도 강력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고 대체 찾아올까 싶지만 그럴 때 문득 사람을 향하는 이상한 마음과 동반하여 찾아온다. 심지어 다음에 그 순간이 또 찾아올 것 같은 희망을 갖게까지 한다. 그래서 확실한 이유가 필요했던 각자의 활동은 모호한 이끌림에 의해 지속되기도 한다. 그러다 그 모호함이 확실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린 이따금 그 이유에 대해 서로의 안부를 묻듯 왜 문화예술교육을 계속 하고 있는지, 혹은 하려고 하는지 서로의 의견을 구할 뿐이다. 이번 27호의 ‘가봄’에 등장하는 기획자, 강사, 예술가간의 좌담회는 특히 그런 현장이었다. 그런데 어떤 시기의 사람들이 잠시 만나 짧은 질문에 답변을 시도해본 것 치고는 그 대화가 참 길다. 그렇게 말하고 또 말해도 부족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각자가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이유는, 정리된 문장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리가 가능할지 불확실함에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멈추지 않는 그 순간 안에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마치 예술가들의 자신이 서 있는 환경을 마주하는 과정, 혹은 창작으로 풀어보는 과정과도 닮아있기에 역시나 질문의 폭을 확장시킨다. 이번호 ‘더봄’의 이려진, 신민의 글은 그것을 상상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들이 예술가 이전에 표현의 욕구가 있는 한 개인이라고 본다면, 이러한 개개인을 특정 공간이나 상황, 관계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시선도 궁금해진다. 그것은 문화예술교육 강사의 시선과도 닮아있다. ‘곁봄’의 김인규, 서수경의 글은 이 시선을 교육 혹은 만남의 맥락에서 보여준다. 그러다 문득 그 글속에 등장하는 장소를 상상하다가, 모범적인 참여자는 아니더라도 어디에나 있을 법한 개구쟁이의 생각, 혹은 매우 개인적인 회상이 궁금해진다. 그때는 ‘곁봄’ 곽재원의 글을 읽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개개인들이 참 많을 텐데 우리가 만나는 교육현장은 다양한 참여의 기회나 방법을 상상하고 있을까 생각이 든다. ‘더봄’에 등장하는 수원시평생학습관의 유투공 사례와 ‘넘봄’의 캐나다 예술 프로젝트 사례가 그것에 작은 참조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의 확장은 개개인의 몫으로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예술교육을 주로 사업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는 공공기관이 함께 질문을 확장하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기능과 역할. 당연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정말 당연해지기를 바라며 ‘곁봄’ 이지혜의 글을 읽어본다. 그러다 ‘넘봄’에서 유선이 전하는 일본의 예술가이자 활동가 이치무라 미사코의 인터뷰를 통해 문화예술교육을 둘러싼 기준을 뛰어넘어 우리가 어디까지 인식을 확장해야만 할지 다시 고민에 빠진다.


이리저리 들썩이는 사례와 시선들이 섞이는 가운데 우리의 관심이 잠시라도 머무는 이야기, 혹은 애써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한다면 그때 감지되는 각자의 ‘기준’을 돌이켜보자. 그 기준을 형성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 각자의 예술관, 교육관, 그리고 가치관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스스로 설정한 것일까, 혹은 외부에 의한 것일까. 어디서부터가 외부에 의한 설정일까. 


이번 호의 제목이 ‘문화예술교육의 기준’이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을 둘러싼 기준들’인 이유가 그 안에 있다. 결국 스스로가, 혹은 상황이나 구조가 형성한 기준들, 그것이 형성된 맥락을 살피는 시도 안에서, 기준 밖에 위치시켰던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다. 기준들이 만들어낸 문화예술교육이라는 틀로 인해 들여다보기 어려웠던 이야기들을 들어봄으로써 우리가 현재 질문을 던지는 위치가 어디일지 함께 생각해보자. 이왕이면 더 멀리 질문을 던지고 미련하게 그 흔적을 찾으러 움직여본다면 어떨까. 질문을 튕겨버리는 벽이, 보이지 않는 기준으로 우뚝 서있을 테지만, 그 벽을 투명하게 만들거나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상상이 지금 여기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벽 앞에서 질문의 방향을 트는 대신 질문이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능청스럽거나 과감한 상상이 필요하다.


                                                                           

 

 


최선영

기획자이자 창작그룹 ‘비기자’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비기자’는 무한경쟁시대에, 각기 다른 생각들이 꾸준하게 비길 수 있는 현장을 인문학적 문화예술 활동으로 만드는 창작그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