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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곁봄
  • 동북권역 마을배움터는 힘이 세다
  • 심한기 _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센터장
  • 2020.11.09

글 제목이 다소 강렬한 듯하지만 물리적 힘이나 권력의 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북권역 마을배움터(이하 마을배움터)가 힘이 세다라는 의미는 일시적이고 파편적 요구나 기대에 흔들리지 않으려는 내적 힘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환의 시대, 뉴노멀(New normal)을 외치며 발빠른 대응과 대처를 하고 있지만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며 이미 긴 준비를 했어야 했다. 준비의 과정, 실험과 시도의 과정, 계획과 예측의 과정, 공존과 연대의 과정이 없이는 혁명도 불가능하고 전환도 쉽지 않다. 문을 연지 고작 3년도 안된 100평 남짓의 마을배움터가 힘이 센 이유는 28년의 과정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마을배움터를 위탁받은 품청소년문화공동체(이하 품)은 기존의 공교육, 문화예술교육 등과는 다른 지향과 방식을 만들어왔다. 급작스러운 변화 또는 일시적 유행 같은 흐름에 흔들리지 않으며 스스로 판단하고 행위하고 오류를 확인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러운 변화와 성장을 만들어왔다. 그 시대 또는 수요자가 요구하는 꽃을 만들어내는 과정보다는 자생적 뿌리를 내리는 시간에 힘을 쏟아왔다. 그렇게 축적해온 뿌리의 이름은 ‘환대이며, 자존과 상생이며, 연결과 공유’이다.



▪ 환대의 뿌리

    '사회의 구성원에게 어떤 자리를 주고, 그 자리의 불가침성을 확보하는 것이 곧 사회가 성립되는 조건'이다. 이는 사람의 신성함을 인정하는 이론이기도 하다. 태어나는 모든 생명에게는 어떤 자리가 주어져야 하고 그 자리를 빼앗으면 안된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회 안에 자리가 있다는 것이며 신성하다는 것은 그 자리를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다./ 김현경(『사람, 장소, 환대』)’
 

환대는 존중과 믿음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표현이며 행위이다. 특히 배움1)의 과정에서 환대는 어떤 목적이나 활동을 지탱하는 뿌리가 되어야 한다. 환대는 개별 한 사람에 대한 존중으로 시작된다. 문화활동,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교육계획서, 활동기획서 안에는 한 사람의 존재감과 존중을 기반으로 한 환대의 뿌리가 담겨져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청소년의 자리와 위치는 어떠한가?

내가 점유하고 있는 위치는 이 사회를 구성하는 다른 사람(세대)들로부터의 절대적 환대를 통해서 만들어진다. 결국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청소년들도 타인에 대한 절대적 환대를 가능하게 시도할 수 있는 내면의 경험화 또는 어설프지만 행복한 실패를 위한 실천 등이 가능하다. 우리는 보통 태어나면서 환대를 경험한다. 하지만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절대적 환대 대신 사회적 요구나 기대에 부흥해야 가능한 환대가 늘어난다. 그런 경험으로 아이들은 타자의 환대를 잃어가며 ‘조건부 환대’ 그리고 ‘자발적 복종’에 익숙해져 간다.
 

품 그리고 동북권역 마을배움터가 만나는 청소년들에게 환대는 매우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의 근거이다. 절대적 존중과 환대는 무중력 상태에 떠있는 청소년들에게 스스로 가능한 (self-so) 중력을 가지게 한다. 마을배움터의 환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집단에 묻혀버린 개인의 이름을 호명할 수 있다는 것은 소중한 존재로서의 존중과 한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을 호명하는 것과 같다. 

 



#[사진설명]  마을배움터를 찾는 청소년들이 제일 먼저 발견하는 장면은 따뜻한 환대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다. 



 

▪ 자존과 상생의 뿌리

‘상생의 조건이 자립이 아니라 자립의 조건이 상생이다.'
자립에 대한 강박을 버려야 한다. 서로에게 뿌리를 내리고 에너지를 주고받을 때 가지를 하늘 높이 뻗을 수 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날아오를 수 없다. 진정한 자유 또한 그러한 관계의 그물망 안에서 꽃을 피운다. 친밀한 관계가 사라진 자유로운 삶이란 사실 공허한 삶이 아닌가, 뿌리를 내리고 날개를 펼칠 때 내 안의 파랑새가 날아오른다. 뿌리와 날개는 함께 자란다. / 현병호(『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
 

자존(Self-respect)은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며 독립된 개별적 존재로서의 인정이다. 하지만 온전한 자존을 위해서는 함께 할 수 있는 상생의 노력들이 함께 연결되어야 한다. 청소년에게 또래집단과의 상호작용은 개별적 존재로서의 인정과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작동되어야 한다. 단순한 협동 또는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의미하는 조화(Harmony)라는 개념을 넘어서야 한다. 다른 것들과의 접촉, 갈등, 낯섦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는 배움을 실천하는 교사(강사, 이끔이)의 일상 속에서도 스며들 수 있어야 한다. ‘
 

마을배움터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다른 것들과의 접촉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우리가 먼저 스스로 그러할 수 있는 태도(self-so)를 가지려 노력한다. 문화예술교육에서 장르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은 음악이 소리로 확장되고, 소리가 시선을 만나고, 그 시선들이 또 다른 감각을 만나며 반복적인 ‘돌연변이’의 과정을 만들 수 있어야함을 의미한다. 주어지는 조건과 환경에 맞는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능한 조건과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과정을 함께 만들고 응원할 수 있는 태도의 뿌리가 자라나야 한다. 또한 평등한 제안과 근대적 강요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 역시 스스로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 사진설명 ] 2019년부터 시작한 ‘당당한 실패의 권리를 위한 십만원 프로젝트’


여전히 성적과 대학입학(취업) 그리고 팬데믹 시대의 일상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아주 작고 사소한 욕망부터 무모하거나 황당한 욕망까지 ‘비현실성의 현실성’을 시도하며 당당한 실험과 실패의 경험을 응원하고 지지함.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옷 만들기, 길고양이 공존 프로젝트, 청소년 자해현실 공유하기 프로젝트, 우리동네 골목카페 웹 홍보물 만들기 프로젝트 등의 시도와 실험들이 진행 중 임. 

 


▪ 연결과 공유의 뿌리

  “인간이 이 지구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지구가 인간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 두 부류가 너무 오랫동안 논쟁만 해온 게 아닐까? 예술이 이 단절된 관계들을 회복하고, 우리에게 공동의 미래를 되돌려줄 수 있다면?” SF 소설가인 알랭 다마지오 역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바로 관계”라고 역설한다. 동시에 “동물, 식물, 자연이 외적으로 한데 엮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전환의 시대의 키워드로 다시 부각되고 있는 ‘상호의존성, 종의 확장과 가치’는 모든 생명체는 하나의 협력체이며 상호의존성이 확인되어야 새로운 존재론이 부각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른 것들과의 접촉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상호의존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시작점은 마을이다. 이미 마을(Locality)에서의 일상과 배움이 강조되고 있으며 다양한 방식의 활동들이 시도되고 있다. 핵심은 지속가능한 연결이 되고 있는가? 이다. 실험과 시도로만 끝나지 않고 일상 속에서 그 연결점을 찾아가야 한다. 새로운 활동, 교육방식에 대한 아이디어에 갇히지 않고 똑같은 것들의 반복 속에서 새로운 연결점을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왜 배움이나 활동을 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자기질문으로 사유와 행동에 대한 즐거운 뿌리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살아가면서 스며들 수 있는 여유와 낭만이 동반되어야 한다. 바빠도 여유와 낭만은 가능하며, 걱정 속에서도 여유와 낭만의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내적동력이 있으면 가능하다.
 

마을배움터에서는 이러한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다양한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공유하는 것에 힘을 쏟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에서 급하게 대응할 수 있는 ‘꺼리’를 찾기 전에 시대의 상황을 읽어내려 하고, 나름의 해석과 판단을 하려고 하며, 그 과정을 공유하며 서로의 답을 찾아가는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 [사진설명] 마을배움 포럼 시즌2 ‘전환의 시대 – 문화에 묻는다.’
 

멈춤과 정지의 시간 속에서 대면과 비대면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또 다른 질문과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단서는 무엇인가?란 질문을 근거로 ‘전환의 시대에 왜 문화와 예술이 생략되는가?, 문화예술과 시민력, 원리와 태도로서의 문화다양성’ 등의 본질적 이야기를 공유했으며 ‘팬데믹-교육에 묻는다, 활동가에 묻는다, 청소년에게 묻는다’ 등의 주제로 이 시대의 고민과 담론을 공유해가고 있음. 
 

이러한 과정들에 대한 성과나 결론은 늘 부족하며 어떤 변화를 가능하게 했는지를 증명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맹목적인 전진, 영혼을 잃어버린 방법론, 지나친 진지함이나 가벼움을 경계하고 있기에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감지하며 살아간다. 현재의 모습이 미래는 물론 과거까지 흔들 수 있다고 한다. 알고 있는 것 보다 알아가야 할 것들에 대한 욕망이 더 크다.
 

환대, 자존과 상생, 연결과 공유의 뿌리는 아직 자라는 중이다. 

품과 마을배움터의 뿌리는 나와 세상이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 중이다. 그게 중요한 거다. 



1) 품과 마을배움터에서는 교육이란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 근대적 교육의 관성을 경계하며 상호적, 수평적, 자발적 의미를 지닌 배움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그래서 공간의 이름도 마을배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