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봄
- 리모델링의 '작은 역사' 마을인문학공동체의 십 년
- 박연옥 _문탁네트워크 회원
- 2020.11.09
1. 벽을 허물고, 배치를 바꾸고
십 년 동안 우리는 이것을 네 번쯤 했다. 컴퓨터와 복사기의 위치가 바뀌었고, 복도의 동선과 창문의 개수가 달라졌고, 심지어 주방이 통째로 사라지고 싱크대 하나 달랑 남았다. 우리가 이렇게 벽을 허물고, 배치를 바꾸고, 공간을 변화시킨 것은 우리 가운데 건축가와 목수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이들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는 이렇게 여러 번 공간을 뜯어고치지 못했을 것이다. 몇 번의 공사를 거치며, 우리는 건축가와 목수가 하는 현장용어를 대충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일머리가 좋아졌고, 좋은 마감재를 선택하는 눈썰미가 생겼다.
공간을 고칠 때마다 문탁을 드나드는 사람이 늘고 공부와 활동이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신이 나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사포질을 하고 짐을 날랐다. ‘마을인문학공동체’라는 문탁의 정체성에 대해 설명하기 쉽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또는 인생을 좀 다르게 살고 싶다는 ‘변화’의 기대를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 사이 문탁은 회원들이 당번을 정해 빈 공부방을 지키던 적막강산 같은 곳에서 수시로 리모델링 공사판이 펼쳐지는 시끌벅적한 공간으로 변화했다.
2. ‘트랜스포머’ 마을공유지 파지사유
공부하고, 회의하는 단출한 일정이 이루어지는 문탁과 달리 파지사유는 ‘마을공유지’라는 이름답게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자리잡아갔다. ‘공동체 밥상’, ‘콘서트홀’, ‘마을학교 파지스쿨’, ‘릴레이시위공작소’, 인근 지역 학생들의 ‘작품전시장’, ‘런치쇼’, ‘메인디쉬’ 등등. 우리는 어렵게 얻은 공간을 잘 이용하지 못하고 놀릴까 싶어 부지런히 활동을 만들고 네트워크를 동원했다. 간혹 사교육업체나 다단계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공간이용을 문의해 와서 당황하기도 했지만, 파지사유는 지역에서 발표회를 하고, 회의를 하기 위한 ‘명소’로 입소문이 났다. 파지사유는 모임과 행사의 성격에 따라 ‘트랜스포머’처럼 자유자재로 공간의 모습을 변신했다. 2013년 가을에 문을 연 이래로, 파지사유의 탁자와 의자는 수시로 옮겨 다녀서 나무다리는 성한 데가 없이 상처투성이이다.
문탁과 파지사유의 일들이 늘어나면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공부를 하러 왔던 누군가는 파지사유의 매니저가 되어 화장실 청소를 하고, 강좌를 들으러 왔던 누군가는 마을학교 파지스쿨의 교사가 되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온 누군가는 파지사유의 큐레이터가 되었고, 학원 강사일을 지겨워하던 누군가는 주방지기가 되기도 했다. 공유지 매니저, 공동체 주방지기, 마을교사, 청년활동가 등 우리 가운데 새로운 명함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어쩌면 마을인문학공동체의 십 년은 ‘독창적 이름 짓기’의 날들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계속 새로운 형태의 공부와 활동을 만들었고, 그 일들에는 모두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3. 더 손 볼 데가 없을까, 십시일반과 공동 운영
우리는 이렇게 ‘일취월장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일까? 눈치 챘겠지만, 그렇지 않다. 올해 우리는 다시 문탁과 파지사유의 리모델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간의 공사가 ‘확장’을 목적으로 했다면, 이번엔 ‘축소’ 또는 ‘해체’를 논의하는 수준이라 모두의 마음이 무겁다. 그간 사람이 늘어나는 즐거움에 기쁜 마음으로 공사판으로 달려갔다면, 이번에는 운영 능력의 한계와 규모의 축소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우리는 문어발식 확장을 해온 것일까?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십 년 동안 많은 단체에서 문탁을 방문했다. 도대체 정부 지원금이나 지자체의 지원사업과 무관하게 자율적으로 공동체가 운영될 수 있는 ‘원리’는 무엇인지 설명을 듣고 싶어 했다. 문탁은 매월 일정액의 회비를 내는 운영회원들의 공동 운영으로 살림살이를 꾸리고 있다. 운영회비가 지출의 전액을 감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건물 임대료와 관리비 등 기초비용을 충당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외부 지원금 없이 십 년 동안 안정적으로 공동체를 꾸려올 수 있었다. 우리는 강좌수익과 세미나회원들의 회비를 적립해 새로운 사업에 쓰기도 하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다양한 ‘기금’을 만들었다. 공동 운영과 십시일반의 원리가 우리가 대표와 물주 없이 공동체를 유지해올 수 있는 비밀이라면 비밀이다.
매월 1회 진행하는 운영회의는 우리의 유일한 의사결정단위이다. 그런데 최근 2~3년 사이 운영회의는 원활히 진행되지 못했다. 운영회의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고, 운영회원도 20여 명을 넘어서면서부터 의사소통이 어려워졌다. 운영회의는 논의보다는 보고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졌고, 결정보다는 유예되는 안건이 늘었다. 급기야 작년 12월 우리는 운영회의제도를 폐지하고, 올해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활동의 규모가 커진 양적인 측면의 한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선물’과 ‘우정’을 키워드로 ‘마을경제’와 ‘마을인문학’의 담론을 생산해왔던 우리의 공부도 더 이상의 진척 없이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는 냉철한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의 사태를 ‘해체’의 수준에서 바라보자는 의견에 대해 ‘충격’이라고 받아들이는 회원도 있고, 서로의 입장 차이가 좁히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는 진단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하는 회원도 있다. 물론 지금의 위기를 재충전과 전환의 기회로 삼자는 ‘훈훈한’ 마무리를 선호하는 회원도 있다. 지금 현재 문탁은 예측불허의 ‘감정의 공동체’이다.
4. ‘비번’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나는 지금 이 글을 연휴를 맞아 사용하는 사람이 없는 문탁 공부방에서 쓰고 있다. 집에 내 방이 없는 나에게 문탁 공부방은 급한 원고를 써야 할 때, 밤낮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전용 집필실과도 같다. 특히, 휴일의 공부방은 넓은 공간을 혼자 쓸 수 있어 답답하지 않고 집중이 잘 된다. SNS에 여러 번 사진을 올릴 정도로 이곳은 자랑하고 싶은 ‘나만의 서재’이다. 이렇게 공부방을 요긴하게 쓰고 있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문탁 공부방은 공동의 공간이며, 동시에 개인 공간으로도 이용되는 ‘동네 서재’라고 할 수 있다.
간혹 밤늦게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 할 때, 나는 파지사유에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불빛을 볼 수 있다. 누군가 파지사유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밤늦은 시간의 이용자는 대개 청년들이다. 기타를 끌어안고 곡을 만들거나, 기타 연주를 연습하고 있는 젊은이를 나는 가끔 본다. 세미나 발제문을 쓰기 위해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열어 놓고 있는 또 다른 젊은이도 나는 때때로 본다. 그들에게도 집보다는 파지사유가 더 마음 편한 공간이라,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내가 그러하듯이.
문탁과 파지사유 출입문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정확하지 않지만, 20여 명의 운영회원의 수보다는 많다. 각자 무슨 이유에서든 비밀번호를 알게 되었을 텐데, 각자 필요에 따라 잘 사용하고 있다. 문탁과 파지사유의 공간 이용의 윤리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누구든 사용할 수 있지만, 제 집처럼 청소와 문단속을 확실히 해야 한다. 빈 공간에 에어컨과 보일러가 그대로 돌아가고 있거나, 간식을 먹고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 부주의함이 때때로 말썽이 되고 있지만, 십 년 사이 우리는 꽤 많은 사람들과 암묵적으로 비밀번호와 공간 사용의 윤리를 공유하고 있다. 십 년 사이 우리는 하나의 공간을 함께 사용하고 관리할 줄 아는 사람들로 ‘변신’했다. 우리는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공유’의 감각을 몸으로 익힌 사람들이다. 시장의 원리와 사적 소유가 생존전략의 매뉴얼이 된 오늘날, 이러한 감각은 드물고 귀하다.
‘마을인문학공동체’라는 다소 낯선 개념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던 것도 이런 새로운 감각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경쟁과 생존으로 점철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반감과 정해진 공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다는 갈증이 만나, 문탁과 파지사유는 사람과 공간을 늘려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게 다르게 사는 것 맞아?’라고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그것은 ‘다르게 사는 척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반성과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라고 피로를 호소하는 무력감 사이를 오가는 탐문일 것이다.
공간과 사람이 함께 변신하고 변형되는 이곳의 이야기는 좀 더 계속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지금 모두의 골머리를 아프게 하는 리모델링이 우리의 마지막 공사일리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랑한 철학자 스피노자 ¹ 의 말처럼 우리는 힘들지만 드물고 귀한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십 년 전과는 달라진 우리의 변화를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다음 행보를 떼어야 할 것이다. 길고양이처럼 밤이면 파지사유에 모여드는 청년들에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물어야 할지 모른다. “얘들아! 같이 이야기해보자. 듣기 좋은 뻔한 소리 말고.”
▼ <공유지는 살아 움직인다>(19호, 2016) 다시보기(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