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봄
- <남양주 호평중학교> 협동으로 연결된 배움의 공동체의 혁신은 위기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 강원재 _영등포문화재단 대표이사
- 2020.11.09
호평중학교로 가는 길, 먼저 학교 담벼락이 눈에 띄었다. 예전 키스해링의 그래피티를 카피한 벽화로 채워졌던 담벼락이 3학년 학생들이 직접 도안한 그림과 글로 바뀌어 있다. 그동안 학교 공간을 변화시키는 미술수업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구나 싶어 안심이 되었다. 기존의 것을 지우고 새로 그리는 행위는 이유를 필요로 하고, 그 이유를 학생들과 함께 찾는 과정은 배움이 되고, 그 과정을 통해 생겨난 장소의 아름다움은 학습자들로 하여금 그 장소와 배움 자체를 더욱 사랑하도록 만들게 한다. 코로나19로 학년별 교차 등교가 이뤄지는 상황이다 보니 평일임에도 학교는 한산하게 느껴졌다. 방문 당일은 2학년의 등교수업 날이고, 나머지 학년은 온라인 수업을 한다고 했다. 현관에서 방역수칙에 따라 방문 등록, 체온 측정, 그리고 손 세정을 한 후 교장실로 안내받아 들어갔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학교의 풍경이지 싶다. 2019년 3월 1일 4년 임기의 3대 공모제 교장으로 부임한 정현숙 교장은 인터뷰에서 2009년 호평중학교가 혁신학교를 시작하던 때부터 현재까지를 생생히 들려주셨다. 2013년 이승곤 당시 미술교사를 만났을 때는 주로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통해 변화시켜가는 학교 공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면, 혁신학교 준비기부터 지역사회 연대협력 업무를 담당했었다는 정현숙 교장은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지역사회로 열린 배움의 공동체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2006년 당시 학교 근처로 이사를 와서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이기도 했던 정현숙 선생은 자녀가 동네에서 잘 자랄 수 있기를 바랐지만, 본인이 교사임에도 학교에서는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는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 시험을 공고히 하고 있었고, 교사들은 학교의 교육 불가능성에 절망하며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학교를 떠나려는 분들이 많았다 한다. 다행히 2009년 부임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배움의 공동체 기반의 혁신학교 정책은 뜻이 같은 교사들에게 도전해 볼 만한 계기가 되었고, 당시 학부모진로상담연수회를 운영하는 학생진로부장이었던 정현숙 선생은 학부모들과 함께 혁신학교 정책에 별 관심이 없던 교장을 설득하였고, 혁신학교가 되면 한 학급을 42명에서 29명까지 줄여 편성할 수 있다는 지침으로는 반대하던 동료 교사들도 설득할 수 있었다 한다. 혁신학교 호평중학교의 여정은 2009년 동시 지정된 남한산초등학교, 고양 덕양중학교와 함께 이렇게 출발하였다. 혁신학교로 지정된 후 곧바로 시작한 일은 배움의 공동체 기반의 혁신학교의 철학과 원리를 공유하는 교사 아카데미와 학부모 아카데미였다. 지역사회연대부를 설치하고 정현숙 선생은 초대 부장 직책을 맡아 학부모가 참여하는 마을 기반의 학교만들기에 나섰다. 지역의 생협과의 협력으로 학생들의 건강을 위한 먹거리 교육과 텃밭 수업을 시작했고, 지금도 ‘호평푸르네’라는 이름의 동아리로 이어지고 있는 주말 아버지 학교를 열었다.
2011년부터는 교사들의 공개수업과 수업연구모임을 정례화했다. 혁신학교 이전에 진행되던 공개수업이 복잡한 규정과 절차에 맞춰 교사의 교수법과 수업콘텐츠를 공유하는 행사였다면, 배움의 공동체 철학에 기반한 공개수업은 학생들의 배움 그 자체에 주목하는 교사들의 연구모임이다. 배움의 공동체 공개수업은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 배우고, 서로의 배움을 어떻게 도와주는지에 대해 수업 참관 동료 교사들이 발견하고 공유하면, 해당 교사는 이를 자기 수업에 반영하는 원리로 운영된다. 이러한 공개수업은 혁신학교 간의 수업연구교류모임으로도 이어져, 지금도 매년 경기도 혁신학교 교사들의 공동 워크숍을 통해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려움도 있는데 교사 순환 근무제는 배움의 공동체 기반 혁신학교의 지속 발전 운영에 걸림돌이 된다고 한다. 호평중학교도 올해만 해도 6명의 교사가 새로 부임해왔는데, 이분들은 배움의 공동체 운영 방식에 익숙하지 않아 수업을 여는 것에 대한 부담과 교사연구모임 활동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한다. 배움의 공동체 교사연구모임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실천적 배움의 활동인데 모임 구성원의 변화는 어느 정도 도달한 연구모임의 성취를 이전으로 되돌이키기 때문일 것이다. 교사 순환 근무를 통해 개별교사나 단위학교의 성취를 우리 교육 전반의 문화로 확산하면서 느리더라도 다 같이 조금씩 진일보한다는 측면에서는 유의미하다고 하더라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학생들을 매일같이 만나면서 한 명 한 명의 삶과 배움의 자리를 살펴 지금 필요한 교육을 해야 하는 교사에게 이 상황은 합리적으로 비춰질 리 없다.
“학교는 일 년 내내 학생들이 오고 가는 곳이며, 사계절을 만나고 감수성을 기르는 곳이기에……. 학교의 환경을 바꾸는 것은 또 다른 교육이다”(이승곤 호평중학교 전임교장, 『학교 공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가고 싶은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 창비교육, 2019)
인터뷰를 마치고 정현숙 교장과 학교를 둘러보았다.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일상화되면서 호평중학교의 올해 학교공간 혁신프로젝트는 멈췄다. 지난 해 통합교과수업을 통해 학생들 주도로 변화시킨 장소들이 곳곳에 눈에 들어온다. 호평중학교 수업의 특성 중 하나는 ‘실천하는 배움’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술, 기술, 사회 등의 수업들을 통합해 운영한다. 학생들이 참여해 학교 곳곳에 만들었다는 특별한 공간들은 교과 통합 연계 수업을 통해 생겨났으며, 입학식이나 졸업식, 스승의 날, 학생의 날, 세월호 기억의 날, 축제 등 학교 의례 행사 또한 수업을 통해 기획되고 실행된다. 사회수업에서 공간재생이나 행사기획의 컨셉을 정하고, 자치시간을 활용해 참조할 만한 공간이나 행사를 직접 찾아가 보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며, 미술시간에는 건축가나 디자이너와 함께 아이디어를 실제 공간에 적용시키고, 축제기획단이나 졸업준비위원회 등의 동아리 활동과 학생회 활동을 통해서는 행사를 실행하는 방식으로 학습이 진행된다. 지난해 3학년 학생회가 주도한 축제의 컨셉이 ‘NO플라스틱’이었는데, 사회수업에서 컨셉을 정하고, 1~2학년들 대상의 설명회를 가지고, 이러한 컨셉을 반영한 여러 행사를 모아 기획 추진되었다. 이처럼 수업과 자치활동을 포함한 학습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공간의 주인이 되고, 의례의 주체가 되어간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지속해 가기에 기존 학교행정시스템은 한계가 있다. 특히 공간혁신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소방, 전기, 상하수도, 보일러 등 법적 규정과 제약을 학생들이나 교사로서는 알기 어렵기에, 학교 시설의 건축 디자인과 조성 및 재생을 위한 행정 에이전시나 컨설턴트가 절실한 상황이다. 최근 학교공간혁신을 위한 공모사업이 교육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기간이 촉박하고 계획을 수립해서 지원해야 하는 구조라 통합교과의 원리에 따라 학생들과 교사들이 주도적으로 계획하여 추진할 여지가 없고, 행정적 부담도 클 것 같아 지원 신청하지 않는다 한다.
“학생들과 간담회에서 한 학생이 하늘을 보며 쉬고 싶다고 말하더라. 그래서 이 공간이 생겨났다”
옥상에 조성된 텃밭에서 정현숙 교장이 말했다. 안전의 위험이 있어 전자잠금장치를 두고 수업시간에만 활용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란다. 파놉티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잘 알려진 공리주의 법학자이자 철학자 제레미 벤덤이 고안하고 제안했다고 알려진 통제와 감시체제로서의 ‘파놉티콘’은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상의 모든 공장, 교도소, 군대, 학교, 병원 시설의 구조를 설명하는 유일한 원리였다. 요즘도 교도소 같은 감시와 병원 같은 관리로, 군대 같은 훈련을 통해 21세기의 인재를 공장처럼 찍어내는 곳이 학교라는 진단들이 심심찮게 나오는 이유는 물리적인 시설 구조의 유사성이 그 시설의 작동원리나 사용자들의 문화와 의식의 유사성으로 여전히 강제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 지식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고 시민들의 의식은 높아져 교사들이 독점해온 지식과 정보를 학생들과 부모들은 인터넷이나 학원에서 더 빨리 습득하고 있고, 체벌은 사라졌지만 보이지 않는 학교폭력은 여전하며, 진학에 도움이 안 되는 예술과 체육은 등한시되는 학교는 전인으로서의 성장을 돕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학교가 지탱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 외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 자신들의 자녀를 온종일 돌보며 살 수 없는 부모들의 피로감과 부모들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국가나 시장의 불안이었을 수도 있음을 코로나19는 드러내 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이 자기 배움의 주인이 되고 서로의 배움을 위해 협력하는 수업과 공간, 그리고 의례가 있고, 그러한 실천적 학습을 지지하고 협력하는 장소로 학교와 지역을 일궈가는 호평중학교의 실험과 혁신은 코로나가 이후로도 오래도록 이어질 시대에 필요한 학교의 존재 이유와 학습의 방식을 분명 선취하고 있다.
- 참고 -
▼「담장 없는 지역사회‘배움의 공동체’, ‘호평중학교」 2013 지지봄봄 다시보기(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