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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창고 숨> 예술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시간, 사람과 공간을 잇다
  • 김연주 _문화공간 양 기획자
  • 2021.01.14






해안마을은 앞으로 바다가 보이고 뒤로는 한라산이 보이는 경치가 좋은 마을이다. 그래서 최근 몇 년 동안 제주도 이주 열풍이 불 때 많은 외지인이 해안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조상 대대로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과 새로 이사를 온 사람 사이에 틈이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지낸 세월이 길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틈을 예술로 채워 서로를 연결해주는 단체가 해안마을에 있다. 바로 상상창고 숨이다. 상상창고 숨이 운영하는 살림공작소에 들어서자 공간 안이 동네 아이들의 꿈과 마을 어르신들의 추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삶 닮다 예술, 예술 닮다 삶”


“제주어로 ‘닮다’라는 말이 참 좋았어요. ‘닮아지다’, ‘담아내다’는 뜻을 모두 품고 있어서요. 그래서 ‘삶 닮다 예술, 예술 닮다 삶’이라는 슬로건을 만들게 되었어요.”

상상창고 숨의 박진희 대표에게 단체 소개를 부탁하자 슬로건 이야기부터 해 주었다. 슬로건을 설명에 따라 풀어보니 삶을 닮아가는 예술, 삶을 담아내는 예술, 예술을 닮아가는 삶, 예술을 담아내는 삶이라는 의미다. 상상창고 숨의 정체성이 잘 표현된 슬로건이었다. 박진희 대표는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며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그래서 작업실을 지키기보다 사회에서 발언하기 위해 숨 조형연구소를 만들어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러한 예술 실천 속에서 예술교육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지금의 상상창고 숨으로 활동이 이어졌다.
 

“학부 때부터 ‘왜 이렇게 예술은 어려울까, 문턱이 낮았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삶 속으로 파고드는 예술은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삶의 공간으로 찾아가는 작업을 하게 되었고, 공공미술에 대한 욕구가 강해진 거죠.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하는 과정에서 예술 교육이 공동체를 끌어내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예술교육에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공동체와의 소통, 시민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예술교육이기에 상상창고 숨의 예술교육은 관계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상상창고 숨의 철학은 사람과 사람을 잇고, 사람과 시간을 잇고, 사람과 공간 그러니까 공동체를 잇는 관계의 감각을 회복시키는 예술교육이에요. 상상창고 숨이 마을 초입 그리고 해안초등학교와 마을회관 앞에 있다 보니까 지역의 터 무늬를 알아가는 것에 대해서 소홀히 할 수 없었고 그와 관련된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예술교육 외에도 살림공작소 안에서는 엄마들의 업사이클링 모임, 영상 동아리, 바느질 동아리 등의 활동이 이어지고 마당에서는 마을 장터가 열리는데, 그 이유는 상상창고 숨이 관계를 만들어가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살림공작소”


가축방역센터가 사용하던 공간이 살림공작소로 바뀌기까지에는 동네 엄마들의 도움이 있었다. 상상창고 숨이 해안초등학교 아이들의 놀이터로 시작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 아이들이 해안초등학교에 다녀서 그 아래 창고를 빌려서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친구를 데려오는 거예요. 놀러 오면 미술 재료를 꺼내서 놀게 되었고, 그러면서 아이들이 상상창고 숨이라고 작업실 공간의 이름을 지어줬어요. 아이들이 작업실에 놀러 오니까 자연스럽게 아이의 엄마가 오게 되면서 모임도 만들어졌어요.”
 

젠트리피케이션은 해안마을에서도 피할 수 없었다. 작업실의 임대료를 두 배로 올려달라고 했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놀이터가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동네 엄마들이 나섰다. 가축방역센터와의 임대계약이 끝난 마을체험관을 상상창고 숨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마을에 요청한 것이다. 이렇게 동네 엄마들의 지지를 받으며 상상창고 숨은 지금의 장소로 이사를 왔고, 본격적으로 예술교육을 시작했다. 이러한 활동을 지켜봐 온 마을은 상상창고 숨이 임대했던 마을체험관을 2017년에 상상창고 숨에 위탁했고, 그때부터 공간 이름을 모임의 이름이기도 한 살림공작소라 짓고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예술가들도 함께하게 되었다.
 

“처음에 임대해서 들어오긴 했지만, 이 공간을 마을의 공공재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교육 프로그램을 고민하게 되었죠.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으로 살림공작소를 열게 되었어요. 살림은 ‘살리다’의 명사형으로 의미 있는 단어라고 생각하고 있고, 살려내는 활동을 함께하고자 살림공작소라고 했어요.”

살림공작소도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작업실에서 상상창고 숨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모였던 엄마들은 지속적인 참여와 응원을 보내어 주었다. 오랜 만남은 무엇인가를 하도록 고민하게 했고, 마침내 예술교육으로 성장했다. 자연스럽고 자발적이며 지속적인 모임으로 살림공작소가 탄생했다. 상상창고 숨의 철학이 현실에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살림공작소는 버려지는 것을 다시 쓸모 있게 바꿔보자는 의견을 나누면서 ‘쓸모없음의 쓸모’를 철학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엄마들이 모여서 업사이클에 대해 고민했고, 그래서 안 입는 옷, 안 쓰는 실을 모아서 손놀이를 시작했어요. 때로는 바닷가 쓰레기며 유목을 모아오기도 했어요.

저는 손놀이가 삶의 기술에서 기본이 된다고 생각해요. 수공예처럼 살림공작소는 삶의 최소 기술을 예술로 익혀가는 활동이에요.”
 

무엇인가 계속 만들다 보니 살림공작소 마당에 한 달에 한 번 장이 서게 되었다. 장이 서니 사람이 모였다. 살림공작소에서 예술은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다. 주변을 살펴 돌보아야 하는 것, 해결해야 하는 것을 함께 고민하고, 자신의 손으로 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워 실천해가는 과정이다. 여러 사람의 고민과 실천을 바탕으로 한 예술 활동이기에 손놀이라고 하지만 의미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일상의 공간에서 경험하는 비일상”


상상창고 숨은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예술교육도 운영해왔다. 처음 시작한 프로그램은 ‘토요일은 소울하다!’이다. 해안초등학교 학생의 반 정도가 제주도로 이주해 온 학생이었다. 그래서 제주도 문화를 함께 알아가기 위해 청소년 문화잡지를 만들었다.
 

“처음에 ‘우리가 만들어보는 문화잡지’라고 해서 ‘토요일은 소울하다!’라는 제목으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시작했어요. 소울하다는 소울Soul, 영혼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소울疏鬱, ‘답답함을 풀어헤치다’라는 한자어이기도 해요. 사춘기 아이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토요일에 답답함을 풀어헤칠 거야’라는 의미였던 거죠.”
 

문화잡지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은 마을을 답사하고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러면서 마을의 역사, 문화, 사람을 알아갔다. 작년에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하는 ‘소풍공작단’을 진행하여 제주 신화 속 음식으로 제주 문화를 탐구했다. 제주 신화와 제주 음식 속에는 척박한 제주 땅에서 살아온 삶의 지혜가 담겨있었다.

마을 어르신도 살림공작소로 모시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마을회관으로 찾아갔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려웠다고 한다. 조심스럽게 할머니들의 손 마사지를 해드리거나, 놀잇감을 만드는 손놀이 등을 하며 마을 어르신들과 관계를 만들어갔고, 어느덧 3년째 어르신들과 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걸리버맵 프로그램으로 어르신들의 삶의 터에 관해 먼저 이야기했어요. 어르신들의 기억 속 마을을 기록해 가는 활동이었어요, 그러면서 어르신들이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여자 어르신들은 음식이더라고요. 그래서 이주해 온 젊은 엄마들이 어르신들에게 제주 음식을 배우며 제주 문화를 알아가자고 했어요. 빙떡, 쉰다리, 자리물회 등을 만들어가며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시간을 가졌어요.”
 

음식을 배우는 과정 중에 뚜럼브라더스의 도움으로 어르신들의 빙떡 이야기가 제주어 노래로 만들어졌고, 올해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있다. 또한 구전되던 해안자랑가도 악보를 갖게 되었다.
 

“1930년대 서당 훈장님이 해안마을을 보고 너무 감탄해서 써주신 해안자랑가가 마을지에 실려 있어요. 입으로만 전해져 내려왔는데 다행히 그 노래를 기억하고 계신 마지막 어르신이 계셔서 노래하시는 걸 촬영할 수 있었어요. 뚜럼브라더스가 악보를 만들고 편곡을 해서 마을의 노래로 불리기 위해 이 곡 또한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지고 있어요.”
 

서로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는 선생과 학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있다. 상상창고 숨은 이렇듯 차근차근 관계를 만들고 예술로 마을 사람들의 삶을 채워간다. 음식, 유적지, 유물을 그려주신 어르신들의 그림은 해안마을만의 이야기가 있는 달력이 되어 사람들의 삶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달력으로 인해 마을의 역사, 어르신의 추억 등이 나눠지고 전해진다. 박진희 대표는 일상의 공간에서 경험하는 비일상을 꿈꾸지만 쉽지 않다고 했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이들과 마을사람들의 삶은 이미 비일상 즉 예술로 채워져 있었다.

 

“관계의 감각을 회복하자”


올해는 사춘기 학생들이 나와 주변 환경을 탐색하고 예술로 놀아보는 ‘감감술래 작산아이’와 마을 어르신이 마을 기록에 참여하는 ‘마을예술학당’을 진행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활동이 쉽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활동의 어려움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관계의 감각이 둔감해지는 것이었다.

“예술 교육으로 관계의 감각을 키워가거나, 나로부터 시작했지만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를 바라볼 줄 아는 감수성을 키우거나, 함께 사는 따뜻한 시선을 만들어가는 예술 놀이에 집중해 왔는데 만나지 못하니까 너무 막막하고 실은 두려웠어요. 일방적인 교육이 될까 봐요. 저희는 예술 교육을 학습의 개념으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마을회관이 먼저 문을 닫았다. 그래도 상상창고 숨은 관계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폭낭 아래 모인 어르신을 찾아가 노래도 같이 부르고 이야기도 나눴다.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며 아이들도 최소한의 인원으로 만났다. 박진희 대표는 친구들을 만나지 못해 열여섯 시간 동안이나 게임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먹먹했다고 했다.
 

“아이들이 비대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손안의 세상에서만 놀지 않고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자신을 환기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좀 많이 하게 됐죠.”

‘감감술래 작산아이’는 이런 문제를 풀어보고자 자신을 성찰해볼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과정들로 진행이 되었고 실내 활동보다 야외 활동을 많이 했다. 상상창고 숨은 지금을 만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상상창고 숨은 자신의 철학을 잊지 않았다. 비대면 온라인 콘텐츠가 대안으로 여겨지는 시기이지만 상상창고 숨은 여전히 관계, 소통, 공동체를 살리고자 한다.
 

“‘아이들이 비대면이라고 해서 꼭 못 만나야 하느냐? 그러기보다는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 필요하다. 안부를 묻는 관계의 지속,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최소 공동체, 이런 환경을 어른들이 세심하게 찾아줄 필요가 있다.’ 이런 걸 올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 같아요.”

 


상상창고 숨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예술교육을 이어갈지 계획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진행하면서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규칙과 공간이 너무 많았다고 반성을 했어요. 아이들 스스로가 원하는 공간을 탐색하거나 만들어가면서 함께 규칙을 만들어가도록 장을 열어주어야 해요. 무엇을 가르치기보다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서로의 온도를 알아가는 것이 필요해요. 아이들이 좀 더 자유롭게 상상을 펼칠 수 있도록 그런 토양을 마련해가면 좋겠어요. 공동체 감각을 키워가는 활동은 긴 호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더디어도 마을 곁에 서서 이야기를 차근차근 그려가야겠죠. 마을의 기억박물관은 꼭 물리적 공간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삶의 터 무늬를 함께 알아가는 과정 자체로 예술교육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상상창고 숨의 예술교육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이다. 그래서 지역에 스며들어 있다. 아이와 노인이, 선주민과 이주민이 만나 추억을 공유하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아 함께 움직이게 만든다. 관계의 감각을 회복해가고, 아이들의 상상으로 채워지는 해안마을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