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곁봄
- [건축가 시점] 마주보는 배려가 필요해요, “구해줘, 학교!”
- 박수정 _건축가, 건축공방 공동대표
- 202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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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학교
학교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갈 아이들의 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배움이 있는 곳에 학교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했을 때, 교육과 연관된 공간까지 학교라는 테마로 넓혀서 생각할 수 있다. 경기문화재단과 함께한 문화예술교육 공간을 만드는 ‘구해줘! 학교’ 작업을 통해 코로나19 이후 변화된 일상적 공간의 학교만이 아니라, 문화예술이 학교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건축과 예술을 공유하고, 건축과 예술을 논하여 보는 기회를 갖길 바란다.
학교의 기원
교육기관인 학교의 기원은 뜻밖에도 '체육관'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군인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독일에서는 아직도 학교를 뜻하는 말로 '김나지움(Gymnasium)'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체육활동과 더불어 이론적인 수업 과정이 추가적으로 만들어지면서, 일반인들에게까지 확대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학교라는 공간은 공공 교육의 정착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한 사회의 이념과 방향성을 가르치고, 이를 배우는 곳으로 학교는 그 사회의 가치관을 잘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학교
한국의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공공 교육을 밀접하게 받으며 성장한다. 의무교육기간인 초등학교, 중학교 9년뿐만이 아니라 5세 이전에는 어린이집, 5세~7세는 유치원, 8세부터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는 과정을 거친다. 거의 2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아이들은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에 대한 내용을 위해 우리의 학교 건축은 어떤 역사와 모습을 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려 한다.
서당(단원풍속도첩)
오래된 형태의 학교는 서당(글방)의 형태였으며, 향교와 서원들도 다수 존재한다. 1700년도 후반에 서당을 그린 김홍도의 유명한 풍속화를 들여다보면 건축이나 공간이 자세하게 표현되기보다는 서당의 분위기가 표현된 것을 알 수 있다. 책상에 앉아있는 훈장을 중심으로 학생들은 바닥에 둘러 앉아 글공부를 위해 책을 펼치고 있다. 조금 더 공간이 실질적으로 남아 있는 몇몇 건축물들 중에 안동에 위치한 병산서원(1572년)이 있다. 이곳은 자연에 열린 건축공간으로 설계되었으며, 공부하는 장소와 휴식의 공간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를 가진다. 근대 학교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근대 건축의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로 인해 재료와 구성 방식에 있어서 단순히 필요한 공간이 생겨났다. 교실, 복도와 운동장으로 이루어진 학교는 교육을 ‘받는’ 일방적인 공간이 되면서,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또한 예전의 서원처럼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이 아닌 도시 지역에 더 많은 학교가 지어지게 되면서 학교 내에 자연적인 요소들은 더욱 고려되지 못했다.
건축 그리고 문화예술로 보는 학교
학교 건축은 최근까지, 변화하는 교육과정의 생각을 담는 곳으로 가지 못하고 과도기적인 건축으로 남아 있다. 우리가 배우는 공간을 떠올려보면 여전히 지식 혹은 무언가를 ‘받는’ 구조가 연상된다. 개인적인 몰입에 최적화하기 위해, 독서실과 학원의 창들은 외부와 단절된 폐쇄적인 형태를 가진다. 주고받는 공간이 아니라 전달받는 공간들이다. 오래된 학교를 레노베이션 할 때면 학교 외벽에 색과 패턴을 넣으려는 시도들이 있지만, 이 또한 건축적인 공간에 관한 것은 아니다. 건축설계는 단지 외관에 관한 것이 아니며, 건축을 통해 변화될 수 있는 소통의 현저한 차이를 의미한다. 공간을 통해, 이용자들이 만들어내는 결과와 더 자유로운 생각의 재료가 되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지를 고민하는 부분이 중요하다. 이 지점에서 건축과 문화예술의 지점이 맞닿아 있다. 함께 고민할 주제가 있는 것이다.
너에게 학교란
경기도에 위치한 2곳의 고등학교(동두천 중앙고와 구리 갈매고)에서 진행 중인 문화예술 프로젝트 ‘구해줘! 학교’는 학교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학교 내 인테리어를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학교란 무엇이며, 우리 사회에서 학교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프로젝트이다. 심희준, 박수정 건축가는 이 프로젝트가 예쁜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 아닌, 학교의 근본적인 변화를 만드는 생각이 될 것을 기대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추상적인 질문을 했다. 너에게 학교란? 가장 많은 답변으로 아이들의 30%가 공부라고 답했고, 또 다른 30%가 친구라고 했다. 네가 원하는 학교는?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학교였다. 여러 의견 중에는 학교 시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가장 많은 의견이 구체적인 공간바꾸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추상적인 소통의 이야기인 점에 우리의 관심이 닿았다.
어떤 학교가 될까
아이들과 두 번의 비대면 워크샵, 한 번의 대면 워크샵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학교 공간을 세밀하게 들여다보았다.
동두천 중앙고는 1975년에 개교한 학교로 건물이 교실과 복도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일자형 학교이다. 비교적 좁은 복도 때문에 아이들은 많은 시간을 교실에서 보내고 있었다. 층과 층을 연결하는 비교적 넓은 계단 공간이 있었고, 본관과 새로 지은 건물을 연결하는 구름다리는 급식 시간이면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한 번 이상은 지나치는 공간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구리 갈매고는 2016년에 개교한 학교로 2020년에 첫 졸업생이 배출된 신생 학교이며, 넓은 복도와 유휴 공간이 많은 ㅁ자 구조이다. 새로운 학교에 적용된 넓은 복도 공간이 많지만, 복도의 기능 이외에는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고 있었다. 자율교과수업방식으로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 교실을 이동해야 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두 곳의 학교는 물리적인 환경이 다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유사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원했던 민주적인, 수평적인 소통의 부재가 그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적이고 배려 받는 공간은 어떤 것일까? 학교 설계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아이들이 서로 마주치는 공간이 어떻게 디자인되는가 이다. 복도가 이동하는 동선의 역할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학교의 일상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한 고등학교는 학교 폭력이 많은 학교였다. 아이들을 관찰해 본 건축가는 수업이 끝나고 좁은 복도로 아이들이 나와서 서로 부딪히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학교 폭력이 발생함을 발견한다. 이를 위해 수업이 끝나고 복도가 아닌 중정으로 아이들이 나올 수 있도록 학교 공간을 바꾸면서 학교 폭력이 사라진 학교가 되었다. 본질을 바라보고, 고민하여 가치있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교실과 교실을 연결하는 복도 공간은 이동하는 동선이면서, 만나는 동선이 되기도 한다. 우리 한옥의 툇마루처럼 내부와 외부가 만나고, 개인의 공간이면서 공동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학교 교육의 핵심인 소통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이 플랫폼은 직접 참여해서 각자가 얻고자 하는 가치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환경을 뜻한다.
앉다. 대화하다. 쉬다.
학교 플랫폼의 설계는 단순하고 강한 개념으로 진행되었다. 아이들이 앉고, 대화하고, 쉴 수 있는 작업이다. 한 개의 유닛은 기본적으로 앉기에 적합한 높이와 넓이로 만들어진다. 이 유닛들이 서로 붙여져서 긴 플랫폼이 되기도 하고, 짧은 플랫폼이 되기도 한다. 이 플랫폼들은 아이들의 필요에 따라 공용 공간에 배치될 것이다.
우리는 플랫폼의 물성에 대한 고민도 이어가고 있다. 어느 순간에 플라스틱으로 된 책상과 의자에 아이들이 앉아 있다. 벽은 시트지, 바닥은 고무 타일, 창문과 문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교육 공간에서 본질적인 자연의 재료를 찾기가 힘들다. 시간의 경과 속에 가치가 쌓이는 재료로 작업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플랫폼에는 나무, 철과 돌이 사용되었다.
학교의 풍경
아이들과 학교가 플랫폼의 사용을 어떻게 하는가는 작업의 또 다른 연장선상에 있는 부분이다. 어떤 변화가 생겨날까? 학교는 어떤 풍경을 가지게 될까? 작은 변화가 만들어 낼 유연하지만, 기초적인 작업은 공간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이다. 공간이 가지는 힘은 크다.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라는 책에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사람이 환경에 반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것이다. 학교 공간을 만드는 우리의 접근 방식은 공간의 사용자들이 사회의 상호 존중과 나의 개성을 조화롭게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문화예술과 건축에서 민주주의라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기도 했다. 이것은 사회의 공통된 가치를 지니지만, 결코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공간의 표현도 표준화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상황과 아이들이 배워나가는 특별한 과정을 담을 수 있는 것이 된다면 좋을 것이다. 문화예술의 힘은 생각에서 나온다. 질문하고, 고민하고, 시도해보는 일련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작은 파장이 교육 공간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학교 공간은 미래세대에게 남겨줄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유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