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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미희 _나누미촉각연구소 소장
  • 2021.01.14


“이 책을 봐도 될까요?”
나누미촉각연구소 한쪽에 자리한 나무 선반 위에는 촉각도서가 비치되어 있다. 촉각도서를 직접 보고 싶은 사람들은 이곳을 방문해 정보를 얻어 가는데, 선뜻 책을 꺼내지 못하고 던지는 질문에 “네 만져보셔도 돼요.”라고 답을 한다. 촉각도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제작된, 손끝으로 만져서 보는 그림책으로 2010년부터 지금까지 나와 동행하고 있다.

 

[보다] 기본의미로 ‘눈으로 인식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시각을 잃은 사람들은 볼 수가 없다. 즉, 눈으로 인식할 수가 없다. 우리의 뇌 중 후두엽은 눈을 통해 전달되는 시각 정보 처리 담당을 하고 있는데, 과거에 인지했던 것을 기억할 때면 이 시각영역의 뉴런이 활동해 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볼 수 없어 뇌로 전달되는 정보가 없다고 하여 그 기능을 상실하지는 않는다. 다만 시각영역의 뉴런들이 주변의 코, 입, 귀, 피부에서 전달되는 감각에 반응하게 되어 새롭게 변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뇌의 가소성이라 하는데, 인간의 뇌는 고정되지 않고 변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감각 중 하나가 상실되면 다른 감각이 발달하는 것은 이와 같은 원리 때문이다. 시각을 잃게 되면 청각이나 촉각 등이 발달하게 되고, 특히 눈을 대신해 사물을 손으로 만져 인지하기 때문에 손끝을 눈이라고 이야기한다. [보다]는 앞서 제시한 기본의미 외에 ‘생각하거나 평가하다, 나타나거나 발생하다, 살피거나 헤아리다’ 등 20여 개의 다양한 사전적 의미가 있다. 이렇듯 꼭 눈으로 인식하지 않더라도 본다고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만 사실 제대로 보지 못한다.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던 헬렌 켈러도 사람들은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는데 뜻밖에도 아주 조금밖에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다른 감각으로 볼 때 세상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은 출근길에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길 위에서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자 힘쓰지 않는다. 길 위에 그것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지도 않는다. 큰 이슈가 생기지 않는 한 오로지 목적지만을 바라보고 전진할 뿐이다. 숲속에 있는 헬렌의 집에 친구가 놀러 왔다. 친구와 함께 한 시간 동안 산책한 후 헬렌은 친구에게 무엇을 보았냐고 물었지만, 친구는 별거 없었다고 말한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자신도 단순한 촉감만으로 흥미로운 것을 몇 백 가지나 찾아낼 수 있는데 어찌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까 하며 사람들의 눈은 게으르기 짝이 없다고 말한다. 미국의 철학자 존 버로스(John Burroughs)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싶으면 어제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라”고 말했고, 현대소설의 창시자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참된 발견은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고 말했다. 마르셀처럼 같은 것을 보아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존처럼 보고 또다시 바라보는 것, 헬렌처럼 다른 감각으로 바라보는 것. 이것이 내가 촉각도서를 제작하고 연구할 때 끊임없이 되새기는 부분이다.
 

2010년 다큐멘터리 감독님이 촉각도서를 나에게 건네주셨다. 일본에서 촉각도서 관련 촬영이 있었는데, 한 단체에서 만든 도서를 선물 받았다는 것이다. 처음 받아 본 촉각도서는 섬세하고 무척 흥미로웠다. 그러나 보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시각을 찾는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손으로 만져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 경험하기로 했다. 광주광역시 한 시설을 찾아 봉사하며 다양한 친구를 만났고, 자원 활동가 어머니들과 함께 촉각도서를 만들었다. 촉각도서를 만들면서 시행착오도 겪고 그들과 만남도 길지 않았지만, 이를 통해 나의 작업은 전환점을 맞게 된다. 좀 더 다양한 시각(감각)으로 각 지역 어머니들과 나누미촉각연구소를 결성하고 본격적으로 촉각 관련 연구와 작업이 이루어졌다. 촉각 연구는 촉각도서 뿐만 아니라 교육, 워크숍, 놀이교구, 촉지도, 촉각벽, 촉각색 등 다양한 관점에서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