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봄
- 지식은 동사다 - 느티나무 도서관이 지식을 대하는 태도
- 박영숙 _느티나무도서관 관장
- 2021.02.20
최근 몇 년 사이, 문화예술교육에서 기록과 아카이브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두드러졌다. ‘과정 중심’이라는, 그리고 그런 과정으로서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다양하게 정의하고 부여할 수 있는 의미의 ‘결과’를 촉진하는 트랙으로서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의미는 알겠는데, 실제로 기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수의 실천가들은 어려움을 느낀다. 사진, 영상 등의 형식으로, 단순히 어떤 가시적인 장면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대체 기록과 아카이브는 무엇이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것일까.
이 주제와 관련하여, 이미 민간의, 공공도서관으로서 지역사회에서 도서관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고 실천하며 그 자체로서 하나의 대안으로 언급되고 있는 느티나무도서관에 대화를 청했다. 그들의 고민과 성장, 실천의 과정에 기록과 아카이브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중요한 사건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이야기를 따라가 보았다.(편집자 주)
지지봄봄(이하 지봄) : 얼마 전 느티나무 도서관의 아카이브 담당자인 최진선 선생님께서 쓰신 ‘민간 아카이브 구축과 관리 : 느티나무도서관의 사례’라는 논문을 보았다. 보통 다른 도서관에서는 책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으로 다뤄지던데 이 논문을 봐도 그렇고, 제가 접한 느티나무도서관은 책과 지식을 다루는 방식이 매우 달라 보였다. 아마 도서관의 역할, 기능에 대한 고민 속에서 그 다름이 형성되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이 되는데, 2000년 개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궁금하다
어떤 도서관을 만들겠다고 시작한 게 아니었다.
박영숙 : 2000년, 20년 전인데 처음에는 도서관이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도서관을 만들고자 했던 것은 아니고. ‘느티나무 뭐뭐..’였다. 마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느티나무 같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공간을 어떻게 꾸밀까, 어떻게 만들까? 하다가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이면 좋겠고, 누구나 올 수 있으면 좋겠다, 수강료 내고 등록을 해야 되거나 멤버십을 가져야 되거나 그게 아니라. 그냥 올 수 있으면 좋겠다.’였다. 그렇게 시작했다. 그래서 온갖 법을 찾다가, 공무원이 도서관 규모를 갖추지 않은 작은 규모의 도서시설인 문고를 알려주어, 정체성은 문고지만 명칭의 앞에 ‘어린이’를 붙어 도서관을 열었다.
아파트 상가 지하였는데, 당시 그 지역은 난개발의 대명사로 명성을 얻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의 삶의 가치,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부동산 가격과 수능점수 같은 것으로 삶의 가격이 매겨지는... 그런 곳에서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땅값, 아파트값 이런 것들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밀려 들어왔고, 또 그것 때문에 밀려 나갔다. 그리고 많은 부모들, 주로 엄마들이 아이를 한 5살 정도만 되어도, 차에 태우고 분당의 좋은 유치원, 학원을 찾아다녔다. 아이들이 동네 놀이터에 없었다. 그래서 그러지 말고 우리가 자신을 좀 찾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래서 초기부터 존엄함과 자유가 중요한 화두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책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도 추천도서, 필독도서가 이런 게 아니라, 툭툭 말을 거는 책들이 있으면 좋겠고. 그것을 아무나, 누구나 와서 이용할 수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틀림없이 올 거다, 그래서 서로 만나게 될 것이다, 이런 바람으로 처음 만들었다.
지금은 전국에 5, 6천개의 작은도서관이 있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공공도서관도 지금은 1,190개지만 1999년에는 전국에 400여 개 정도였다. 전국에 읍면동이 3,500개쯤 되는데, 내가 사는 동에 도서관이 있으면 그 사람은 10% 정도의 확률인 행운을 얻는 것이다. 하다 보니, 도서관이 가진 가능성이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21세기가 막 시작되지 않았나. 나에게 21세기 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 다양성이었다. 우리가 포스트모던을 많이 얘기하던 시기였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태어나 죽을 때까지 어느 정도의 틀이 정해져서 그대로 따라가야 하고, 그래서 내가 그 기준에서 잘하고 못하다는 평가를 했는데. 그렇게 얘기할 수 없는, 절대 진리라는 게 없는. 그렇다면 도서관이 너무 필요한 것이지 않나. 사람들이 각자 자기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탐색하고 탐사하고. 교과서에서 배운 걸로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구나, 백과사전이 다 답을 줄 수 없는 시대가 됐구나. 그럼 도서관의 시대네?!(웃음)
책을 통해서 굉장히 다양한 세상을 만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도서관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현실 공공도서관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도서관 운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도서관 학교도 열어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공공도서관 사서)이 매개자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삶에서 공공성과 일상성이라는 것을 공부하고 고민하는 활동을 했다.
스스로 공공도서관이 되기로 마음먹다.
그러나 공공도서관은 스며들 수 없는 벽이 존재했다. 설득력은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너희는 조그만 문고라서 그래. 공공도서관은 달라. 그렇게 운영될 수 있는 게 아니야!’라는. 그러다 우리도 공공도서관으로 가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아주 현실적인 욕구가 있었다. 아이들은 7년 정도가 한 세대더라. 우리가 7년 정도 되니까 막 태어났던 애들이 학교를 가고, 학교 끝나고 뛰어오던 애들이 중고등 학생이 되고, 중고등학생 교복 입고 다니던 애들은 어른이 되어서 어디론가 가버리고.. 동네에서 애들을 만나면 “오랜만이다. 왜 도서관에 안 와. 놀러 와.” 이러면, “에이... 제가 애도 아니고.” 이런 분위기?(웃음) 그리고 사실 독서회 모임도 13개로, 요일과 시간을 아무리 쪼개도 공간이 부족했다. 같은 시간에 그 좁은 지하에 세 모둠씩 모여 있었다. 여기서 독서회, 저기서는 책 빌리고, 저쪽에서는 자원 활동가들 회의... 이런 상황이라서 거의 터지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2007년에 여기(기존 문고 자리에서 차로 10분 거리)로 건물을 지어 이사를 왔다. 도서관 문화를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지식의 동사화
2019년부터는 20주년을 맞이해서 앞으로 느티나무도서관이 무엇을 할까, 우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 이런 것들을 고민하다가. 집중적으로 생각한 것이 지식을 동사화하는 일이다. 지식이라는 것이 책이나 글로 다 담길 수 없다. 그것으로만 배울 수 없다. 지식은 근육을 움직이고 감각이 작동해야 되는 것이다. 그동안 지식이라고 하면 책에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 것, 점 하나까지도 틀리면 안 될 것 같은 굉장히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지식이 훨씬 더 동사가 되면 좋겠다. 좋은 점이 동사는 진행형으로 만들 수 있잖나. 진행형이니까 달라질 수 있고, 덧붙여질 수도 있고, 고칠 수도 있고, 지울 수도 있다. 그리고 동사는 무언가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동작을 하면 적어도 세상에 소리를 낸다거나 바라본다거나 하는. 그렇게 사람을 포함한 세상과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이 동사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루하루 맞닥뜨리는 많은 문제들은 이미 지식의 보고라고 불리는 수십만 권의 책이 꽂혀있는 곳에서 찾을 수 없다. 다른 경험과 다른 아이디어, 생각을 갖은 사람들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그리고 그 경험이 화학작용을 일으켜서 새로운 지식을 전수하는 그런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은 그런 작용이 일어나는 말 그대로 플랫폼이고. 사서들은 필요한 책을 빨리 찾아주는 셔틀이 아니라, 잘 듣고 엮어서, 엊그제 왔던 누군가가 여기 실마리가 될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엮어,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남겨서 우리가 모아놨던 자료가 있는데 이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연결하는? 그러면서 북돋우는 그런 역할을 하면 좋겠다.
아카이브! 동사가 된 지식의 공유와 활용
아카이브라는 말을 직접 강조해서 쓰게 된 것은 2012∽2013년쯤이다. 우리 도서관 가장 중요한 장소에 독서회에서 읽은 책들을 따로 모아두는 서가가 있었다. 13년 전, 17년 전에 막 아이를 낳아서 키우던 비슷한 또래 사람들이 독서회를 만들어 읽은 책으로 그것 자체가 기록이라 할 수 있었다.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 몇 쪽짜리의 책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경험, 시간이 같이 담겨있는 기록인 셈이다. 그런 기록이 우리한테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그 코너와 연결해서 보면 독서회 일지 같은 게 남아 있다. 모여서 토론하고 이럴 때마다 누군가 기록을 남긴 것도 있고, 무수히 남은 사진이 있고, 기획했던 활동 자료도 있다. 그래서 아카이브를 하자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미 아카이브를 해오긴 했다. 기록을 쌓아두고 나름 철도 해놓았는데, 그것이 도서관에서 장서라고 불리는 자료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러면 이용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시작할 때부터 아카이브가 이용되기 위한 것으로 목표를 분명히 했다. 랑가나단(인도의 수학자, 도서관학자/1892~1972)이 만든 ‘도서관학 5법칙’이 있다. 그중 1법칙이 ‘books are for use.’, 즉 도서관의 책은 이용되기 위함이다 이다. 나는 이 원칙이 아카이브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을 시작하고 동네에 공동육아모임, 협동조합 등 다양한 단체들이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활동 자료들이 우리한테 쌓였다. 그리고 이게 이용되게끔 하기 위해서는 라벨을 붙이고 어딘가에 자기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기존의 자료와 책을 중심으로 했던 것이 아닌, 새로운 분류체계가 필요했다. 제발 도서관의 책을 보지 말고 사람들의 삶을 보자고 말하곤 하는데, 삶을 보며 떠오르는 질문, 발견한 가치를 가지고 책을 보고, 자료를 찾아서 분류하는 게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원칙이다.
예를 들어, 분류가 ‘환경공학’ 이러면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1.5도 생존을 위한 멈춤>이라는 컬렉션이 있고, 아마 에너지 컬렉션도 거기에 나올 거다. <원자력이 미래의 에너지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또 하나의 컬렉션이다. 그리고 또 텃밭 같은 게 나올 수도 있다. 누군가의 텃밭 일지 같은. 컬렉션만이 아니라 우리가 연 기후 행동 학교 활동 기록들, 포스터, 관련 소식이 같이 검색된다. 우리가 아카이브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의 아주 중요한 의미는 이런 기록들이 도서관의 장서 안으로 들어왔다는 거다. 사람들이 이용하고 싶을 때 검색하면 도서와 같이 검색되는 것이다. 도서관의 미래와 관련해서 아카이브를 자꾸 강조하는 이유가 도서관이 달라지지 않으면 이 사회가 계속 도서관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코로나 상황처럼 책이 나오기 전에, 질본(질병관리본부) 같은데 뿐만 아니라 의료인, 연구자, 교수 등 관련 분야의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깊게 사유하면서 내놓은 자료들이 실시간으로 생산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작년 그것을 골라 아카이브 했다. 우리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 시청에서 드라이브 쓰루를 한다든가 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즉 내 삶에 영향을 바로 미치는 것은 그런 것들이다. 도서관이 책에서 눈을 돌려 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려면 자연스럽게 자료의 구성에서 아카이브의 비중이 늘어나야 될 거다. 그렇게 되면, 책 목록에서 골라서 주문만 하던 방식에서 이제는 사람들이 만나서 자료를 발견하고 찾아오는 자료 수집 과정도 달라지는 것이다.
동네에 있는 단체들이 초기에는 여러모로 힘들기 때문에 기록을 챙기지 못하는데 그런 것들이 여기에 있다. 이런 게 중요하다. 그렇다고 모든 기록이 있나? 전혀 아니고 아주 조금인데, 나는 그런 완결성, 망라성에 대해서 관대하려고 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자료들이 남겨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기록이라는 것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기록물에도 자기 생, ‘기록생’이 있다. 찢기기도 하고, 때가 묻기도 한다. 사라지면 사라지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기록의 그런 무게감을 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아카이브가 가능했다.
분류체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밤에 엄청난 기록물 상자들을 바닥에 펼쳐놓고, 넣고 다시 넣고를 반복한다. 아침에 아무렇지 않게 도서관 문을 열고. 밤이 되면 다시 또 미친 듯이 몇 만 권의 자료를 나눠놓았다. 그걸 정말 오랫동안 했다. 엑셀로 상세한 수준까지 정리해 놓고, 이렇게 묶어볼까?, 저렇게 묶어볼까?, 그러다가 그래도 이게 여기서 발견될 가능성이 크겠지? 아니 이건 너무 분량이 많아. 그럼 좀 나누고... 이런 식으로 몇 년을 했다. 완성에 대한 강박이 없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봄 : 그건 어떻게 보면 감각이다. 지식의 분류, 분류된 지식의 형식? 모양새로 보면 완결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종의 예술가들의 작업처럼 정보와 자료들을 다루는 직관과 감각이 없으면 사실 불가능하지 않나.
박영숙 : 그게 타고난 직관이나 감각이 아니라. 여기서 10년, 15년을 사람들과 함께해온 시간이 있지 않은가. 정말 많은 게 저절로 떠오른다. 그래서 누군가 계속 그걸 담당할 사람이 있는 게 중요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카이브를 하다 보면 기록물만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 자꾸 궁금해진다. 자료가 비면 왜 비었을까 궁금함이 들고, 그 궁금함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을 만난다. 휴면 상태에 있었던 활동이나 관계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느낌.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나 어떤 사건에 대해서 훨씬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아카이브도 태도라고 생각한다.
지봄 : 지지봄봄을 통해 수많은 현장들을 비평가들이 갔었다. 다녀온 후 남긴 글이 많다. 칼럼 코너를 통해 동시대의 해석과 문화예술에 대한 혜안도 쓰인 것들이 많다. 그러나 구글에서 찾으면 찾아질 수는 있지만, 그건 세상의 모든 지식 중의 하나일 뿐이다. 예를 들어 내가 계획하고 있는 어떤 일이나 궁금함과 관련해서 필요한 선 경험들이 저 안에 있을 거라고 하는 메시지가 지지봄봄의 구조에는 아직 없다. 그런 준비들,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이미 존재하는 글들은 아카이브로 묶어내고, 큐레이션을 통해서 계속 그 글들을 소환해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면 자연스럽게 정체된 상황을 직시할 수 있고,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오늘 이야기 들으면서 우리의 문제의식을 비춰볼 수 있어 좋았다. 특히 비어있는 지점들을 볼 수 있었고. 채울 것들의 영감도 많이 받았다. 소탈하고 격 없는, 다양한 경험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하다. 함께 해주신 느티나무도서관의 아카이브 담당 최진선 님께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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