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봄
- 비평 웹진을 만드는 사람들 - ④ 비평 플랫폼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
- 장은정, 이리, 성혜인 _문학평론가, 공공문화칼럼니스트, 음악평론가
- 202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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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웹진을 만드는 사람들
④ 비평 플랫폼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
불가능한 상상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금기시되어 오거나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진짜 그래?” 질문을 던지고, 구체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것
- 장은정(문학평론가) : 사실 《비유》는 비평 전문 웹진이라는 것을 내세우고 있지 않지만, 제게는 평론가로서의 ‘비평적 행위’였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문학잡지라는 것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문법을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다른 방식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저희 웹진은 처음 설계할 때 댓글 기능을 만들면 그걸 관리할 인력이 부족해서 일부러 댓글 기능을 만들지 않았어요. 그러니 사실 《비유》가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피드백을 얻기가 쉽지는 않았죠. 그런데 저희 잡지가 창간될 때 많은 다른 잡지들도 함께 변화를 주는 시기였는데 이에 대한 좌담이 열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좌담에서 《비유》가 현재로서는 가장 최근의 대안으로 여겨진다는 말을 읽고 조금 확신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제가 일종의 이벤트처럼 독자들을 잠시나마 속이는 글을 쓴 적이 있어요. 보통 기사에서 사용하는 문체를 사용해서 300명의 작가노조가 원고료 3배 인상을 요구하며 이번 계절 문예지 청탁의 전체 총 파업에 들어갔다는 내용을 실제 기사처럼 꾸며 쓴 거죠. 그 후에 그 대목만 캡처를 해서 제 SNS에 올렸어요. 그러니 사람들 사이에서 “작가 노조가 있었어?”하는 이야기가 돌았죠.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알려진 후에야 이것이 상상으로 쓴 가상의 기사고, 그냥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걸 같이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고 싶었다고 그 기사가 포함된 글을 공개했어요. 저에게 이건 일종의 비평적 퍼포먼스였어요.
어쩌면 저는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 의미의 ‘필자로서의’ 비평가는 아닌 것 같아요. 제겐 기획자, 비평가, 활동가 세 가지 정체성이 동시에 작동하는 작업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서, 그저 제가 쓴 어떤 글을 보고 누군가가 “아, 이 글 참 잘 썼네” 이런 말을 듣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거든요. 저는 실제로 어떤 변화와 구체적인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언어를 원해요. 그리고 그건 반드시 기존의 세계에 대한 비평적 사유가 필요하고요. 이것이 비평적 과정이고요. 그래서 저는 비평 플랫폼의 역할은 “불가능한 상상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금기시되어 오거나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진짜 그래?’ 질문을 던지고, 구체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것”인 것 같아요. 그래서 비평 웹진은 일종의 시작점이자 계기에 불과하고 거기서 파생된 행위들이 더 중요하지, 사실 누가 평론을 더 잘 쓰고 못 쓰고 하는 건 제게 별 의미가 없어요.
- 임재춘(지지봄봄 30호 편집장, 이하 임) : 기획자, 비평가, 활동가의 정체성이 맞물려 있다는 거. 이게 되게 중요한 질문인 것 같고, 반갑게도 지지봄봄 이번 호의 고민과도 맞아있는 것 같아서 되게 반가운 마음이 들어요. 어떠세요? 공진단이나 여러 활동을 해보시면서 비평 웹진의 어떤 역할? 그러니까 이제 뭐 공공의 역할일 수도 있고요,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비평 웹진의 역할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사실은 너무 지나치게 너무 공공기관의 것으로만 합리적인 언어만 가능한 구조잖아요. 그래서 사실 헤테로포니 같은 케이스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어떠세요?
건강한 담합을 일으킬 수 있는 비평 플랫폼
- 이리 : 제가 '월간 공진단'을 진행하며 가장 좋았던 부분은 발주처인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수용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제가 제안을 던졌을 때 받아들여지는 범위가 다른 기관에 비해 폭이 넓다는 점이 좋았고, 글이나 이미지에 대해서도 열린 시도를 하려고 하는 편이죠. 공기관에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하지만, 저는 어떤 입장을 취하려거든 소수의 목소리도 흔쾌히 받아들이는 입장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흔히 "위 내용은 개인의 의견으로 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 있다"는 식의 비겁한 문구는 쓰지 않으려고 해요. 저는 오히려 "이 씬에 문제가 된다면 오히려 땡큐지!"라는 생각이에요.(웃음) (임 : 음음. 문제 좀 일으키자~) 문제를 제기하자고 비평지를 만드는 거잖아요. 다행히 이런 의견들까지도 담당 팀장님께서 잘 수용해주셨고, 묵묵히 받쳐주고 계세요.
'비평 플랫폼의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신다면.
저는 하랄트 제만의 말을 빌려서 “태도가 형식이 되는"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만드는 사람들)의 태도가 어떤 형식(웹진)을 갖추고 텍스트든 이미지든 어떤 형태(콘텐츠)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학교 다닐 때나 회사 다닐 때나 질문하고 도전적인 행위 때문에 지적을 받았고, 늘 체제 안에서 조금 어긋난 사람이었어요. '도전의식'이라는 말은 얼핏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표현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한국 교육이나 사회 안에서는 부적응자의 모습처럼 비치기가 쉬운 것 같아요. 실패도 잘 용인이 되지 않고 질문보다는 수용이나 순종을 도리로 여겨져 온 도제적 교육, 등급화/규격화된 직장 생활, 가부장적인 가정환경은 시대가 많이 변한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고요. 이렇게 형성되어 온 우리의 의식체계가 우리 안에 깊이 뿌리 박혀 있어요.
지지봄봄은 “문화예술교육”이잖아요. 저는 이 플랫폼들이 좀 더 어린 학생들에게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좀 더 머리가 유연할 때 이런 것들을 함께 질문할 수 있고, 스스로 도전해볼 수 있고 고민해볼 수 있는 것들을 다룰 수 있다면 좋겠어요. 현실적으로 학생들이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것들을 보고 경험하고 할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이런 비평 문화를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가치와 방향성을 질문하고 점검할 수 있기를 바라요. 저는 제가 학생 때 썼던 글을 보면 진짜 황당할 때가 많아요. 쪼끄만 게 어떻게 그렇게 사회 비판적이고, 말도 안 되는 글을 써놨는지. 그런데 그 마음이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분명히 저와 같은 청소년기를 보내는 친구들도 저처럼 부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태도가 저는 긍정적인 거로 생각해요. 의심하고 질문하는 비평적 태도를 좋은 형식으로 만들 수 있다면요. 제가 첫 회사를 퇴사할 때, 제 상사가 저한테 "너는 사장해야 되겠다"라고 했어요.
- 임: 벌써 차렸어요. 하하하하 / 장: 결국 그렇게 됐네. 하하하하
- 이리 : 사실 그 말의 뜻은 '그렇게 네 맘대로 하고 싶은 게 많으면 네 회사를 차려라'라는 뜻이었을 거예요. 저는 그 40대 젊은 꼰대의 예언을 받들어 지금 제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비평 플랫폼에 참여하는 분들에게 그대로 전하고 싶어요. 이 플랫폼이 “당신의 것이 아니지만, 당신 맘대로 해도 좋다” 라고. 그렇게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임 : 청소년들에게도 그런 플랫폼이 필요하지 않냐. 이런 말씀이신 거죠?
- 이리 : 네. 아까 잠시 노동조합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비평 플랫폼이 단순히 데이터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대 뒤에 잔존하는 수많은 뒷담화들이 좀 더 건전한 방식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비평적 자세들이 태도로, 형식으로, 공연예술로 계속해서 구현되고 실현되어야 한다고 봐요. 저는 젊은 전공생들을 만날 때도 항상 '너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라고 이야기해요. 문화예술가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비평하고, 제도와 형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태도와 형식이 청소년들에게 멘토나 뮤즈로서 영향력을 끼치고요.
비평가라는 게 누군가 자격을 주는 게 아니라 자발적 존재들이잖아요. 그런데 실제 필드에서 얼마나 이 부분이 잘 받아들여지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해요. 무대 밖에서 비평하시는 분들의 글은 실제 현장에 계시는 분들에게 '무대 경험도 없는 비 전공/비 예술인의 비평'이라는 평을 듣기도 하 고, 예술인의 산문적 비평은 '안으로 굽는 팔'이나 '글을 쓸 줄 모르는 비형식적 글'로 치부되기도 하죠. 하지만 저는 이런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상호 호환과 수용적 태도가 필요하죠. 웹진 ‘비유’를 보며 좋았던 게 많은 협업이 일어난다는 부분이에요. 그러면 비평의 범위도 굉장히 확장될 수 있는 거잖아요. '담합'이 한국에서는 주로 안 좋은 의미로 쓰이지만, 건강한 담합을 일으킬 수 있는 비평 플랫폼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 임 : 맞아요. 사실은 계속 얘기가 나오지만, 우리가 비평 하나만 가지고도 어떻게 보면 같이 이 안의 생태계들이 건강하게 자기 역할을 할 것인가. 이런 문화비평 전반에 대한 이야기들이 고민들이 숨어져 있는 것 같아요.
- 성혜인(음악비평동인 ‘헤테로포니’, 이하 성) : 왜 ‘웹진’이라는 플랫폼을 선택했냐는 질문은 저에게 어렵게 느껴져요. 지면의 부족을 해결하고 새로운 담론을 만들자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웹진은 저희가 비평 행위를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매체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웹진이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책 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약간 의문스러운 상태입니다. 적어도 국악계나 조금 넓게는 아카데미 안의 음악계를 봤을 때요. 저는 책이라는 매체와 웹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고려하기보다 비평의 내용에 훨씬 집중을 했던 것 같아요. 아직 전자보다 후자를 고민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게 솔직한 입장이에요. 당연히 매체의 특성과 글쓰기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고민은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후자만으로도 너무나도 초보적인 수많은 과제들이 쌓여 있는 거죠. 누구나 손쉽게 시의성 있는 담론과 비평을 접할 수 있는 아카이브 정도로 일단을 저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웹진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어쨌든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건강한 담론을 만들어가는 것일 텐데, 저는 이것이 비단 비평가의 활동이나 비평가의 결과물에 국한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저는 금기시되거나 쉽게 수용되지 않는 문제, 우리들의 관성에 자리 잡고 있는 불편함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으로 남을 거예요. 때에 따라 맨 앞에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싶고요. 웹진은 그 시간과 흔적을 남겨 놓겠죠. 그런데 건강한 담론을 만든다는 건 본질적으로 개개인 차원의 변화도 함께 일어나야 하는 것 같아요. 음... 결국 독자의 존재와 그들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데, 비평을 쓰는 비평가로서 지금까지 쓴 제 글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자꾸만 질문하게 되네요. (웃음) “웹진의 역할을 이런 거야”라고 말하려니 제 글과 비평 행위에 대해 스스로 평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렵네요.
- 임 : 민간에서 하는 자발적 활동이니까 조금 더 가볍고 편하게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성혜인 선생님의 글을 우리가 계속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4년을 지속해왔던 건 이건 민간에서는 어마어마한 활동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글을 쓰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는 이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기억하고 있다가 지지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헤테로포니가 “우리는 이러해서 스스로 비평 웹진을 열었다.” 되게 선언같이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좀 응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비평의 탈을 쓴 평가나 모니터링을 통해서 그들을 좌절시키고 모욕을 줬죠.
그래서 정말 비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 장 : 저는 지지봄봄에서 좌담 제안이 왔을 때 무척 반가웠어요. 저는 원래 시 평론을 중심으로 비평을 써온 사람이거든요. 제가 시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하면 사람들은 시가 너무 어렵다면서 읽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아요. 그런데 시를 어렵게 만든 게 뭐냐면 입시교육이죠. 수능이라는 과제를 통과하면서 예술을 즐길 수 있는 향유자로서의 감각이 거의 삭제되거든요. 제게 국어교사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한테 본인은 국어교사인데도 제가 쓴 글이나 제가 읽는 시집들이 어렵다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아이러니해요? 시를 가르치는 사람이 최근에 나오는 시집을 못 읽고, 20년대 30년대에 나온 거만 읽고, 그것에 대한 해석도 ‘정답’이라고 가르쳐야 하는 거죠. 이미 향유자로서의 감각을 다 죽이는 세월을 20년간 보낸 사람이 하루아침에 시집을 즐기는 사람이 된다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좀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지신 교사 분들을 만나고 싶어서 ‘온더레코드’라는 교사 모임에 참석해본 적이 있어요. 대부분이 일반학교가 아니라 대안학교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세요. 거기서 보고 들은 것들을 일반 학교 교사로 있는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저에게 십중팔구 현실을 좀 직시하라는 소리를 들어요. 자신은 가르치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행정업무도 너무 많아서 네 뜻은 정말 좋은 말인데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대답해요.
근데 더 슬픈 건요, 예술고등학교를 나온 친구들도 비슷하다는 거예요. 예술 고등학교 친구들이 문예창작학과를 가서 백일장을 엄청 나가요. 거기서 수상 경력이 많은 친구들을 백일장 키드라고도 부르죠. 그런데 예고에서 몇 명을 어느 대학으로 얼마나 많이 보냈는지 이걸로 교사들 사이에서 경쟁을 붙여요. 그러니 일반 교육대학을 나오지 않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데도 입시 시스템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런 걸 보면 제가 어떤 시집 신간이 나와서 그 시집에 대한 해설과 가치 부여를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내 글을 향유하는 사람의 자본 계급은 누구인가? 물으면 정답이 딱 나와요. 최근 산재 고용법 때문에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지금 당장 사람이 갈려 죽어가고 있는데. 내가 너무 한가롭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고, 사실 교육에서부터 변화가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 임 : 맞아요. 예술 학부를 졸업하거나 석사과정을 나온 친구들이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런 마인드로 만나요. 그러니까.. 정말 어떻게 보면 암담한 마음으로 지지봄봄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친구들 탓이 아니거든요. 이걸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서 사실 비평을 시작했던 거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지금도 여전하죠.
그동안 비평의 탈을 쓴 평가나 모니터링을 통해서 그들을 좌절시키고 모욕을 줬죠. 그래서 정말 비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물론 시간이 걸리는 일이긴 한데 외부자가 주는 질문으로는 충분치 않다. 어쨌든 당사자의 질문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거죠. 교육에 대한 질문과 예술에 대한 질문이 되게 유사하거든요? 저는 오늘도 문화예술교육 쪽에서 하는 고민들과 언어가 너무 다르지 않아서 한 번 더 놀라게 되어요. 그런데 교육은 좀 다르더라고요. 그나마 이런 이야기가 가능한 사람들이 예술 전공자들인 것 같아요.
- 장 : 맞아요 진짜. 이런 질문하는 사람은 예술가 말고 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하하하.
- 임 : 오늘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많이 배웠는데, 비평이 단순히 올바르고 윤리적인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비윤리적인 언어의 유희를 통해서 윤리의 근대성을 전도시키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저도 뭔가 다름을 이야기하면서도 10년 전과 바뀌지 않은 그 틀 안에서만 생각을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다음에 또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이디어를 가지고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드네요. 사실 올 때만 해도 생각처럼 많은 이야기들을 우리가 나눌 수 있을까, 서로 잘 모르다 보니까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왔어요. 저는 오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고 기존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도 생각하게 되었고. 제가 더듬더듬 생각했던 것을 이런 언어로 말씀해주시니 갑자기 선명해지는 것도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오늘 오랜 시간 너무 감사했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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