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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각의 확장과 리듬의 회복
  • 염신규 _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 2021.10.14

지지봄봄 32호

생태를 바라보는 시선의 높낮이

언어들

감각의 확장과 리듬의 회복

염신규(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삶의 감각이 낯설게 되돌아오기 시작한 어떤 순간들

코로나가 사람들의 일상을 바꿔놓았다고 한다. 예전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이런 격차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도 무척 크다. 코로나 이외에도 몇 가지 변화의 요인들이 지난 몇 년간 겹쳐져 왔기 때문이다. 일단 생물학적 연령이 흔히 첫 번째 생애전환기라 불리는 시기를 훌쩍 지나 중년에 접어드니 몸이 원하는 삶의 방식 자체가 한해가 다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어울려 늦은 밤을 떠들썩하게 보내는 것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고 집에 있는 시간에도 늦은 밤까지 영화를 본다거나 게임을 하는 것 같은 것은 잘 안 맞게 되었다. 뭔가 중독적이거나 즉흥적인, 생의 에너지를 탕진하듯 쓰는 활동은 전반적으로 힘들어졌다. 그 대신 일상을 채우고 있는 것은 이전에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반복적이거나 혹은 규칙적인 행위들의 반복이다. 일상의 리듬을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졌고 그 리듬을 깨고 들어오는 일정에 대해서는 방어적으로 사양하거나 리듬의 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게 되었다. 이렇듯 나이가 들어감이 신체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한 가지 변화라면 또 한 가지는 코로나 상황이 시작되기 1년쯤 전에 오랜 대도시 생활을 끝내고 경기도의 도농 접경지역으로 이주를 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도시 지역에서만 살아온 터라 적지 않은 모험을 감행한 셈이다. 비록 신도시 지역이 3, 4km 인근에 있긴 하지만 이사한 곳 자체는 농지와 농가주택, 그리고 대도시의 집값 인플레이션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한 이들이 새로 지은 작은 단독주택들이 40여 채가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다. 본격적인 귀촌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도시의 편리함으로부터 한 발짝 벗어난 것은 확실하다. 신체와 거주환경의 변화에 따라 밤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적막해졌으며 일찌감치 잠들어 새벽같이 일어나는 것이 일상적인 리듬이 되었다. 시골의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새벽부터 일어나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은 탓이기도 하다. 뭐 대단한 가드닝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사는 집으로 이주해서 첫 두 해 동안에는 평생 가본 적이 없었던 산림협동조합의 묘목판매장에 가서 묘목을 사 와서 심고 키우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나무가 그렇게 비싼 것도 처음 알았지만 어린나무를 심어서 어느 정도 건강한 나무가 될 때까지 키우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새벽마다 물을 주고, 잠시만 방치하면 정글처럼 변하는 마당의 풀을 깎고, 무성하게 사방으로 뻗쳐 자라는 나뭇가지를 정리하고, 절기가 변할 때마다 나타나는 해충을 잡다 보니 2년 반 정도가 훌쩍 지나갔다. 확실한 것은 삶의 조건이 변화하다 보니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감각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도시에서의 시간적 흐름은 주로 주어지는 일을 처리하는 과정으로 채워졌었다. 진행 중인 과업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과업 시작하는 것을 반복하는, 1차원적인 선형의 흐름에 개인적 시간이 온통 다 놓여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1차원적 흐름이 전부가 아니다. 마을에서 이어진 소나무 숲이 시시각각 오감에 와닿는 시간의 차원을 확장시킨다. 때론 작은 마당과 집의 시간은 육체적 노역으로 다가오지만, 그 귀찮음과 힘듦 속에서 삶에 또 다른 시간의 의미를 부여한다. 특히 여기에 코로나 상황이라는 공간적 제약이 주어지면서 내가 느끼는 시간과 생의 리듬은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고, 집에 있더라도 대부분을 티비나 컴퓨터 앞에서 보내던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는 감각들이 살아난 것이다.

사진 이야기. 장미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 모스크의 지붕처럼 올라오는 풍경을 보면서 봄을 느끼게 된다.
사진 이야기. 장미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 모스크의 지붕처럼 올라오는 풍경을 보면서 봄을 느끼게 된다.


사진 이야기. 자연을 품고 산다는 것이 늘 즐거운 노릇은 아니다. 한 여름에도 잔뜩 뒤집어 쓰고 약을 쳐야 하는 경우가 있다.
사진 이야기. 자연을 품고 산다는 것이 늘 즐거운 노릇은 아니다. 한 여름에도 잔뜩 뒤집어 쓰고 약을 쳐야 하는 경우가 있다.



문화예술은 우리 삶에 무엇이었을까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지난 얼마간 개인적으로 체험했던 일상적 조건의 변화와 이에 따른 생의 감각이 변화한 얘기를 다소 길게 늘어놓았다. 문화예술교육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몇 가지 중에 바로 이런, 낯선 시간과 감각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막연하게 문화나 예술은 좋은 것이라는 믿음이 있지만, 막상 그것이 왜 좋은지, 인간의 삶에 어떤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지 설명을 하고자 하면 막막할 때가 있다. 특히 이게 교육이라는 규범적 지향 개념과 맞물릴 때는 더욱 그렇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교육이란 오랫동안 개인의 신분을 상승하거나 유지하는 사회적 도구로 자리해왔다. 그것이 동아시아의 오랜 유교적 봉건주의 사회의 전통에서 유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위 입신양명(立身揚名)이라는 사자성어에 함축되어 표현되는 문화적 전통은 공부를 통해 스스로의 능력을 갖추고 이를 통해 지배계급의 일원으로 성장하는 것을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것은 유교 사회의 전통 때문만이 아니다. 교육은 역사적으로 보자면 어느 사회이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런 속성이 내재되어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언제인가부터 문화적 소양이라고 여긴 것들조차 근대사회에서 중간계급으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자격조건, 혹은 계층적 표식과 같은 것들이었다. 문화와 예술의 세계는, 그 자체로 자유롭고 무한대로 열려있는 세계지만, 정작 그 세계가 엄존하는 세상의 질서와 만날 때는 기존의 지배적 질서를 그대로 복제하는 기능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이 향유한 시기에 세계를 봐도 그렇고 서구 사회에서 중산층의 교양으로 양식화하여 유지한 회화, 음악 연주도 엇비슷한 측면이 있다.


30여년 만에 다시 건반에 손을 얹다

다시 현재의 자신으로 돌아와서, 21세기 코로나 시국에 도농 접경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얼핏 은둔하듯 사는, 그러나 한편으론 역시 빡빡한 현실과 한 치도 떨어져 있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자. 약 1년 전부터 새롭게 추가된 일상의 한 부분은 근 35년 만에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 지긋지긋하게 치기 싫어했던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다. 문화예술교육 개념이 생기기 훨씬 이전인 80년대가 시작될 무렵 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피아노를 6년 정도 쳤었다. 시작은 초등학교 1학년 가을이었다. 어머니는 집에 있던 오디오로 쇼팽의 어떤 피아노 소품인지를 들려주고는 피아노를 배워보지 않겠냐고 권유하셨다. 당시 부모님 세대로서는 드물게 고등교육을 받은, 소위 문화적 소양이 풍부하셨던 어머니는 절대 무엇인가를 강제로 시키는 분이 아니었지만, 한편으론 당신이 가진 문화적 취향을 자식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방법을 잘 아는 분이었다. 아름다운 쇼팽의 피아노 소품을 들은 나는 제 입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라고 얘기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피아노 교습은 초반에 매우 즐거웠다. 건반을 치는 법을 배우고 멜로디와 화음을 조화시키면서 만들어지는 선율이 마법처럼 신기하고 흥미롭기도 했다. 그 흥미는 한 2년 정도는 지속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국민학교 상급 학년이 될 무렵 피아노는 일종의 억압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한 가지는 우리 가족이 당시 잠시 살고 있던 지방 도시에서는 남자아이가 피아노를 배우는 것이 좀 우스꽝스러운 일로 여겨지던 분위기가 있었다. 남자아이들은 웅변이나 태권도를 배우고 피아노는 여자아이들이 배우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당장 국민학교 4학년쯤 되었을 때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는 남학생은 나 혼자 밖에 없었다. 대부분 남자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판에 혼자서 운동장을 뒤로하고 피아노 학원을 가야 하는 것 자체가 정말로 싫었다. 게다가 당시의 피아노 교습은 상당히 기량 위주의 반복 학습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악기를 배워본 사람은 대부분 공감하겠지만 악기 연주 실력이란 것이 초반에는 제법 쑥쑥 늘어나지만,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다소 정체되면서 정말 연습이 지겹기만 한 시기가 온다. 그걸 극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자발적인 연습의 동기부여인데 음악 자체에 대한 흥미가 뒷받침되어야 그런 자발적인 연습이 가능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당시의 피아노 교습 방식은 그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피아노 선생은 배우고 있는 연습곡들(당시 보통 2, 3곡 정도의 연습곡을 동시에 연습하곤 했다)을 얼마나 숙련되게 칠 수 있는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지켜보고 나서 다음 레슨까지 수치화된 과제(OO번 연습곡 30회 쳐오기!)로 부여했다. 벽에 부딪히면서 흥미를 잃은, 게다가 다른 재미난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지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부과되는 과제를 열심히 하지 않기 시작했고 피아노 학원에 가는 게 정말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국민학교 5, 6학년 2년 동안은 의무감으로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지만, 피아노 자체는 정말 싫어서 죽을 지경인 상태였고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이제 학업에 충실하겠다”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를 대며 피아노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물론 학업에 충실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후로 사춘기 때 피아노 연주가 멋들어진 록밴드 시카고의 음악을 잠시 좋아하면서 한번 연습해보려고 악보를 샀던 적이 예외적으로 있긴 했지만 거의 피아노에 대한 흥미를 잃고 살았다. 외조부가 사주셨던 어쿠스틱 피아노를 꽤 오랫동안 끌고 다니긴 했지만, 감히 건반 뚜껑을 열어서 치고 싶다는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다. 심지어 결혼하고 신혼집을 꾸미면서 어린 시절의 그 피아노를 버릴 때도 큰 감정의 동요 같은 게 별로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음악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앞서 다소 길게 썼던 변화들이 오면서 다시 피아노가 그리워졌다. 어느 날 불현듯 말이다. 책상 앞에서 길게 빛의 꼬리를 늘어뜨리며 저물어가는 햇살을 바라보던 초겨울 날이었을 것이다. 오래된 노래를 들으며 컴퓨터 앞에서 어떤 일인가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문득 컴퓨터 건반이 아닌 피아노 건반을 천천히 치고 싶어졌다. 그래서 며칠을 고심한 끝에 중고장터에서 저렴한 포터블 디지털 피아노를 한 대를 다시 구하고 초급자를 위한 피아노 교본을 샀다. 중년의 나이에 다시 만난 피아노 건반은 왠지 낯설게 다가왔지만,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푸는 연습부터 시작했고 아주 쉬운 악보부터 하나씩 쳐보기 시작했다. 당연히 서툴고 어색해졌지만, 신기하게도 서투른 연주가 조금씩 되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어린 시절 강제로 연마했던 피아노에 대한 감각이 많이 남아있었다. 워낙 저렴한 악기를 구하다 보니 해머 건반이 아니어서 타건감이 떨어지는 게 아쉬운 노릇이어도 손가락이 건반의 사이를 오갈 때 만들어지는 소리의 느낌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리고 이후로 지금껏 그 소박한 디지털 피아노 연주, 아니 혼자만의 실갱이를 매일 30분 정도는 꼬박꼬박하고 있다. 이것은 누구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확인받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냥 혼자 내가 재현해보고 싶은 멜로디를 손가락으로 만들며 느껴보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한음, 한음을 짚어가며 소리들과 대화를 하고 있으면 말이나 글로는 표현하기 힘든 스스로의 내면에 잠재된 어떤 감각들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다시 내면에 쌓이기도 한다. 그 작업은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다른 식으로 다시 한번 보게 만드는 시도이기도 하다.

  • 왼쪽 사진 이야기. 어린 시절의 피아노. 작고하신 외조부가 선물로 주신 것인데 여동생과 이 피아노가 누구 것이냐를 가지고 오랜 설전을 벌였었다.
    왼쪽 사진 이야기. 어린 시절의 피아노. 작고하신 외조부가 선물로 주신 것인데 여동생과 이 피아노가 누구 것이냐를 가지고 오랜 설전을 벌였었다.
  • 오른쪽 사진 이야기. 이제 각종 보고서 작업을 하는 서재 한구석에도 작은 디지털 피아노가 한 대 놓였다. 건반 숫자가 좀 적긴 하지만 어차피 어려운 곡을 연습하는 것은 아니라서.
    오른쪽 사진 이야기. 이제 각종 보고서 작업을 하는 서재 한구석에도 작은 디지털 피아노가 한 대 놓였다. 건반 숫자가 좀 적긴 하지만 어차피 어려운 곡을 연습하는 것은 아니라서.



익숙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질문들을 다시 꺼내며

문화정책기획을 하는 입장에서,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적 질문에 부딪히는 일이 종종 있다. 예나 지금이나 그 질문에 대한 또렷한 답을 만들기는 너무 어렵다. 예술을 기능적으로 익히는 것만이 예술을 알게 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흔하게 ‘문화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상당 부분 전통에 의해 표상적으로 양식화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과거 문화란 개념이 처음 형성되고 학습되던 시절에 문화는 근대 서구 중산층의 취향과 습속으로 양식화된 것들을 지칭하곤 했다. 서구적 주택의 응접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피아노를 치거나, 오디오로 음악을 듣거나, 화집을 감상하고 전시회를 가는 것들은 대략 18세기에서 20세기에 만들어진 문화적 삶이었고 문화예술교육은 그런 취향을 전수하고 답습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20세기 후반이 되고 문화란 것이 역사적으로, 혹은 사회 계급으로 형성된 어떤 것이란 인식이 생겨나면서 좀 더 많은 생활의 취향들이 문화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교육도 과거의 전통적인 답습 방식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들이 생겨났고 자기 삶의 감각을 자극하는 다양한 취향의 발굴을 통해 생의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예술교육이 주목받고 있지만, 막상 그 방법적 부분으로 돌아가면 다른 대안이 폭넓게 존재하고 있지 못하다. 아니 여전히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문화생활은 매우 근대적 이미지로 각인되어있고 문화예술교육에 접근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요즘은 많이 비판받고 있긴 하지만 그런 근대적 방식이 전적으로 아주 잘못된 것도 아니긴 하다. 마치 내가 어려서 억지로 친 피아노가 그 방법이 다소 끔찍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음악에 대한 어떤 관심이나 예민함을 만들어놓은 것에서 볼 수 있듯 일정한 기능적 유효함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습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이 봉착하는 문제는, 자칫 그것이 그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삶의 다양한 국면들과 자아가 다양한 감각적 매개를 통해 관련을 맺고 확장된 사유를 얻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중요성이나 내발적 동기들을 놓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치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훨씬 더 폭넓을 수 있는데, 답습의 방식은 그런 폭넓은 감각의 확장을 오히려 위축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10살 소년이 학원의 좁은 연습실에서 만난 피아노는 확실히 어떤 감각의 확장을 만들기는 어려웠다.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방법론을 통해 얻어지는 효율적 능력의 성장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서 개인이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고 느끼게 만드는 감각을 키워낼 수 있는가에 상당한 부분이 달려있다. 프로그램은 세상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수천수만 가지 감각과 사유의 문턱까지 참여자를 이끌어 갈 수 있지만, 무엇인가를 느끼고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는 것은 결국 당사자의 몫이다. 요컨대 교육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예술의 체험들은 매우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개개인의 삶의 스펙트럼과의 조응을 통해 확장된 삶의 감각을 만들게 되지만 그 과정은 일률적일 수 없다. 삶을 살아가는 감각을 어떤 타이밍에,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는가에 따라 매우 다른 의식적 전환으로 이어진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경이의 시간을 꿈꾸며

현대 사회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삶의 과정들을 단절시킨다. 감각들도 마찬가지고 사유도 이에 따라 파편화되어 종속된다. 우리가 자유롭게 생각하고 욕망하고 행위하고 있다고 여기며 살고 있지만, 일상을 관찰하면 많은 것들이 알 수 없는 어떤 과정을 통해 어디로부턴가 이식된 “내 것이 아닌” 욕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문화예술 체험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낯선 감각은 스스로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생의 깊은 곳에 존재하는 욕구와 리듬을 되살려놓는다. 인간이 가보지 않았던 길을 떠나게 만드는 것, 이것은 노동생산성과 경제적 효율성이 만든 현대 사회 질서에 역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욕구를 찾게 되고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는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면, 일탈의 두려움 대신 광활하게 느껴지는 감각의 황홀이 그런 산술적 효용 못지않게, 혹은 더 크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일상은 언제나 대부분 지루하지만, 그 지루함을 포함한 더 큰 리듬이 있음을 감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그런 경이의 시간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


염신규 /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20세기 후반 영화작가를 꿈꾸던 청년이었으나 21세기 이후 문화연구와 문화정책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노동 계층 문화정체성 형성과정과 근대 국민국가의 문화제도에 대해 주로 고민하고 있으며, 동시에 출근하는 동거인을 대신하여 덩치 큰 개를 건사하며 집안일을 매우 다양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