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너머
- 기술을 디더링하기
- 송수연 _언메이크랩
- 20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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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봄봄 32호
생태를 바라보는 시선의 높낮이
기술을 디더링하기
페어폰, 카메라 리스트리타, 로테크 웹사이트1)
송수연 (언메이크랩)
공정한 전자, 페어폰2)
휴대전화 ‘다이나택 8000x(DynaTAC 8000X)’
첫 번째로 상용화된 휴대전화는 1984년 모토로라에서 출시한 다이나택 8000x(DynaTAC 8000X)이다. 이후 휴대전화 생산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2007년 애플의 스마트폰 생산을 시작으로 전화 통신기기의 시장은 급격하게 변하고 커졌다. 매년 소프트웨어, 센서, 플랫폼 서비스 등 혁신의 기술을 장착한 신제품이 출시되고 폐기된다. 2020년 전 세계 스마트폰 보급 대수는 35억대로 세계 인구의 44.9%가 사용하고 있다”3) 고 한다. 이제 일상에서 매일 사용하는 대표적인 디지털 기기가 된 이 기술적 사물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면서 사용하고 있을까? 이 기술적 사물의 내부 구조와 원리 그리고 이 기술의 외적 연결망에 대해 말이다. 우리는 단순 소비자의 위치에서 폰의 성능저하와 고장 또는 신제품 구입을 이유로 2-3년을 주기로 폰을 바꾸고4) 매월 통화/통신에 대한 사용 요금을 내지만 이 사물의 내적, 외적 속성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거나 질문하지는 않는다. 사용하면서 느끼는 불공정함과 불편함은 통화의 품질이나 인터넷망의 속도, 부가 서비스 등에 한정될 뿐이다.
그런 불편함을 넘은 질문에 응답하고 있는 제품으로 페어폰(fairphone)이 있다. 페어폰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으며 부품 활용이 지속적으로 가능한 스마트폰을 설계하고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되었다. 윤리적이고 수리 가능한 폰이라는 이슈로 현재 유럽을 중심으로 다양한 모델이 소량으로 생산 및 판매되고 있다. 2013년 바그 소사이어티(Waag Society)의 캠페인 전략으로 시작되었던 페어폰의 생산 과정에는 이런 질문들이 배경에 있다. 혁신적 기술이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이것의 원재료는 어디에서 오고, 누구의 노동으로 생산되고 있는지, 그리고 버려지거나 폐기된 제품은 어디로 가는지에 관한 질문들 말이다.
폰의 원재료를 구성하는 것 중 하나인 콜탄이라는 광물이 있다. 이 광물로 인해 주요 생산지인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채굴권을 두고 지역 분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채굴 과정에서 고릴라 서식지가 파괴되는 등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하지만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기술이란 늘 드물다. 페어폰은 이런 문제에 대해 합법적 채굴 과정, 제품의 사용을 지속하기 위한 모듈형 디자인, 그리고 파손된 부품을 자가 수리가 가능하게 하는 개방형 설계로 응답하고 있다. 또한 제작 과정에서 공정한 임금과 노동 환경을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제품의 생산 과정에 담긴 관점과 태도는 폰의 해킹과 수리 과정을 통해 배우는 제작 교육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기술 이면에서 함께 작동하고 순환하는 사회, 문화적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면 많은 다층적인 문제들이 함께 드러난다. 마법적인 기술 뒤에서 포착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이 문제들을 함께 사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이 과정은 우리가 중요하게 말하는 기술 리터러시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카메라 리스트리타 Camera Restricta
카메라 리스트리타 Camera Restricta
이미지를 기록하는 사진기의 역사는 길다. 1900년대 들어서 카메라는 제품으로 출시가 되었고, 2000년대 초반부터 디지털카메라의 대중화가 시작된다. 휴대전화에 이어 모바일 기기에 디지털 이미지 센서가 내장되면서 카메라는 소형화, 경량화, 고해상도, 각종 센서 추가 등으로 점점 발전하고 있다. 스마트 폰에 기록/저장되어 개인의 SNS에 공개되는 사진 데이터는 인공지능의 학습을 위한 데이터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나의 기술적 사물이 가져온 이미지 데이터의 과잉과 포화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카메라를 가진 사람들이 무엇을, 어디서, 왜 촬영하는지 생각하도록 질문하는”5) 카메라가 있다. 이 카메라는 하나의 예술적 사물이자 사변적 사물6) 로 기획 및 제작되었다. 이 카메라는 일반 카메라와 다른 기능을 장착하고 있다. 촬영을 제한하는 카메라이다. 모든 기술의 개발이 오류를 줄이고 성능을 개선해 왔다면, 이 카메라는 역으로 기능의 목적, 용도의 한계와 제한을 두는 방법을 택한다. 카메라는 촬영 장소에서 그곳의 위치 정보 태그가 지정된 사진과 숫자를 검색한다. 그리고 특정 장소에서 카메라는 촬영을 제한하고 작동을 멈춘다. 즉 사진에 담긴 위치 정보라는 메타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 장소에서 찍힌 사진이 많으면 촬영을 제한하는 카메라이다. 그 위치 정보를 담은 사진이 많다는 것은 그 공간이 상업화 혹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메타 데이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각종 모바일 기기에 탑재된 이미지 센서로 인해 일상의 기록은 쉬워졌고, 바로 소셜 네트워크에 공유된다. 사진에 담긴 이미지는 위치 정보와 태그를 담아 ‘좋아요’와 공유를 통해 신속하게 확산한다. 소셜 네트워크로 옮겨진 사진은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도시의 특정 공간과 장소의 소비와 개발을 자극했다. 카메라 리스트리타는 카메라라는 사용의 용도, 위치 정보라는 메타 데이터를 전유하는 방법으로 넘쳐나는 이미지, 시각 정보들이 유발하는 다른 효과를 질문하고 있다.
로테크 웹사이트
서버 및 태양열 충전 컨트롤러 (로테크 매거진의 태양열 발전 호스팅 버전의 웹사이트)
인터넷은 환경에 영향을 줄 만큼 많은 전기 에너지를 사용한다. 컴퓨터 통신망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땅과 물, 전기를 필요로 하는 인프라이다. 이 기반 시설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지금의 기후 위기에도 영향을 미친다.7) 탄소 배출이 높은 디지털 기술의 반생태적 속성은 그것의 비물질적 감각 때문에 가려지기 쉽다. 우리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를 검색하고 음악과 영화를 플레이하거나 스트리밍 콘텐츠 서비스를 받을 때 데이터센터 서버는 처리와 전송을 한다. 이 서버 유지를 위한 냉각에 많은 양의 물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다행히도 기후위기 문제와 함께 디지털 세계는 친환경적이라는 오해를 넘어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도 탄소 배출과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IT 기업들의 거대한 인프라스트럭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태양열 발전을 통해 경량의 웹사이트를 구동하는 기술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 중 로테크 기술과 오래된 구식 기술을 아카이브하는 로테크 매거진은 태양열 발전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인터넷이 환경에 주는 영향력을 상쇄하는 실천을 실험한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태양열 배터리가 충전되지 않고 웹사이트가 다운됩니다. 이것은 의도적입니다”8) 그러나 웹의 접근성이나 파일 다운로드 속도 등에는 큰 문제가 없이 운영된다. 많은 양의 아카이브 자료도 충분히 볼 수 있다. 웹사이트 아카이브에 동영상은 없다. 가장 기본적인 웹디자인 형식인 기본 서체와 디더링(Dithering)된 사진 등으로 웹사이트에서 최적의 방법을 유지한다. 작은 태양광 패널을 통해 전기를 충전하고 자체 서버를 가동한다. 가능한 이야기이고 이런 실천 자체가 흥미롭다. 실험의 과정이 오픈 매뉴얼로 공개되어 있어 누구나 실행해 볼 수도 있다. 로테크 매거진의 태양열 발전 호스팅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더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글과 함께 올라가 있는 이미지 3컷의 시각 형식에 다소 불만스러웠거나 혹은 무심했을 것이다. 이 이미지들은 로테크 매거진의 디더링 방식을 응용했다. 로테크 매거진(태양열 발전 호스팅)은 웹사이트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의 양을 줄이기 위해 사진에 ‘디더링' 방식을 적용한다. 디더링은 ‘제한된 색을 이용하여 음영이나 색을 나타내는’ 이미지 기술 처리 과정이다. 원고에 첨부한 이미지는 로데크 웹사이트의 디더링 방식의 영향을 받아 컬러 사진을 스케치 형식으로 변환해서 넣어 본 것이다. ‘변환 이미지는 지지봄봄 웹사이트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함께 슬쩍 던져보며 말이다.
디더의 사전적 정의에는 “망설이다”, “안절부절”, “머무적거림” 등의 의미가 있다. 이 의미를 치환해서 세계를 감각하고 지속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이 용어를 살펴봤다. 즉 ’기술을 디더링하기’를 생각해본다. 혁신 기술이 주지 않는 망설임, 비인간과 생태를 생각하는 초조함과 안절부절이 섞인 기술, 기술을 구현하는 인간의 망설임이 섞인 기술. 지금 신기술의 속도에 조급해하기보다 기술에 대해 다양한 인식과 관점, 태도를 위해 기술을 디더링하는 시간과 기회가 필요하지 않을까?
1) 지지봄봄 편집회의에서 가끔 기술의 이면에 작동하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편집 팀의 제안으로 종종 언급했던 사례를 지지봄봄 지면에 소개한다.
2) 페어폰 공식 웹사이트 https://www.fairphone.com/en/
3) 한겨레 기사 참고 https://url.kr/8mixeq
4) 휴대폰 평균 사용기간은 2020년 하반기 기준 27.9개월이다. (전자신문 참고 https://url.kr/wv6mdz)
5) Camera Restricta를 소개하는 영상 https://vimeo.com/137595414
6) SF적 사고실험과 질문을 가지고 제작된 프로토 타입의 기술과 디자인
7) 아직 디지털 관련 인프라, 디바이스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 추정치는 다양하게 분석된다. 일반적으로 데이터 센터는 전 세계 전력의 2~5%를 사용하고 있고 이는 항공 산업만큼(항공산업 이상의)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8)로테크 매거진의 태양열 발전 호스팅 버전의 웹사이트 (2018년부터 사용) https://solar.lowtechmagazine.com
- 송수연 / 언메이크랩
- 기술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와 교육,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기술을 다루는 과정이 창의적이고 비판적 접근이자 문화와 예술의 여러 요소를 매개하는 생각과 실천으로 확장되는 것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http://www.unmakelab.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