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문화 재단
  •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목록이미지
  • 기술너머
  • 멈춤점에 서서 순환의 감각을 회복하는 일
  • 김화용 _미술작가 / 기획자
  • 2021.10.14

지지봄봄 32호

생태를 바라보는 시선의 높낮이

기술너머 - 재난 시대의 예술과 생태

멈춤점에 서서 순환의 감각을 회복하는 일

김화용 (미술작가 / 기획자)

“예술가의 창작의 자유를 너무 제한하네요. 당신은 그럼 수묵화만 지지하실 건가요?”

프로젝트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지원했던 한 문화재단의 지원사업 심사에서 심사위원에게 들은 질문이었다. 나는 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이 질문의 문제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하고 나와야 할지 아득해졌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겠다. 당신이 바라보는 관점은 이제 재고되어야 한다고 말했어야 했지만 당당하게 말할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고민 때문에.


# 가벽 너머의 세계

내 지원서는 왜 심사위원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고 이런 질문이 나오게 한 것인지 이야기해 보려 한다. 감염병의 쓰나미가 우리의 일상과 온몸을 강력하게 덮치기 시작한 한 해 전의 일이었다. 기후재난이 도래한 지구 이곳저곳에서 자연적 이상 현상이 징후처럼 포착되고 있었고, 1만 년, 100만 년 인간의 감각으로 가늠도 안 되는 주기로 바뀐다는 지질시대의 변화까지 거론되는 생태 위기상황이라 했다. 예술계 안에서도 ‘인류세’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계속 언급되었다. 2019년 한 해에만 인류세와 관련된 전시가 여러 개 만들어졌다. 심각한 위기를 각성하는 내용이 전시장 여기저기에 소개되었지만, 실상 전시를 만드는 반환경적 과정의 변화나 기후위기 시대의 정치적 실천은 부재한 채, 미학/철학 담론으로만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되었다. 미술관의 가벽 앞에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기후재난의 참혹한 장면이 재현되고 있는데 일시적으로 만들어졌다가 부서질 예정인, 한때는 나무였던 가벽이 그 환영을 떠받치고 있고, 바다로 또 토양으로 흘러들어 환경에 잔류하며 독성물질을 내뿜을 PVC가 시트지라는 이름으로 위기에 대한 성찰을 설명하고 있다. 조금 다른 위치에서 이 상황을 바라보면 뭔가 괴상했다. 물론 나 또한 예술창작자로서 긴 시간 이 행동을 반복해온 공모자였다. 불합리한 문제에 언제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새로운 기술과 담론을 빠르게 수용한 것은 예술이었다. 하지만 정작 예술 문법 그 자체의 문제를 점검하지 않았다. 예술이 다루는 주제나 매체가 항상 첨예하고 전복적이었던 것에 비교해, (정도는 조금씩 다르더라도) 우리는 예술 기저에 있는 ‘권위’를 긍정하며 또 기대기도 하면서 존재한 것은 아닐까.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같이 세상을 보는 모든 관점이 완전히 바뀌는 인류 역사의 전환점 정도가 아니라 생존할 수 있는 생명종의 구성 자체가 달라지는 지구 역사를 논하는 중대 변곡점에 서 있다고 말하면서, 기존 삶의 방식을 고수한 채로 생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무언가 달라져야만 했다.


# 할 수 있는 선에서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최대한

몇 해가 지난 지금에서야 심사위원의 한마디를 곱씹는 것은 저 문장에 우리(예술) 안의 다양한 오류가 그대로 집약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지원서에 예술 특히 미술 작업 과정 전반을 환경적 감수성을 넘어 ‘비거니즘적’ 태도로 다시 읽겠다고 제안했다. 창작 재료의 구성 성분부터 예술이 비인간 생명종을 다루는 태도, 전시 등 예술 발표 방식의 반환경적 문제, 제국주의 시대에 시작된 박물관, 미술관의 수집 보존 역사가 가진 폭력성 등 예술 전반을 처음부터 다시 분석하는 연구를 하고자 했다. 기존 예술의 방식에 함께 승선하고 있던 자로서 항해의 방향을 재조정하기 전, 박물관학 연구자, 재료학자, 동물권 활동가 등을 초대해 내가 탄 배의 근본적 작동원리를 반성적으로 돌아보며 배의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해 보는 학습의 장을 만들고 싶었다.

특히 ‘비거니즘’이라는 말을 썼던 이유는 인간이 생태적 실천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라고 한계를 좁게 규정하며 시혜적 태도로 합리화하는 것을 돌아보자는 제안이었다. 인간 중심적 태도에서 좀 더 치열하게 벗어나서 삶의 구조를 힘겹게 재편해 보아야 겨우 다시 보이는 것이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이 남성 혐오의 태도가 아니라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되어온 역사에 질문하는 수행인 것처럼, ‘비거니즘’은 단순히 식물 기반의 음식을 섭취하는 취향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기반으로 구성된 세계와 그 세계를 작동하는 시스템에 대한 제동 걸기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다른 소수자 운동과 달리 당사자가 직접 발언할 수 없는 구조의 비인간 동물의 권리를 포함한 생태 문제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배제-포섭의 정치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자본 중심의 대규모 토건 사업과 조망권으로서 자연환경에 대한 논의를 함께하는 모습이라던가, 개와 고양이는 애지중지의 대상으로 삼으며 동시에 축산동물에 가하는 학대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관점으로 미술관 안으로 들어와 보자. 비인간 동물 심지어 살아있는 생물을 재료나 대상으로 창작에 동원하는 경우는 많았다. 심지어 전위적이며 실험적인 것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라는 말로 갈음하며 여성과 소수자를 타자화하던 예술의 모습이 떠오른다.

  • Go-vegan, Un-learning : 비거니즘으로 그리는 문화 예술의 새로운 지형도
  • Go-vegan, Un-learning : 비거니즘으로 그리는 문화 예술의 새로운 지형도
Go-vegan, Un-learning : 비거니즘으로 그리는 문화 예술의 새로운 지형도
(2020, 통의동 보안여관, 기획 : 김화용) (포스터 디자인 : 우유니게)

기후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사회 성찰적 시각으로 세계를 반영한다 생각했던 예술이 인간 중심적 태도로 비인간생물의 희생 위에 이루어졌던 것은 아닌지 예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동물권, 생태주의, 비거니즘의 맥락으로 미래의 미술관의 모습을 고민해보는 3개의 섹션, 총 8개의 릴레이 토크로 구성했던 프로젝트이다.



# 인간(예술가), 창작, 자유

도대체 인간중심주의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던 것일까. 철저하게 신을 향하는 방식으로 삶의 규범이 구축된 중세시대에는 예술도 신과 종교에 기여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수 세기 개개인을 강력하게 지배한 신 중심의 철학이 무너지고 인간 존재를 중시하는 사고로 이전하면서 개인의 자아가 형성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창조를 인식하였다. 인간의 주체적 의지와 자유로운 상상의 긍정들은 현재 우리가 인식하는 문화예술의 성격에 중요한 근간이 되었을 테다. 인본주의는 애니미즘1) 도, 샤머니즘도 그리고 자연주의도 모두 열등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수 세기를 거쳐 오늘날에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까지 만나 어그러진 채로 팽창되어 터지고 무너지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 사회를 운운하는 현재, 우리는 인류 역사의 가장 강력한 감염병 위기에 봉착했다. 이렇게 장기화될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백신의 등장으로 긴장을 풀려던 찰나 다양한 변이가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다. 이제 인간은 무언가를 예측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내려놔야 할 시간에 도달한 것 같다. 사실 인수공통감염병이 야생동물 학대에서 기인했다는 것은 코로나 이전부터 알려졌다. 또한 공장식 밀집 사육을 하는 곳을 중심으로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동물들의 바이러스성 질병을 매해 목격했고, 학살 수준의 살처분을 반복하면서도 인간은 축산 동물들에게 ‘집합 금지’를 내리지 않았다. 이 모든 징후가 말해주는 것을 제대로 듣지 못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다. ‘만물 중 영묘한 힘을 가진 우두머리(영장 靈長)’라는 착각을 이제 폐기하고 비인간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기민한 감각을 더 신뢰해야 할 때다. 큰 지진이 일어나기 전 서식지를 탈출하는 등 비인간 동물이 재난 직전에 보이는 초 직관적 행동 사례는 기원전의 기록에까지 남아있을 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은가.2)


# 플라스틱의 비애 그리고 수묵화

땅을 밟고 사는 인간에게 바다는 미지의 존재였고 여전히도 그렇다. 우리는 바다에 쌓이고 있는 해양 쓰레기 문제나 미세 플라스틱의 체내축적에 대해 최근에서야 더 알게 되었다. 플라스틱 계열 물질들이 가져오는 생태계 교란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되면서 수도 없이 쓰고 버리기를 반복한 행위를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된 것은 유의미하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후 SNS 등에서 자주 만나게 된 정보는 생분해 비닐, 생분해 플라스틱 용기에 대한 정보다. 대체로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많이 쓸 수밖에 없지만, 환경문제에 부채감 있는 기업이나 개인이 ‘착한 소비’를 위한 정보를 공유한다. 옥수수 등의 식물이 주원료이고 특별한 화학 처리 없이 매립 후 미생물에 의해 생분해된다고 한다. 새로운 소재의 등장은 자연 순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지만, 자꾸 ‘옥수수’와 ‘매립’이라는 단어에 눈이 간다. 이 대안 플라스틱 사용이 기존 플라스틱을 완전하게 대체하고 퍼질 가능성을 막연히 상상해 본다. 대부분의 바이오 플라스틱이라고 불리는 신소재는 옥수수 또는 그와 유사한 식물로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식량 재배를 위한 땅이 ‘플라스틱 재배’에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거대한 축산업의 사료를 만들기 위해 아마존 열대우림 등 산림을 파괴하여 그 땅에 옥수수를 재배하며 생긴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생각이 너무 부정적인 망상 같이 읽힐 수도 있겠지만 플라스틱이라는 소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를 생각해보자. 플라스틱 발명의 첫 시작은 1800년대 당구의 인기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의 당구공은 코끼리의 상아로 만들어졌는데 비싼 가격으로 인해 대중화를 위한 재료도 필요했지만, 무엇보다 무분별한 코끼리 밀렵의 문제도 컸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러니하게도 플라스틱에 관한 연구는 비인간 동물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그 후 플라스틱은 병원의 의약품 용기로, 일상생활의 밀폐 용기로 사용되면서 감염의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한 혁명적 존재가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위기라는 두 가지 재난이 교차하는 시기에 살면서 플라스틱의 의미 있는 가치와 오남용의 폐해, 이 양면을 동시에 직면하게 된다. 어쩌면 현재 플라스틱을 둘러싼 문제는 소재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헐값에 거래하고 함부로 버릴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 인간이 만든 상황에 있을 것이다. 두 측면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부분만 떼어내 이야기하면 결국 다음을 위한 논의는 불가능할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수묵화만 지지할 거냐’라는 말의 오류는 바로 여기에 있다. 환경 그리고 비인간 생명에 덜 빚지는 것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아크릴, 플라스틱 같은 합성수지 재료는 무조건 반대하고 다시 자연으로 편하게 돌아갈 것으로 보이는 생분해 플라스틱이라던가, 자연적 재료만 이용해 창작할 것 같은 수묵화를 먼저 떠올리는 것, 이것도 일종의 ‘그린워싱’이고 그것이 만든 오해다. 안타깝지만 바이오 플라스틱이 완벽하게 생분해되어 비료화 되려면 특정 온도, 습도에 매립되었을 때에 한정된다. 하지만 우리는 사용 후 종량제 비닐봉지에 넣어 버리기 때문에 매립이 되더라도 원하는 습도로 유지되기 어렵다. 또한 많은 경우 소각되는 것이 현실이다. 바이오 플라스틱에 대한 지자체의 폐기물 기준은 여전히 분명하지 않은 채 생산라인에서 만들어진 ‘착한’ 정보만 넘쳐난다. 수묵화를 위한 재료인 먹이나 전통 안료는 또 어떤가. 먹은 전통적으로 소나무를 태워 만들지만, 그것을 동물의 가죽이나 뼈 혹은 물고기의 부레를 삶아서 얻는 동물성 풀인 아교로 반죽해서 만든다. 심지어 저가의 먹은 석유 화학 제품인 카본에 다시 아교를 섞는다. 전통 안료의 경우도 동물성 성분은 다양하게 사용되고 광물에서 얻는 경우더라도 언제까지 캐내어도 충분한 물질인지 현재의 생태적 관점에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

  • 제로의 예술 (2020-21, 공동기획 : 강민형, 김화용, 전유진) (포스터 디자인 : 어라우드랩)
  • 제로의 예술 (2020-21, 공동기획 : 강민형, 김화용, 전유진) (포스터 디자인 : 어라우드랩)
  • 제로의 예술 (2020-21, 공동기획 : 강민형, 김화용, 전유진) (포스터 디자인 : 어라우드랩)
  • 제로의 예술 (2020-21, 공동기획 : 강민형, 김화용, 전유진) (포스터 디자인 : 어라우드랩)
  • 제로의 예술 (2020-21, 공동기획 : 강민형, 김화용, 전유진) (포스터 디자인 : 어라우드랩)
  • 제로의 예술 (2020-21, 공동기획 : 강민형, 김화용, 전유진) (포스터 디자인 : 어라우드랩)
제로의 예술 (2020-21, 공동기획 : 강민형, 김화용, 전유진) (포스터 디자인 : 어라우드랩)
제로의 예술은 예술의 견고한 프레임을 돌아보며 제도나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자/시민/활동가 등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그 태도를 배우면서 공공예술의 재배치를 시도한 프로젝트이다. ‘과정의 제로’, ‘차이의 제로’, ‘제로의 거리’를 주요 가치로 젠더, 지역, 기술 교육에서의 격차, 예술작품 생산의 반환경적 문제 등 현시대의 문화-예술이 마주한 문제를 고민했다. 특히 <우리는 오늘도 내일을 끌어 쓴다>, <박물관 미술관 동물원>, <무엇을 무엇으로 만들까>를 통해 기후재난 시대의 시각으로 예술의 패러다임을 반성적으로 고민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https://0makes0.com/



# 축적하고 생산하는 교육이 아니라 폐기하고 이별하는 교육

쉽게 재료에 대해 오해를 하는 것도, 환경에 기여하는 소비를 했다고 믿는 것도 어쩌면 우리 삶의 많은 과정이 분절되어 있고 블랙박스화되어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가 많은 것을 대량생산과 외주화하면서, 공산품들이 상자 속 상품으로 완성되기 전의 모습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이는 창작 재료나 식재료도 모두 마찬가지다. 여기에 창작을 위한 재료는 예술의 권위까지 더해져 항상 재현과 보존의 능력에만 그 관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다양한 미술 재료에 비인간 동물을 착취한 재료가 들어가는지 일일이 이 자리에서 언급하지 않더라도 회화 작업 후 생기는 오수, 사진 작업 후 남는 현상액 등을 폐기하는 방법을 진지하고 집요하게 알려주는 과정은 전문 교육 과정에서도 없었다.

지역에 이주하여 살게 된 후 4~5월이 되면 고사리를 직접 채취해 씻고 데치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 한 해 동안 나물로 먹는다. 그 과정을 직접 해보게 된 후 식탁 위 갈색의 고사리가 땅에서 첫 순을 내밀 때는 전혀 다른 색 다른 모양의 식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겨우 한 끼 먹을 수 있는 적은 양의 그것도 엄청난 노력과 탐색이 녹아들어 식탁에까지 올라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좀 실없는 비유이긴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연결감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대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때 더 잘 오해하고, 함부로 다루며 때로는 쉽게 폭력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대량생산 체제는 수많은 것들과의 연결감을 끊어 놓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그 흐름을 미약하게나마 볼 수 있는 것과 공장 안으로 들어가 완전히 가려진 것은 많은 감각을 다르게 한다. 생태적 감각을 살리는 교육은 자연적인 것을 전혀 다루지 않더라도, 우리가 학습하고자 하는 분야의 재료부터 폐기까지 과정 전체를 확실하게 인지하는 것, 과정 중 지워졌던 부분까지 파악해 보는 것, 그래서 순환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팬데믹 이후 생활 방식이 바뀔 수밖에 없었던 만큼 그것을 반영하는 새로운 언어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앤트로포즈(Anthropause)3), 인류 휴지나 인간 정지 정도의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는 인간은 이를 일시적이거나 임시적인 멈춤 정도로 여기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인류 휴지는 비인간 동물이나 생태적 측면에서는 인류에게 던지는 경고이자 선언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재난 국면은 교육가, 예술가, 학생 그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모두에게 낯설고 예측 불가능하다. 교육 실행자가 교육받는 자에게 ‘앎’을 전하고 그 지식이 삶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교육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교육에서 필요한 것은 삶의 개선과 생산을 위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멈춤점에 동등하게 서서 기존의 사회 규범, 삶의 속도, 인식 속의 고정관념 같은 것들을 하나씩 폐기하는 현장이 되어야 한다. 특히 문화예술교육은 예술의 전복적 상상력과 함께 안락했지만 낡아버린 껍데기를 깨는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 과정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표현 방식을 구축하는 현장이 될 것이다. 멈춤점에 함께 서서 순환의 감각을 회복하면서 생기는 새로운 감각이 그 새로운 판의 도구가 되기를 기대한다.

1) 자연계의 모든 사물과 무생물적 자연 현상과 동·식물 모두에 생명과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는 세계관
2) 고대 로마의 저술가 클라우디우스 아에리아누스 (Claudius Aelianus)의 헬레케 지진에 대한 기록
3) 옥스포드 랭귀지는 2020년 전례 없는 올해의 단어(Words of an Unprecedented Year)에 ‘anthropause’를 선정했다.

 

김화용 / 미술 작가 이자 기획자
고정관념과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며 이를 둘러싼 제도, 경계, 다양성, 젠더에 대한 고민을 만남, 여행, 워크숍, 퍼포먼스, 문화예술교육 등의 방법으로 작업해왔다.
<문화 생산자를 위한 공간 : 가옥>의 워크숍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삶과 일상에서 함께하는 작업 그리고 작업 안 에서 여러 협업의 가능성을 실험했고, 사회와 예술의 관계 및 공존을 고민하는 <옥인 콜렉티브>라는 미술가 그룹에서 활동했다.
최근에는 삶을 예술적이고 정치적으로 구성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두고 있고 예술이라는 신화 뒤에 가려져 있던 비인간 동물의 착취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어스바운드>(2020), <올해의 작가상 2018>(2018), <역사를 몸으로 쓰다>(2017) 등의 전시에 참여했고 〈Go-vegan, Un-learning: 비거니즘으로 그리는 문화 예술의 새로운 지형도〉(2020), <제로의 예술>(2020-21)등의 프로젝트를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