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긋한우정
- “개와 고양이의 정원”
- 박은정, 톱니귀
- 20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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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봄봄 32호
생태를 바라보는 시선의 높낮이
“개와 고양이의 정원”
휴지통, 창고, 혹은 그 외
박은정, 톱니귀
개와 고양이의 정원, 합정지구의 사사로운 소모임
합정지구는 비영리전시공간으로 2015년 미술계의 다양한 반경에서 여러 세대와 교류하는 작가가 동료 예술가와의 협업을 선보이고 싶어 시작했다. 임진세 개인전⟪막다른 곳⟫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이 공간의 주된 축이 미술계 동료 예술가들이라면 다른 한 축으로는 미술계 밖의 우리들 몇몇이 있었다.
우리는 20~30대에 홍대 부근 여러 동네를 옮겨가며 살았다. 높아지는 집세 때문에 어디 마을버스 종점으로 이사 가고 결혼과 직장으로 활동 반경을 옮겨가며 떠나고 싶지 않아 동네에 남아있는 친구들이다. 우리들의 친구가 없는 돈을 털어가며 얼마나 운영될지 모르는 전시공간을 열었으니 걱정과 함께 응원하고자 전시 오픈 때마다 방문하고 전시 지킴이로 도와주고, 그렇게 오가며 이야기 나누면서 생각했다. 합정지구로 인하여 동네에서 함께 살다 떨어진 우리가 큰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니 우리끼리 재미난 것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여기 모인 친구들의 소소한 일상의 욕망을 실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여기는 예술가들과 동네 주민이 있으니 함께 할 사람도 많을 것 같고 더욱이 합정역 근처 동네 초입에 있어 오고 가기도 편했다. 서울시 ‘마을예술창작소’에 선정되어 활동비도 확보했다. 그리고 삼십 대 여성을 중심으로 개,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거나 텃밭과 식물 키우는 것에 관심이 많고 좋은 먹거리와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모아 2016년부터 <개와 고양이의 정원(이하 개고정)>이라는 이름으로 6년째 활동하고 있다. 처음에는 반려동물 수제 간식을 만들거나 셀프 미용법도 배우고 동네 텃밭에 놀러 가는 반려동물 동반 소모임을 해봤다. 하지만 사람과 먹을 것이 많은, 소란한 곳에서 동물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는 점점 반려동물 동반 모임 대신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이나, 갖고 있는 재능을 선보이는 활동을 주로 가졌다. 우선 사람들이 찾아오려면 공간이 편해야 했기에 상주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쓸고 닦고 가꿨다. 기부받은 화분 식물과 문래동 옥상 텃밭에서 씨가 잔뜩 담긴 흙을 옮겨와 합정지구 1층 데크에 작은 정원도 만들었다. 때마다 열리는 합정지구 전시와 작품들로 새롭게 변하는 공간에서 모임이 있을 때마다 좋은 먹거리를 준비해 넉넉한 마음을 선사했다.
흙으로 도자기 그릇을, 나무로 수저와 나이프를 만들고 유튜브와 솜씨 좋은 친구를 스승 삼아 마크라메나 천연랩 등 이것저것 만들었다. 집 안팎에서 식물을 키워 정원을 만들어 보고 텃밭을 일구고 김장도 했다. 그림을 그리고 책도 읽고 시를 쓰거나 공부도 하면서 이런 삶, 저런 삶을 들어보았다. 반려동물도 아이도 식물도 함께 돌봐주고 연말마다 크리스마스 리스 만들기를 하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갖고 있던 예술 활동의 열망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마음만 있고, 시도하지 못한 행동력들은 ‘서울시 마을예술창작소’라는 제도의 지원을 통해 실행했다. 더 시도하고 더 나아가 보면서 현실에 맞춰가는 경험을 지속해서 했다.
자기만의 목공 일을 하고 싶었던 성민은 <나무 그릇 만들기> 워크숍을 열면서 <평소공방>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나무 그릇 만드는 것은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무 한 토막을 시간을 들여 깎고 사포질하고 기름칠의 반복이다. 시간을 들여 이 살핌을 무한 반복해야 맘에 드는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니, 이 경제성 없는 목공 워크숍을 열며 평소공방은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결혼과 육아 때문에 본의 아니게 그림을 멈추게 된 작가와 좀처럼 창작의 기회를 만들지 못한 작가가 개고정에서 그림점을 보며 만난 인연으로 살림과 돌봄에 관한 전시⟪살림⟫을 열었다. 개고정에서 첫 태교를 하고 육아를 한 친구는 아들의 입으로 들어간 모든 생명(식자재)을 그림으로 그려가며 고마움과 존중을 표하고 모두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 돌잔치를 성대하게 열었다. 자기 것이 하나도 없다는 직장인 친구들은 ‘자기만의 것’을 만들었고 퇴직하면 해 볼 수 있는 일을 실행하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알아갔다. 도시농부시장 일을 하는 송희는 생태적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스스로도 그러한 삶을 살고자 한다. 이 친구는 반려견 호두와 텃밭을 일구는 일상을 기록한 작업으로 얼마 전 플랫포밍 합정지구 전시 ⟪짐승에 이르기를⟫에 참여했다. 합정지구로 인연을 맺은 예술가들은 개고정 활동을 하며 알게 모르게 참여하며 소소한 재미를 누리고 낯설고 소외된 주제로 소규모의 지구 세미나/렉쳐를 열며 공부하고 만나며 인연을 만들어 갔다.
여러 반려 존재와 살아가는 삶, 그래서 생태적으로 살아가고자 일상에서 실용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생각되는, 또는 쓸데없다 생각되는 것을 직접 만들어 보고 먹으며 이야기 나누었다. 다채로운 인연들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살아가는 삶, 그리고 평범함 속에서 예술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해왔다. ‘개고정’에서 중심되게 활동했던 친구들은 이제 30대 후반에서 40대로 접어들었다. 그들의 활동과 그것의 주제는 곧 그들이 삶을 대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이제 이들은 팬데믹으로 인해 조금은 더 빨리 찾아온 듯한 불안정한 삶 속에서 그 자세를 이어가기 위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 중이다. 그래서 모두 바삐 지내고 예전만큼 모이지 못한다. 이런 시기에 개고정 활동을 기반 삼아 긴 호흡을 갖고 작업할 수 있는 《플랫포밍 합정지구》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이 아닌가 싶다.
신생 공간이었던 합정지구가 잘 되려면 사람들이 많이 오가야 좋다며 사사롭게 개고정 활동이 시작됐는데 그 활동들이 쌓여 ⟪플랫포밍 합정지구⟫ 전시와 프로그램으로 연결되고 있다. 처음부터 개고정을 함께 만들어 온 톱니귀는 개고정 활동의 주제들 소규모 가구와 DIY, 생태적 삶과 반려 존재와의 삶 등을 기반으로 2020년부터 ⟪플랫포밍 합정지구⟫를 기획하며 새로운 접점을 만드는 중이다.
플랫포밍 합정지구 #2, [꼭 움켜쥐다 스르르 놓았다_강기석], photo. 정영돈
<휴지통, 창고, 혹은 쉬어가는 코너>
얼마 전, 개에 관한 이야기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휴지통에서 버려진 글을 하나 발견했다. 한 대학교수가 ‘가출한 개를 찾아주면 150만 원을 사례하겠다.’는 익명의 광고를 게재했다는 글. 며칠 뒤 그는 그 광고로 인해 수통의 장난 전화와 협박을 받았다며 “짐승 학대자들에게 답한다”는 분노의 글을 게재했다. 처음에는 우스운 마음에, 그다음에는 의아한 마음에 그 이상한 글을 자꾸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글이 휴지통에 던져진 시기는 1991년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되던 해이다. 한국에서는 분신 정국으로 수많은 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이어갔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이 결성되었다. 그 사이 김학순 운동가의 위안부 피해 사실 최초 공개 증언이 나왔으며,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가 발행되었다. 나는 현기증을 느끼다가 이러한 시점에 한 대학교수가 자신의 개를 간절히 찾는 글이 게재되는 <휴지통> 코너가 궁금해졌다.
전시장을 일종의 월간지라고 가정했을 때 그것의 <휴지통> 코너, 즉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지만 어느 구석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전시가 열리는 날 은정은 관객과 나눌 음식을 준비한다. 은정/세정/그륜은 오후 12시경 전시장의 불을 켜고 작품의 상태를 확인한다. 종종 미디어 기기가 작동되지 않아 곤혹스러워하기도 한다. 관객을 맞을 준비를 마무리한 후 공간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여러 일을 하다 몇 장 남지 않은 전시 핸드아웃을 발견하고는 출력해 서류함을 채워둘 것이다. 지하 전시장 커튼 너머에는 작은 사무실 겸 창고가 있는데 중대하거나 사소한 회의와 만남이 이루어진다. 다음 전시를 위한 회의를 하기도 하고 가끔은 전시를 마감한 후에 사무실에 모여 밀크티를 마시며 그동안 미뤄둔 책을 함께 펼치기도 한다. 합정지구는 인근 지역 주민과도 연이 있다. 합정지구 우측 맞은편 건물에 사는 할아버지는 은정이 가꾸는 데크 정원에 자신이 특별히 아끼는 식물의 씨앗을 선물한 적이 있다. 건너편에는 주차장이 있는데, 주차장 사장님은 버려진 현수막으로 주차 금지 고깔을 손수 개조했다. 은정과 할아버지의 정원과 주차 금지 고깔이 창가에 놓인 작품과 뒤섞인다. 전시가 종료되면 작품이 걸려있던 자리에 남아있는 못 자국을 메우고 남은 자재를 전시장 뒤편 사무실에 쌓아둔다. 이렇듯 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전시장은 사실, 주변의 사사로운 것들로 분주하다. 이것들은 전시공간을 둘러싼 물리적인 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렇기에 당연하게 여겨진다.
신문의 휴지통 코너는 생각해보면 이상한 코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면 아예 지면에서 빼면 될 것을 구태여 지면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언론사의 존폐에 위협이 되어 배제되거나 구석으로 몰려 일축되는 이야기와 달리, 용인될 수 있는 우스갯소리로서, 혹은 쉬어가는 코너로서 자신의 구역을 확보한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바로 이 휴지통 코너 속 세속적인 이야기에서 1면에서는 발견할 수 없던 당시의 생생한 정서, 감정, 혹은 의외의 디테일이 깃들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곤 했다. <개와 고양이의 정원(이하 개고정)> 연계 전시인 《플랫포밍 합정지구》도 이와 비슷하다. 《플랫포밍 합정지구》는 전시의 영역을 개고정 모임과 지구 세미나/렉처 프로그램 그리고 합정지구와 느슨하게 연결되어있는 이웃의 창작물로까지 확장해보자는 소박한 바람에서 시작되었다. 전시장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활동을 전시로 연결 지으면서 활동의 유기적인 구성과 그것의 생리 작용이 드러나기를 바랐다.
플랫포밍 합정지구 #2, [세디: 도도를 만나는 방법_권동현+권세정], photo. 권동현+권세정
플랫포밍 합정지구 #1, 전시 전경, photo. 홍철기
플랫포밍 합정지구 #2, [무니페리의 리서치위드미], photo. 무니페리
플랫포밍 합정지구 #1, 전시 전경, photo. 홍철기
《플랫포밍 합정지구》 이전에도 개고정 활동이 전시장 안으로 들어온 적이 있다. 2018년 3월에 열렸던 2인전 《살림》전이 그것이다. 참여 작가 중 한 명인 한수자는 전시 연계 드로잉 워크숍을 진행했다. 은정은 함께 사는 비인간 반려 존재의 모습을 특유의 색채로 그려냈으며, 자신이 늘 담당해오던 오프닝 케이터링을 전시장 안으로 들였다. 2020년 《플랫포밍 합정지구#1》은 전시이자 하나의 플랫폼으로 작동했다. 전시에는 미술 작가이자 식물 치료사인 김이박, 합정지구 맞은 편에서 대롱 전시관을 운영하며 스스로 삶을 조직할 수 있는 대롱 시스템을 개발하고 이를 응용해 작품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는 김신재 개발자, 자신을 위한 가구를 제작한 것을 계기로 1인 여성 가구를 위한 가벼운 가구를 제작하는 소목장 세미, <버드나무 가게>라는 공동체를 꾸리고 활동하는 장자인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의 활동은 일상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 작가들이 진행하는 워크숍, 세미나, 렉처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활동이 전시와 함께 제시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올해 5월에는 《플랫포밍 합정지구#2》의 일환으로 독립 기획자 정희영과 전시와 워크숍, 그리고 퍼포먼스가 연계된 《짐승에 이르기를》을 열었다. 올해에는 주제를 좁혀 인간과 비인간이 마주하는 다양한 층위의 순간들에 집중하고자 했으며, 오는 10월에 웹도록을 발간할 예정이다.
- 박은정
- <개와 고양이의 정원>을 운영하다 합정지구 운영진이 됐다. 일상에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그리고, 요리를 할 줄 알아 이 능력으로 경제적 기반을 만들고 있고, 때 되면 알아서 잘 자라고 생명력이 질긴 식물을 기르려고 한다.
ciudad80@naver.com
- 톱니귀
- 톱니귀는 권세정의 생계형 계정이다. 권세정은 합정지구 운영진으로 전시 공간을 관리하고 때때로 공간 디자인과 설치를 담당하고 있으며, <개와 고양이의 정원> 멤버(?!)로 2020년부터 《플랫포밍 합정지구》를 기획 및 진행해오고 있다. 톱니귀 토끼의 귀처럼 부딪힘, 충돌, 마찰이 빚어낸 너덜너덜한 모양을 흥미롭게 생각한다.
raggylug.in.seou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