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긋한우정
- “안녕 지구불시착!”
- 허혜윤 _공간 쌀ssal
- 2021.10.14
-
지지봄봄 32호
생태를 바라보는 시선의 높낮이
“안녕 지구불시착!”
동네에서 만난 작은 책방과 사람들, 그리고 택수
허혜윤(공간 쌀ssal)
이 책방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간다. 사람들만큼 다양한 이야기도 오고 간다. 이야기가 그저 흘러가지 않도록 같이 글을 쓴다. 책으로 묶어내기도 한다. 그림으로 그 이야기를 표현하기도 하며, 시를 쓴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이야기가 공간 곳곳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공간 가운데 한 친구가 있다. 택수! 지구불시착이라는 이름을 지은 장본인. 지구불시착을 안다면 택수를 모를 순 없다. 지구불시착에서 일어났던 재미난 일들은 그가 붙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인상적인 이름을 짓는 그를 작명가로 소개하고 싶기도 하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모으는 장을 만드는 택수, 이번에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지구불시착을 찾았다.
자기소개와 함께 지구불시착 공간을 소개해주세요.
나는 서점을 하고 있다고 소개하는 걸 좋아해요. 지구불시착은 서점입니다. 꿈마을 협동조합이 만든 마을과 마디라는 카페 안에 제로웨이스트샵 새록, 마디상회와 같이 공간을 사용하고 있어요. 전에는 ‘이런 곳에 책방이 있단 말이야?’ 하는 공간에 있었어요. 꿈마을 협동조합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출퇴근하는 이곳이 마을이었구나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꿈마을 협동조합에서 사람과 공간을 발견하고 투어하는 마을여행단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그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이 지구불시착을 알게 되신 거예요. ‘우리 동네에 이런 책방이 있다니!’ 하고 생각하셨다고 해요. 지구불시착이 마을 여행의 한 코스가 되었어요. 그때 마을과 마디라는 공간에서 책방을 같이 운영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아무래도 유동 인구가 적고, 월세에 대한 부담이 있어서 공간은 옮기게 되었어요. 이전 공간에서는 2년, 이 공간에서는 3년째 운영하고 있어요.지구불시착이라는 이름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이 많아요. 다들 우주에서 지구로 불시착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냥, 우리 모두가 지구에 불시착했다고 생각해요. 지구에 잠깐 살고 가는데, 우리가 사는 동안에 불평과 불만을 품고 살잖아요. ‘시청 앞에는 왜 똥같이 생긴 조형물이 있는 거야’, ‘사람들은 왜 자꾸 나누기하며 사는 거지 젠더, 정치, 지역, 학벌’ 그런데 한편에서는 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죠. 제로웨이스트,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사람들, 창조적인 일을 하고 같이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들이요. 이 사람들이 많아져서 지구에 불평과 불만이 제로가 되면 지구에 완전 정착. 우리는 지금 잠깐 지구불시착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의미로 지구불시착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여기에는 말씀하신 노력하는 사람들, 작은 변화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인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데 나는 아니에요. 나는 불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이 마을 커뮤니티에 엄청난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그분들한테서 많이 배우고 있죠.제로웨이스트샵 새록이 이 공간에 7월 6일에 들어왔어요. 지금도 ‘제로웨이스트 한다고 좋아진단 말이야?’ 착각을 하는 것 같아요. 지금도 ‘플라스틱이 얼마나 좋은데.’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로웨이스트 샵이 같은 공간에 들어오고 매일 제로웨이스트에 대해 하루에 한 번씩 말하니까 그 말이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어요. 나 같은 일회용품 사용 옹호자도 일상의 어느 한순간에 ‘어? 이거 제로웨이스트인데!’ 생각을 하게 하는 힘이 있어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또 이 공간에 찾아오니 거기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요. 나까지 그 방향을 같이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어요. 우리가 생태와 지구를 생각하고 있다는 메세지를 던지는 일이죠. 점점 좋아질 거예요. 이런 행동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필요 때문에 나왔다고 생각해요. 필요한 시점을 알았다는 것, 언젠가 알아야 할 일이라는 것. 이런 메세지가 세월이 갈수록 커지는 1도를 바꾸는 힘인 것 같아요. 고등학교 선생님이 한 말 중에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지금 1도를 바꾸면 나중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누가 응답을 하나?’, 그건 기다리는 거죠. ‘응답해.’는 아닌 것 같고요. 책방은 사람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늘 공간에 도착했을 때 실크스크린을 하고 계셨었는데, 지구불시착 연구소 프로젝트 중 하나이지 않았나요?
네, 그렇지요.‘아무것도 모르지만 같이 해보자’를 모토로 기획했다고 알고 있어요. 관심은 있지만 모르는 걸 함께 모여 찾아가고 알아가며 실행해가는 모습에서 상호학습의 장을 본 것 같았어요. 프로젝트에 대해 좀 더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처음에 일단 지구불시착 연구소라는 말을 떠올렸어요. 그러고 난 다음에 무엇을 할까 고민했어요. 연구소라고 이름을 붙였으니 연구는 해야겠는데 생각했어요. 보통 공릉동 꿈마을 배움터라고 해서 전문가 초빙이 기본이에요. 그런데 책방은 전문가를 부를 여력이 없어요. 그 대신 유선생이 있으니까. 구글 선생과 같이 유튜브 보면서 잡다한 지식 조금씩 넣어서 뭔가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또 모여서 같이 해야 하는 사람들, 동기 부여자들. 이 사람들이 모여서 해보면 재미있겠다 생각해서 만들었죠. 엄청나게 반응이 좋았어요. ‘뭐 이런 프로젝트 다 있냐, 전문가 없이 모여서 뭘 한데(웃음)’ 했어요. 그런데 잘 되는 거 보니까 또 신기한 거죠.관에서 하는 동네 배움터는 전문가가 오니, 그 지식을 다 뽑아가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잖아요. 우리는 그게 아니에요. ‘진행하는 나도 모르는데’가 전제이고. 그냥 같이 모여서 하자는 마음이죠. 그래도 주최 측에서 요만큼이라도 알아야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서 긴장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의 컨셉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공표하고 시작했으니, 이미 핑계를 마련해 놓은 거죠. 여러 방법을 보고 그 안에서 우리 나름의 방법으로 만들고 있어요. 실크스크린 1, 2회 하고 나서 무드 등도 만들자, 액자도 만들자, 참여한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계속 나왔어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모이지 못하고 있어요.
이전에 진행하신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해요. ‘에곤실례합니다’는 드로잉 모임, ‘하루만 하루끼’는 글쓰는 모임, ‘아이 캔 책’은 책만드는 모임이었죠. 오고가며 보기도 했고, 제가 참여한 프로그램이 있기도 한데요. 진행하는 프로그램들 제목을 보면서, 제목에 있는 언어유희가 참 재미있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항간에는 지구불시착은 제목을 알리기 위해 프로그램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웃음)책방 관련해서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면 고양이가 다 한 마리씩 있는 거예요. 손님들이 고양이가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요. 고양이가 없으면 책방을 못 하는 것인가 하고 ‘에라 묘르겠다.’라고 이름을 걸고 고양이를 그렸어요. 또 이전 책방은 두꺼운 철문이 출입문이었어요. 거기서는 ‘밀실의 소설가들’이라는 이름으로 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이사 오고 나서 여기는 밀실이 아니니까 허름한 하루끼가 되어 글을 써보자 했던 거죠. ‘코피전’이라고 연말에 전시도 했었어요. 동네 사람들 얼굴을 그리고 그 위에 코피를 그렸어요. 코피 흘리게 열심히 산 당신 수고 많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러고 나서 사람들과 많이 가까워졌어요. ‘별이 빛나는 바람에’라는 라디오를 표방한 인스타 라이브도 했어요. 엽서를 받고 읽어주고 답장해 주는 프로젝트였어요. 마을에서 물건을 받아서 경매도 했어요.
늘 하기 전에는 고민과 걱정이 많은데, 끝나고 나면 다 하더라고요. 책방에서 많은 경험을 해요. 지구불시착 관계자들이라고 부르는데 이 사람들 덕분에 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돼요.
지구불시착 관계자들은 어떤 친구들인가요?
관계자 중에 프랑스로 유학 간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보낸 편지를 받았어요. ‘안녕 사장님, 안녕 지구불시착, 안녕 지구불시착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 그 편지 안에 지구불시착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 안의 관계가 다 담겨있다고 생각했어요.책방을 하면서 정말 넓은 폭으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동네 친구, 멀리서 오는 친구 등 다양해요. 그 사람들을 모두 지구불시착 관계자들이라고 불러요. 또 책방에 맨날 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 명 다음에 한 명, 책방에 오면 서로를 알게 되죠. 아무 일 없이 책방 앞을 지나가다가 들리는 사람들이에요. 제가 잘못하고 있으면 신호도 보내주고요. 지구불시착을 가장 많이 지지해주는 사람들이에요. 손님들 오면 커피도 내려주고요, 책 찾는 거, 서가 정리도 도와줘요. 제가 책을 잘 못 찾는데, 그것도 같이하고요. 저번에는 관계자들 대상으로 ‘내맘대로 서가대전’을 열어서 친구들이 좋아하는 책들을 모아 서가를 구성해보기도 했어요. 올해 서른이 되어서 서른에 관한 책, 음식을 좋아하니 음식 관련 책으로 서가를 만든 친구도 있었어요. ‘이거 하면 재미있겠다! 어떨까?’ 하는 프로젝트를 실험해 볼 수 있는 자원이 되어주니 정말 좋아요. 누가 책을 내면 사주고, 거기에 영향받아서 책을 내기도 하고요. 이곳이 정말 특별하다기보다 어느 책방에나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운영하다보니 벌써 5년이 다 되어서, 이 친구들의 소식을 담은 관계자 신문도 있어요. 관계자들의 소식을 담은 신문이 3호까지 나왔어요.
3년 뒤 택수 사장님은 지구불시착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3년 뒤에? 진짜로 지금과 똑같이 하고 있을 것 같아요. 흰머리가 더 나고, 더 머리카락이 빠졌겠죠.변함이 없기를 바라고, 책방을 그때까지 하고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책방 없이는 상상이 안 돼요. 3년 후에도 책방에서 우리 같이 이야기합시다!
지구불시착의 숨은 이야기들을 들은 느낌이다. 이곳에 있기 전부터 여기에 있기까지의 이야기. 책방과 비슷한 시기에 동네에 이사를 왔다. 책장 위치가 변하고, 새로운 책과 물건이 들어오고, 새로운 가게도 생겼다. 3년간 오가며 공간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공간과 책, 물건들이 바뀌는 동안 그 가운데에서 그들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한 지구불시착 주인장 택수가 있다. 그의 말대로 3년 뒤에도 책방에서 이야기 나누고 있으면 좋겠다. 지구불시착 관계자들과 책들과 여러 재미난 프로젝트와 함께!
“베어 카페” 서촌에서 9월 16일에서 10월 16일까지
전시를 합니다!
택수 사장님의 드로잉 _ Photo.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 허혜윤 / 공간 쌀ssal
- 서울시 성북구 상월곡동에서 주로 생활한다. 동네에서 ‘야호’라고 불리며, 동네 친구들과 먹고, 놀고, 요리하고, 그린다. 주로 있는 공간은 쌀(Sangwolgok Social Art Lounge) 과 천장산우화극장이다. 올해는 동네 커뮤니티 월장석친구들 코디네이터와 공유성북원탁회의 공동운영위원장으로 동네 살림을 살피며 이곳저곳 바삐 돌아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