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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재춘 _커뮤니티 스튜디오104, 지지봄봄 편집위원
  • 2021.12.14

지지봄봄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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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들

기술 앞에 서면, 주눅이 드는 문화예술교육

임재춘(커뮤니티 스튜디오104, 지지봄봄 편집위원)

우선 밝히자면 저는 VR, AR, 메타버스, 이를 둘러싼 디지털 메커니즘과 같은 신기술을 잘 모릅니다. 진심으로 궁금하긴 합니다. 대체 이게 무엇인지, 왜 많은 이들이 이것을 활용하면 전에 없던 가능성이 생긴다고 하는지, 그들의 믿음처럼 진짜 그러한 것인지 말이죠. 한데 저는 의심도 많습니다. 그런 의심의 태도가 변화를 인정하고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수용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변화의 수용을 종용하고, 압박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체감하는 기술의 변화, 보이지 않는 기술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저마다 이해의 시간을 만들고 받아들임의 속도를 스스로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실천이라 생각합니다. 기술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같이 있는 저는, 그것이 나의 중년과 노년, 그리고 어린 두 딸과 그녀 친구들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지금 내가 알아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중입니다.

요 며칠, 문화예술교육 씬(scene)에서 기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제가 올해 관여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의 사업계획서들을 살펴보기도 하고 온라인에서 접근할 수 있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려보았습니다. ‘예술기술융합’이라는 조어가 창작 영역을 비롯한 문화예술교육에서도 사용되긴 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예술기술융합 외에 ‘온라인’과 ‘비대면’이라는 언어로 세분되어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크게 3가지 양상이 눈에 띄었는데, ①기술 자체를 경험하는 과정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 ②기술을 활용하는 도구적 관점에서의 문화예술교육, ③막연한 필요성과 기대감입니다. 그리고 아주 소수의 예술가, 문화예술교육 실천가들이 기술에 대한 비평적 관점을 가지고 자기 주도적으로 기술과 기술의 기술, 기술의 언어를 구사(④)하고 있었습니다.

기술 자체를 학습하고 경험하는 과정은, 코로나 이전에도 초등학생 방과 후 수업의 인기 프로그램인 코딩부터 영국 BBC가 개발한 소형 교육용 보드인 마이크로비트 해보기 등 ‘작동 방법’ 알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언급한 도구적 관점은 문화예술교육 x 기술에서 가장 흔하게 목격하는 케이스입니다. 프로그램(교육) 영상을 찍어서 송출하거나, 줌(zoom) 등 온라인 크라우드 미팅 플랫폼을 통해 활동이 이뤄지는 화상 교육 방식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고민하고 애를 쓴 흔적의 증표라 하면, 키트 등 재료를 사전에 참가자들에게 택배로 보내 동기부여를 하고 참여 활동을 독려했다는 점일 겁니다. 대체로 대면의 방법만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변경한 것들이 대부분이고, 이마저도 온라인에서의 대면을, 대면하지 않음(비대면)을 전제한 경우여서 문화예술교육에서 만난다, 함께 한다, 접했다는 것을 더 많이 생각하고 접근할 필요성은 더 분명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세 번째, 막연한 필요성과 기대감은 앞서 언급한 두 개의 양상에 걸쳐있는 현상입니다. 뭔가 새로운 게 생겼는데, 이걸 다 해야 한다고 하니 좋은 것인가 보다 하는 마음 같은 것입니다. 이전에 보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현란한 말과 비주얼에 자신도 압도되었을 때 다양한 관점, 메타적인 생각하기가 쉽진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화예술교육에서 관심을 많이 기울여야 할 부분으로 마지막 네 번째의 경우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실, 기술 변화에 따른 미래 사회, 인간의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한 사유는 생각보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오래되었다는 것은 상대적인 시간 감각이지만, 이를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면 매우 극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소수의 전문가, 예술가와 덕후들의 작업과 관심사였던 것에서 동시대 사람들의 공동 경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전염병이라는 위험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겪은, 질병과 죽음의 공포라는 공동의 사건과 시간은 기술과 기술 변화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당연한 현실로 인정하게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변화는 중립적이니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다면서, 내가 준비했으면 기회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위기가 된다(송길영, 「그냥 하지 말라」, 2021)는 말이 시대를 읽어내는 통찰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기술이 아니면 도태되거나 실패한다는 말이 나를 시장에서 잘 팔리게 하기 위한 역량을 요구하는 것 같아 마뜩잖기도 합니다. 예산 등 정책 주도성이 강한 문화예술교육 정책은 기술에 대해 어떤 태도와 관점, 방향성을 갖고 있을까요? 각 현장의 문화예술교육 실천가들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어떤 고민과 의지를 갖고 있는지, 기초-광역의 재단,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는 어떤 논의와 준비를 하고 있는지, 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모두 아직 이렇다 할 방향성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합니다. 못한 것이겠죠.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초식동물이 풀을 뜯으며 놀고 있다가 느닷없이 포식자를 대면했을 때 오금이 저린 듯 미동도 하지 못할 때처럼, 기술이라는 거대함에 짓눌려 문화예술교육이 지닌 자신의 가능성을 순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당위나 답이 아닌, 불확실함과 탐색을 기본으로 질문을 통해 성장한 서사의 동력이 잠시 끊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요. 기술 앞에서 너무 쫄아있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경험하고 보아온 문화예술교육은 언제나 새로운 이슈가 있었고,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하면 좋은가는 그때마다의 과제였습니다. 매번 서툰 부분들이 있었지만, 사람들을 모아 의견을 듣고 함께 학습하면서 실천의 방향성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는 시간의 중요함을 알고 있는 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방향성이 잘 구현되게 하기 위한 적합한 사업의 구조를 기획하여 실행하며, 방향과 방법, 과정이 관점에 조화로울 수 있도록 애쓴다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의 상식이 아니었던가요?

이러한 ‘과정의 문법’은 기술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기술이든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배우지 않을 도리가 없겠죠. 내가 적응하겠다 말겠다는 판단은 커녕, 부지불식간에 그 안에 들어와 버렸을 겁니다. 그래서 더욱 기술과 기술사회, 기술 내부의 메커니즘과 외부적인 메커니즘을 읽어내는 리터러시 경험이 민간, 공공 영역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송수연(언메이크랩) 님이 이런 얘길 해주셨습니다. 사회 전반에 기술 리터러시의 기반이 올라가야 하는데, 이 말은 지금은 누구나 배워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고 하더군요. 시간도 필요하고, 봐주기도 해야 한다고요. 너무 기술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야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기술의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르고 복잡해서 전문가들도 그 기술들을 읽기 어렵다고 합니다. 지금이든, 앞으로든, 기술 전문가든, 아니든 기술 자체를 알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그리고 중요한 게 우리 각자가 한 학습과 경험에 대해 각자 자기 언어로 발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들으면서, 그동안 문화예술교육의 나아갈 방향과 관점에 대해 해왔던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창한 이야기 같지만, 조금만 둘러보면 우리 각자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순간과 장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나의 기술 리터러시를 넓혀줄 학습 자료도 찾을 수 있습니다. 가깝게는 지지봄봄 32호 김화용, 송수연의 글을 읽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자료를 찾다가 발견한 것인데, 2015년 즈음 국내에도 많이 소개되고 활동하였던 최태윤 작가의 작업)과 그의 탈학교 워크숍의 문제의식, 실천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기술을 상상할 때, 내 삶과 연관성을 통해 기술의 은밀함을 감각하고 관찰하는 태도들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조만간 공모사업도 무인으로 진행되는 풍경을 마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키오스크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프로그래밍이 된 심사기준으로 판단하고 결정 통지문이 마트의 무인계산기 영수증 출구 같은 곳에서 나오는. 그런 상황이 되면 문화예술교육 환경과 현장은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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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태윤 작가 작업 소개
    - 최태윤 작가 홈페이지_https://url.kr/wv6mdz
    - 탈학교 워크샵(백남준아트센터)_https://njp.ggcf.kr/%ED%83%88%ED%95%99%EC%8A%B5-%EC%9B%8C%ED%81%AC%EC%88%8D


임재춘 / 커뮤니티 스튜디오104, 지지봄봄 편집위원
모든게 처음인 임재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