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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14

지지봄봄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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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너머 - 예술과 기술

기술적 유창성 이전에 서성이기

리모스코프(remoscope)와 테크진(Tech zine)

송수연 (언메이크랩)

자신의 감각과 방법으로 기술을 다루기

인간과 기계의 상호 작용이 높아지고 있는 환경에서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 기술도 늘어나고 있다. 예술과 기술을 연결 또는 융합하는 창작과 교육의 장들이 형성되고 있고, 많은 교육 과정이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다. 사람들은 기술은 도구적으로 이해하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술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잘 다루기 위해서는 여느 기예와 마찬가지로 관찰과 연습의 시간이 축적되어야 한다. 문제는 지금의 기술의 속도는 인간의 배움의 속도와 보조를 맞추는 방식으로 발전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의 기술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기술을 기능적으로 능숙하게 잘 다루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기술이 자신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가를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지금의 기술사회에 대한 비평적 관점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의미가 있다. 이는 기술에 대한 기능적인 지식이 없어도 가능한 방법으로, 기술 지형을 들여다보며 스스로 주변부적인 지식을 탐색하고 구성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 접근 방법으로 비판적 제작 도구로서의 ‘진 zine’ 만들기와 ‘무빙 이미지’제작을 소개한다.


 

6개의 규칙으로 만드는 무빙 이미지 ‘리모스코프’



 
카메라 고정 / 오디오 없음 / 효과 없음 / 편집 없음 / 줌 없음 / 최대 60초
(remoscope 리모스코프 / 뤼미에르 규칙 Lumiere Rules 1)



10여 년 전, 리모(Remo)라는 미디어 단체는 쉽게 영상 작품을 만들고 감상하는 워크숍 방법으로 ‘리모스코프’라는 무빙 이미지 실험을 했다. 리모의 비주얼 워크숍은 영상을 만들고 감상하는 과정으로 19세기 말 영화를 개척했던 뤼미에르 형제의 작품과 기술을 바탕으로 6개의 촬영 규칙을 기반으로 한다. 이미지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저장하고 재생하는 영화라는 기술의 과거 문법에서 미디어의 이해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단순한 규칙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고, 어린이와 어른 모두 접근 가능하며,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경계도 없었다. 이 워크숍 방법론은 디지털 기계로 인해 비주얼 이미지가 확장되던 2010년 전후의 시기에 실험되었고, 비주얼 이미지를 쉽게 다루기 위한 미디어 교육을 위해 시작되었다. 리모가 뤼미에르 규칙을 제작 문법으로 가져온 이유는 영상의 창작보다는 제작 영상에 대한 주관적인 시청 경험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6개의 규칙은 이용자의 창의력과 흥미를 제한하기도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리모에 남아 있는 몇 가지 무빙 이미지 기록을 보면 ‘1분’이라는 시간에 담긴 영상 푸티지는 일상의 면모를 지루하거나 진부하게 담고 있다. 그것을 보는 감상에 대한 교육적 측면에서의 의미 부여는 없다. 그러나 순간 반짝이기도 한다. 보는 것에 대한 ‘주관적 경험’을 강조하고, 그 경험을 함께 공유하는 의미가 컸다. 이 쉽고도 어려운 규칙을 매일 반복하며 무빙 이미지를 만들다 보면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리모의 워크숍 실험은 아쉽게도 짧게 끝났지만, 요즘처럼 영상 이미지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뤼미에르의 규칙으로 지금의 기술적 플랫폼이 만들어 내는 영상의 유행을 뒤집어 보면 어떨까?

리모스코프 포스터 - ‘뤼미에르 룰'로 만들어진 다섯 개의 다른 비디오의 스틸
리모스코프 포스터 - ‘뤼미에르 룰'로 만들어진 다섯 개의 다른 비디오의 스틸
(출처_https://remoscope.net/)


지금은 누구나 쉬운 촬영과 기록, 편집이 가능한 도구를 가지고 있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유통과 공유가 가능하다. 짧은 영상을 공유하는 틱톡(TikTok)은 자기표현의 생산 도구로 가장 주목받는 모바일 플랫폼이다. 이 모바일 기반의 플랫폼을 통해 미디어를 손쉽게 다루고 가지고 놀 수 있고 빠르게 공유할 수 있다. 틱톡의 영향력으로 인해 틱톡의 문법으로 교육 모델을 만들어 가는 스타트업도 생기기 시작했다. 플랫폼 위에서 세워진 규칙과 방법론을 가지고 개인의 감성을 공유하는 과정은 리모스코프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르기도 하다. 틱톡이 제공하는 영상 문법 위에서 사용자는 그것들을 흥미롭게 활용을 하며 그 문법을 뒤틀기도 한다. 그것은 분명 흥미로운 지시성이다. 그렇다면 그 지시성 자체를 다시 생각해 보고 그것을 분해해 다른 지시성을 만들어 내는 방법은 어떨까. 리모의 실험은 그런 의미에서 틱톡과 병치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또한 틱톡의 결과물에서 한 가지 더 들어야 봐야 할 것은 틱톡은 알고리즘 위에서 작동된다는 점이다.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편견과 혐오가 드러나는 콘텐츠가 유통되기도 한다.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지시성이자 꽤 불투명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지시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네트워크라는 창의적 연결의 도구는 모든 사람이 이 도구와 기술에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는 자율성과 개방성이라는 철학의 토대 위에서 출발했다. 틱톡이라는 앱도 그 유산에 빚지고 있다. 이 불투명한 지시성은 한편으로는 한없이 자유로우면서도 통제된 환경과 플랫폼을 만들며 이용자의 자율성을 조직하는 측면이 있다. 기업이 구축하는 네트워크들이 웹의 초기 정신을 벗어나 사용자를 데이터 조각으로 나누고 컨트롤한다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그러한 알고리즘적 조직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식으로도 이 리모의 실험을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


탐색과 배움의 도구로 진(zine) 만들기 




“The main rule is that there are no rules!”
주요 규칙은 규칙이 없다는 것이다.



‘fanzine’의 줄임말인 ‘zine은 “가장 사적인 미디어”로 다양한 하위문화에서 중요한 매체 역할을 해왔다. 예술, 문화, 정치, 젠더, 유머, 사적 이야기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개인의 파편화된 생각과 목소리를 비선형적 방식으로 자유롭게 정리하며 자기 연구를 시작하기 좋은 미디엄으로 안착하였다. 이런 진의 특징은 기술연구의 한 과정이자 기술 리터러시를 매개하기 좋은 도구로 기술에 대한 기능적인 지식이 없어도 기술 탐색이 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진의 저자가 될 수 있으며, 진문화가 공유하고 있는 DIY 태도는 이런 가능성을 만들어 가는 중요한 요소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제작문화(메이커 문화)가 자리를 잡으면서 Zine을 만들고 출간하는 활동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소량 인쇄를 벗어나 기술 매체를 이용해 자신의 관심사, 과제를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 가는 접근 방식도 있다. 이는 온라인을 통해 협업(공동저작)이 가능하다. 온라인 공동 문서 편집 툴의 활용, 인디게임 공간을 활용한 진 퍼블리싱의 등장도 새롭다.

2018년 테크진 페어 포스터
2018년 테크진 페어 포스터
(출처_https://techzinefair.org/)


기술에 대한 개념과 이슈, 메커니즘을 진으로 다루는 활동도 인상적이다. ‘테크진(Tech zine)'이라 불리는 이 zine들은 기술이라는 복잡한 주제를 친근한 매체의 형식에 담아낸다. 테크진의 방법론은 기술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사회에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어떤 패러다임이 사라지고 새로 생성되었는지 자기 연구(탐구)와 진의 제작 방식으로 접근하기 좋다. ‘컴퓨터 과학을 다루는 zine’, ‘인공지능 윤리를 다룬 zine’, ‘머신러닝에 관한 zine’, ‘스마트시티를 탐색한 zine’ 등 기술을 탐색하는 다양한 유형의 진이 가능하다. 진은 자기 지식으로의 정리와 제작적 만들기라는 기술을 가진 미디어로 진을 통해 기술에 대한 자기 관점을 만들 수 있으면서 동시에 촉각적 지식으로 모아들이는 방법으로 기술을 다룰 수 있다.

기술에 관한 연구나 탐색은 온라인 플랫폼, 코드, 알고리즘을 직접 다루지 않더라도 자신의 방식으로 기술의 역사와 구조를 탐색하며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접근해 볼 수 있다. 자신의 속도, 자신의 감각과 방법으로 기술을 다루기. 오래된 기술에서 단서를 찾고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더듬어 조직한 기술적 관점은 종종 더 기능적인 유창성을 향해 가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술의 빠른 속도는 더듬어 가기보다는 유창성의 양탄자에 바로 올라타기를 강박적으로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그 요청에서 잠시 물러서서 2가지의 방법을 생각해 본다. ‘리모스코프’의 규칙을 지금의 기술적 유행을 뒤집어 보는 놀이로, ‘진zine’은 자신의 관점으로 기술적 지식을 다루어 보는 것으로 말이다.

1) 리모스코프의 6개의 규칙이 참고한 뤼미에르 형제의 짧은 영화는 아래 링크에서 참고할 수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Auguste_and_Louis_Lumi%C3%A8re



※ 모든 사진은 송수연님으로부터 받아서 활용하였습니다.

송수연 / 언메이크랩, 지지봄봄 편집위원
기술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와 교육,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기술을 다루는 과정이 창의적이고 비판적 접근이자 문화와 예술의 여러 요소를 매개하는 생각과 실천으로 확장되는 것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http://www.unmakelab.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