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너머
- 디지털 기술 생태계에 대해 배워나가기
- 김민아 _artist & researcher
- 2021.12.14
지지봄봄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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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너머 - 예술과 기술
디지털 기술 생태계에 대해 배워나가기
김민아(artist & researcher)
1. 디지털 기술 생태계를 연구하고 예술하는 이야기
디지털 기술은 이미 우리 사회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디지털 기술 환경’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듯 이미 디지털 기술은 환경의 일부 혹은 나아가 환경 그 자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디지털 기술과의 접촉이 없는 주변 환경 및 일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쉽게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우리의 일상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디지털 기술의 기반 시설들을 살펴보면 우리의 일상이 이것들에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더 잘 알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의 기반 시설 중 하나인 거리의 전선들을 둘러보자. 모든 것을 작동하게 하는 전력과 모든 것을 연결시키는 네트워크가 저 기다랗고 지저분하게 얽힌 거리의 전선들을 통해 어딘가에서부터 흘러와서 사람들이 전기와 인터넷을 쓰면서 하루를 잘 살아가게 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새로운 사회-생활환경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사회-생활환경은 디지털 기술과 함께(디지털 기술을 내재하며) 새롭게 변화한다. 나는 흔히 디지털 기술과 환경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취하게 되는 ‘디지털 기술이 일으키는 (반)환경적 문제’와 같은 관점을 되도록 피하고 싶다. 친환경/반환경이라는 ‘환경에 좋음/나쁨’의 구도 대신에 ‘모든 것은 이미 환경적’이라는 관점에서(그러므로 디지털 기술도 환경 속에 있으며 환경 그 자체이다), 디지털 기술과 환경을 조명하며, 그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관찰하는 연구 및 예술작업을 하려 한다. 특히 나는 디지털 기술 발전의 이면에 남겨진 것들, 즉 우리가 간과하고 잘 보지 못하는 디지털 기술의 가려지고 버려지고 남겨진 부분들을 환경 속에서, 그리고 환경 그 자체로 바라보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나의 가장 최근 프로젝트 ‘Wired Ecology(케이블 생태계)’는 전선(혹은 케이블)과 이를 둘러싼 생태계의 여러 모습을 관찰하고, 전선이 디지털 사회 생태계의 새로운 구성 요소임을 발견하는 예술-리서치 작업이다. 전력과 네트워크를 공급하며 디지털 기술을 구동시키는 이 물리적인 전선은 현재 실내와 실외 - 공중, 땅 위, 땅속, 숲속, 바닷속 - 모든 곳에 걸쳐 존재하며 실제로 환경의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나아가 모든 곳에 존재하는 이 전선이 그것이 속한 장소 안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생태 요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전선 그 자체도 하나의 생태 요소가 되어감을 연구 도중 발견하게 되었다. ‘디지털 기술 환경’을 넘어 ‘디지털 기술 생태계’로까지 나의 관점이, 그리고 내 작업의 이야기가 확장된 것이다. 예를 들어, 육지에서는 덩굴식물들이 전봇대와 전선을 타고 자라나며, 새들과 각종 곤충이 전선에 앉거나 그곳에 거처를 마련한다. 바다 밑에 설치된 해저케이블 주변에는 그곳을 산란지로 삼는 물고기들과 전선에 기반하여 자라나는 바다 식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각종 생물에게 전선은 이미 거처이자 쉼터이며 생활환경이 되었다. 전선 그리고 디지털 기술에 ‘생명’을 내포하는 ‘생태계’라는 말을 붙인다는 것이 조금은 말이 안 되고 억지스럽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작업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기존에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생태계 속 개체들이 이미 디지털 기술 환경 속에서 디지털 기술과 물리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호작용으로 만들어내는 새로운 형태의 생태 현상들이 분명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이 만들어지는 모습들을 ‘디지털 기술 생태계’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제안해보는 것이다. 현재 이 케이블 생태계에 관한 작업은 영상과 디지털 아카이브, 설치물을 포함하는 ‘예술작업-세트’로 11월에 전시를 하는데, 나는 이 작업을 전시 가능한 예술작업이며 동시에 연구라고 주장한다. 기존의 예술계에서 예술작업에 요구하는 조형적이거나 미학적인 무언가가 이 작업에서 발견이 될까? 기존의 학계에서 연구에 요구하는 논리와 자료, 형태와 과정을 이 연구가 따르고 있는가? 둘 다 비켜간 것 같다. 아니, 애초에 둘 다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방식으로 시작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쪽저쪽에서 한 스푼씩만 퍼와서 내 마음대로 비벼만들고 예술-연구라는 이름을 붙인 ‘어떤 작업’인 셈인데 이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잘 모르겠다. 일단은 만들고 발표하고 보겠다.
2. 나는 준-예술가, 준-연구자로소이다
이러한 작업 방식 및 작업 형태 때문에 나는 종종 직업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받곤 한다. (혹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제대로 정의하고 증명하기를 강요당하곤 한다.) 학술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들여다보고 문제에 접근을 시도하지만, 답을 제시하고 무언가를 정의하기보다는 발견한 내용을 가지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발견한 내용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창작하고 공유하기 때문에 이것은 연구도 아니고 예술작업도 아닌 혹은 둘 다 가능한 무엇인 셈이다. 늘 내가 하는 작업은 어느 곳에도 뚜렷하게 속하지 않고 어느 곳의 법칙도 따르지 않으며 대신 어딘가의 경계에 서 있는 느낌이다. 여태껏 나 스스로를 연구자이자 예술가라고 소개했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두 직업의 개념에 들어맞기보다는 연구자나 예술가에 ‘비길 만한’ 위치에 있는, ‘준-연구자’, ‘준-예술가’가 나를 설명하기에 더 적합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준- : ‘구실이나 자격이 그 명사에는 못 미치나 그에 비길 만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https://ko.dict.naver.com/#/entry/koko/160d41f3f71743d3afc929908c8eb52c
경계에 서서 준-연구자, 준-예술가로서 작업을 하다 보면 아주 천천히 조금씩 나만의 장을 그려 나가는 느낌이 든다. 경계 밖에서는 각각의 영역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나를 설득하거나 나의 부족함을 들어 조언하거나 그곳의 법칙을 따르도록 종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어느 특정 영역에서 볼 때) 미완성인 작업, 미완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꾸준히 묵묵히 경계 안에 서서 나만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발표하고 설득하다 보면 내가 서 있는 영역의 지반도 좀 더 단단해지고 크기도 조금씩 넓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희망하고 있다.
준-예술가 준-연구가 : 정체성의 문제 따라오는 질문들
연구(硏究) : 어떤 일이나 사물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생각하여 진리를 따져 보는 일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https://ko.dict.naver.com/#/entry/koko/1514dc5362c74e78871900deb12eff6d
연구(硏究) : 어떤 일이나 사물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생각하여 진리를 따져 보는 일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https://ko.dict.naver.com/#/entry/koko/1514dc5362c74e78871900deb12eff6d
3. 스스로 배우며 방법론을 만들어 나가자
나는 여전히 알고 싶은 게 많고, 배우고 싶은 게 많다. 당분간은 이 배움에 대한 가려움증이 해소될 때까지 좀 더 연구하고 예술 하고 싶다. 지금 내가 탐구하는 방식은 아직 정립되지 않은, 경계에 선, 알 수 없는 몸짓이겠지만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 이것도 나만의 방법론으로 또렷이 정립될 수 있지 않을까. 배움에 대한 갈망은 나를 계속해서 학교에 다니도록 붙들어 놓았다. (나는 올해 환경과 관련된 석사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비록 학교에 다시 적을 두게 되었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방식 외에 다른 경험을 통해 나는 또 많이 배운다. 워크숍과 이벤트 그리고 페스티벌에 참여하면서, 동료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전시와 공연 강연 토론을 즐기면서, 자료를 검색하고 책과 잡지 등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하면서, 그리고 재미나게 놀면서! 이런 경험들은 나의 연구자료가 되고 이로부터 예술작업이 만들어진다. 이론적인 지식 습득과 직접 경험하는 것들의 뒤섞임이, 진지함과 유희의 공존이, 다양한 장르의 교차가 내가 배움을 얻는 방식이며 내가 작업을 만드는 방법론이다. 혹자는 내 의견을 이해하지 못해 ‘방법론’이라는 거창한 단어에 황당해할 수도 있겠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아직은 또렷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아직 스스로 배워나가는 중이며, 나의 방법론은 아직 만들어지는 중이기 때문이다.글속이미지_방법론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
※ 모든 사진과 이미지는 김민아님으로부터 받아서 활용하였습니다.
- 김민아 / artist & researcher
- 디지털 기술 발전의 이면에 남겨진 것들에 관심이 많아 환경과 디지털 기술의 관계에 관한 ‘리서치 기반의 예술작업’을 하고 있다. 이미지, 사운드, 영상, 설치물, 퍼포먼스, 출판물, 워크숍 등 다양한 형태로 작업을 만든다. 본인을 완전히 예술가로 그렇다고 연구자라고 소개하기가 애매하여 스스로를 준-예술가, 준-연구자라 (혹은 준-무언가) 칭하고 싶다. 독자적인 방식으로 예술-연구해 나가는 게 재미있어서 지적 호기심 버튼을 자꾸 눌러대며 스스로를 교육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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