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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가연 _프로젝트 곳곳
  • 2021.12.14

지지봄봄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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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기

생존을 위한 표류

윤가연(프로젝트 곳곳)

“우리는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현대무용이라는 건데...,, 아니요. 발레는 아니고요, 아니요. 방송 댄스도 아닌데 그..... 추고 싶은 데로 추면되고 움직이고 싶은 데로 움직이는 그런 무용이에요. 아니요. 애들한테 뭐 이상한 거 하는 거 아니고, 아니요. 교회에서 나온 거 아니고, 아니요.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니고요. 그냥 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게 그런 거예요. 무용이요. 근데 뭐 무용 수업이라기보다 그냥 노는 거예요. 아니요. 행사가 아니고요. 경기문화재단 사업으로 하는 겁니다. 네, 이상한 사람들 아니예요.”

길에서 춤을 추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의 무용에 관해 설명해야 할 때가 있다. 다 큰 어른들이 아이들과 모여서 바닥을 구르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카메라로 찍고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다니니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가 우리의 몸을 뚫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매주 토요일을 길에서 보냈다. 처음부터 길로 나선 것은 아니었다. 10번 수업 중에 2, 3번 정도. 길로 나가는 날은 우리에게도 특별한 날이었다. 지원 사업 첫해부터 인원을 모집하고 공간을 찾는 일에 피로감을 느꼈다. 나는 재밌는 작업을 해보자고 동네로 들어왔는데 재단 서류를 들고 다니며 하루에도 몇 번씩 공공기관의 문전박대를 받았다. “우리는 토요일에 문을 안 열어요.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어떤 수업인지 포스터와 현수막으로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공간을 몸으로 기록하는 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니까 무용 수업이라는 거죠? 댄스? 전통춤? 발레? 이런 거?” 이런 질문에는 처음에 썼던 지원 서류를 뒤져가며 그럴싸한 말들을 찾아 대답을 이어갔던 것 같다. 이렇게 멋진 수업이니 장소 좀 빌려달라고. 그리고 다음해에 코로나19가 찾아왔다. 많은 공간이 문을 닫았지만, 길에는 항상 아이들이 있었다. 작년에 느꼈던 피로감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도 길에 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길에서 춤을 추면 단지 좀 이상한 사람 취급되는 것만 빼고는 굉장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참여자모집 숫자 채우기에서 해방. 공간 눈치 보기에서 해방, 어떤 수업인지 설명하기에서 해방. 길 위에 지나고 머무르는 사람들 속에서 춤을 추며 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자유로움을 넘어서는 해방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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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 성남시 신흥동 백중놀이터에서 움직임 리서치를 하며 게릴라 수업을 진행했다. 아이들이 없으면 우리끼리, 관심이 없어도 우리끼리, 아이들이 함께하고 싶으면 함께했고, 함께하고 싶으나 춤은 추기 싫으면 촬영이나 구경을 했다.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만나고 헤어졌다.

마을에서 수업 외에도 창작활동을 했다. 머물다 보니 생기는 창작 욕구와 동네를 더 적극적으로 기록하고 싶은 마음, 교육활동에서는 다 쓰지 못한 무용수로써의 에너지를 풀어내기 위해 공연을 만들었다. 골목길에 들어와 춤을 추며 돌아다니니 어느새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우리가 다니는 길 곳곳에서 아이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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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춤출 때의 해방감을 언제 또 느꼈었을까. 과거의 내 춤의 시간을 더듬어 보기 시작했다.
나는 클럽을 좋아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클럽에서 나오는 음악을 느끼며 춤추는 것을 좋아했다. 그 시간을 왜 그토록 좋아했을까. 클럽에 특별한 뭐가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클럽에는 ‘예측할 수 없음’이 있었다. 내 MP3에 빼곡한 음악들은 듣고 또 들어서 다음이 예상되고 해석이 가능한 리스트였다. 클럽에 가면 익숙한 음악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리믹스한 DJ들이 있었고 DJ들이 틀어주는 음악은 익숙한 음악을 낯설게,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즐거움이 있었다. 익숙하지만 낯선 음악들은 파도에서 서핑하듯 춤을 추게 만들었다.
이어폰으로 매일 듣고 또 들으며 연습했던 음악들은 이 비트 다음에 어떤 비트가 쌓일지 예측할 수 있었다. 그 예측들이 몸과 만나기를 반복하면서 안무가 되기도 했다.
그 안무를 부숴버리는 것이 DJ의 음악이었다. 음악 한 곡으로 내가 만든 공간과 세상은 DJ가 만든 세상과 만나 시공간이 뒤틀린 느낌을 주었다. 음악의 리듬은 제멋대로 바뀌고 기존 음악에 없던 비트들이 불규칙하게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한다. 그러면 클럽에 모인 사람들은 언제 새롭게 합류될지 모르는 비트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단체로 호응하고 호흡했다. 온몸을 던져 춤추게 해줬지만 다시 들으며 연습은 할 수 없는, 기록에는 남지 않는 음악과 낯선 사람들과 호흡하며 춤을 췄던 순간들은 금세 휘발되고 “아! 오늘 잘 놀았다.”를 끝으로 쿨하게 헤어졌다.

길은 익숙한 공간이지만 예측 불가능이 주는 재미가 있다.
‘예측할 수 없음’은 춤이 정착되지 않고 휘발되게 만든다. 우리의 수업을 발레나 댄스나 정착된 춤의 언어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길 위에서 만나 “아 오늘도 잘 놀았다.”를 끝으로 쿨하게 헤어지는 시간도 분명 예술 활동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누구를 만나서 어떤 순간을 보내게 될지 예측할 수 없음에 내 몸을 던져보는 재미와 교육으로 재단된 수업과 관계 속에서 잠시 벗어나 보는 해방감을 아이들과 나누며 서로에게 DJ가 되어주는 시간이 골목골목으로 퍼져나갔으면 한다. 매일 듣는 음악을 낯설게 만들어주던 DJ의 음악처럼 익숙한 길 위에서 만나는 매번 다른 순간들과 춤이 켜켜이 쌓여 잔상처럼 골목길을 떠다니는 동네. 모든 골목에 춤이 남는 동네를 꿈꿔본다.

※ 모든 사진과 이미지는 윤가연님으로부터 받아서 활용하였습니다.

윤가연 /프로젝트 곳곳
프로젝트 곳곳은 every part, every piece, everywhere의 의미로 나와 나를 둘러쌓고 있는 공간 곳곳을 몸으로 기록하는 움직임 단체입니다. 익숙한 몸과 공간 안에서 자극으로 인해 발생하는 우연성과 즉흥적임에 흥미를 가지고 탐구하고 있으며 공간을 몸으로 기억하고 기록하는 방법을 제안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project_gotg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