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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 _초록놀이터
  • 2021.12.14

지지봄봄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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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기

표류와 성장사이, 감주가 있다

김민(초록놀이터)

10월, 맑고 쌀쌀한 날이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창을 여니, 먼지를 일으키며 뛰어가는 아이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뒤로 도톰한 색을 입은 가을 나무들이 눈에 찬다.

‘아, 가을이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보면, 일 년이 계절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업의 절기로 지나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기획과 공모, 모집, 운영, 최종정산으로 읽힌다. 문화와 예술은 계절을 탄다. 그 색, 그 감촉, 그 바람. 모두가 예술의 실마리다. 그런데 문화예술을 기획한다는 사람이, 계절을 꾸준히 유기 중이라니. 온전히 나의 방향과 속도에 맞춘 기획자가 되고자 결연한 사직서를 남기고 단체를 꾸렸는데, 나의 속도는 다시 뒷전이 되고 있다. 이제 곧 프로그램들도 하나씩 마무리되고 한바탕 정신없어질 정산과 결과공유회까지 마치면 사업과 함께 올 한 해가 저물 것이다. 그리고 한해를 잘 지낸 사업과는 별개로 뿌듯함과 시원함 사이, 공허감이 흐를 것이다. 밤을 새워 함께 수업을 준비한 강사들과도, 운명공동체였던 사업 담당자와도, ‘내년에 뵈어요’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별을 맞이할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잘 해냈는지 꽉꽉 채워 넣는 실적보고서 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우리 프로그램이 어떠한 의미를 남겼는지, 단체가 얼마나 성장을 했는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기준조차 모호하고, 평가를 한다 해도 다음 해의 사업 지속 여부는 자체 평가와는 별개다. 결국 우리의 다음은, 내년이 되어야만 알 수 있다.

냉정하게 말해, 이 일은 돈 안 되는 직업이자 가끔 꼴도 보기 싫은 취미이다. 다른 수입원이 없었다면 현실적 이유를 들며 시원하게 놔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가장 큰 고민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것도 장담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단체 일을 3년간 도와주던 한 청년이 올해 여름, 연구소에 취직을 했다. 그에게 축하커피를 건네면서도 머릿속으론 그 공백을 어찌 메워야 할지 계산기를 두드렸다. 공모사업 외에 자체 활동을 키워보아도 문화예술단체에 보장된 안정이란 없다. 그래서 또 누군가가 그렇게 안정된 길로 날아가 버린다 해도, 나는 웃으며 커피를 건네는 일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들이 미안해하는 표정조차 내가 미안할 지경이다. 이런 고민을 주변에 털어놓기도 힘들다. ‘그러게, 잘 다니던 직장은 뭐 하러 관두고 그 고생을...’부터 튀어나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더 슬픈 건 나조차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답답한 마음이 깊어지면,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초록놀이터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애초의 포부가 무색하고 ‘초록놀이터는 무슨, 대출 끼고 서울에 아파트나 한 채 사둘걸.’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내 손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 사진을 골라 일지를 쓰고 공손한 목소리로 회의를 잡고 깔끔하게 정돈된 증빙서류를 e나라도움에 첨부하고 있다. 지금 내 정신이 폭주해도, 분명 내일 아침이 밝으면 나는 이불을 개고 머리를 빗고 수업을 하러 갈 것이다.

나는 규칙적인 루틴과 질서 정연함을 좋아한다. 체질적으로 그런 것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또 어떤 특정한 일을 선호하기보다는 주어진 바가 무엇이든 제대로 완성해내는 것에서 재미와 성취감을 느낀다. 어린 시절부터 죽 그리 살아왔기에, 직장을 그만두고 단체를 꾸린 것이 내 인생 최대 일탈이었다. 그런 나에게 이 불규칙한 문화기획자의 일이, 불확실한 문화단체의 길이 얼마나 거칠고 불안한지.

그렇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고 있을까. 아직까지는 감당할 만해서인지, 퇴직금이 남아서인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 한 가지, 나는 나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좋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진 많은 사건과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함께 일하는 예술인 중에는 나의 작은 그릇으로는 도저히 담아내기 어려운 자유로운 영혼들이 많다. 계획에 없던 활동으로 아이들 옷에 온통 풀물을 들여놓아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쳤을 땐, 앞으로는 정해진 대로 점잖은 수업을 하는 강사들과만 일해야 할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예술프로그램이 점잖아진다면 교실에 앉아 창밖 풍경화를 그리는 수업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정해진 대로’란 말은 예술 수업에 어울리지도 않는다. 예술 강사들의 자유로운 시선과 충동적 행동은 나의 부족한 예술적 감흥을 채워주고 참여자들의 움직임을 풍부하게 한다. 비록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언행으로 나를 들었다 놨다 하지만 그것을 각자의 인간적 무늬로 받아들이고 나면 오히려 귀엽기까지 하다. 예술가들 외에도 나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지역에 대해, 문화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동네 기획자 친구와 논에서 트랙터를 몰다가도 문자 한 통이면 달려와 주는 농부 친구도 있다. 그들의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사람에 대한 애정은 매일 가라앉으려는 나를, 매일 띄워 올린다.

김민_사진1


또 나는 나의 참여자들도 좋다. 물론 일반인들을 모아 함께 활동을 하다 보면, 이기적인 사람이나, 늘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이 한두 명씩은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면, 이 프로젝트를 위해 바친 시간과 에너지가 하나씩 떠오르며, ‘결국 그 고생을 해서 이 사람들 좋은 일 시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정신을 잠깐 가다듬으면 그건 틀린 생각이다.
우리가 만난 열 명 중 그런 이들은 한두 명이다. 나머지 예닐곱 명은 프로그램을 고마워하고 즐거워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한두 명은 운영진 못지않게 프로그램을 살갑게 챙겨주고 어떤 활동이든 적극적으로 나서주어, 말 그대로 일할 맛이 나게 해주는 이들이다. 엊그제 잘 익은 감주를 마당에 두고 간 김박부부도, 앉아서 기획의 영감을 떠올리라며 붉은 의자를 만들어준 주생님도, 나의 심적 안정과 고관절까지 위해주는 귀한 사람들이었다.

김민_사진2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더 있다. 나는 기계처럼 일지를 쓰다가 만난, 웃음이 팡 터지는 수업 사진을 좋아한다. 우리 예술 정원에서 꽃잎을 소중히 줍고 있는 꼬마의 손톱을 좋아한다. 매해 작은 질문에서 태어난 우리 프로그램이 다 자란 어른이 되어 마무리될 때의 뭉클함도 좋아한다. 그리고 e나라도움 정산 검토에서 보완요청 없는 검토 완료를 받는 것도 상당히 좋아한다.

김민_사진3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아무리 곱씹는다 해도 고민거리와 헛헛함은 여전하다. 사람은 고민하기 위해 태어났다지만 나는 고민하기 위해 단체를 만든 것 같다. 학교에선 공부만 하면 되고 직장에선 일만 잘하면 되었는데, 단체는 뭐든 다 열심히 해도 겨우 살아남아 끌고 갈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너무 무겁다.
하지만 그럴 때면 한 친밀한 강사님이 내게 한 말을 기억해본다. ‘너, 나라 구하니?’
그렇다. 내가 이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세상 변할 것은 없다. 내가 일을 좀 못해도, 안 해도, 세상에 큰일이 생기진 않는다는 것은 조금 서운하면서도 다행인 일이다.
그래도 어쨌든 나는 이 일을 하고 있다. 매일 조금씩 더 잘하고 싶고, 그 덕에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소년들의 표류기를 담은 책의 마지막 문장은 꼭 나에게 하는 말 같다.
“소년들은 온갖 시련과 고난을 겪으면서 단련되었기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하급생은 상급생처럼, 상급생은 어른처럼 성숙해져 있었다.”

올해의 표류기를 지내며, 나는 더 어른이 되었는가? 붉은 의자에 앉아 감주를 홀짝이며 좀 더 생각해 볼 일이다.

※ 모든 사진과 이미지는 김민님으로부터 받아서 활용하였습니다.

김민 / 초록놀이터 대표
생태적 감수성과 본능적 예술성을 근거로 평범한 사람들의 모든 삶에 이미 문화가 녹아 있다고 여기며, 이를 끄집어내 그 선과 색을 선명히 하는 과정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고 있다. 일상에서 지속할 수 있는 예술을 지향하며, 정원과 숲, 마을과 공동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초록놀이터를 소유하게 되길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