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긋한우정
- 전복과 불온함의 찰나를 만드는 유쾌한 따라하기
- 삐삐 _공간릴라
- 202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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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봄봄 34호
-다움을 짓기 위한 상상
전복과 불온함의 찰나를 만드는 유쾌한 따라하기
<따라따라 프로젝트>와 임은빈 작가
삐삐 (허선희, 서울시 마포구에서 동네 문화예술공간인 ‘공간릴라’를 운영하는 문화예술 기획자)
우리는 종종 모방하며 누군가에게 배운 것을 다르게 표현하고, 안 되는 작업은 무한 반복의 학습 과정을 거쳐 몸으로 익히기도 한다. 과정을 보지 않으면 그저 카피로 보이기 쉬운 아마추어들의 작업들. 프로가 되는 것을 미루며 과정에 몰입하는 사람들. 종종 작가들의 대작들을 어처구니없이 가볍게 만드는 찰나를 목격한다. 언젠가 동네 여인들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강독했는데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그녀들은 매시간 니체에 대해 “어이구, 이 남자 엄마와 관계가 안 좋았나, 아니면 여자들에게 엄청 상처를 받았나, 이 사람 진짜 우울하네! 우울해. 그래, 치료가 필요해.” 한순간 대 철학자를 찌질이로 만들어버렸다. 대가, 대작, 명작, 프로 이런 언어들에 압도당하지 않는 그녀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 사람들과 작업과정, 보이지 않게 뒤에서 가이드를 한 작가를 만나러 간다. 인터뷰라는 핑계를 대고 경기도와 서울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 봄과 여름 사이의 경계에서 만났다.
‘따라따라 프로젝트’를 지역주민과 함께 작업한 임은빈 작가는 인사를 하자마자 재미있는 사람이겠다는 느낌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녀의 눈에 호기심과 인터뷰자들을 관찰하는 시선이 마구 느껴졌다. 유심히 관찰하는 그녀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거꾸로 받으며, 경기상상캠퍼스의 나무와 숲 사이로 7년간의 임은빈 작가와 따라따라 프로젝트, 따라따라 작가들의 삶 이야기 속으로 뚜벅뚜벅 소풍 가듯 따라갔다.
인터뷰 사진 공간릴라 삐삐 (좌) | 따라따라프로젝트 임은빈 작가 (우)
시작은 우연하게,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부모교육으로
임은빈 작가와 함께 처음 ‘따라따라 프로젝트’가 시작되던 2015년의 시간으로 돌아가 보았다. 당시 화성시에서 살았는데 막 장애 통합교육을 하며 협동조합을 설립한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게 되었다. 부모교육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미술사 예술 교육을 재능 기부하였고 5~6명의 부모가 모였다. 이게 시작이었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도 있어서 모두 흥미로워했다고 한다. 화성시에서도 외곽인 동네의 아이들 일상 공간에서 미술사를 배운다는 것은 뭔가 낯설고 신기한 일이었다. 수업은 꽤 재미있었고, 후속 작업으로 스터디를 진행하자는 의지들이 커졌다.“저는 너무 반가웠어요. 미술사가 재미있다니! 반가웠고 계속 지속했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그러다 어느 시점에서 서로 불편한 지점이 왔어요. 재능기부로 계속하기에는 동료 작가들에게도 욕을 먹고 배우는 분들도 이렇게 계속 공짜로 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스스로 얘기를 했어요.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지원금을 받으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될 것 같았죠. 2017년에 지원사업에 선정되어서 처음 미술사 클래스에 만난 분들에 화성, 동탄 분들이 더 참여했어요. 그때 문득 어떤 분이 선생님은 어떤 작업을 했느냐고 저에게 물어봤어요. 그래서 제 작업인 ‘두 번의 타협이 있었던 쌓기’라는 작품을 보여줬죠. 사람들이 ‘어, 이거라면 나도 할 수 있겠네. 우리 따라 해보자.’ 제안했어요. 사람들이 각자 집에서 책 쌓기를 시작했고 전집으로 쌓은 것은 반칙이라며 멤버들 스스로 룰을 만들고요. 저는 이 과정을 관찰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左 임은빈 <두 번의 타협이 있었던 쌓기> 2009
中 허은주 <한번의 타협으로 성공한 동생책 쌓기> 2017 右 조나정 <타협 따윈 필요 없는 쌓기>2017
우연히 미술사 선생님의 작품을 따라 한 행위는 본격 현대미술의 작품을 따라 하는 따라따라 프로젝트로 진화, 발전하여 코로나 팬데믹이 있기 전까지 교육과 작업 양쪽을 오갔다. 2017~2019년까지 33개의 작품을 재해석하고 과정을 얹었다.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경기도의 작은 도시로 데리고 왔다. 일주일에 한 번 아이를 맡기고 데려오기 직전인 오전 10시~오후 1시 사이에 와다다 재해석하고 재구성하였다.
언어로 짧게 적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현대미술 작업한다’가 어땠는지 상상이 되어 마음이 조인다. 엄마들이 일주일에 하루, 아니 한 시간이라도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충분히 가늠된다. 옆에서 오랜 시간 지켜보지 않으면 한나절 시간 내기의 불가능함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정체성은 존재를 압도한다.
그녀들의 마음을 따라가면 그 시간이 일주일에 한 번 유일하게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현대미술을 따라 하는 거라면 주변에서 과연 이해를 받을 수 있었을까. 시간이 남아도나 팔자가 늘어졌네 혀를 차는 사람이 반, 아 드로잉 같은 걸 배우나 보다 잘못 이해하는 사람 반. 배운다는 개념을 기술의 습득 정도로 이해하기 쉬워서 현대미술을 따라 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혹은 미술 작품 놓고 따라 그리기로 이해할 수도 있었겠지. 수많은 오해와 경계들이 한 번에 휘리릭 생긴 느낌이다.
이 과정을 기획하고 관찰하고 기록하고, 현대미술 작업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 임은빈 작가는 따라따라 작가들과 같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면서 한 사람의 작가이고 그녀들의 선생님이었다. 정체성이 교차한다. 엄마와 나라는 정체성, 집과 작업실, 모방과 창작, 교육과 작업의 경계가 거미줄처럼 촥촥 그어져 있는 일상에서 어디에 발을 디딜지 어떤 선택의 순간들이 왔을까 너무 궁금했다.
경계와 경계 사이의 풍경 #1. 예술과 교육, 작업과 모방 사이의 경계
“예술과 교육의 경계를 진짜 디테일하게 유지해야 작품과 프로젝트가 맥락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이자 길잡이인 나는 뒤에 물러나 있는 척하면서 사람들의 행위와 작업에 적절한 리액션으로 분위기를 잡고, 다시 치고 빠지는 걸 했어요. 나의 에너지 90%를 이 부분에 쓴 것 같아요. 만약 내가 많이 개입하면 사람들이 질려 할 것이고, 또 너무 빠지면 다른 길로 마구 빠져나갔을 거예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하는 말, 행동, 작업과정을 캐치하고 맥락에 맞도록 살짝 개입하는 순발력이 필요했어요. 한쪽으로 기울여져 버리면 카피만 하는 미술 교육이 되어버리고 반대쪽으로 기울면 작가 임은빈의 참여예술작업이 되어버리죠.현대미술을 따라 하는 작업을 해보니 다들 알게 된 것이 있어요. 보는 것, 실행하는 것, 실행한 것을 말로 다시 꺼내는 것, 혼잣말로 하는 것, 다른 사람 앞에서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각각 다른 세상이라는 점 말입니다. 그리고 수업할 때 작품과 관련해서 자신의 닉네임을 만들자고 했더니 어떤 분이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한다며 내게 이런 응어리가 있었구나며 자기 얘기를 시작했어요. 자신을 만나기 시작한 것이죠. 이런 점들을 알게 되니 계속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 다른 현대미술 작업도 따라 해보자고 이어지게 되었어요. 그분들 앞에서 티는 안 냈지만요, 저는 너무 신이 났어요. 따라따라 프로젝트를 하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가만 놔둘 수 있었겠어요? 작업화할 수 있는 것이, 이야깃거리가, 주제화시킬 거리가 너무 많이 나와 아까워서 가만히 놔둘 수가 없었어요.
첫 공동작업인 리처드 롱 <걷기로 만들어진 선>을 따라 할 때도 그냥 걸었어요. 결과가 나올지 어떨지 예측이 안 되었지만, 전우와 같은 공동체 의식 같은 걸 느끼게 된 첫 작업이었고 결과물도 정말 훌륭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원작 작가의 작품이 더는 작가만의 작품이 아니게 되어버립니다. 잭슨 폴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전복의 순간이 오더라고요.”
경계와 경계 사이의 풍경 #2. 가족과 엄마와 나 사이에서
“가족들이 대부분 응원해주는데 엄마로서 자신은 늘 눈치를 보고 있어요. 멤버들이 취미로 미술을 공부하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어요. 너무 재미있다고 하면서도 카톡이나 SNS 프로필 사진에 작품을 올리지 못해요. 2~3년 차 되고 서로 친해지면서 사는 얘기를 하는데, 전업주부로서 불합리함, 모순을 아예 인지 못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사는 것 다 그렇지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페미니즘 작업도 소개해보고, 한국의 페미니스트 작가도 진짜로 만나보고 마침내 1박 2일 워크숍을 질렀죠. 혼자 여행 가는 것은 처음이라는 분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때는 가족들도 예상을 못 한 일이라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 여행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본격적으로 가족들의 불편함이 드러난 사건은 2019년 서울에서의 전시였는데요, 동네잔치를 넘어서 아티스트들이 많은 곳에서 작업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일부터 아티스트 토크를 준비했어요. 토요일 하루, 화성에서 서울까지 1시간 30분 남짓한 거리인데 난리가 났어요. 아이를 맡길 곳이 없고 남편 중에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며 주말에 가족을 돌봐야 하는 거 아니냐 불평을 하시기도 했어요. 어떤 분은 새벽부터 일어나 종일 먹을 음식을 해놓고, 꺼내서 먹기만 하면 되도록 챙겼는데도 집에 가니 먹을 것이 없었다는 후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에피소드들이 점점 더 많아졌어요. 어느 집이나 할 것 없이 릴레이로 부부싸움을 한 번씩 했어요. 저는 솔직히 남편과 싸울 일이라는 것을 아셨다는 것이 반갑더라고요.
한편으로 현대미술을 취미로 한다고 하면 팔자 좋은 여편네부터 내 아들/조카가 뼈 빠지게 일해서 돈 벌어다 줬더니 너는 신나게 놀고 다니냐. 이런 얘기가 나올까봐 걱정하고 죄책감 느끼는 전업주부들의 이야기를 따라따라 작가 토크쇼에서 얘기했더니 20대 젊은 작가들이 21세기에 이게 무슨 얘기냐며 충격적이라고 했어요. 그녀들이 충격받는 것을 보고 따라따라 작가들이 다시 충격을 받고. 아, 내가 현대미술을 따라 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엄청난 사건이라고 아시는 거죠.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현대미술의 작품에 압도당하지 않고 자기 삶의 모습을 마주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싶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고 아이들을 고스란히 엄마들이 돌봐야 하니 자연스럽게 모임이 멈췄어요. 덕분에 그동안 기록해둔 과정을 모아서 편집하는 작업을 했어요. 유튜브에 공개된 따라따라 프로젝트 다큐의 주제는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로 나오는 것이 이렇게 멀고 이렇게 힘든 일이었단 말 인가입니다.”
다큐멘터리 로얄키치아방가르드비급비글아트프로젝트 따라따라프로젝트 https://youtu.be/IH-H84-1Y_Y
사진 쉬린 네샤트 <침묵의 저항> 1994 이윤성 I will live without the thought (좌) / 사진 다큐멘터리 메인 사진 (우)
경계와 경계 사이의 풍경 #3. 프로와 아마추어, 예술과 일상 사이
“미술사에서 사조나 장르는 주류가 된 것들에 대항하기 위해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과정에서 탄생합니다. 예를 들면 모더니즘에 대항하기 위해 아방가르드가 나왔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아마추어는 순수 미술에 대항하는 사람들 같아요. 음, 지구라는 생태계에서 가장 유연한 생명체가 오래 살아남는데 이 예술계에서는 아마 아마추어가 그런 존재일지도 몰라요. 프로들은 굳이 경계를 두려 하지만 아마추어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을 안 쓰죠. 주류들의 제도권에 관심이 없으니까요, 자신들의 목적은 그게 아니니까요.종종 작가로서의 ‘나’는 모든 경계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작업하고, 강조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예를 들면 방은 개인적인 공간이고 갤러리는 공적인 공간인데 방을 갤러리로 만들거나 갤러리를 방처럼 만들어서 공간의 경계에 대해 작업을 했습니다. 따라따라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예술가의 경계에 관한 이야기로 연결되었어요. 미술 바깥으로 확장하면 사회의 편견과 혐오, 차별 이런 경계들이 작업을 통해서 투영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갖고 있죠.
예술은 예술이고 일상은 일상이잖아요. 예술이 바로 일상이 될 수는 없듯 일상도 바로 예술이 될 수 없고요. 프로와 아마추어도 같을 수가 없어요. 각자의 위치와 역할이 있지요. 경계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일치할 수 없고 동일해지면 무의미해져 버립니다. 가끔의 일상에서 찰나의 순간들을 발견하고 반짝거릴 때 힘을 발휘하니까 그 경계에서 잘 놀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양쪽을 하나로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경계 양쪽에 다 없어도 되고, 경계가 상관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혹은 이 경계 안팎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소수자들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그런 예를 계속 만들고 싶어요.”
“이제 막 외부인이 되었고, 이 흐름이 자연스러워 다행입니다”
2019 코로나 팬데믹 기간 어쩔 수 없는 공백기가 생겼다. 5년의 경험은 짧지 않았고 따라따라 작가들은 아이들판 현대미술 따라따라 프로젝트를 스스로 이어갔고 임은빈 작가는 드디어 외부인이 되어 특강 선생님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경력단절의 전업주부인 프로젝트 작가들은 이제 현대미술을 따라 하는 워크숍의 선생님과 기획자가 되었다. 막 외부인이 된 임은빈 작가는 이 모든 것은 기관과 작가인 자신이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모집한 것이 아니라 시작도 과정도 모두 그들 자신이 원해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 자연스럽게 왔어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좀 쉬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왔어요. 서로 여기서 뭘 더 하게 되면 억지스러워질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따라따라 프로젝트는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겠어요. 따라따라 프로젝트가 장기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들을 모은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메인이었다면 즐거운 에너지가 오랫동안 지속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스스로 생성되고 나서 내가 필요에 따라 투입되는 게 따라따라 프로젝트인 것 같아요.”
임은빈 다큐멘터리 <로얄키치아방가르드비급비글아트프로젝트 따라따라프로젝트> 중에서
예술의 불온함을 제대로 마주하고 따라가는 사람들
7년의 과정을 잔잔하게 듣다 보니 앞으로 따라따라 프로젝트가 어찌 될 것이냐는 질문이 어리석어 보였다. 이미 임은빈 작가와 프로젝트 작가들은 언제든 만나서 맥주 한잔하며 서로의 삶을 위해 마주할 것이고, 같이 작업할 순간이 나타나면 주저 없을 것이다. 그들은 불확실한 장기 프로젝트 과정에서 나 자신에 대해서 묻고, 내 인생의 당연한 것들에 질문했다. 예술의 불온함을 제대로 마주한 것이다. 안정하고 보수, 관료화 되는 정신과 일상에 작은 돌멩이를 던져 일으킨 파장은 꽤 길게 갈 것이고, 질문에 답을 하며 넘어가는 작업의 쾌감을 미룰 수는 있어도 잊어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누군가 따라따라를 다시 ‘따라따라’하면 재미있겠다고 이야기 나눈 적이 있어요. 프란시스 알리스
지금은 다시 한번 영상을 다듬어서 조금 더 잘 만들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7년 동안 따라따라 프로젝트에 빠져있다 나와 보니, 새로운 내 작업을 다시 시작 할 수 있을까 자신도 없어지고 봄에 엄청 불안했는데 생각해보니 몇 달밖에 안 쉬었더라고요. 앞으로 몇 달은 좀 더 쉬고 간간이 따라따라 프로젝트 멤버들이 술 한잔하자고 하면 달려가고 그럴 겁니다.”
임은빈 작가도 그들 중 한 사람으로서 멈추기 어려운 갈림길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녀의 바람처럼 현대미술이 던진 질문을 자기만의 해석으로 따라 하기가 파장을 일으키길 바라는 마음이 된다. 문득 우리 동네에 초대해서 친애하는 동네 여인들과 작업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꿈틀한다. 그 ‘따라따라’ 중에 내가 아는 이들이 등장하게 되려나, 어디 한번 시간을 숙성시키다가 자연스럽게 시작되도록 툭툭 던져봐야겠다.
사진 제공. 따라따라프로젝트 임은빈 작가
- 삐삐 / (허선희, 서울시 마포구에서 동네 문화예술공간인 ‘공간릴라’를 운영하는 문화예술 기획자.)
- 쫄보이지만 그럭저럭 고양이 자매와 힘을 합쳐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있음. 쫌 노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는 것이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