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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아람
  • 2023.10.11

지지봄봄 38호

-싸움의 기술

표류기

선구안을 가져야 해

이아람(시각예술가)

총체적 난극, 1분3초, 퍼포먼스공, 무늬만 커뮤니티, 2013
총체적 난극, 1분3초, 퍼포먼스공, 무늬만 커뮤니티, 2013
 

선구안을 가져야 해


탁구 선생님은 나에게 이야기한다. “아람 씨 선구안을 가져야 해. 탁구대 안에서는 공만 보는 게 아니라 공의 속도, 회전, 타점을 보면서 다음을 예측할 수 있는 공격 방향을 미리 판단할 수 있어야 해.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눈을 사시로 만들어야 해. 한쪽 눈은 탁구공을 보고, 다른 한쪽 눈은 상대방의 라켓을 봐야지. 그래야 다음을 대처할 수 있어.”

요즘 내가 자주 듣는 이야기이다. 물론 생활체육 속에서 듣는 말이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이 말은 곧 2023년 나의 일상의 중심적 사고에 기반한다. 작업하다 결혼과 출산 과정을 겪으며 갖게 된 부모로서 책임감은 내가 선택한 삶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멈출 수 없는 아이 보육, 안정된 환경을 바라는 나의 정체기는 작업에 손 하나 까닥대지 못할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녀올 동안 종일 작업대에 앉아 멍하니 있던 날이 이어졌고, 작가 노트에 어떤 말을 담아야 할지 몰랐다. 현실은 하원 한 아이에게 밥과 간식을 먹이고 씻기고 방 청소와 빨래하고 설거지를 마무리하면, 다시 아이와 놀아주고 재워줘야 했기 때문이다. 하루도 빠지면 안 되는 일상이었기에 이런 육아 노동 중에 무슨 예술을 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육아와 작업을 동시에 하는 일은 그냥 고역이었다. 제일 하기 싫은 일 중 두 개가 매일 이어졌고 그렇게 3년을 보냈다. 그리고 육아로 멈춘 작업과 동시에 코로나 팬데믹이 겹쳐 약 3년 동안 다른 이들의 멈춘 예술 현장을 보니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나만 멈춘 게 아니었구나. 그렇게라도 평행선을 맞추려 했던, 조금은 이상한 나의 위로 덕에 2023년을 맞이했다.

지금에서야 소리 소문 없이 애썼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뭐가 그리 힘들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아이를 돌볼 때는 엄마로 모드를 전환해야 했고, 작업할 때는 예술가로, 동네 엄마들과 마실 할 때는 주민으로, 예술가들과 만날 때는 예술가의 태도를 잃지 않으려 했다. 그러니 버겁고 모드를 전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스트레스는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 버거움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쯤, 하고 싶었던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나마 몸을 피곤하게 하면 다른 생각이 차오르지 않을 테니. 그렇게 시작한 탁구는 예상대로 나의 몸과 정신을 주저앉게 했다. 내 뜻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생전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하니 밤새 잠도 못 자고 근육통에 시달렸다.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니, 일상에서 해야 하는 나의 일과를 자연스럽게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잦아지자, 오로지 하나만 보았던 나의 시선은 옅어졌다. 그런데도 일상은 평소처럼 잘만 돌아갔다. 그렇게 반년 동안 탁구를 하면서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엄마, 예술가, 배우자, 주민, 교육자로서 가져야 하는 태도의 경계선이 조금씩 겹치기 시작했다. 시시때때로 예측할 수 없는 침묵과 개입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하나의 사건으로 다가왔다.

굳이 작업이라고 여긴 나의 관심사에 동네 주민들이 무턱대고 들어왔고 엄마의 역할 안에 예술가의 태도로 아이를 보육하는 시각과 언어도 겹쳤다. 그렇게 불편한 태도를 애써 감추지 않았고 하기 싫으면 싫은 대로 행동했다. 그 모습 그대로 내가 타인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미치는 불편함과 어색함을 그대로 교육 방향으로 이끌어가기도 하였다. 싫으면 싫은 대로 지나치거나, 말하지 않아도 되고 멀리서 바라보아도 되고, 언쟁도 하다가 그것도 싫으면 연락을 안 하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연락하고, 그래도 안 되면 나중에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이아람, <무제>  60.6✕91cm, 캔버스에 아크릴, 2023
이아람, <무제> 60.6✕91cm, 캔버스에 아크릴, 2023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늘 부드럽게 웃음 띠는 이아람으로 계속 살았으면 어땠을까?

그 선구안이 진짜 일상을 변화시키는 힘이었을까?
그냥 그럴 시기가 되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

곧 출산하게 되면 단절되는 활동 이력 때문에 미리 작업을 많이 만들어 놓고, 공백기 없이 활동하게 움직인다는 만삭의 어느 예술가는 지금 잘 지낼까?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선구안이 완성되지 못했다. 탁구를 하면 공만 보기 바쁘다. 그리고 눈보다 빠른 손과 몸은 아직 없다. 매일 좌절하는 중이다. 대신 탁구를 하는 많은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고 복기한다. 나는 아직도 집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고 머물고 있다. 눈동자는 마구 흔들리고 불안하고 불편하다. 그래도 괜찮다고 스스로 토닥일 수 있는, 무너지지 않는 태도가 조금은 생겼다. 예술과 보육의 틈이 견고하지 못하고 실수는 여전히 잦다. 시시때때로 어느 한쪽으로 기울다가 다시 반대로 기울어진다. 그러나 적극적인 실수가 쌓여 나의 실수는 경험이 된다. 이 경험은 다시 예술과 보육으로 흩어져 하루를 보낸다. 그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표류기이지만, 진짜 나의 모습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과정이 아닐까. 이런 나의 인생의 타점에 춤추듯 나의 몸의 감각을 익히기 위해 탁구를 배운다. 예술가, 엄마, 주민, 교육자로 살기 위한 나만의 생태적 삶을 위해.
 

삶을 삶답게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인가? 좋은 삶은 무엇인가?’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김남수 선생님과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20세기 역사의 고비마다 출현한 ‘삶을 삶답게’라는 표어가 어느 순간부터 새롭지 못한 단어로 인식되었고,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인가라는 질문은 얼핏 생뚱맞게 보이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다시 이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고 했다. 때로는 예술이 아니어도 예술 밖의 삶을 마주하는 태도로 다시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일까?’ 그것은 결국 ‘어떻게 살아야 좋은 예술가일까?’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말의 여백 속에 상상할 수 있는 질문을 찾고 있다. 그것이 1초의 찰나의 선택으로 대화하는 끝말잇기 같은 것이라도 태도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리고 침묵과 개입으로 배움을 더 촉진하는 잠재적인 현실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엄마, 여성, 예술가의 땅-능평동


내가 사는 경기 광주시 오포읍은 말과 탈이 많은 동네이다. (오포읍은 2022년 8월 31일까지 광주시 서남부의 읍이었다. 현재는 동으로 승급이 되면서 폐지되었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사회문제가 된 지역으로 산길이 도로가 되어 인도와 차선으로 변하고 그 주위로 빌라, 아파트, 주택 등이 다닥다닥 들어섰다. 그런데도 이쁜 집이 많고 분당에 가깝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이사를 온다. 그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장마 때는 크고 작은 산사태와 하천 주변이 무너지는 일이 잦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는 차량이 꼼짝할 수 없어 출근을 못 하는 회사원들이 속을 태운다. 걷기 힘든 동네, 평지가 없는 동네, 그런데도 사람은 살아야 하기에 한 집에 두 대의 차량이 있어야 일하고 아이를 돌볼 수 있다. 그리고 이제야 안과를 제외한 모든 병원이 생겼지만, 제1금융권의 은행은 동네에 없다. 공원도 없다. 오포읍 주민들은 생활 서비스를 만족하려면 차를 끌고 분당으로 넘어가야만 한다. 어제도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씽씽이를 타고 싶다는 아이를 위해 율동공원을 들렀다. 씽씽이를 탈 수 있는 곳이 오포읍에는 없기 때문이다.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기록사진, 2022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기록사진, 2022


나는 지금 경기 광주시의 기금을 받아 ‘모든예술 31’이라는 ‘엄마, 여성, 예술가의 땅-능평동’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차량 및 안전사고에 관한 정보를 매일 맘카페에서 얻어야 하는 경기 광주시 오포읍은 엄마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중 내가 흥미롭게 바라보는 한 엄마가 있다.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인데 자녀의 생활 반경에 일어나는 안전사고에 민감하다. 또한, 지역 행정에 관련된 사항을 꼼꼼히 확인하고 이행하는지 점검한다. 그저 맘카페에 토로하는 것이 아닌 안전 신문고와 시청 및 안전관리과 등에 필요한 연락을 하여 사고가 나지 않도록 대처한다. 공무원 입장에서 이 엄마는 블랙리스트일 것이고, 주민 입장에서 이 엄마는 슈퍼히어로 같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매일 몇 번씩 민원을 넣는 방식의 지역 시스템 해결 과정은 유쾌하지 않다. 사고와 관련되기 때문에 예민하다. 이 엄마가 동네에서 함께 잘 살기 위해 쏟는 애씀과 관심과 사랑은 광주시 행정에는 오로지 귀찮을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동네의 민원을 예술의 언어로 번역한 작업을 엄마들과 전시하고 싶었다. 현재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8명과 작업 중인데,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동네의 민원은 시간이 지나도 해결하지 못할 만큼 많았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쁜 일상에 내가 사는 동네의 문제점까지 알아야 속이 편한 걸까? 집값이 내려갈 수 있는데 공론화하는 게 맞을까? 광주시의 지원금을 받으면서 광주시의 민낯을 보이는 민원을 주제로 전시한다는 것이 누워서 침 뱉기와 같다.

나는, 우리는 단순히 잠만 자는 내 집이 생긴 것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각자의 삶 안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라고 본다. 하지만 진심으로 살펴보면 동네의 민원에 나의 삶이 모두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민원이라는 단어에 너무 집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삶에 대해 늘 얘기하지만 정작 환경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비단 이곳, 광주시만 해당하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다. 매일 발생하는 민원을 통해 우리 일상의 우연성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삶을 형용사로 전환해 보면 각자의 가치 기준 안에 발생하는 다양한 행복 추구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로따로 행복한 삶이 곧 우리가 함께 사는 삶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한 동네의 주민이자, 일하는 노동자일 것이며, 한 아이의 부모이거나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주민이기 때문이다.

‘엄마, 여성, 예술가의 땅-능평동’ 워크숍 기록물 사진, 2023
‘엄마, 여성, 예술가의 땅-능평동’ 워크숍 기록물 사진, 2023

이아람 / 시각예술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본인의 작업과 삶, 삶과 작업에 대한 연결 고리에 대해 의문을 품 고 지역을 리서치하면서 얻은 아이디어 혹은 에피소드를 이용하여 사건화하고 이를 기록하는 중이다. 현재는 경기 도 광주시에 위치한 ‘무늬만뮤지엄’에서 일하고 있으며, 예술가 그룹 ‘더나라’와 교육 및 프로젝트를 실행 중이다.
이메일: larhssflove@hanmail.net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ahram_lee/
사진 제공. 이아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