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긋한우정
- 마음껏 그려, 낙서가 가장 창의적 순간이야
- 고대웅
-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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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봄봄 38호
-싸움의 기술
현장이 사랑한 현장
퇴근길 해가 지는 한강 다리를 건너다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꼭 소개하고 싶은 분이 있다는 전화였습니다. 그렇게 ‘마커 키퍼’의 ‘김진주’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대표님을 처음 뵌 연희동 2층 건물 안엔 아이들이 온갖 곳에 낙서를 하고 있었습니다. 릴레이 인터뷰 : 청두가 묻고 김진주 대표가 답하다
마음껏 그려, 낙서가 가장 창의적 순간이야
고대웅(작가, 청두)
OUR TIME, 연희동 ⓒ마커 키퍼
마커 키퍼, 마커는 무슨 뜻일까요?
‘마커’는 자유롭게 표현하는 사람 모두를 칭해요. 그 사람들을 지켜준다 해서 ‘마커 키퍼’예요. 육아를 하며 아이가 표현하는 말, 그림, 행동이 굉장히 창의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분명 저도 그랬을 텐데 크면서 모든 게 사라진 거죠. 아이들의 창의적인 면이 사라지지 않도록 계속 지켜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만든 영상, 제품을 활용한 프로젝트를 어른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들도 아이였을 때의 창의적인 순간으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아이들의 창의성을 지켜주고, 어른들의 창의성도 다시 회복시키고 싶어 ‘마커 키퍼’를 만들게 되었어요.
‘마커’의 의미가 지켜준다는 말씀에 비춰 보면 교육이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라고 느껴집니다. 대표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예술교육의 길로 접어들게 되셨나요?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대기업 프로젝트도 많이 하며 디자이너로서 삶이 지쳐갈 때 즈음, 우연히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디자인 강사로 참여하게 되었어요. 활동을 하게 되면서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에 반했고 미래의 아이들을 위한 디자인 교육을 고민하면서 ‘디자인적 사고’를 가르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교육을 하면 할수록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더 공부하고 싶고, 전문적으로 하고 싶어 디자인 교육대학원을 진학해서 자격증도 땄어요. 디자인 교육으로 시작했지만, 문화예술교육 디자인 강사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강사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고, 자연스럽게 통합 교육도 하게 되었어요. 그 과정이 너무 좋았어요.
교육이 만드는 에너지가 삶의 결에 잘 녹아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 강사부터 학교 교원까지 교육자로서도 다방면으로 활동하셨는데 창업을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완전 내려놨어요. 어떻게 보면 경력 단절일 수 있지요. 하지만 저는 그 덕분에 제가 했던 일들을 돌아볼 시간이 생겼어요. 아이가 제 삶의 귀한 시간을 만들어준 셈이죠. 그렇게 아이와 함께하며 저를 이해하는 시간을 쌓아가면서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함께할 수 있는 문화예술 아이템, 교육 사업을 고민하게 되었어요. 디자인 교육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 해결책으로 제품을 개발하거나 프로젝트를 기획 운영하도록 ‘디자인 사고’를 가르치는 일인데, ‘나는 지금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어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육아만큼 창의적인 업무가 없는 거예요. 내가 키우는 만큼 성장하는 아이를 보면서 보람을 느꼈어요. 이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사업이 있을까 고민하다 사회적인 과제를 풀어가는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에 지원하게 되었어요. 예비 창업으로 700만원을 받고 성과가 좋으면 본 트랙에서 3,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업을 키우기 좋은 과정이라 생각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가지고 창업하신 것 같아요.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싶었을까요?
당시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아이들이 영상을 너무 많이 보는 시기였어요. 그 때문에 영상 콘텐츠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들만의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계획서를 썼어요. 돌아보면 예산에 비해 말도 안 되는 큰 규모의 사업이었죠. 하지만 운 좋게 당시 시대상과 잘 맞아서 ‘함께일하는재단’에서 진행하는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에 선정되었어요. 이후에 예비 트랙으로 갈 수 있었어요. 예산과 교육을 지원하는 제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죠.
하나씩 과정을 밟아 나가던 중 의미 있는 결과를 얻게 된 것은 아이와 함께 ‘괴산’에 갔을 때였어요. 저희는 로컬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콘텐츠 팀이었기에 아이와 함께 괴산을 탐험하면서 지역의 색깔을 발견하고 그림을 그려 굿즈를 만들어 팔았어요. 그때 기대하지 않았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아이가 판매도 같이했어요. 저희를 찾은 소비자 중 특히 MZ세대의 반응이 뜨거웠어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도 아이들과 함께 해보고 싶다는 의견을 많이 주셨어요. MZ세대 참가자는 나중에 아이 낳으면 같이 해보고 싶다고 했고요. 그런 반응을 현장에서 목격하니 ‘내가 하려던 프로젝트가 나만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어요. 작지만 수익도 창출하고, 즐거웠죠. 아이는 그때 왜 학교에 가야 하는지 이해된다고 했어요.
괴산의 색으로 만든 딱지 ⓒ마커 키퍼
괴산의 색으로 만든 딱지 ⓒ마커 키퍼
육아를 하면서 비슷한 문제를 가진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어요. 경험을 제공하는 교육 프로젝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자연스럽게 ‘마커 키퍼’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어떤 경험을 주고 싶은가를 고민했어요. 22년도 사회적기업 육성사업 본 트랙에 접어들어서 ‘아이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을 하겠다’고 제안했죠. 아이디어가 더 현실적으로 진화하기 시작한 거예요. 덕분에 3,300만원의 예산을 더 받게 되었어요.
예산을 더 받았기에 작년(2022년)에 ‘OUR TIME’이라는 팝업을 만들 수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슬로건을 만들었습니다. ‘KEEPING YOUR CREATIVITY. DRAWING FREELY~ FILLING YOUR HEART!’ ‘마음껏 그리고, 채우고, 표현하라.’가 회사의 모티브가 되었어요. 아이처럼 그리는 것을 즐거워하는 MZ세대를 멘토로 모집하고 그들이 ‘마커’들을 만나 함께 일주일간 팝업을 열었어요. 예상치 못하게 15개 정도 회사와 협업도 했고, 예상보다 더 많은 분이 찾아주셨어요. 일주일간 천 명 넘게 오신 거예요. ‘OUR TIME’이라는 이름으로 마커키퍼의 가치를 나누는 팝업을 기획하게 되었고, 공간을 운영하면서 모든 곳을 그림 그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무조건 낙서해도 되는 것이 저희 취지였어요. 바닥, 땅, 벽에 마음껏 그렸어요. 아이들의 그림을 보내면 노트로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출시했는데, 실제로 제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 고민을 기반으로 이제는 아이들의 그림으로 굿즈를 제작하고 학교에 서비스하는 ‘버킷리스트 컬러링 달력’ 같은 제품을 만들어 사업을 이어 나가고 있어요.
차근차근 역할을 정립하고, 영역을 다져 나가신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이어가기 위해 수익이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커 키퍼’는 어떤 수익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올해는 청년사관학교에 39세 마지막 나이로 입교해서 지원사업을 꾸준히 받고 있지만 기업 자체의 수익 구조가 돌아가야 해요. 앞서 말씀드린 ‘굿즈’와 ‘학교에 제공하는 서비스’ 외에 올해는 마커들을 위한 노트 앱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술 개발을 했고, 현재 특허 출원 중에 있어요. 서서히 해외 매출도 나오고 있는 상태입니다. 수익이 늘어나는 만큼 고용을 계속 증대하고 있고요. 자체 기획 사업 외에 디자인 외주를 확대하고 있기도 하고요.
요즘 청년들이 마주하는 어려움이 많아요. 현실이에요. 저 개인적으로도 연애, 결혼, 출산, 진로 등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청년들의 멘토가 되어주고 싶고, ‘마커 키퍼’가 더 많은 청년과 창의성을 지키는 일에 함께할 수 있길 바라고 있어요.
수익을 만들어서 순환시켜 나가며 봉사도 하고 청년 멘토링, 복지단체에 기부하는 영역을 계속 확대하려 해요. 이번에도 사업 개발비를 받아서 시스템을 만들어 일부는 복지사업에 사용하려고 해요.
대표님 이야기를 들으니 기존의 틀을 비틀어 새로운 길을 만드신 것 같아요. 그 과정이 유의미하고 긍정적으로 느껴집니다. 많은 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줄 것 같아요. 하지만 현실이 긍정적일 수만은 없을 텐데요. 현재 겪고 계신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어려움이 없을 수 없죠. 지금 저희가 지역문화재단과 일을 하고 있어요. 문화예술교육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할 줄 아는 회사이기에 캐릭터 개발부터 BI까지 다 브랜딩을 하게 되었어요. 과업에 비해 예산이 적었지만 좋은 교육을 만들기 위해 애썼어요. 노력과 별개로 공공기관과 함께 일한다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어요.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진 그렇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의논되지 않았던 부분들을 해야만 할 때, 지역과 연결되는 부분이라서 스케줄이 많이 바뀔 때, 저 혼자가 아닌 팀원 전체적인 일정과 업무량이 늘어나서 미안하고 저도 많이 속상해요. 문화재단 입장도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어서 긍정적으로 다시 생각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일하는 청년들을 위해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오히려 즐겁게 사업을 마무리하자는 마음으로 더 탄탄한 협력 구조를 만들고 있어요. 사실, 아이 둘을 낳고 모든 면에 인내가 더 생겼고,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사업도, 사람도 대하다 보면 다들 불편한 이유가 보여서 서로 해결하는게 좋다고 생각해요.
지역문화재단과의 갈등이라 말씀해 주시니 어떤 고생일지 너무 선명하게 상상이 됩니다. 조금 긴 호흡에서 보면 공공은 시민의식을 먹고 자라는 것 같습니다. 오늘 대표님께서 써주신 마음이 있기에 내일은 우리와 함께 한 발 나아가는 공공이 되지 않을까 희망해 봅니다.
창업하고 ‘마커 키퍼’가 점점 형태를 갖춰가면서 대표님께서도 스스로를 정의하는 이야기가 생기지 않았나요? 그 정의가 어쩌면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많은 분께 응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진주를 한마디로 소개한다면…?
“두 아이의 응원을 받고, 청년들의 지지를 받는 마커 키퍼 대표 김진주입니다.” 제가 면접관들 앞에서 스스로를 소개하는 문장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청년들의 멘토가 되고 두 아이를 잘 키운 성공한 창업자’입니다. 목표를 단계별로 설정하는데 최종 목표는 그것입니다.
요즘 들어 경제적으로 잘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격차가 너무 커진 것 같아요. 저희의 사회적인 임무에는 ‘창의성 격차 해소’도 포함되어 있어요. 아이들이 가진 창의성을 잘 키우고, 어른들이 가지고 있던 창의성을 회복시키는 사업을 잘 키우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저의 두 아이도 함께 성장하길 바라고요.
그렇게 아이와 함께 성장해 나갈 대표님과 마커 키퍼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봅니다.
험난한 세상을 살며 우리는 각자 싸움의 기술을 터득합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김진주 대표님은 어떤 기술로 오늘을 만드셨을지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이 항상 영감을 줘요.”라는 그의 말에서 힌트를 얻습니다. 그 기술은 ‘애정 어린 발견’이 아니었을까요. 그저 애정하는 마음으로 그 대상이 되어보는 것. 그에게 배울 가장 강한 기술이 아닐까 싶습니다. 독자님들 모두 오늘 ‘마커’가 되어보시길 희망하며, 서로에 대한 애정을 발견하길 희망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마커 키퍼의 청년 멘토단 ‘힙커’ ⓒ마커 키퍼
PS. 낙서가 가장 창의적인 순간이라 생각한 마커 키퍼는 곧 ‘마커 노트’를 출시할 예정입니다. 마커들의 낙서뿐만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메모 등 #해시태그로 정리되고, 다양한 템플릿을 개발해보는 노트앱의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디자이너의 사고방식을 경험하는 앱입니다. 누구나 창의적인 순간을 간직하고 싶은 마커님들~!! ‘마커노트’ 다운로드 부탁드립니다!
마커 키퍼 더 보기
● 홈페이지 : https://markerkeeper.com/● 마커노트 웹앱: www.markernote.com /
● 아우어타임 팝업: https://www.youtube.com/watch?v=20UdrAjZF8o
● 괴산 이야기 아이가 찾은 색깔, 아이의 그림 더 보기: https://markerkeeper.com/project/goesan/
●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markerkee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