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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사람의 찐팬을 만드는 감응의 예술 : 피스오브피스(Piece of Peace)
  • 최엄윤
  • 2023.10.11

지지봄봄 38호

-싸움의 기술

삶이 기획이 될 때

한 사람의 찐팬을 만드는 감응의 예술
: 피스오브피스(Piece of Peace)

최엄윤(독립문화 기획자)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혁명가, 체 게바라를 동경했다. 평전을 통해 만난 체 게바라는 혁명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사랑하고, 아프고 가난한 민중을 치료하고, 뿌린 씨의 열매를 기다림 없이 다시 게릴라 전투를 나선 끝없이 앎을 추구했던 혁명가였다. 나에게 싸움은 혁명의 동의어였고 어떤 낭만성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진부한 언어로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변해 갈 때, 어쩌면 삶에 조금 지쳐갈 때 ‘피스오브피스’를 만나 싸움의 기술을 들어보았다.


첫 번째 기술 : 일단 만나자
 
서울아까워센타
서울아까워센타


이연우 : 천근성 작가님과는 ‘노인 이야기 들어주는 청년 예술가 프로젝트’에서 만났다. 해당 프로젝트가 끝난 뒤, 작가님이 몇 번이나 문래동 작업실에 밥 먹으러 오라고 하셨다. 이야기를 나눠 보니 환경과 동물권, 사물 돌봄 등 연결되는 관심사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팀이 되었다.

천근성 : 2011년 겨울부터 3~4년간 문래동에 있다가 지방과 해외 레지던시를 다니고, 결혼하고, 세계여행도 가고 공백기를 가졌다가 2018년에 돌아왔다. 예전 문래동은 마을 공동체가 가진 긍정적인 분위기가 있었는데 돌아와 보니 카페, 술집이 많이 들어서고 작가들끼리의 네트워크도 분산되어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면 귀농해서 살고 싶었지만, 실행에 옮기기 전 문래동을 회복하는 것부터 시도해보고 싶었다. 2019년에 연 ‘자투리 잡화점’이 그 시도를 반영한 첫 프로젝트였다. 버려지는 재료들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눌 수 있는 상점이면서도 마을회관, 경로당 같은 허브 역할을 하길 바랐다. 포괄적 의미에서 ‘자투리’는 버려지고 남은 것이 될 수도 있고 비주류, 소수자, 사회적 약자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단어다. 스스로 자투리라 생각하니 다른 사람과 편하게 연결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일이 생겼다. 피스오브피스 멤버들도 대부분 이때 만났다. 덕분에 코로나 때도 모여 재미있게 먹고, 놀고, 일하면서 수월하게 보낸 것 같다.

이연우 : 우리는 서로를 ‘피스’라고 부른다. 자투리가 조각조각 모이면 매력적인 게 탄생하니 오히려 부족함이 필요했고, 나도 평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피스가 될 수 있었다.

천근성 : 2020년에는 더 많은 사람과 ‘리페어 컬처(있는 것을 잘 고쳐 쓰는 것)’를 통해 소통하기 위해 ‘메이커스 연-장 도서관’을 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저렴한 가격에 공구를 빌려주고 쓰는 법도 알려주었다. 커뮤니티화를 시도하기도 했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그래서 2021년부터는 거리로 나갔다. 쓸고 닦고 조이고 보듬으면 충분히 쓰일 수 있지만 버려진 길거리 물건들을 ‘유기사물’이라 명명하고, 거리에서 직접 그것들을 고치면 지나가는 사람이 불특정 다수의 관객이 되는 일시적인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것이 ‘서울아까워센타 : 유기사물구조대’다. 그리고 이후 이 활동은 서울아까워캠프, 서울아까워클리닉 등의 워크숍들로 이어졌다.

두 번째 기술 : 주체성 생산
 
플라스틱 정글 탐험대
플라스틱 정글 탐험대

이연우 : 지난 5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어린이날 축제를 위해 광주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유기사물을 모아 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미로 같은 걸 만들었다. 지자체의 협조를 받아 적환장(동 단위로 나온 쓰레기를 모았다가 매립지로 가는 중간 허브 역할을 하는 곳)에 모인 몇 개 동의 쓰레기가 하루 만에 2~3층 건물 높이로 쌓이는 걸 목도했다. 하반기에는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에서 진행되는《ANTI-FREEZE : 얼어붙지 않을 거야!》라는 환경+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박물관 옥상정원에 자투리 나무와 유기 사물로 만들어진 식물 아파트를 만들었고 내년 3월 31일까지 전시한다.

천근성 : 박물관 측에서 옥상을 활용하고 싶다고 해서 그곳에 텃밭을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인구는 주는데 아파트는 늘고, 서울과 경기의 그린벨트가 줄고 도시가 확장되면서 상당량의 폐기물이 발생한다. 버려진 물건들로 만든 식물을 위한 아파트 형태의 텃밭 상자 100개를 만들고, 100명의 신청자에게 분양해 씨앗을 심고 가꿔 공공기관에 본인의 이름이 들어간 땅이나 건물을 소유하는 콘셉트를 잡았다. 돈보다 중요한 건 내 삶을 내가 이끄는 주체성이고, 그게 행복이랑 직결된다. 예술만큼 주체성이 발현되기 쉬운 분야가 또 있을까? 내가 피리를 불면 그 소리가 온전히 나인 걸 느끼고, 내가 만든 것이 온전히 나에게서 나온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예술을 통해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나라고 권유한다.

이연우 : 올해 진행한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플라스틱 정글 탐험대》다. 화성시의 반석산 에코스쿨에서 미취학 아동 대상 전시 제안을 받은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2523년의 지구를 상상했고, 해수면이 올라 모든 것이 가라앉았다가 조금씩 회복하는 과정에서 지구에 남아 있던 플라스틱과 AI 로봇들이 유기물이 되어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했다는 컨셉의 어린이 전시이며 작품들은 폐장난감과 플라스틱 쓰레기로 만들었다. 반석산 전시 후 현재 우리가 입주한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 전시 중이다. 우리는 늘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걸 꿈꾸는데 가령 아이들이 몇 없는 소멸 예정 지역에서도 이 전시를 해보고 싶다.

천근성 : 뉴스에서는 계속 인구소멸을 이야기하는데 ‘플라스틱 정글 탐험대’는 오히려 전국으로 어린이들을 찾아가는 전시를 강조해 아이들이 드러나게 하고 싶다.

세 번째 기술 : 상황, 공간과의 브리콜라주
 
깐따삐아 <사진출처 :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홈페이지>
깐따삐아 <사진출처 :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홈페이지>

천근성 : 작업 요청 메일이 오면 우선 만나자고 제안해서 요구를 듣는다. 그 요구를 재료로 우리 색을 묻혀 대부분 처음 요청하신 것과는 다른 기획을 보낸다. 상상한 것과는 달라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우리의 열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같이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브리콜라주 정신을 받아들이니 어떤 상황에서도 작품과 전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연우 : 프리랜서가 되기로 결심한 후 내년에 당장 아무도 날 안 찾아주면 어떡하나 두려움이 있었는데, 브리콜라주로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사람들을 만나고 유연함을 가졌더니 살아지더라. 사회가 원하는 핸들을 쥐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의 핸들을 잡을 때 더 행복했다. 그게 중요한 것 같다.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우리가 재미있어야 한다’가 큰 가치이고 거기에서 출발한다. 2022년 서울예술교육센터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활용한 청소년 예술워크숍 《플라스틱 트라이브 : 새로운 종족의 탄생》(이하 플라스틱 트라이브), 《백두산을 향해▲: 기후 위기 시대에 브리콜뢰르 되기》(이하 백두산을 향해)를 진행했고 세계관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트라이브’는 2222년 화성으로 이주한 지구인들이 화성도 포화상태가 되어, 사람들이 떠나 회복된 지구에 살 수 있는지 와보는 콘셉트의 10주 기간의 프로그램이었다. 우선 세계관 스토리가 담긴 영상을 보여줘서 이해를 돕고, 아이들이 직접 캐릭터가 되어 복장으로 갈아입고 게임을 하듯 플레이하고, 사운드와 조명까지 사용해 상황에 몰입할 수 있게 했다. ‘백두산을 향해’는 2100년쯤 해수면이 올라 서울까지 몽땅 잠기는 상황에서 자기만의 생존 카트를 만들어 백두산으로 가는 콘셉트였다. 이후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에서는《LET'S GO.ᐟ 깐따삐야 : 지구별 대모험》(이하 깐따삐아)을 진행했다. 2200∼2300년 인류가 사라진 지구에 깐따삐아 별의 외계인들이 불시착하게 되고, 쓰레기로 우주선을 고쳐 다시 깐따삐아 별로 돌아간다는 콘셉트의 3주 워크숍이었다. 깐따삐아 옷도 만들어서 입고 깐따삐아 어도 하는 등 조금의 아이디어를 주면 아이들이 스스로 발전시켜 나갔다. 폐장난감으로 자기만의 우주선을 개발해 박물관의 나선형 공간에서 날려보았다. 이후엔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전시하고, 책을 만들어 세계관 소설도 넣었다.

천근성 : 우리가 재미있어야 하니 계속 새로운 콘셉트를 만들게 된다. 자발적으로 오지 않은 중고등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설명하면 재미없다. ‘백두산을 향해’는 서울예술교육센터에서 공구 교육을 요청했지만, 우리는 공구와 재료 그리고 상황을 주고 청소년들에게 알아서 만들라고 했다. 태풍이 오니 빨리 백두산으로 가야 한다고 하면 본인들이 알아서 브리콜라주한다. 어떤 친구는 나사를 망치로 때려서 박았다. 정말 그런 상황이 오면 이게 맞는 방법인 거다. 정답이 없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걸 보고 우리도 경험을 통해 더듬어 가면서 새로운 길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이연우 : 피스오브피스는 작업으로 문화예술교육을 대하다 보니 매번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해서 솔직히 쉽지는 않다. 하지만 날것이 들어가 새롭고 지루하지 않고 계속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천근성 : ‘플라스틱 정글 탐험대’에는 조형 작가 몇 명이 참여하고 있다. 작가들이 처음에는 어린이 전시에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이런 식으로 관객과 접속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너무 좋아한다. 이전에는 작업은 작업대로, 생업은 생업대로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혼연일체 할까 항상 고심하고 있다. 세계여행에서 문래동에 돌아왔을 때 생태적지혜연구소의 故 신승철 소장님이 이제 세계여행을 마쳤으니 제자리 여행을 해보면 좋겠다며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에 관해서 많이 설명해 주셨다. 그 영향으로 같은 걸 보더라도 다르게 보려 한다.

네 번째 기술 : 분자 혁명

이연우 : 기존 언어를 조합해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거나 생소한 단어를 발굴하는 걸 좋아한다. 언어의 역할도 옷 입듯이 중요하다. 천 작가님이 여기저기서 알아 온 지식이 엄청 많고 나는 그걸 듣는 게 재밌다. 예를 들어 작가님이 적정예술에 꽂혔다면 나도 그게 뭔지 파보는 등 의견을 주고받으며 그 개념을 체화하고 견고하게 만든다. 주로 대화에서 영감을 얻는다.

천근성 : 정책사업에서 생활예술, 전문예술로 나누는데 그러다 보면 사각지대가 생긴다. 사각지대에 남겨진 것들을 발굴해 내고 싶다. 활동가가 이타심이 강하다면 예술가는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메타언어 대상을 직접 서술하는 언어 그 자체를 다시 언급하는 한 차원 높은 언어로서 고차언어 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건 모두에게 이로우면 좋겠지만 나에게도 이로우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요즘 우리는 피스오브피스를 ‘적정예술 콜렉티브’라고 새로이 설명하고 있다. 적정예술이란 주어진 조건과 주변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하는 예술이다. 피스오브피스 활동 전 내 개인 작업의 키워드는 관계, 돌봄, 연결이었다. 예술이 보이지 않는 존재나 터부시되고 가려진 것에 어떻게 가치를 생성·부여할 수 있는지에 관한 작업을 했다. 예를 들어 파견 예술로 요양병원에 갔는데 입원하신 분과 대화해 보니 집이 궁금하다 하셔서 집과 본인, 보고 싶은 사람들을 찾아 촬영해 전달하는 영상 배달부를 했다. 지금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감응시키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내 예술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정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지역 곳곳 가까이 있으면 그게 사회적으로 더 이로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연우 :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맛있는 요리 한 그릇을 만드는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가치관을 만들어주셨다. 세상이 말하는 대단한 예술가가 되기보다 오히려 작가님이랑 새로운 말을 만들면서 작업하는 게 재미있다. 나중에는 우리가 만든 단어들을 모아서 피스오브피스 사전을 만들어 보고 싶다. 유기사물구조대를 한 지 3년이 되었을 때 어느 날 누군가가 유기사물이란 단어를 쓰며 프로젝트를 하는 걸 봤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프린들 주세요》라는 동화가 있다. 어떤 남자애가 펜을 어느 날부터 ‘프린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하고 그게 퍼져 나가 영국 대사전에까지 등재되는 과정을 담은 동화인데, 그걸 우리가 하고 있다는 생각에 재밌었고 그런 예술을 지향하면서 사는 것 같다.

천근성 : 故 신승철 소장님은 저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셨고 정말 닮고 싶다.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 명의 찐팬을 만드는 것, 연결하고 확장하는 건 신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분자 혁명이다. 대부분의 메시지는 선생님께 배웠고 그것을 체현하려 하고 있다. 배운 것을 잘 활용해서 변환하면 그것이 나에게 크리에이티브로 다가온다.

이연우 : 신 선생님은 지치지 않고 손을 내미는 분이었다. 장례식장에 앉아 사람들이 선생님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을 실제 뵌 적도 없던 사람들이 와서 감사했다고 하고, 가까이서 신 선생님을 좋아한 사람들은 자기 영혼을 바꿨다고 표현하는 등 내가 생각한 것보다 몇 배 사람들의 인생을 터치하셨더라.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배우고 나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것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들이 “나 하나로 변화하겠어?”라고 말하지만, 내가 존재함으로써 피스오브피스 7명이 비건식을 먹고 누군가가 나를 보면서 텀블러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해서 감동이었다. 작가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의 팬을 만든다던 것과 비슷하게 가까이서 지켜보고 느끼는 것에 더 감동하는 삶을 지향하게 된 것 같다.

“결국 작은 변화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분자 혁명을 배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자혁명의 방향성은 생명과 자연으로 향하고, 소수자-되기로 향한다.”

천근성 작가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자투리의 개념을 정의하여 피스오브피스의 작업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우애와 환대를 나누고, 욕망을 찾아가는 질문과 대화와 설득 속에서 창의적으로 조합하고 연결하여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만드는 피스오브피스. 그 작은 혁명의 씨앗을 품은 다양한 생명력이 파동이 되어 넓게 퍼져나가면 좋겠다.

피스오브피스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pofp_studio
피스오브피스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pofp_studio
생태적지혜연구소 홈페이지 : www.ecosophialab.com/



최엄윤 / 독립문화 기획자
예술가와 행정가, 연구자와 활동가를 넘나드는 경험을 쌓고 독립문화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는 말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언젠가 결국은 창작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사진 제공. 최엄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