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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민갑
  • 2023.10.11

지지봄봄 38호

-싸움의 기술

프롤로그

꽤 근사한 삶을 살게 된 비결

서정민갑(대중음악 의견가)

오래 하고 있는 몇 가지 일이 있다. 직업으로 삼은 대중음악 평론만이 아니다. 아침마다 운동한 지 8년쯤 되었고, 세미나 모임 세 개 중 두 곳은 10년이 넘었다. 어떤 일도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 몰랐다. 물론 처음 시작할 때는 다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는 날까지 대중음악 평론가로 일하기를 바랐고, 운동해서 건강하게 늙어가기를 기대했으며,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과 오래오래 공부하기를 꿈꾸었다. 그래서 쉬지 않았다. 계속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공연을 보았다. 반드시 일주일에 5일 이상 운동을 했다. 10년 동안 세미나 세 개를 동시에 진행하며 내가 빠진 날은 다섯 번 정도뿐이다.

이왕 하려면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하려면 계속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니다, 잘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계속했다. 이렇게 하면 되는지 몰라 두렵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계속하게 했다. 계속하는 것밖에 방법을 모르는 무지한 나를 몰아붙이며 쉬지 않았고, 쉴 수 없게 했다. 해놓은 게 없어 부족하지만 애쓰고 있다는 노력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만 하지 말고 저렇게도 해보았으면 좋았겠다 싶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경험이 있어야 했다.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계속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 분명 다른 사람들이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을 텐데 그 많은 말들이 곧장 나의 방식이나 기술이 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자존감이 낮은 마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멋지고 잘하는 것 같은데 나만 형편없어 보였다. 두려움과 걱정, 질투심이 간절함과 버무려졌다. 그것이 나의 에너지가 되었다.

그 에너지를 소셜미디어에 흘리며 꾸역꾸역 투덜투덜 걸어갔다. 내 페이스북을 지켜본 사람은 알 거다. 내가 얼마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지, 내가 얼마나 꿈이 높은지.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다 나 같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느긋했고, 누군가는 말을 삼키며 걸어갔다. 각자의 성격과 스타일대로 다른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갔다. 가령 11년째 함께 사는 나의 짝은 나처럼 소셜미디어에 속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털어놓지 않았다. 나처럼 쉼 없는 생활이 아니었다. 일어나 잠들 때까지 일과 관련된 뭔가를 보고 듣고 읽는 나와 달리 그녀는 퇴근해 돌아오면 일과 단절하는 편이다. 잠들기 전까지 누워서 게임을 하고 유튜브를 뒤지며 텔레비전을 보곤 했다. 결혼하고 일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제각각 다른 싸움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싸우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상을 추구하는 스타일이고, 목표치가 높은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세상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결과물을 내놓기를 바랐고, 인정받을 뿐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했다. 게다가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기를 욕망하기까지 했다. 기준이 높은 사람은 어지간해서는 만족하지 못한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더 나은 결과물을 내놓은 사람이 보이고, 더 존경받는 사람이 보이는 탓이다. 그 사람들에 비하면 자신은 항상 작게만 보인다. 당연히 스스로 만족한다거나 자신이 자랑스러울 리 없다. 여전히 나의 소셜미디어의 소개글은 “오늘도 부끄러운 삶”이다. 이것이 나의 진심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너무 고단했던 탓일까. 지난해를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공황 증상이 세게 엄습했다.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있는데 호흡이 잘되지 않았다. 태어나 50년 동안 숨을 쉬면서 살아왔는데, 숨을 잘 쉬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냥 숨 쉬며 살아왔는데 호흡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앰뷸런스를 불렀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 순간 나의 심장은 정상이었다. 다만 내가 그렇게 느낄 뿐이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숨을 쉴 수가 없었는데 심전도는 지극히 정상이라고 119구급대원이 나를 달랬다.

그 후 한동안 예전처럼 살 수 없었다. 책을 읽거나 일을 하려 하면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고통을 참아가며 잠시 급한 불만 끄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그동안 얼마나 자신을 괴롭혔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혹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삶에는 더 많은 기술이 필요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기술, 자신을 달래는 기술, 즐겁게 일하는 기술,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기술, 다른 이들을 존중하는 기술을 배워야 했다. 악기를 연주하는 기술처럼 방법만 안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먼저 그렇게 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했다. 삶의 태도를 바꾸고 예전과 다른 자신이 되려는 마음이 필요했다.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자신을 달래는 마음, 다른 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변화였다. 때때로 가보지 않았던 길로 성큼 건너가 보고 쓰지 않은 에너지를 써보는 마음, 삶의 태도를 바꿔보는 마음, 호기심과 용기, 관용과 배려가 있어야 했다.

삶에는 한 가지 방식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다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날마다 자신만의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 전투에서는 장점이 단점이 되고, 단점이 장점이 된다. 내가 그렇게 간절하지 않았다면 많이 쉬었을 것이고, 공황장애가 찾아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쌓고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변변치 않은 결과물과 스트레스를 맞교환하면서 산 것은 아닐까. 분명 다른 이들이 교환하는 품목은 제각각 달랐을 텐데, 나는 이렇게만 살아야 한다고 윽박지르며 산 것이 뻔하다.

어떤 삶이 가장 나은 방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각자 성격이 다르고 욕망이 다르고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교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남과 비교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말하라면 나는 하루 종일 떠들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좋아 보이는 방식이 있긴 하다. 느긋한 성격, 비교하지 않는 성격, 다른 이들에게 너그러운 성격이라면 더 편하지 않을까.

하지만 내 방식 가운데 어떤 부분은 결국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 모습도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가령 좀처럼 쉬지 않는 성격, 계속 뭔가를 찾아보고 읽고 듣는 성격은 공황발작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런 자신을 조금은 너그럽게 바라보게 되었다. 이런 나라서 안쓰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자신을 스스로 피곤하게 만들었지만 무언가를 계속하는 내가 더 낫다고 존중하기로 했다. 이 방식으로 50년을 살아왔으니 이제는 변화구를 던지듯 다른 방식을 섞어가며 살아도 좋지 않겠냐고 나를 설득해 보기도 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고, 반드시 루틴을 지키지는 않아도 된다고. 가령 며칠 운동을 건너뛴다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으며, 일하는 만큼 쉬는 일도 중요하다고 속삭인다. 목표를 정하고 달성하면서 얻는 성취감만이 아니라, 그 일을 하면서 느끼는 이런저런 즐거움도 중요하다는 것을. 일 이외의 즐거움이야말로 삶의 축복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문제를 해결하고 결과물을 멋지게 완성하기 위해 애쓰는 시간만 삶의 본질이 아니었다. 삶의 본질은 각자 정하기 나름이었다. 목표를 향해 가는 방식은 얼마든지 있다. 쉬엄쉬엄 갈 수도 있고, 가다가 방향을 틀어도 된다. 싸움의 기술은 다양한 게 낫다. 당장 사용하지 않는 기술이라도 알고 있는 게 도움이 되었다. 익숙한 기술만 절대화하지 않고, 다른 방식을 상상해 보는 여유만으로도 마음은 조금이나마 편안해질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의 기술을 기웃거려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경험은 다른 세계를 만나는 자극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세상에는 멋진 사람, 고민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에게 배울 기술이 수두룩했다.

뒤늦게 배운 싸움의 기술 중에는 삼십육계 줄행랑도 있었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 말해 봤자 통하지 않을 사람에게서 도망치는 수가 있었다. 그동안은 어떤 문제든 반드시 해결하려 하고, 가능한 한 빨리 해결하려 안달복달하는 편이었는데, 그래서 번번이 혼자 불타올라 자신을 갈아 넣을 때가 많았는데, 심지어는 내 답답함에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먼저 꺼내 싸움을 걸었는데, 그러지 않는 게 나을 때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이 내 뜻대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의 마음은 나와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당장 싸울 필요가 없는 싸움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를 지키고 보호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철갑을 두른 병사가 아니었다. 아무리 찔려도 죽지 않는 불사신은 더더욱 아니었다. 밖에서 찔리면 찔린 자신을 자책하며 스스로 더 깊이 찌르는 상습 자해범에 가까웠다. 그런 방식으로 평생을 싸우는 건 불가능했다. 때로는 무기를 내려놓고 전투의 현장을 떠나는 게 현명하다는 것을 수용하게 되었다. 비겁하면 안전하고, 때때로 비겁해야 버틸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저 도망치는 방식이 아니라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한 전술적 후퇴였다.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인내이기도 했다. 삼고초려나 와신상담 같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인생은 기다림이 필요했고, 기다림의 시간은 의외로 빨리 지나갔다.

대중음악 의견가로 활동하면서 다른 분야를 어슬렁거리는 경험은 부담 없는 자극이 되었다. 요즘 한 달에 서너 번 연극을 보러 가는데, 연극은 나의 일이 아니어서 부담되지 않았다. 음악을 듣거나 콘서트를 볼 때처럼 보고 듣는 동안 머릿속에 별점이 오가고 리뷰가 저절로 쌓이지 않았다. 그냥 보면 되었고,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골머리 앓을 필요가 없었다. 극장 로비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일 역시 거의 없어 혼자 들어갔다 바람처럼 돌아가면 끝이었다. 그럼에도 음악과 다른 이야기 방식과 언어는 음악이 안겨주지 못한 재미를 듬뿍 선물해 주었다. 동시대 예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생각하게 이끌어주었다. 덕분에 외출하고 견학 가듯 여유롭게 즐기고 있다. 삶에는 이렇게 빠져나갈 구멍이 있어야 했다.

이따금 떠나는 여행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지역에도 누군가 살아가고 있었다. 삶은 항상 흔적을 남기는데 그 흔적에는 꽃이 피어나기 마련이었다. 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흉내 낼 수 없는 꽃, 대체할 수 없는 꽃들이 보였다. 삶은 예술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예술보다 간절하고 예술보다 끈질겼다. 모든 삶이 예술이 되려 하지 않았지만, 삶은 예술만큼 울컥이게 만들었다. 여행은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소리 내 울거나 웃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 정도 속도도 괜찮다고, 내 삶의 앞마당에도 꽤 근사한 꽃들이 피어 있다 알려주었다.

그럴 때마다 김민기의 노래 <봉우리>를 듣곤 한다. 양희은 버전도 있고 전인권 버전도 있지만, 김민기의 버전이 좀 더 담담하고 묵직하다.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라는 노랫말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라는 김민기의 낮은 음성을 들으면 단단히 묶은 마음의 빗장을 풀게 된다. “사라지는 건 사라지도록 / 잊혀지는 건 잊혀지도록”하고 노래하는 김창완의 <백일홍>, “어제의 일들은 잊어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 완벽한 사람은 없어”라는 이상은의 <비밀의 화원>도 위로가 된다. 이상은이 <삶은 여행>에서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간 끝나니까”라고 노래할 때도 마찬가지다. 노래가 삶을 짚어주고, 삶은 노래를 깊이 듣게 한다. 이렇게 사는 것도 꽤 근사하다.
서정민갑 / 대중음악 의견가
맛있는 빵과 디저트를 사랑한다. 음악의 아름다움이 구현되는 방식과 사회적 역할에 특히 관심이 많다.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스스로 놀라는 글을 쓰고 싶어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한다. 블로그https://blog.naver.com/windntree/에 가면 어떤 음악을 들으며 사는지 엿볼 수 있다.
쓴 책으로는 『그렇다고 멈출 수 없다』, 『음악열애』, 『누군가에게는 가장 좋은 음악』, 『음악편애―음악을 편들다』, 『밥 딜런, 똑같은 노래는 부르지 않아』가 있고, 『대중음악의 이해』, 『대중음악 히치하이킹하기』, 『인간 신해철과 넥스트시티』 등을 함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