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류기
- 예술교육 비평 웹진으로 살아남기(담당자 편)
- 최나윤
- 202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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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봄봄 40호
-멈춤과 도약 사이에서
예술교육 비평 웹진으로 살아남기(담당자 편)
최나윤 (<지지봄봄> 담당자)
1. 표류기: 논의, 회의, 논의, 회의
태초에 ‘지지봄봄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그 방향성은 맞는가?’라는 내부적 고민이 있었다. <지지봄봄>은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이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가진다. 그리고 우리는 이 정체성에 자부심이 있다. 경기문화재단의 몇 되지 않는 웹진이자, 광역문화재단에서 운영함에도 문화예술 비평을 충분히 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쯤에서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었다. <지지봄봄> 계획안을 수정하고 또 수정하며 내부적 논의는 계속되었다. <지지봄봄>의 방향성은 어디를 향하는가? 앞으로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디자인은? 접근성은? 당장 올해는? 모든 방대한 고민은 ‘지지봄봄의 지속을 위해서는 개편이 필요하다’라는 중대한 결정으로 모였다.
지지봄봄 비평웹진 자문회의 자료
계속되는 내부 논의를 환기해 줄 산뜻한 외부의 바람이 필요했다. 웹진은 바깥에서 더 많이 보는(그래야 하는) 매체이지 않은가. 웹진 관련 전문가분들을 모시고 자문회의를 열었다. 자문회의의 주요 발제는 다음과 같았다. 코너 개편, 발행주기, 도달률, 그리고 방향성.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여러 웹진의 이야기가 나왔다. <지지봄봄>이 품은 고민을 다른 웹진들도 한 번씩 다 거쳐 간 모양이었다. 숱한 고민으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추어진 타 웹진들의 사례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지지봄봄아, 올해는 준비하는 해로 정하자. 일정이 조금 밀려도 이해해 줄래?’
2. 개편의 뼈대가 될 때
내부 논의와 자문회의를 거치면서 <지지봄봄> 개편의 뼈대가 얼추 만들어졌다. 먼저 코너 개편이다. 31호부터 사용하고 있는 현재 코너명들은 문학적이다. 코너명을 곱씹다 보면 <지지봄봄>의 정체성과 방향성, 무엇보다 ‘비평’ 웹진에 서린 애정이 엿보인다. 다만 해당 코너가 무엇을 말하는지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다. 독자의 관점에서도 코너명은 직관적일수록 이해하기 쉽다. 내가 필요한 기사를 찾을 때 더욱 그렇다. 이에 우리는 지금의 코너명에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코너명을 선보이려 한다. 지난 코너명을 보내며 너무 아쉽게만 바라보진 말아 주길, 같은 애정을 다른 모양의 유리컵에 담는다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 전문가분들의 말처럼 코너명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편집위원들과 담당자의 치열한 고민 끝에 독자들에게 가장 잘 다가갈 코너명이 탄생하는 법이다. 그만큼 코너명 변경은 올해 <지지봄봄> 개편의 큰 파이를 차지한다. 어떤 모습이 되었든 매우 치열한 하반기가 될 것이라 예상한다.
이 페이지에서 주되게 살펴볼 부분은 발행주기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궁금했던 부분이다. 내외부적으로 <지지봄봄>의 정체성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발행주기가 명확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지지봄봄>의 계간지적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따랐다. <지지봄봄>은 팬심과 대상층이 분명한 계간지의 성격이 강하다는 의견이었다. 한편, 발행주기보다 '비평' 웹진의 정체성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웹진의 시의성은 ‘비평’ 웹진이라는 역할에 대한 충실성으로 갈음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지지봄봄>은 계간지의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가되 개편을 통해 전문성을 공고히 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여기에는 큰 두 가지 과제가 따른다. 먼저 계간지답게 명확한 발행주기를 지켜야 한다. 많이들 <지지봄봄>은 왜 봄에 나오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 질문에 우리는 행정상의 이유로 상반기 발행이 어렵다는 답변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 모두 그 공백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지난 <지지봄봄> 담당자들은 발행 공백기를 메꾸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다했다. 잊지 말아 달라는,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가령 작년에는 각 카테고리의 의미를 설명하는 ‘~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시리즈를 진행했다. 추상적인 코너명을 풀어 설명하면서 댓글로 독자들의 생각을 주고받을 장을 마련했다.
‘~이 무엇인지 아사나요?’와 ‘예술교육팀이 추천하는 지지봄봄 큐레이션’
한편, 올해는 경기문화재단의 ‘예술교육팀이 추천하는 지지봄봄 큐레이션’ 시리즈를 진행했다. 각 사업 담당자별로 지난 <지지봄봄> 기사를 추천하며 이전 호들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여담이지만 올해 디자인 콘셉트는 손 글씨였고, 그림판 수작업으로 진행했다. 이후 담당자는 콘셉트를 잘못 잡았음을 인지했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마무리한다. 그렇다면 <지지봄봄>은 정확히 몇 월에 나올 예정인가? 올해는 일정이 촉박해 내년부터 정상적인 발행주기로 <지지봄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여름과 가을, 겨울 첫 달 발간을 목표로 잡았다. 부디 내년엔 독자들의 계절 시작에 <지지봄봄>이 함께할 수 있기를.
3. 웹(web)진이라는 기술 너머
<지지봄봄>이 계간지의 성격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정체성과 깊이의 문제는 다른 방면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바로 아카이빙이다. <지지봄봄>은 2012년부터 약 12년째 발행 중이다. 그만큼 많은 기사가 쌓여있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다시피 <지지봄봄>은 시의성보다 전문성의 영역이 더 깊은 웹진이다. 따라서 그간의 기사들은 예술교육계의 데이터베이스로 사용하기 충분하다. 물론 지난 <지지봄봄> 기사들은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누리집에 가면 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기사를 하나하나 찾아보긴 어려울 터. <지지봄봄>이 진정한 데이터베이스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존재’만으론 부족하다. 키워드를 통해 독자들이 기사를 쉽고 빠르게 찾을 방법을 구현할 필요가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웹진(Webzine)은 단어 그대로 기술이 낳은 매체다. 이런저런 논의를 하다 보면 결국 ‘아, 이건 기술적 문제네….’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도달률, 열독률만 보더라도 그렇다. 홍보의 기술도 필요하지만 독자가 어떻게 접하느냐, 얼마나 관심 있게 보느냐, 어떤 글을 많이 보느냐 등의 문제는 결국 다양한 데이터 통계와 분석의 싸움이다. 현재 <지지봄봄>은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누리집,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네이버 블로그, 카카오 채널을 통해 업로드되고 홍보된다. 메타(Meta)와 네이버, 카카오 데이터 통계 덕에 홍보 페이지의 추이는 꾸준히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지지봄봄> 전체 글이 올라가고 차곡차곡 쌓이는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누리집의 데이터다. 센터 누리집 역시 방문자 통계 및 아카이빙을 진행 중이나, 해당 페이지에 얼마나 머무는지, 혹은 어느 경로로 유입되었는지 등 정량적 통계에 대한 추적이 필요하다.
앞서 웹진은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기술로 만들어졌기에 기술의 소용돌이에 흘러가 버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즉 <지지봄봄>에 관한 실재적이고도 정성적인 데이터 분석도 필요하다. 이에 개편을 통해 독자와 좌담회 시간을 마련했다. 오프라인 대화의 장을 통해 디지털 성과 측정의 한계를 채우는 것이다(독자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앞으로 기술을 넘나들며 체계적으로 데이터를 축적할 <지지봄봄>을 기대해 본다.
4. 지금 우리 담당자는
괜찮다면 담당자의 고민을 잠시 털어놓겠다. <지지봄봄>을 맡게 되었을 때 가장 고민했던 건 접근성이었다. 접근성의 범위는 방대하여 나조차 여전히 무지한 영역이 많다. 누군가에게 당연했던 부분이 접근성의 중요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올해 <지지봄봄>은 접근성 문화기획 단체인 ‘조금다른 주식회사’와 함께한다. ‘조금 다른’ <지지봄봄>이 되길 바라며 접근성의 간격을 좁혀보고자 하는 소망이다. 물론 접근성에 관한 개편을 올해 완벽하게 완성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다. 폰트 크기의 조절, 모바일 디자인 개선, 레이아웃 변경 등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이면 참 좋겠다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가 원하는 접근성의 범위를 누리집 내에서 얼마나 구현할 수 있는지는 계속 조율해야 한다.
실행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행정 담당자는 무엇을 하는가? 실행할 수 있도록 실행한다. 나의 역할은 접근성 전문가와 누리집 전문가 사이에서 의견을 ‘잘’ 조율하는 것.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의 괴리를 최대한 좁히는 것일 테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꿈을 꾼 사람은 나일지도 모른다. 행정적인 언어에 잠식되어 꿈에서 깬 지 오래일지라도 처음 가졌던 꿈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이 틈을 타 잠시 호소한다. 담당자들은 문화예술을 좋아한다. 문화예술 행정가‘도’ 문화예술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문화예술이 너무나 ‘좋아서’ 이 일을 하는 것이다.
<지지봄봄>은 홍보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지지봄봄>을 만드는 모든 사람은 <지지봄봄>이 홍보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자부한다. 나 역시 담당자로서 <지지봄봄>에 경의와 자부심을 느낀다. 다만 동시에 부담과 기대가 얽히고설켜 있다. 나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어쩔 수 없이 아우라가 나오는 이 사업을 너무 어렵게만 다루지 않길. 동시에 내가 담당자라며 <지지봄봄>의 너무 많은 것을 뜯어고치려 하지 않길. <지지봄봄>의 정체성을 잇기 위하여 조심스럽게 시작한 글을 마친다. 기나긴 개편의 여정에 함께해 주신 모든 전문가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 도움들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뜻이기에.
*추신: 여름, 늦여름, 결국 8월 말에야 찾아뵙습니다. 죄송함과 조심스러움, 설렘이 공존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궁금했던 것은, 다들 안녕하셨나요? <지지봄봄>은 단단하게 잘 돌아왔습니다.
- 최나윤/ 예술교육팀
- 안에서는 문화예술 행정을 하고, 밖에서는 문화예술을 즐기러 다닙니다. 문화예술에 둘러싸인 삶이 꿈이었는데 얼추 비슷해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