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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05

지지봄봄 42호

-만남의 문법들

기술너머

접근성과 기술, 그 이후

최태윤 (작가, 미국 웨인주립대학 조교수)

나는 과학기술에 대한 비평적 관심을 두고 그림, 글, 코딩과 전자 회로 등을 사용하는 미술 작업과 교육을 한다. 그리고 장애인 예술가, 커뮤니티와 함께 작업하고 연대하는 활동을 하고자 노력한다. 이 글에서는 예술과 접근성 그리고 기술의 윤리에 대한 두 가지 생각을 풀어보고, 그 교차성에 대한 열린 질문을 한다.

1. 접근성을 넘어

2015년 경 뉴욕에서 친하게 지냈던 크리스틴 선 킴(Christine Sun Kim: 한국계 미국인, 농인, 시각과 음향을 사용하는 아티스트)과 협업을 시작으로 장애 예술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장애인 예술가가 직접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코딩 교육을 제공하여 한국에서는 <불확실한 학교>, 미국에서는 <사이닝 코더스(Signing Coders)>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1) 2020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기획으로 코로나19 시기, 온라인 비대면으로 장애 예술가들의 기술 교육을 진행했다.2) 이런 경험을 통해 한국과 외국의 다양한 예술가들의 장애 유형(청각 장애, 시각 장애, 발달 장애, 뇌 병변 장애 등) 뿐만 아니라 가족 관계, 교육 경험, 예술가 활동의 현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모두 포용 참여 다양
모두 포용 참여 다양


지난 몇 년간 한국의 미술 기관들은 접근성, 포용성, 다양성에 많은 투자를 했다. 10여 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장애인 예술가들이 첫 개인전을 하고, 자신이 직접 지원한 공공 기금 사업을 집행하고, 작업 세계가 널리 소개되는 모습을 지켜보면 뿌듯하고 짜릿하다. 수도권 미술관의 물리적 접근성에 대한 인식과 공연 예술 관람의 접근성도 많이 나아지고 있다. ‘모두’와 ‘참여’ 등의 슬로건을 앞세운 미술관, 극장, 미술 교육 등이 많이 생겨나고 있고, 장애인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자리도 자주 보인다. 장애인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해외 기관과 협력하여 국제 교류로 이어지는 사례도 보인다. 머지않아 미술 대학 등 다양한 문화예술 교육 시설과 프로그램에서도 접근성과 포용성이 보장되는 상상을 해본다. 장애인 예술가가 비장애인 예술가와 같은 레지던시에서 활동하고, 작품이 ‘장애인 정체성’의 표현이나 사회 복지의 맥락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서사와 예술성을 인정받고, 상업 미술계에서도 활발히 유통되는 미래를 상상한다.
 
착한, 천재적인, 올바른, 장애인 예술
착한, 천재적인, 올바른, 장애인 예술


장애인 예술가와 가깝게 활동하는 분들은 이러한 접근성 열광이 얼마나 지속될까 하는 우려를 하기도 한다. 문화예술계를 벗어나면 장애인 인권, 교통권, 장애인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과 복지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러한 현실을 기만하듯 장애 예술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착한’, ‘창의적인’, ‘천재적인’ 사회 약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데 사용되는 모습은 불편하다. 이러한 양극화 상황이 오늘의 현실이다.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통합되기 위해서는 많은 경계를 넘어야 한다. 그 경계를 줄이고자 하는 예술가, 교육자, 기획자는 어떠한 행동과 연구를 해야 할까? 예술과 교육의 물리적인 접근성 개선 이후에는 어떠한 경계를 넘어야 할 것인가?
 
≪HTH 무인장애예술 편의점≫ 김환 기획, 김은설, 김현우, 김환, 한승민, 라움콘 작가 참여, 포에버✰ 갤러리, 2024, 사진 H Space
≪HTH 무인장애예술 편의점≫ 김환 기획, 김은설, 김현우, 김환, 한승민, 라움콘 작가 참여, 포에버✰ 갤러리, 2024, 사진 H Space


이런 질문을 하던 중에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의 작은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artist run for space, 작가들이 직접 운영하는 DIY 갤러리), ‘포에버✰ 갤러리3) ’를 만들게 되었다. 휠체어 사용자이자 화가인 김환 작가가 개인전을 할 수 있는 대안공간이 거의 없다고 이야기했고, 그 후 휠체어, 유모차 등의 접근이 가능한 공간을 찾게 되었다. 얼마 전 김환 작가는 다른 장애 예술가 작가들을 섭외해 ≪HTH 무인장애예술 편의점≫이라는 색다른 전시를 기획했다. 장애인 정체성이 상품처럼 유통되는 장애 예술에 대한 도전이었다. 포에버✰ 갤러리는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모두’를 초대하지 않는다. ‘모두’가 아닌 여러 정체성, 사회 이슈의 교차성을 바라보고자 한다.
 
당사자성의굴레, 정체성 검열
당사자성의굴레, 정체성 검열


교차성이 필요한 이유는 사회 참여적 예술의 가치가 사회 문제 해결 성과로만 인식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가 개인의 정체성(사회 약자 정체성, 예를 들어 장애인의 당사자성, 난민의 경험)에만 집중하는 ‘사회’적 예술 담론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사자성과 정치적 올바름에 천착하는 예술은 계몽적인 담론을 넘지 못한다. 물론 당사자의 정체성과 서사를 존중해야 하고, 자기 주체적으로 표현하고 서사를 만들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발언과 문화적 도용을 피해야 한다. ‘당사자성의 굴레’라고 비판하는 것은 본인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작업을 하는 것은 무조건 비윤리적이라는 정체성 검열이다. 그러한 강박관념은 특정 정체성을 가진 예술가는 그 정체성에 대한 작업을 해야 한다고 기대하고 해석해 버리는 것이다. 여러 정체성과 사회 이슈의 교차성을 추구한다면 어떤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장애인 예술가를 시작으로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미술관을 찾는 커뮤니티 구성원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미래를 그려 본다. 관객의 변화와 함께 예술에 대한 담론도 바뀔 것이고 그에 따라서 미술관의 물리적 형태와 사회적 역할도 함께 변할 것이다. 미술관과 교육의 물리적인 접근성 개선 이후에는 어떠한 경계를 넘어야 할 것인가? 한두 번의 특별 활동에 그치지 않고, 접근성과 포용성 담론을 넘어, 지속적으로 사회 약자가 함께할 수 있는 예술은 어떤 모습일까? 식민지적, 근대적 미술관의 오래된 권력 구조를 넘어 탈식민지적인 실천, 비물질적인 퍼포먼스, 개념 예술, 커뮤니티 참여 프로그램, 리서치를 기반으로 하는 비평적 미술을 보여주는 창작, 미술관, 미술교육을 꿈꾼다.

2. 기술을 넘어

2008년 경 나는 대학원을 막 졸업하고 작가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해 서울의 한 병원에서 사촌 조카가 태어났다. 처음으로 신생아를 가까이서 보니 무척 신기했고, 작은 손과 발이 귀여웠다. 작업실로 돌아와 노트북을 켜면 당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자행하는 전쟁 소식이 온라인 포털에서 참혹한 풍경과 함께 실시간으로 공개되었다. 나는 신생아 조카의 모습이 담긴 폴라로이드와 뉴스 포털에서 내려받은 사진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더할 나위 없이 아늑하고 안전해 보이는 병원에 있는 조카와 폭격으로 생명을 잃은 신생아의 모습을 보며 누구의 아기도 불필요한 전쟁에서 생명을 잃는 일이 없도록 기도했다.

기술과 문화 예술, 군사 산업의 연결점에 대해서 처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이 시기이다. 내가 다닌 대학원은 설립 목적부터 방위 산업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위한 대학에 있었고, 현재도 국내 외 여러 군사 연구에 참여한다. 졸업 후 미국과 한국에서 작가, 교육자, 기획자로 활동했고, 프로그래밍 언어, 전자 회로 그리고 과학기술 철학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게 바라보게 되었다. 디지털 미디어 아트에 한발을 담고 그것을 후원하고 향유하는 사람들—기술 관료(technocrat: 기술을 우선시 하는 정책 관리자), 기술 맹신론자들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그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해야 할 일은 기술 관료들의 취향에 맞춰 스펙터클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치어리더 역할이 아닌 그들의 실체를 보여주는 거울이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짧지않은 시간이 흐른 지난 10월 5일 서울 밤하늘에 가득한 불꽃을 보며 다시 팔레스타인을 생각했다. 서울세계불꽃축제의 후원사는 군수산업을 하는 대기업이고, 그들의 중요 고객 중에는 이스라엘도 포함되어 있다. 그 외에도 여러 방위 산업체들이 있고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지속될수록 그 회사들의 주식과 원자잿값은 올라간다. 이스라엘 그리고 그들에게 무기를 팔고 군사 지원을 하는 미국과 유럽, 대한민국을 포함한 글로벌 노스(global north, 서구권 및 선진국을 통칭하는 용어)는 인공지능 같은 최신 기술을 사용해 전쟁의 형식을 바꾸고 있다. 이 전쟁은 먼 곳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그들이 자행하는 식민지화, 기술과 자본의 이동은 우리의 생활권과 창작 생태계와 밀접하다. 불꽃놀이를 후원하는 대기업 재단은 서울에 거대한 현대미술관의 설립을 준비 중으로 알고 있다. 윤리가 부재한 예술은 파시즘의 도구가 된다. 서울 밤하늘을 가득 채우는 화려한 불꽃놀이와 팔레스타인 하늘을 뚫는 탄도 미사일의 검은 구름을이 어떻게 다른지 질문한다.

군수산업에 참여하는 대기업들도 외적으로는 녹색 성장, 지속 가능한 기술, ESG/SDG 경영, 포용성, 다양성 등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그린 워싱, 아트 워싱과 같은 행태에 대한 비판도 중요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아닌 성장에 대한 집착과 환상을 벗어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디그로우스(degrowth)’라는 개념은 성장 감퇴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내가 관심 있는 연구자/활동가들이 사용하는 ‘디그로우스’는 ‘탈성장’이라는 개념에 가깝다.4) 전치사 ‘de’는 ‘무엇에 대항한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성장에 대항하는 힘이라는 뜻으로 ‘degrowth’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탈성장 개념은 무한 성장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며 환경주의, 소박, 공락, 자율성, 돌봄 등의 방향을 제시한다. 물론 이 개념도 글로벌 노스, 후기 자본주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제 삼세계 또는 개발도상국)의 사회적, 생태적,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는 무기력한 해결책이라는 비판도 있다. 다만 탈성장을 이념적인 도구가 아닌 일상의 실천을 위한 목표라고 생각하면 다른 문이 열린다.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태적 순환과 타인과 공존이란 장애인/비장애인이라는 인위적 경계를 넘고, 합법적/불법적 존재를 넘어 상호 의존, 그리고 지리적, 정치적 경계를 넘나드는 시적인 연대로 이어질 수 있다.

3.어떠한 교차성
 
교차성
교차성


사회 구성원으로서 예술가의 역할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를 유심히 바라보고,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미술관과 예술 공간의 역할은 예술가의 표현과 자유를 보호하고, 그 활동을 지원하고 확장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과거의 미술관이 식민지적인 팽창과 약탈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면, 미래의 미술관은 그곳을 찾는 커뮤니티 구성원과 함께 다양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그려 본다. 관객의 변화와 함께 담론의 흐름도 바뀔 것이고 그에 따라서 미술관의 물리적 형태와 사회적 역할도 함께 변할 것으로 추측한다.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의 교차성에 집중한다면 탈식민지적인 실천, 비물질적인 퍼포먼스, 개념 예술, 커뮤니티 참여 프로그램, 리서치를 기반으로 하는 비평적 미술도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아카이브> 서울 볼륨 런칭 이벤트, 연 나탈리 미크, 파올로 카포니, 김형민, 고병권, 김명학 (노들장애인야학) 참여, 포에버✰ 갤러리 2024, 사진 최태윤
<보이지 않는 아카이브> 서울 볼륨 런칭 이벤트, 연 나탈리 미크, 파올로 카포니, 김형민, 고병권, 김명학 (노들장애인야학) 참여, 포에버✰ 갤러리 2024, 사진 최태윤


포에버✰ 갤러리에서 올해 초에 진행되었던 한 프로젝트에서는 우연히 이러한 교차성을 이루었다. 서울의 문화예술 공간 SALT와 베로니크(veronique d'entremont)5) 작가의 협업으로 구현된 참여 설치 미술 전시 ≪3만의 애도: 팔레스타인과 연대를≫가 진행되던 시점, <보이지 않는 아카이브>6) 출간물에 참여한 노들장애인야학 인권 운동가들과 여러 예술가의 퍼포먼스와 대화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예술적 교차성과 실천에서 나는 희망을 찾는다. 한 명의 예술가가 전쟁을 멈출 수는 없지만, 주변의 사회적 약자의 경험과 사회의 거시적 움직임의 연결점을 찾을 수는 있다. 이런 ‘어떠한 교차성’의 미래가 온다면 사회 소수자의 유형에 따른 응급 처방전 같은 해결책이 아닌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 정의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그리고 예술을 통해 국가적, 인종적 경계를 넘나드는 연대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날이 곧 오기를 기대한다.

1)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접근성, 포용성, 기술과 윤리에 대한 연구를 하며 ‘인공적인 발전(Artificial Advancement)’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링크 : https://thenewinquiry.com/artificial-advancements/
2) 다르게 배우는 사람을 위한 예술적 표현의 확장’, 최태윤 작가 · 정보현 개발자, 2021, 이음 웹진, 웹아카이브
링크 : https://web.archive.org/web/20210623075934/http://ieumzine.kr/archives/79120
3)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 11, 104 1층에 위치한 15평 크기의 갤러리이다. 포에버✰ 갤러리 인스타그램을 참고하자.
링크 : https://www.instagram.com/forever.shadowed.white.star/
4) Degrowth’ 관련 정보
링크 : https://degrowth.info/degrowth
그리고 한국어로 소개된 책 리뷰도 참고하자.
링크 : https://greenacademy.re.kr/archives/12080
5) 베로니크 (veronique “nico” d’entremont) 작가의 웹사이트 링크 https://cargocollective.com/veroniquedentremont 그리고 이스라엘 학살의 피해자를 추모하는 ≪3만의 애도: 팔레스타인과 연대를≫의 서울 설치를 협업/ 기획한 SALT도 참고하자. 링크 : https://www.instagram.com/salt_sajik11
6) 보이지 않는 아카이브: 노들 장애인 야학, 파올로 카포니 (Paolo Caffoni)의 책도 참고하자. https://www.invisiblearchive.com/nodeul-school

최태윤/ 작가, 미국 웨인주립대학 조교수
최태윤은 미술 작가이자 교육자로 일한다. 미술 대학과 공대를 다녔고, 엑티비즘과 커뮤니티 참여에 관심이 많다. 2013년 뉴욕 시적연산학교 School for Poetic Computation을 공동 설립하고 7년간 예술, 코딩, 사회 참여에 대한 수업과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연세대학교, 댄버대학교 등에서 강의했고 다수의 미디어아트 기관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현재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포에버✰ 갤러리를 운영하며 접근성과 실험성을 함께 실천하고, 에콜로지컬 퓨쳐스(Ecological Futures)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