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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년 경기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전문위원과의 대담
  • 조재경,양혜정
  • 2023.12.11

지지봄봄 39호

-겨울의 두께

지금 우리는 II
2023년 경기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전문위원과의 대담

‘바로 그 예술가’가 초대하는 세계,
‘바로 그 아이’의 세계로 초대받는 예술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내는 존재적인 만남을 향한
유아 문화예술교육의 길 찾기

- ➁부 -

조재경(고무신학교 대표, 놀이번역가), 양혜정(연극놀이전문가)

Chapter 3. 유아와 함께하다


변서하 : 요즘 유아 문화예술교육사업에서 무엇을 주목하고 있는가?

양혜정 : 문화예술교육에 컨설턴트라는 역할과 용어가 달갑지 않게 느껴진다. 특히 올해는 더 다양한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역에 방문하였는데 ‘다양한 전문가들과 현장가들이 서로에게 수평적 관계 속에서 연대하고 연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현장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전문가 위의 전문가의 역할이 아니라, 공동의 아젠다를 꺼내고 함께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협력적 관계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조재경 : 사업의 단기성으로 인해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는 것이 유아 문화예술교육 사업의 한계인 것 같다. 유아 문화예술교육의 현장가들의 경험이 축적되는 만큼 전문성이 향상된다면 행정에서도 전문적인 역할이 중요하다. 담당자의 잦은 인사이동이 계속해서 같은 질문과 해법을 반복하거나 때로는 퇴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유아 사업을 2019년부터 시작하였다. 그간 데이터가 충분히 쌓여 정책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예술가들의 내용적 성장이 행정 정책으로 이어지면서 토대가 단단해져야 한다.

변서하 : 유아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진행하면서 정형화된 프로그램 접근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 것 같다. 특히 워크숍을 통해서 몰입하는 경험이 인상적이었는데 유아의 ‘몰입감’에 관해 경험을 듣고 싶다.

조재경 : 질문을 조금 바꿔보고 싶다. “어떻게 유아를 몰입시킬까?”가 아니라, “과연 몰입해야 하나?” 어린이들을 몰입시키기 위해 교육 현장에서 큰 노력을 기울인다. 유아들에게 몰입이라는 단어야말로 어른의 관점에서 아이들을 평가하는 것일 수 있다. 즐거움, 재미라는 단어로 바꾸어도 충분하다. 몰입이 가지고 있는 아웃풋만 본다면 잘못된 표본이 될 수도 있다. 그저 아이들이 즐거운가? 웃고 있는가? 이렇게 말을 풀어내는 순간, 현장의 강사들도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장에서 선생님들의 용어도 유심히 보는 편인데 아이의 동기, 움직임을 불러일으키는 몸짓, 움직임이 평면적일 때도 많다. 단어 선정에서부터 주의해야 할 요소인 것 같다. 아이들을 재밌게 해주려고 키트나 놀잇감을 주기 이전에 다른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생각은 왜 하지 않을까? 예를 들면, ‘저 선생님은 왜 한쪽 소매만 걷고 왔을까?’ 같은 사소한 것들로 아이들과 긴밀해질 수 있다. 내가 아이들을 내 세계로 초대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의 세계로 초대받는 것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만날 때에도 내가 먼저 인사를 한다. 존재-존재로서 만나야 아이들과 또 다른 관계로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양혜정 : 흥미롭다. 예술 경험은 조금 다른 면을 이야기할 수 있다. 가령, 연극적 경험은 시간과 공간을 바꾸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일으키는 다양한 시도가 있을 수 있다. 빛, 소리, 진행하는 아티스트의 몸짓과 이야기 같은 것들로 말이다. 다만 놀랍게도 예술가들이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작은 힌트만으로 아이들은 이미 충분히 시간과 공간을 변화시키는 상상의 놀이를 해낸다. 아이들은 상상 놀이로 세상을 이해하는 내적 논리를 구현해내는 전문가들이다. 예술가들이 너무 많은 장치를 가지고 아이들을 상상의 세계로 초대하려고 애쓰기보다 고무신의 말씀처럼 아이들의 초대를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예술이라는 말에 ‘놀이’가 붙는 것이다. 경쾌하고 신나는 게임 같은 편견 어린 플레이가 아니라 내적인 상상이 발휘될 때 일어나는 집중이 있다. 아이들의 몰입은 어른들과 다른 형태로 일어나서 마치 집중하고 있지 않아 보일 때도 있고, 주제와 다른 말들을 꺼내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는 아이들에게 몰입의 태도를 요구하지 않고도 이들이 내면의 상상과 집중이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눈을 기르는 것과 관계된다.

조재경 : 그것이 바로 강요하지 않는 어른의 역할이다. 놀이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무한하게 이어져 나가며 확장된다. 그 순간을 직접 경험하고 맛보는 것이 중요하다.

양혜정 : 어린이들의 놀이 세계를 어른들이 적극적이고 공식적으로 가지고 올 때 어린이들은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옳음’에 대해 감각한다. 그것이 어린이들을 인정하고 이들의 삶의 방식을 긍정하는 예술 놀이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우리는 자주 아이들의 상상이 기호화되어 소개되거나, 단순화된 감정으로 표현하는 상업 음악으로 포장되는 것을 본다. 그럴 때 다시 비우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조재경 : 비움은 곧 채움이다.

 

Chapter 4. 유아가 성장하다


변서하 : 왜 공공에서 유아 문화예술교육을 지원해야 할까?

조재경 : 한 사례로 서울문화재단에서는 사업기획의 초기 단계에서 “어린이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업을 진행하며 연구를 병행하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업이 입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깊은 연구를 시작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예술교육단체들의 고민과 함께하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고 모니터링같이 현장에서의 소통만 하고 있다. 재단에서 유아 문화예술교육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의 방점은 예술가에게 새로운 작업과 도전, 움직임이 일어나도록 다양한 각도로 연구와 질문을 할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가에게 더 많은 부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혜정 : 유아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삶의 연대라는 본질을 마주하게 된다. 유아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유아를 둘러싼 많은 어른이라는 주체가 있다. 생애 초기에 삶을 배우는 방식은 접속이 아닌 접촉이다. 만나고 경험할 뿐 아니라 상징과 비밀로 가득 찬 놀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통해서 성장하는 시기이다. 이 ‘어린이’라는 시기는 우리가 인간의 삶과 경험의 본질을 엿보는 영감의 원천이 아닐까? 여기에 문화가 있고 또 나를 표현하는 수많은 언어와 소통체계가 있는 예술이 있다. 공공이 예술을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첫 장이 될 수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현재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교육 사업은 국가 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마치 블루오션을 찾듯이 아직 문화예술교육이 만나지 않은 새로운 대상과 터전을 찾아 사업을 만드는 현상 속에서 예술가들은 후발대가 된다.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내적 발로로 시작되어 만드는 판에 자생의 힘이 발현되려면 예술가들의 실험과 도전을 더욱 지지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스토리가 생기고 일에 맥락이 생긴다. 예술작업에 주목한다면 예술가의 맥락은 스스로 만들 때까지 기다리고 지원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현장을 찾아가는 사업과 다른 트랙의 연구와 실험이 필요하다.

문화예술교육이 몇 명의 대상자에게 이루어졌는지 수치화하는 방식은 이미 시대착오적이다. 공공이 다시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대체 가능한 예술인들에 의해서 복제할 수 있는 예술프로그램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개성이 살아있는, 현장의 개별적이고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 유일하고 독특한 사례들을 개발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예술교육가들의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 것만큼 유아 문화예술교육에서 역량 강화의 대상은 유아를 둘러싼 양육자와 교사,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다. 예술가와 대중적 현장 사이에 교량을 잇는 다양하고 탄탄한 지형 마련이 시급하다. 급변하는 시대, 창의성과 인간의 놀이가 강조되는 이 시점에 예술이 해야 할 역할이 크다.
 
조재경 / 고무신학교 대표, 놀이번역가
시간을 잇는 놀이, 공간에 갇힌 놀이, 어른 놀이, 아이 놀이를 지금 이곳에서 펼쳐내는 일을 한다. 놀다 보면 저절로 생기는 것에 관심이 많고, 새로운 놀잇감을 만들기도 한다. 경기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심사 및 멘토로 활동했으며, 경기, 서울, 인천, 제주문화재단 등 지역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양혜정 / 연극놀이전문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어린이, 청소년 및 다양한 시민들과 교사와 예술가를 위한 창의성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을 한다. 내면의 어린이를 깨워 감각과 상상을 연결하는 창조적 본성을 회복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영유아를 위한 공연을 연출하였다. 변화된 시대와 문화 속에서 어린이들이 어떻게 드라마틱한 상상과 놀이를 구현하는지 연구를 시작했다.
한예종 연극원 강사로, 영유아극 <푹하고 들어갔다가 푸하고 솟아오르는>을 연출하고, 서울문화재단 <영유아 예술프로그램개발을 위한 기초연구>에 연구진으로 참여했으며, <일상과 예술의 만남>을 기획하고 운영하였다. 경기, 인천, 광명문화재단 등 지역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만물공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