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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년 경기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전문위원과의 대담
  • 조재경,양혜정
  • 2023.12.11

지지봄봄 39호

-겨울의 두께

지금 우리는 II
2023년 경기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전문위원과의 대담

‘바로 그 예술가’가 초대하는 세계,
‘바로 그 아이’의 세계로 초대받는 예술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내는 존재적인 만남을 향한
유아 문화예술교육의 길 찾기

- ➀부 -

조재경(고무신학교 대표, 놀이번역가), 양혜정(연극놀이전문가)

경기문화재단은 2019년부터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의 일환으로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초문화재단과 문화기반시설, 예술(교육)단체를 선정하여 유아 대상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역 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급하는 사업이다. 이 대담을 통해 경기문화재단과 2023년 경기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진행하며 발견한 시사점을 바탕으로 유아 문화예술교육에서 중요한 지점을 짚어보며 앞으로의 방향성을 모색하려 한다.

여기, 지난 2년간 경기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함께한 전문위원들과 사업담당자와의 대담을 싣는다.

 
조재경, 양혜정 대담
조재경, 양혜정 대담
 

Chapter 1. 유아와 만나다

변서하 : 경기 유아 문화예술교육사업에 참여하는 예술교육가들을 위한 워크숍, 심의, 모니터링 중 두 전문위원은 공통으로 유아의 자발성과 예술가의 예술성에 관한 강조를 많이 했다. 두 분의 만남을 소개해달라.

조재경 : 2022년 경기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서 처음 만났다. 호흡을 맞춰 유아 문화예술교육담당자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양혜정 선생의 작업과 연구에 늘 관심이 있었다. 언제 기회가 되면 함께하고 싶었다. 2022년 전문위원으로 선생님이 꼭 함께하시면 좋겠다고 사업담당자에게 요청했고, 양혜정 선생님도 흔쾌히 수락하셔서 오늘의 시간이 되었다. 놀이와 예술에 대한 그간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기 시작하며 매우 의미 있는 만남을 하고 있고, 활동을 함께 도모하고 있다. 나로서는 혼자 고민하던 놀이에 대한 경험과 이론을 양혜정 선생을 통해 확인하고 섬세한 언어로 재정립하는 기회가 되었다.

양혜정 : 어린이들에게 소개하는 예술교육을 ‘놀이’라고 하지만 작업 파트너로 놀이전문가를 만난 것은 조재경 선생님(이하 고무신)이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놀이가 명사화되어 전수되는 방식에 편견이 있었던 것도 같다. 나도 연극 놀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어린이들의 예술작업에서 어떤 놀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경험을 한정적으로 만든다. 아티스트의 개별적 독특성에 주목하는 예술 분야에서 사실 고무신이 어떤 놀이를 가르치는가보다 어떤 개성을 가진 예술가인가가 궁금하고, 또 그러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가가 궁금했다. 그리고 여전히 현장에서 어린이들을 직접 만나 작업하셔서 깊은 존경심이 있었다.

조재경 : 흥미로운 지점이다. 오랫동안 어린이 또는 부모, 예술가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놀이로 만나면서 놀잇감을 소개하고 전수하는 것이 아닌, 놀이가 동사로 일어나도록 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만났다. 놀이의 주인은 놀이하는 당사자, 자신이기 때문에 그 놀이의 저작과 판권이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현장에서 놀이를 일으킨다고 할 때, 그렇다면 그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간과되기 쉬운 부분이기도 했던 것 같다. 양혜정 선생과 교류하면서 예술가의 자기 놀이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떻게 어린이들의 놀이 세계와 만나게 될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양혜정 : 고무신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다. 요즘에는 놀잇감을 소개하면서 놀이를 이어 나가고 있다. 고무신에게 영감을 주는 놀잇감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가?

조재경 : 한마디로 나를 아슬아슬하게 했던 어린 시절 우리 동네가 나의 놀이터이고 그 놀이터에서 가지고 놀던 것이 놀잇감의 시작이었다. 흐르는 물을 막아서 논으로 공급하는 장치인 보(洑)가 있었다. 이 보는 댐처럼 전체를 다 막는 것이 아니라 요철처럼 들쭉날쭉 쌓아 올리고 그사이에 판재를 대어 물을 가두어 둔다. 어린 시절 이 위를 건너뛰면서 많이 놀았다.

가끔 물에 빠지기도 하면서, 그때 내 몸의 경험을 지금 아이들의 움직임으로 연결해 주고 싶었다.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라 노는 사람이 직접 움직이고 변형할 수 있다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현실에 구현해 보았다.

칡넝쿨을 헤치며 가던 기억은 거미줄 놀이터가 되었고, 인도와 보도를 구분하는 블록 경계선을 밟고 걷던 길은 높이를 더해서 아슬다리가 되었다.

초등학교 때의 평균대는 지금은 거의 체육 창고에 잠들어 있더라. 슬랙라인이라고 불리는 외줄 걷기는 구조적으로는 줄타기의 형태를 띠지만 그 안에는 어린 시절의 흔들리던 칡넝쿨들이 숨어 있다. 외줄을 디자인할 때 어느 만큼 흔들리게 할 것인가? 높이는 얼마큼 해야 안전하면서도 위험할까? 부모님이 아이들을 혼자 두고 가게 할 것인가? 곁에서 도움을 주게 할 것인가?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하지만 결국은 내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농도와 밀도를 결정한다. 너무 느슨하거나 팽팽하면 오히려 넘어질 위험이 있다. 그 아슬아슬함을 디자인하는 것, 그것이 외줄을 타는 어린이들을 흥분시키고 더 도전하고 싶게 만드는 동기부여와 자발성에 불을 지피게 한다. 그런 것들이 오랫동안 아이들과 놀면서 형성된 연구의 내용이자 형태인 것 같다.

양혜정 : 놀잇감 안에 고무신의 어린 시절 스토리가 담겨 있다는 것이 놀랍고 재미있으며 의미 있다. 그 본질적인 스토리가 없으면 누구나 복제할 수 있고 변형되는 놀잇감일 뿐이지만 개별의미가 담길 때, 그는 놀이전문가가 아닌 놀이아티스트가 된다. 그래서 늘 예술가들이 고안한 프로그램 안에 자신의 개별적 상상력과 체험이 어떻게 담겨 있는지 궁금했는데 지원 서류에서는 스토리를 확인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한편, 놀이에서 구조를 통해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놀잇감에서 놀이할 사람이 채워나갈 그 ‘경험’을 비워두는 것이 새롭게 들린다. 예술교육에서도 그 비움의 영역을 만드는 것이 매우 핵심적인 수업의 틀거리이지 않나?

조재경 : 그 지점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세요.” 또는 “비우세요.”라고 말하는 순간과 맞닿아 있다.

 

Chapter 2. 유아가 표현하다

 
  • 2023 경기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연수 조재경
    2023 경기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연수
    조재경
  • 2023 경기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연수 양혜정
    2023 경기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연수
    양혜정

변서하 : 선생님들이 진행하는 워크숍은 구조가 완전히 열려 있고 비어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양혜정 : 그렇지 않다. 어린이들의 놀이에서 형식은 매우 중요하다. 문화의 정서와 내용은 ‘형식’을 통해 전수되는 것과 비견될 수 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형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형식의 자유로움에 가까울 것이다. 놀이가 자유롭지만 규칙이 있고, 공동의 약속이 있는 것과 같다. 어린이들의 놀이를 관찰하면 많은 상상을 행위로 매우 형식적으로 조직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문화적인 것은 나만 본 상상의 세계를 함께 보는 세계로 적극적으로 가져오는 일이다.

조재경 : 용인문화재단에서 <아슬아슬 놀이터> 를 열었다. 예시로 들은 그간의 놀잇감과 구조물들을 일 년 동안 상시 비치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그 놀이터를 보면 구조가 가지는 힘이 있다. 연출한 것과는 다른 힘이다. 놀이는 반복하면서 생기는 에너지가 있다. 문화예술교육에서 컨설팅과 심의 중 공모 제안서를 보며 질문하는 포인트는 ‘열린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이다. 예술가만이 아니라 참여하는 유아들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받는 형식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경계 없음의 경계가 있다.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이 우리에게 깊은 철학적 고민과 방식으로 들어가고 그 고민이 계속되어야 한다.

변서하 : 두 분의 협업하는 관점이 같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나?

조재경 : 같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함께 공유하고 있는 가치는 같다고 할 수 있겠지만,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다. 나는 놀이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우연성, 즉흥성, 그때의 상황에 대한 것, 그 순간 거기에서 오는 즐거움을 염두에 두고 현장에서 작업한다면 양 선생은 예술성, 예술표현과 창작 본연의 근원에 관심을 두고 있다. 서로 다른 언어와 시선을 갖고 하나의 현상을 바라보며 관점을 공유하는 것이 흥미롭다.

양혜정 : 예술가의 예술성이 어디에서 태어나는가에 관해 이야기해 왔다. 그래서 어린이라는 대상을 나의 바깥에서 찾지 않는 것, 내 안의 어린이를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예술전공자들을 트레이닝하는 일은 예술가의 예술성을 깨우기 위한 스킬을 가르치기 이전의 단계들에 주목하는 일이다. 개인의 놀이 본성, 개성과 취향을 아주 편안한 상태에서 불러일으키는 작업을 하다 보니 성인일지라도 자기 내면에 어린이성이 깨어나면 예술성이 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고무신의 작업을 보면서 대화한 주제는 ‘어린이가 누구야?’라는 것이 아니었다. 대상화된 어린이에 대한 명제 찾기가 아니다. 다만 놀이는 예술보다 훨씬 근원적이고 자연스럽고 원초적임을 발견하였다. 오히려 고무신을 만나서 같이 놀면서 나의 놀이가 더 형식적(art form)이고 ‘내가 막 못 노는구나’ 자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웃음)


➁부가 이어집니다.  
조재경 / 고무신학교 대표, 놀이번역가
시간을 잇는 놀이, 공간에 갇힌 놀이, 어른 놀이, 아이 놀이를 지금 이곳에서 펼쳐내는 일을 한다. 놀다 보면 저절로 생기는 것에 관심이 많고, 새로운 놀잇감을 만들기도 한다. 경기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심사 및 멘토로 활동했으며, 경기, 서울, 인천, 제주문화재단 등 지역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양혜정 / 연극놀이전문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어린이, 청소년 및 다양한 시민들과 교사와 예술가를 위한 창의성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을 한다. 내면의 어린이를 깨워 감각과 상상을 연결하는 창조적 본성을 회복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영유아를 위한 공연을 연출하였다. 변화된 시대와 문화 속에서 어린이들이 어떻게 드라마틱한 상상과 놀이를 구현하는지 연구를 시작했다.
한예종 연극원 강사로, 영유아극 <푹하고 들어갔다가 푸하고 솟아오르는>을 연출하고, 서울문화재단 <영유아 예술프로그램개발을 위한 기초연구>에 연구진으로 참여했으며, <일상과 예술의 만남>을 기획하고 운영하였다. 경기, 인천, 광명문화재단 등 지역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만물공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