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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왜 춤을 추는가?
  • 장효강
  • 2023.12.11

지지봄봄 39호

-겨울의 두께

표류기

나는 왜 춤을 추는가?

장효강(춤추는 인생)

내 첫 스테이지는 2006년 개천 굴다리 밑이었다. 껄렁껄렁 불량한 이미지로 가득한 힙합문화를 따갑게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을 피해, 가장 친한 친구가 그래피티 낙서를 하던 하남의 덕풍천과 시청 주차장에 숨어 매일 춤췄다. 공부하라고 부모님이 끊어준 독서실은 수학이 아닌, 영어가 아닌, 춤을 공부하는 공간이었다. 책상 위에 노트를 꺼내 춤에 관한 온갖 이야기를 기록하고, 만들고 싶은 공연을 그려나갔다. 지금 돌이켜보니 순수했던 그 시절이 내 춤, 내 인생의 연출과 기획의 시작점이었다.

춤을 추며 의문이 생겼다. ‘나는 왜 춤을 추는 것일까’ 같은 질문을 꾸준히 반복했다. ‘멋있어서’, ‘재밌어서’, ‘짜릿해서’, ‘남들이 멋있게 봐주어서’, ‘공연을 위해’ 등 춤을 처음 추기 시작했을 때 대답은 주로 성취감이나 자존감을 향상하는 단순한 이유였다.

성인이 되어 좀 더 내면을 살펴보고 움직임을 확장하려는 욕구가 발동해 현대무용을 만났다. 당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초기 멤버를 우연히 스승님으로 만나 춤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스트릿댄스 테크닉과 현대무용의 자유로움이 융화된 움직임을 보며, 춤이 사람들에게 외적인 즐거움과 내적인 무언가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음을 발견하였고, 대중성과 예술성을 고루 갖춘 댄서가 되겠다는 꿈을 품으며 춤의 방향성을 잡아갔다.

 
경기국악원 공연 중
경기국악원 공연 중

너는 왜 춤을 추는가?


이십 대는 ‘댄서를 위한 댄서’라는 타이틀로 세상에 춤판을 만들어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자는 커다란 목표를 갖고 쉴 틈 없이 다양한 도전을 하며 청춘의 시간을 보냈다.

전공은 춤이 아니고 일반 대학교에서 경호학과, 관광이벤트학과, 체육학과를 졸업하였지만, 힙합동아리 활동을 하며 전국 대학의 힙합씬과 교류하고 스트릿댄스 공연과 배틀을 기획하는 일을 통해 무대 밖에서 댄서들의 열정을 펼치는 모습을 긴 시간 지켜보았다. 한때 나 또한 세계적인 댄서의 꿈을 안고 피나는 노력을 했지만, 어느 시점부턴가 나의 춤보다는 타인의 춤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어 댄서를 위한 댄서가 되자는 사명감이 생겼다.

그 시기 한 동료로부터 스타트업을 함께하자는 제의를 받았고, 세계 스트릿댄스 행사와 댄서들의 정보를 담은 스트릿댄스 플랫폼을 최초로 개발하였다. 앱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일본, 캐나다, 유럽, 인도로 넘어가 2년간 해외 댄서들과 함께 춤추고 교류하는 시간을 가지며 좁은 시야를 확장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내가 직접 세상에 감동을 만드는 춤을 출 수도 있지만, 나와 같은 꿈을 가진 전 세계 댄서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면 세상에 더 많은 선물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마음에 이 일을 한 것 같다.
 
춤 따라 떠난 첫 댄스여행 일본편
춤 따라 떠난 첫 댄스여행 일본편
 

우리는 왜 춤을 추는가?

사람은 사회에 가치를 창출하고 봉사할 때 커다란 행복감을 느낀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너를 위한 춤을 응원하는 이타적인 마음은 실제로 큰 행복감을 가져다주었기에 공감하였다. 다만 한 가지 간과한 것은 ‘나’ 또한 우리 안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사무적인 일을 반복하며 밖에서 타인의 춤을 바라만 보는 것에 지쳤고, 마음속 욕구의 응어리가 조용히 쌓여갔다. 사람들과 만나 춤추고 싶었다. 하고 있던 모든 일을 접고 다시 플레이어로 뛰어들었다.

삶의 목표와 경제적 어려움 사이에서 방황하며 혼란스럽던 시기에 만난 것은 예술 지원사업이었다. 친구 덕분에 알게 된 경기문화재단 청년예술인자립지원사업을 통해 대만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활동하는 멋진 친구들과 단체를 꾸려 예술사업에 도약할 수 있었다. 당시 7년 차 편의점 야간 알바를 했는데, 마지막 해 일하며 작성한 50여 개의 기획서 중 두 개의 프로젝트가 선정되어 나이 서른에 마침내 편의점과 이별할 수 있었다.

이후 3년은 ‘예술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프로젝트를 하자’는 슬로건을 가지고 공연, 지역 예술, 축제, 교육 등 쉴 틈 없이 크고 작은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였다. 고마운 친구들과 운이 잘 맞아 단시간에 수십 개의 작업을 진행하며 순탄하게 자리를 잡아갔다.

순탄하다고 머리는 말하는데, 마음은 아니었는지 매너리즘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왔다. 전국을 누비며 공연하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로봇 댄스로 사람들에게 재미를 줬다. 완벽히 로봇에 빙의한 내 마음은 정말로 마음이 없음을 느꼈다. 신나는 음악에 익살스러운 춤을 추며 세상 행복한 척 표정 연기를 짓지만, 속은 공허함만이 떠도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내가 사랑하는 춤이 업이 되고 일이 되며 겪는 성장통이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또다시 멈춰야 함을 느꼈고, 고요히 마음을 바라보며 직관이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시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다시 힘들고 예쁘게 쌓은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었고, 2023년이 찾아왔다.
 
부산국제연극제 공연 중
부산국제연극제 공연 중
 

교육프로그램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마음을 관찰했을 때 교육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처음 교육의 영역은 강한 부담으로 다가와 오랫동안 회피했다. 내가 과연 누구를 가르칠 능력이 되는가, 잘못된 방향으로 알려주면 어떡하지, 스스로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판단하여 마음 한구석으로 미루었다. 그러나 누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 내가 잘 알고 있는 것들을 함께 공유하고 나 또한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받으며 상호작용하는 과정으로서 교육에 대한 관점을 바꾸니 용기가 생겼다.

올해는 문화재단, 복지관, 공공기관, 학원, 학교 등 다양한 공간에서 어린아이부터, 청소년, 어머님, 직장인, 장애인, 어르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댄스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감사하게 즐겁게 성실하게 임하다 보니 입소문이 났고, 여러 기관에서 먼저 연락이 온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기피하고 나를 감추고 숨기는 내향적인 성향도 많이 바뀌었다. 육체적인 힘듦이 정신적인 즐거움 앞에 기를 못 쓰는 것이 가장 긍정적인 변화다.

예술교육프로그램의 가장 큰 매력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교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참여자들이 많이 어설프고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현한다. 함께 춤추며 활력을 얻어 일상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어머님들과 어르신들은 본인들이 힙합댄스를 한다는 것에 상당한 자긍심을 느끼고 자신감을 얻는다. 우리 부모님을 포함해 힙합에 대한 안 좋은 시각이 깨진 현시대가 신기하다. 이제는 힙합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가져다주고 세대 간 소통의 창구로서 가능성을 본다.

요즘 개발하는 프로그램 콘텐츠 중 하나는 시민들과 함께하는 춤과 인문학의 공존이다. 단순히 춤만 추는 것이 아닌, 힙합의 테크닉과 특징을 키워드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만의 템포로 춤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춤이 주는 선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기에 많은 사람이 인생에 한 번쯤 그런 경험을 안고 갔으면 좋겠고 그 전달자가 되고자 한다.
 
경기도 광주 어르신들과 힙합댄스 교육 후 공연
경기도 광주 어르신들과 힙합댄스 교육 후 공연
 

무덤덤한 여정

‘나는 춤이 너무 좋은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면 종종 물어보는데, 사람들도 이유를 잘 모르겠대. 그러다가 문득 이유가 중요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찾을 필요가 있을까? 춤이 좋고 싫고 라는 판단과 생각도 이젠 큰 의미가 없다고 여겨져 그냥 춤을 추는 구나.’

이 모든 여정은 어떤 커다란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삶의 흐름이 갈 곳을 향해 흐르고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것들을 선택하니 삶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저절로 나아갔다. 이제는 대단한 목표도 사명감도 모른다. 열정의 소멸을 느낀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저 춤을 추는 여정을 계속한다. 사람들과 함께 춤추며, 그들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아닌, 춤이 나를 추고 춤이 우리를 추는 것을 그냥 지켜본다.

‘춤추는 자는 사라지고, 춤만이 남는다.’ 내가 사라진다. 온갖 걱정과 잡념 속에 허덕이는 에고의 껍데기는 없어지고, 영혼인지 모를 무언가의 잔해만 남으며, 황홀경과 평온함이 공존한다.

 
그냥 고양이
그냥 고양이



장효강/ 춤추는 인생
살다 보니 춤추고 있고, 춤추다 보니 살아가고 있다.
춤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던 크고 작은 삶의 모든 사건들이 결국 춤과 연결되었다.
세상 자체가 리듬이었고, 그냥 그 리듬을 타고 흘러가다 보니 춤추는 인생을 살아가는 중이다.
이메일 gyrkdzld@naver.com
사진 제공. 장효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