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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교육 현장 스스로가 가진 질문과 고민 등을 풀어보고 서로가 서로에게 답해주는 댓글공론장입니다. 정답은 없어요. 그동안 활동하면서 느낀 다양한 생각과 고민들, 아이디어, 해결의 실마리를 자유롭게 꼬리로 이어주세요.

31호지나친 길에서 다시 걸어가며
: 예술 교육 현장에서 본 예술 노동의 감수성

31호 지나친 길에서 다시 걸어가며
: 예술 교육 현장에서 본 예술 노동의 감수성

2021-07-28 ~ 2021-08-27

동네에서 마주하는 예술교육 현장


오랜만에 버스에서 동네의 작업자를 만났다. 영역은 달라도 비슷하게 문화예술 공간을 운영하고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는 같은 동네 사람들이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동네에서 하는 교육, 축제 등 굵직한 주제의 사업들에 관한 생각도 나눴다. 문득 마을, 동네라고는 해도 학교의 대문을 열기가 어려운 일이었기에 비용과 상관없이 마을과 학교를 연결하는 일에 참여한 경험이 떠올랐다. 당시 학교에서 원한 교육 영역이 예술이라 지역 예술가들과 작업자들이 모였다. 교사 회의를 할 때 강사비 책정이 방과후 교실보다 높긴 하지만 이렇게 책정하면 지속하기 어렵고, 한 시간의 교육 과정을 준비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포함해야 한다는 점을 말했다. 한번 낮게 책정한 비용을 올리기가 어렵다는 것도 얘기하였고 적정 임금을 책정하기 위해 노력하자고 덧붙였다. 2년여 참여를 끝으로 공간 운영도 바쁘고, 교사로서 교육 과정을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교문을 열기보다 더 어려운 현실을 보고 현장에서 물러섰다. 동네일이니, 비판은 미뤄두고 참여하자는 마음이 나의 문제의식을 해결해주지는 않았다.

현장의 몇 사람이 예술 강사와 방과후 교사의 임금 기준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협상하기는 불가능하다. 그 뒤로 두어 번 장르 예술 강사를 찾는 전화가 왔지만, 그분들께 미안한 마음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솔직하게 말할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첫 번째는 예술 교사들 비용 책정이 너무 낮아서 못하겠다 결심했어요. 그런데 내가 안하겠다고 결심한 일에 다른 사람을 소개하기란 어렵지 않겠어요?” 요즘 학교 예술 강사비를 넌지시 물어봤는데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여전히 자치구 지원금으로 진행하는 일은 녹록지 않은 모양이다. 중간에서 기획팀은 기획팀대로 속이 상하겠구나, 여러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예술 교육 노동의 과정을 즉석 콩트로 만들었지


동네에서의 예술교육 경험보다 훨씬 오래전, 서울의 저소득층 예술교육을 준비하면서 지원사업의 예술 노동 시간 책정을 두고 지리멸렬한 논쟁을 했다. 당시 지원금을 책정할 때 시급의 개념으로 가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의 8시간 임금노동으로 어떻게든 예술 교사 노동을 설명해야 했다. 예술가의 노동자성 인정도 어려운 시절이라 ‘공무원들도 난감하긴 하겠다.’며 행정의 입장에 서보기까지 했다.
“자, 상상해보자고. 전날 교육이 끝나고 돌아와 다음 차시 준비하고 개인 작업도 하고 늦게 잠을 잤단 말이야. 다음날 가방 묵직하게 준비물을 챙겨서 지하철을 타. 적어도 1시간 30분 이상 이동하여 기관에 도착하고. 그날의 분위기, 아이들의 상태, 특이 사항 등을 점검하지. 수업 1시간 전에 함께 수업을 진행한 교사들과 같이 점검하고 교육 현장 세팅하고, 90분간 수업을 해. 끝나고 나서 기관 사람들과 평가를 30분, 교사들과 1시간 정도 오늘 수업을 평가하고 보완하는 회의를 해. 더불어 다음 차시 준비 점검과 역할을 나눠. 그날 저녁에 적어도 2시간 동안 수업 진행 보고서를 써. 다음 차시 수업 커리큘럼 점검과 준비 워크숍을 혼자 혹은 여럿이 1~2시간 해보고. 필요하면 재료를 사기 위해 2~3시간 움직여야 해. 이러면 60~70분 수업을 위해 최소 8~9시간의 노동시간이 필요하다고.” 긴 줄다리기 끝에 회차별 4만원의 기준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당시 시급은 2,510원이었고, 2005년 막 생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예술교사 강사비도 4만원 수준으로 책정되었다.

없어서 못 하는 것과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의 사이에서


2016~2017년 서울시 교육청에서 실시한 ‘학교와 마을이 만나는 교육공동체 SnS’ 사업에 참여해서 일주일에 한 번 두 곳의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예술교육을 진행했다. 학교 회계 편성기준에 근거한 강사비로 예산을 짰다. 이 부분은 사업 선정 과정에서 교육청과 협의한 부분이기에 90% 가까이 강사비를 지킬 수 있었다. 2년 연속 참여했고, 학교에 가서 협약을 진행할 때 행정을 담당하는 분들이 다른 강사들과의 형평성 얘기를 했지만, 강사 기준에 따라 책정했기에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씀드렸다. 교육청에서 내려온 비용이고 학교 자체 예산이 아니기에 학교에서는 이런 예술교사의 입장을 듣고 수용했던 것 같다. (왜 수용했냐 물어볼 수는 없었기에 추측임)
내가 당시 형평성이란 말에 흔들렸다면 아마도 강사비는 예술 강사 수준(1차시 수당 43,000원)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떨리는 심장을 안고 최소의 기준을 설정해서 이 이하는 안 된다는 말을 하면서 여러 가지 불안과 불편이 밀려와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이런 협상은 개인 예술가와 작업자, 예술 교사들이 하기에는 가혹한 일이다. 행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과 작업과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맞붙기에는 헤비급과 라이트급일 수밖에 없기에.
나는 ‘학교와 마을이 만나는 교육공동체 SnS’ 덕분에 학교의 예산 편성 기준에 예술 교사들에 대한 기준이 있음을 알았다. 예술 교사들의 노동을 학교 현장에서는 실습보조자 임금에 따르거나 혹은 더 낮은 기준으로 책정하는 현실을 목격했다. 원래 예술 교사 임금 기준이 낮은 줄 알고 학교와 교육청이 노동권 개념이 없다며 비판을 했는데, 있는데 지키지 않고 예술 교사의 노동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 더 나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시스템이 변하지 않으면 바위에 달걀이라도 계속 던져야지


2년 전인가, 성북의 사학 재단 비리에 맞서 학부모 대표로 싸우는 분이 이런 얘기를 했다.
“이 싸움은 달걀로 바위 치기입니다. 그런데 바위에 달걀을 계속 던지면 바위가 더러워져서 사람들이 저거 더럽다고 쑥덕쑥덕 얘기하고 피하고 욕도 합니다. 달걀로 바위를 깰 수는 없지만 더럽게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지원사업과 정책의 집행 기준은 법과 행정과 정치의 영역에서 바꿔나가야 하는 과정이다. 매우 어렵고 더럽게 더디다. 그러면 예술 교사들의 노동성을 존중받지 못한 사례와 가능성을 보는 사례를 수집하며, 한편으로 무섭고 불안하더라도 개인이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리고 함께 바위에 얼룩이라도 묻혀서 계속 사람들이 보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휴, 동네 작업자가 떠난 버스 뒷자리에서 심각하게 이런 생각에 빠져 그만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버렸다. 오늘 하루 내 일상을 살뜰하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나의 노동을 내가 먼저 존중하며 살아야지, 내려서 천천히 지나온 길을 걸었다.

 

삐삐 / (사)마을예술네트워크
허선희. 서울시 마포구에서 동네 문화예술공간인 ‘공간 릴라’를 운영하는 문화예술 기획자.
마을예술창작소 네트워크를 진행하는 (사)마을예술네트워크에서 기획자로 일하고 있음.